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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9)화 (19/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9화

“나랑 륜 형이 누이 주려고 남겨 왔어요…….”

련은 못내 감동받은 얼굴을 했다가, 용수당 하나를 종알거리는 단목비의 입가에 물려 주었다.

“앗! 아니, 누이 주려고 한 건데. 내가 먹으려고 한 게 아닌데…….”

달콤한 것을 먹으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와중에도 울상을 지으려고 애쓰는 단목비를 보고 조금 웃은 련은 화륜을 향해 손짓했다. 화륜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누이, 저는 괜찮은데요.”

“어허! 얼른 이리 와.”

어린애 어르는 말투에 화륜은 질색인 표정을 지으려고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터덜터덜 그녀에게 가까이 왔다. 련은 공평하게 화륜의 입에도 용수당을 넣어 주었다.

“자. 맛있어?”

“…….”

뭐라고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화륜은 용수당과 말을 함께 삼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용수당 하나를 말끔히 먹어 치운 단목비가 련의 뺨에 입술을 문지르듯 입맞춤했다. 아이의 숨결에서 달콤한 냄새가 퍼졌다.

련은 그런 단목비를 향해 거의 질색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화륜을 보고서 웃음을 터뜨렸다.

“륜아는 단건 싫으니?”

련은 왜 용수당이 세 개인지 알 것 같았다. 단목현우는 한 사람당 두 개씩 주었을 텐데, 단목비가 애써 하나만 먹고 남은 걸 가져왔다면 화륜은 두 개를 다 먹지 않고 내놓은 것일 테다.

단목비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화륜을 쳐다보았다. 화륜은 용수당을 다 먹고는 눈동자를 굴렸다.

“아뇨, 음. 좋아요. 하지만 남은 하나는 누이 먹어요.”

“맞아! 누이 먹어요.”

소년들이 재잘거렸다. 련은 묘하게 사이가 좋아 보이는 두 소년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단목비도 또래와 비교하자면 월등히 의젓할 것인데, 화륜과 함께 있으면 영 응석받이 막내로 보였다.

그렇다고 화륜이 뭔가 엄청나게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건 아닌데…….

“그래서 나한테 정말 이 용수당만 주려고 온 건 아니지?”

“에헤헤…….”

단목비가 응석 부리는 표정으로 뺨을 부풀리며 미소 지었다. 련은 난로 근처의 작은 바구니로 향했다.

“우와아아…….”

배가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작고 하얀 고양이가 탕파까지 넣어 포근한 바구니 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아이 세 사람이 고개를 박고 저를 주시하는 줄도 모르고.

고양이는 보드라운 솜털이 송송 솟아서 털 인형처럼 보였다.

“이름은 뭘로 정했어요?”

“난 하양이로 할까 했는데 어머니는 백련이 어떻냐고 하셔서…….”

련이 데려온 하얀 것이라고 백련이라니, 딸 사랑도 이런 딸 사랑이 어디 있나 싶지만 싫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유모 장 씨까지 좋다고 박수를 쳤던 데다가 이 어린 고양이마저 하양이라는 이름보다는 ‘백련’이라고 불릴 때만 귀를 쫑긋거렸다.

“저도 좋아요!”

흥분한 단목비가 외치는 말에 고양이가 귀를 움찔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단목비가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륜아 너는 어때? 너도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자신에게까지 물어볼 줄 몰랐는지 어깨를 움찔한 화륜은 련을 돌아보았다가 금세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양이보다야 뭔들 낫지 않겠어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지는 사람이 너다. 너야.”

화륜은 잠깐 멍하게 있다가 큰 소리로 웃었다.

련이 기막혀 하는 사이에 아기 고양이가 잠에서 깨어 끼잉 끼잉 울어 댔다.

련은 아직도 웃고 있는 화륜을 밀치고는 고양이를 안아 들고 달랬다. 단목비도 손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고양이를 달래려 애썼다.

“너도 와서 좀 어떻게 해 봐.”

“제가 뭘 어떻게 한다고 되겠어요?”

화륜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섰다. 련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의 손을 덥석 낚아채어 끌고 왔다.

“살살 쓰다듬어 주는 거야. 알겠지? 부드럽게. 꽃잎을 만질 때처럼 말이야.”

화륜은 꽃잎 같은 걸 왜 만지냐는 표정을 지었지만 차마 련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서 백련의 정수리 끝에 손가락을 댔다. 그 손이 움찔 떨려서 련이 조금 웃었다.

“왜 그렇게 무서워해?”

“무서워하는 거 아니에요!”

억울하단 표정으로 외친 화륜이 샐쭉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괜히 만져서 이 녀석 잘못되기라도 하면 누이가…….”

“잘못되고 그럴 일 없어. 그리고 네가 사고 좀 친다고 내가 때릴 것도 아닌데.”

“아니, 누가 지금 그런 걸 걱정한다고.”

화륜은 황당하단 얼굴로 련을 한번 돌아봤다가, 어린아이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곤 고양이 백련을 살살 쓰다듬었다.

소년의 얼굴 위로 몹시 낯설어하는 듯 혹은 씁쓸해하는 듯한 기묘한 빛이 감돌았다.

‘마천교 교주 새싹의 그릇은 이렇게 다른 건가? 고양이 한 마리 예뻐하기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고양이는 삐악거리며 화륜의 손에 몸을 맡겼다. 그러곤 언제 잠투정을 했냐는 듯이 다시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잔다…….”

“누이, 이 애 밥은 언제 줘요?”

“너희 오기 조금 전에 줬으니까 이따가. 같이 밥 줄까?”

“네!”

“그렇다고 고양이랑 놀기만 하면 안 돼. 난 이제 무공을 배울 건데. 너희도 얼른 글자 다 외우고 같이 무공 배워야지?”

“어어! 저 지금 가서 글자 외울래요!”

누이랑 같이 배우고 싶다며 단목비가 열심히 찡얼거렸다.

그사이에 화륜은 입 안에 남은 용수당의 단맛을 되새김질하며 손끝에 붙은 흰 털을 떼어 낼 뿐, 영 관심 없는 표정이었다.

* * *

저 북쪽에는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기씨, 아기씨!”

“유모? 무슨 일이야?”

“지금 만송상단의 대장궤께서…… 그러니까 상단주께서 오셨어요. 그래서 태상가주님께서 아기씨를 모셔 오시라고 하셨답니다, 지금이요.”

“만송상단 상단주?”

만송상단이라는 말에 련의 눈이 반짝 빛났다. 지난주에 단목현우가 만송상단의 상단주에게 청련수를 보내자 하여 함께 포장을 해서 보냈었다.

유모 장 씨가 련의 피풍의를 찾는 사이에 단목비는 ‘대장개’가 뭐냐고 총관에게 물었다. 총관은 ‘대장궤’란 상방에서 최고 우두머리를 말하는 거라며 단목비에게 설명해 주는 동안, 련에게 은근슬쩍 다가온 화륜이 속삭이듯 물었다.

“그런데 아기씨, 정말로 이제 무공 배우게요?”

남들 있을 땐 꼬박꼬박 아기씨라고 하는 화륜이었다.

“응. 천자문 다 외우고도 한 달이 지났잖아. 그동안 체력 단련도 열심히 했고. 원랜 오늘부터 배우려고 했는데 손님이 오셨으니까 아마 내일…….”

“괜찮겠어요?”

련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

화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에 흑월 찾으러 산에 오를 때도요. 누이 혼자 헉헉대고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그때보다는 나아졌지! 그리고 난…….”

련은 입을 어물쩍거리다 결국 말하고 말았다.

“난 어리니까 그렇지. 아직…… 아직 아기란 말이야.”

“여덟 살인데?”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제 배워서 어른도 되고 좀 더 강해져야지…….”

“지금 만송상단에서도 찾아왔다면서요? 그 사람한테서 장사 배우는 건 어때요?”

련은 눈을 가늘게 떴다. 화륜의 말은 결국 한 곳으로 흘러갔다.

정말로 장사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무공이 싫은 눈치였다. 그녀도 다른 걸 배웠으면 할 정도로.

“륜아 너는 왜 그렇게 무공을 싫어하지?”

“배워 봤자 칼부림밖에 더해요?”

“하지만 우리 집은 무림 세가니까 안 배울 수는 없어.”

“무림 세가나 힘센 상방이나 뭐 다른 거 있나?”

“…….”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세가가 왜 세가인가? 무공을 단련해 도와 깨달음을 이루고자 함이 아니라 사적인 영달, 가문의 명예와 부귀영화를 위하기 때문에 세가라 불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너 다른 데 가서 그런 말 하면 큰일 나.”

련 자신이니까 이런 얘길 듣고도 고개를 젓기만 했지, 다른 세가에서 이런 얘길 했다간 치도곤을 당할지도 모른다.

“제가 다른 데 어디를 가서 누구랑 말을 해요?”

화륜은 련의 우려에도 샐쭉하게 대꾸하고는, 천자문을 모두 외워서 무공을 배우겠다는 단목비에게 손목이 잡힌 채 끌려 나갔다.

* * *

만송상단은 절강성에서 제일가는 상단으로, 만송상단의 그림자를 밟지 않고서는 서호를 유람할 수 없다는 말로 그 위세를 대신하곤 했다.

그와 동시에 한때 단목세가가 절강성의 패주가 될 수 있었던 든든한 기둥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금의 상단주가 소년이던 시절, 항주로 건너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 위험할 뻔했던 것을 때마침 근처에 있던 청년 단목천기가 구해 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지금 단목세가가 연이은 비극으로 저물어 가는 동안에도 만송상단은 더욱 날개를 뻗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무림 세가의 한계이기도 했다. 무예로 일어선 가문이기에, 세가의 물리적인 강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다른 그 무엇으로도 위엄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세가의 강자가 거꾸러지면 가문도 함께 거꾸러지고 만다. 속세의 무림 세가라는 것이 상방과 다를 바 없다 해도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월영재 안으로 들어가자 노인 두 사람이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인사하거라. 만송상단의 대장궤이자 상단주시다. 이 할아비와는 오랜 벗이니라.”

련은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무릎을 살짝 굽혔다 펴며 절했다.

“단목련이라 하옵니다.”

견언조

낙성십이검 : 5성

고민 : 첫째 견위정과 둘째 견위운 중 누구를 후계자로 삼을지 정하지 못하다. 부족한 첫째를 보며 가슴 아파하다. 셋째의 향시를 걱정 중. 단목세가에 은혜를 갚을 때를 기다리고 있다.

련은 슬쩍 만송상단의 대장궤를 살펴봤다가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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