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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20)화 (20/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20화

일단 그가 낙성십이검을 5성이나마 익히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하긴 낙성십이검이야 세가에서 운영하는 유성표국의 표사만 되어도 알려 주는 기본검법이니까…….’

그래도 그걸 상방 일을 하는 사람이 오 성까지 익히다니, 보통 노력한 게 아니었을 것인데.

견언조가 단목련을 보고서는 열렬히 반겼다.

“오오…… 눈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아기가 어찌 이리 말끝이 여물고 똘망똘망한가.”

련은 ‘이제 여덟 살이나 되었고 곧 있으면 아홉 살인데.’ 라고 입 안으로 웅얼거리다가 그만두었다.

노인들이 보기엔 사실 정말 아기처럼 보일 것이다.

견언조는 련이 깨어난 일을 거듭 축하하고 그녀가 얼마나 명석해 보이는지 줄줄 늘어놓았다.

그동안 단목천기는 흠, 흥, 하며 듣기만 할 뿐이었다. 썩 기쁘거나 즐거운 기색은 없었지만 멈추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차가 다 식고 나서야 견언조가 품에서 작은 도자기 병을 꺼내며 련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아기가 보내 준 이 청련수 말이다.”

련의 눈동자 위에 떠오른 별 가루도 반짝 빛을 냈다.

“단목세가의 약당에서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이걸 좀 팔아 보면 어떨까, 하고 태상가주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 얘기는 약당주와 해야 한다시지 않으냐? 그래서 내가 약당주를 붙잡고 물었더니 그는 또 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야.”

이 급박한 전개에 련이 단목천기를 쳐다보았다. 단목천기는 그제야 헛기침 소리만 하던 침묵을 깨고 말했다.

“사실 그것은 련아가 직접 만든 것이네. 그러니 그걸 가지고 뭘 하려고 하면 련아의 허락을 받아야지.”

련은 단목천기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는 사실에 놀랐다가, 견언조가 두말하지 않고 그 말을 믿는 듯하자 또 놀랐다.

“세상에! 아기가 진실로 재능이 있습니다, 태상가주. 신선께서 데리고 가셨다가 다시 돌려주셨다더니 그 소문이 맞는 말이었군요.”

“흰소리는 그만두게. 그래서 정말 이걸로 뭘 해 볼 셈인가, 자네?”

“제가 그러려고 예까지 달려왔지 그럼 뭐 하러 왔겠습니까? 설마 태상가주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려고 혀나 놀리러 왔겠습니까?”

단목천기가 작게 헛기침했다. 정말 그런 뜻이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견언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직접 의자를 빼어 련을 자리에 앉혔다.

“손끝에 바르면 기분이 청명해지고, 관자놀이에 바르면 두통이 가시고 졸음이 깨고, 근육이 뭉친 곳에 바르면 사르르 풀어지지. 내 하인이 코를 훌쩍대기에 코 아래에 발라 줬더니 다음 날 감기가 싹 나았더구나!”

장부를 들춰 보고 기록하느라 쑤시던 손가락 마디에도 발랐더니 아픔이 가시는 걸 보고서 곧장 달려왔다는 견언조는 이건 된다, 되는 물건이다, 반드시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럼 얼마에 팔면 좋을까요?”

잠자코 견언조의 찬탄을 듣고 있던 련이 질문했다. 견언조가 입을 싹 다물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수다스러웠던 인물이 조용해지자 사방천지에 침묵이 자리한 듯했다. 저 멀리서 새 한 마리가 멀리서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리다 흩어질 무렵 견언조가 말했다.

“호선의각의 약방에서 말해 주길 한 작(勺)의 정유를 팔아 아주 작은 이익이라도 남기려면 최소한 동전 열 냥은 되어야 할 것이라 하더구나.”

동전 한 냥이면 둘이서 그럴듯한 식사 한 그릇을 할 수 있다.

열 냥이면 적당한 객잔에서 닷새는 머무를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배합비를 고안한 값도 들어가 있지 않지. 정유마다 값은 또 천차만별이니 쓰인 것마다 계산을 달리해야 할 것이고. 얼마나 만들 수 있는지를 모르니 그 또한 셈을 해야 하니…….”

견언조의 말을 잠자코 들은 련은 셈을 끝마쳤다.

“선물해 드린 청련수는 특별한 방법으로 만든 것이라 말씀하신 대로 무턱대고 많이 만들 수가 없어요. 1작에 동전 100냥, 그러니까 은자 1냥으로 하고 예쁜 자기 병을 쓰면 어떨까요.”

갑자기 열 배로 뛴 가격을 들은 견언조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저기 서 있는 하인이 한 달에 은자 1냥을 못 벌 것인데, 그래서야 누가 사겠느냐?”

“원하는 자들이 살 거예요.”

“그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 서호용정(西湖龍井) 한 단지에 은자 한 냥을 받아도 없어 못 파니. 그러나 이 작은 청련수 한 병에 그만한 가치가 있으랴?”

련은 빙긋이 웃으며 다른 걸 물었다.

“만약 만송상단과 계약을 하게 된다면 이 일은 누가 맡게 되나요?”

“나의 자식들 중 한 사람이 직접 맡을 것이야.”

“어르신의 자식들 중 누구요?”

견언조는 이 대화에 흥미를 느끼곤 고개를 기울였다.

“내 첫째 위정은 오랫동안 가문의 일을 거들어 와 사업을 꿰뚫어 보는 눈이 좋은 편이다. 둘째 위운은 무엇이든 엄격히 살펴보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며 건너지. 자, 네가 선택하거라. 누가 이 사업을 맡아 주었으면 좋겠느냐?”

련은 속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만송상단의 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첫째 견위정의 사업을 꿰뚫어 보는 눈이 좋다는 말은 지금까지 감으로 찍은 것들이 그저 운이 좋아 맞아 들어갔단 뜻이다.

엄격히 살펴보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둘째 견위운이야말로 믿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견위운은 만송상단을 물려받지 못해 자신의 상단을 차렸는데, 만송상단이 견위정의 손아래에서 바스러질 때 견위운의 새 상단은 강남 일대를 휘어잡았다.

하지만 지금 련이 기다리는 건 이 둘이 아니다.

“어르신께 셋째는 없으신가요?”

“하하하! 상가의 자식이라고 모두 상방의 일을 하지 않는다. 셋째 위학은 학업을 잇고 있느니라. 곧 있을 향시를 준비 중이지.”

견언조는 그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지만 내심 아들의 향시 합격에 대한 기대가 없지 않은 듯했다.

견언조는 절강성 바로 위에 위치한 남직례의 휘주 상인 출신이다. 휘상들은 모두들 자식을 키워 과거에 급제시키려고 안달이었는데 절강성에 자리 잡은 견언조에게도 그런 면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어르신의 꿈은 이루어질 거예요.’

련은 방긋 미소 지었다.

“그럼 저는 위학 공자께서 맡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공자는 무슨! 숙부라고 불러주면야 족하느니라. 그래도 되겠지요, 태상가주님?”

“자네가 내 아우이니 촌수를 따지자면 좀 더 멀기야 하겠으나…….”

“뭐 그리 따지십니까. 숙부뻘이면 그냥 숙부라고 하면 되지.”

견언조가 껄껄거리며 억지 부리듯 말했다. 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단주의 아들을 숙부라고 부르라는 건 지금 단목천기와 견언조의 관계를 후대까지 이어나갈 의사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위학 숙부께서…….”

“그 애는 상단 일을 하지 않는다니까?”

“하지만 어르신.”

련은 고개를 흔들었다.

“‘청련수를 썼더니 장원 급제를 했다’고 하면, 청련수 한 병에 금전 한 냥을 가지고 오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거 아니겠어요? 저는 위학 숙부님께서 청련수를 가지고 뭔가 해 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써 주셨으면 할 뿐이에요.”

* * *

견언조와의 대담을 마치고 월영재를 나서던 련은 접객당 근처에서 서성이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닮았는데?’

방금 전까지 마주 보고 있던 늙은 상단주의 눈매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다만 좀 더 미형이기는 했다.

그런데 옷차림이 조금 이상했다. 여자는 남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냥 남장이 아니라 견언조에 비하면 아무래도 다소 허름한 것이 마치 하인이나 마부 같았다.

거기에 견언조를 쏙 빼닮은 형형한 눈빛이 위화감을 불러왔다.

련이 소맷자락 위로 선경을 불러오자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견위운

낙성십이검 : 2성

무한보 : 2성

고민 : 견언조의 장남 사랑을 끝낼 방법, 견위정의 낭비를 막을 방법.

‘견위운? 아니…… 이 사람이 왜 하인 행색을 하고 따라왔어?’

다소 황당해서 저도 모르게 말을 걸게 되었다.

“여기서…… 뭐 하세요?”

“아! 련 아기씨 아니십니까!”

견위운과 함께 있던 하인이 파랗게 질려서는 얼른 위운을 뒤로 보내며 련에게 넙죽 고개를 숙였다.

“저, 저희는 그게, 주인님…… 상단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 모시고 가려고요.”

“그건 아는데. 저기 위운 소저…….”

련의 말을 들은 하인이 거의 펄쩍 뛰었다. 약간 과장을 보태 련의 키만큼 뛰어오른 것 같았다.

“아, 아니, 아니, 무슨, 무슨 말씀을, 아니에요, 아기씨, 그게…….”

하인이 반쯤 울면서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하인 뒤에 서 있던 견위운이 하인을 끌어당겼다.

“됐다. 이미 들킨 마당에 허튼소리 하지 말아라.”

“하지만 아가씨…….”

견위운은 고개를 내젓곤 련을 향해 양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련 아기씨. 견위운이라 합니다. 부끄러운 꼴을 보였습니다.”

견위운의 목소리는 정이 없어 서늘했지만 정중하고 격조가 있었다.

보통 한 지방에서는 왕처럼 군림한다고 하는 무림 세가, 그 세가의 장손이라지만 단목세가는 다 망해가는 처지인데도 그랬다.

련의 눈동자에 이채가 흘렀다.

“왜요?”

“네?”

“왜 이러고 오셨어요? 견 할아버지랑 같이 오셨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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