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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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각주 설관희는 솔직히 단목련의 생일마다 길거리에 왕만두를 뿌리는 이 행사가 아무 의미 없이 재정만 낭비할 뿐인 헛짓거리라고 생각해 왔다.
일단 빈곤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만두를 나눠 준다고 해서 그 보답으로 태상노군이나 부처가 딸을 낫게 해 줄 리가 없다. 그랬으면 세상 모든 부자들은 병든 자식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딸이 정말 나아서 매년 주던 만두가 끊기면 되레 욕이나 들으면 들었지,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을 자선이었다.
다만 지금은 아니라곤 해도 절강성에서 오랫동안 권세를 누려 왔던 단목세가이니만큼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행위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당사자가 자신의 생일잔치를 벌일 예산으로 그 만두 나눠 주는 일을 계속하자고 했을 때는 조금 놀랐다.
저 나이 때는 뭐든 화려하게 일을 벌이고 남의 관심을 받길 즐길 때라고 여겼는데.
‘신선이 데리고 있다가 돌려줬다는 얘기가 진실일 리는 없는데도…….’
“그래도 세가 안에서 작은 잔치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 하루 종일 만두 나누는 일을 거들고 와서 온몸에 만두피 냄새와 고기 냄새를 풀풀 풍기는 초일이 왠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관희는 혀를 찼다.
“아기씨 정신 차리시고 첫 번째 생일인데 이렇게 유야무야 지나갈 줄은 몰랐습니다.”
“세가에 돈이 있어야 잔치를 하지.”
“그래도요…… 아주 없는 것도 아닌데.”
하긴, 확실히 그 점이 놀라운 일이라고 설관희는 생각했지만─어느 정도 자금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장손의 잔치를 열지 않은 것이─ 티 내지는 않았다.
“태상가주님께서도 아기씨를 그렇게 아끼시면서 어째 잔치를 안 열어 주셨을까요.”
설관희는 최근 월영재의 풍경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기억하기로 단목현성을 키울 때도 단목천기가 그렇게 달라붙어 있진 않았던 것 같았다.
“아기씨가 잔치는 싫다는데 그럼 도리가 있겠냐?”
“그러니까요! 아기씨는 왜 싫다고 하셔 가지고.”
깨어나고 처음 맞이한 생일은 요양하느라 흐지부지 지나가서 이번이 사실상 첫 번째 생일이나 다름없는데 맥없이 지나갔다며, 초일은 계속 억울하단 투로 중얼거렸다.
“잔치도 안 여니까 금가장 놈들이 우릴 얕보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걸로 얕보는 놈들이 바보들이지.”
설관희는 싸늘한 말로 초일의 기를 죽여 놓긴 했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은 내심 인정했다.
사람이란 어리석은 생물이라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내실을 짐작하는 경향이 있지 않던가.
단목현성 사후 계속 가세가 기울어 가는데, 그 딸의 병세가 낫고도 사람을 불러 모아 크게 잔치를 치르지 않았으니 이것으로 흠을 잡는 사람들도 있을 만했다.
“그래도 만두는 별 탈 없이 다들 잘 받아 갔느냐?”
“예에. 아기씨가 무사히 일어나신 것도 모두 기뻐해 줬습니다요. 아기씨도 즐거워하셨고요.”
설관희는 잔치를 여는 것 대신에 만두를 나눠 주기로 한 덕분에 아낄 수 있던 금액을 곱씹고는 그 역시 흐뭇하게 웃었다.
* * *
단목천기는 아무래도 첫 수업에서 련이 경련을 일으킨 것 때문에 본인도 마음속에서 경기를 일으킨 듯했다.
낙성십이검에 대한 자세한 수련은 련이 경련한 첫날이 끝이었고, 그 뒤로는 주로 기초 체력 단련과 유연성 향상을 위한 수련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저녁에는 함께 식사를 하며 한 초식씩 탐구하는 대화를 가지는 게 전부였다.
“유성이 떨어지는 걸 못 보았느냐? 아주 먼 곳에서부터 눈 깜짝할 새에 바로 코앞까지 내려왔다가 사라져 버린단다, 꼬마 오리 녀석아.”
“하지만 유성은 그렇게…….”
련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와 동시에 련의 눈동자 위로 반짝이는 가루 같은 것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심안과 조화를 발동시킨 것이다.
련은 젓가락을 고쳐서 손으로 움켜쥐고는 가볍게 선을 그렸다. 낙성십이검의 마지막 초식을 조금씩 고쳐 그려나갔다.
심안 5성의 효과가 컸다. 단점이 보이면, 이제는 단점을 어떻게 장점으로 바꿔야 할지도 보였다.
“그게 그렇게 가볍지는 않잖아요. 그럼 낙성십이검도 조금 더…….”
처음에는 단목천기의 눈동자 위로 가벼운 이채가 흘렀으나, 이젠 천천히 경악이 흘러나왔다. 련이 젓가락을 움직이는 걸 보면서였다.
“……묵직해야 한다?”
“그렇죠. 그리고 낙성십이검은 유성의 움직임을 본뜬 검이 아니라 유성을 만들어 내는 검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러니까 좀 더 음, 힘이 느껴져야 하지 않을지 싶고. 또 그렇게 떨어진 유성은 운철이 되잖아요. 운철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 같은 느낌으로?”
“운철을 본 적은 있느냐?”
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 검이요.”
“아, 그랬지…… 크흠.”
단목천기는 작게 헛기침했다.
“그래서 네 말은 좀 더 느려도 된다는 말이렷다?”
그가 몰랐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이제야 하기 시작한 생각을, 이 어린 손녀는 벌써부터 깨친 것이다.
“느린 건 아니고, 음, 유성이 빠르긴 하니까…… 빠르지만 묵직한 느낌요. 깃털이 천 개 뭉쳐 있어도 바닥에 먼저 떨어지는 건 그보다 작고 무거운 돌멩이인 것처럼, 음, 그러니까 이렇…… 게, 요렇게, 요런 느낌…….”
련이 쥔 젓가락 한 짝이 기묘한 곡선을 그리며 느리게 움직였다.
심안과 조화를 발동시켜서, 머릿속에서 자신이 보았던 단목천기의 마지막 초식을 그대로 재연하면서도 아주 조금 더 느리고 묵직한 힘과 묘리를 담은 동작을 보여 주었다.
“그래요, 이 느낌을 살려…… 아.”
젓가락을 곧추세우고 스스로 완성한 동작에 기뻐하던 련은 그만 눈을 커다랗게 떴다.
[행운 항목이 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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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은 보답받기 마련입니다.
빛이 가볍게 산란하더니 눈앞에 스르륵 글자가 떠오르는 것이다. 놀라서 눈만 깜박거리는데 맞은편에 앉은 단목천기는 어느새 눈을 감고 있었다.
대기가 느리고 부드럽게 회오리치며 그에게로 이끌려 들어갔다. 기묘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내실에 서서히 퍼져 나갔다.
허공에 떠올랐던 글자는 곧 사라졌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앉아 있기만 하던 련은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밖으로 나와 조용히 문을 닫고, 다가오려는 하인들을 손짓해서 바깥으로 물렸다. 멀리서부터 총관 강립이 의아한 얼굴을 짓기에 그만을 불러서 일렀다.
“으음, 할아버지가 깨달음을 얻으셨으니까…… 오늘 밤은 조용한 게 좋겠어.”
“네?”
총관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여 무릎까지 굽히고서 련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했다.
“아기씨, 방금…….”
“할아버지가 뭔가 깨달음을 얻으셨어. 번쩍하고 뭔가가 온 것 같아.”
총관은 그 말을 듣고도 잠시간 멍하다가 펄쩍 뛰어서 련을 놀라게 했다.
놀란 련에게 사과의 말을 거듭한 총관은 거의 입술만 움직여서 소리 없이 하인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련은 검 노릇 하던 젓가락 한 짝을 손에 쥐고 그렇게 고요 속에 잠드는 월영재를 바라보았다.
* * *
세가에 한 줌 남아 있던 무사들이 호위를 서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이에 조용히 침실로 돌아온 련은 눈앞에 펼친 새하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였지만 련의 눈에는 정갈한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단목천기가 뭔가 깨달음을 얻은 그 순간에 그녀가 봤던 바로 그 문구였다.
* 행운 항목이 개방됩니다! *
현재 행운 수치 : 10/120
선행은 보답받기 마련입니다.
련은 마지막 줄에 집중했다.
‘착한 짓을 하면 행운 수치가 올라가는 건가?’
하지만 착한 일이라면 그래도 지금까지 제법 한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다가 왜 이제야?
련은 그 상황을 곱씹다가 알아차렸다. 자신이 그냥 선행을 한 게 아니라 그간 나름대로 가진 영기를 털어서 조부를 돕지 않았나.
정화를 틈틈이 쓰면서도 조화와 심안까지 사용하여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으니 작은 일은 아니다.
‘전대 천하제일인한테 깨달음을 주는 정도의 선행을 해야 얻는 게 10…….’
‘10’은 보기에도 아주 작은 숫자였고, 실제로도 행운 항목이 열렸다 해도 체감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련은 기죽지 않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런 속성은 하루아침에 다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기대할 것도 아니었다.
‘이런 건 묻어 두고 잊고 살다가 보통 중후반부에 터뜨리는 거지.’
살다 보면 정말로 행운이 필요한 때가 올 것이다. 사람이 독립을 해야 한다는 이립(서른), 세상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마흔),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지천명(쉰)…….
단숨에 하려고 하면야 아득하겠지만 반드시 언젠가 볕 볼 날이 오지 않을까?
련은 자신의 스물, 서른, 마흔, 쉰을 차례대로 생각해 보았다. 서른까지는 살아 본 적도 없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더 오래 더 멀리 삶을 여행하기로 결정했으니 준비할 것도 더욱 많았다.
‘응? 그런데 한계가 정해져 있네. 백이십……? 끝까지 다 채우면 어떻게 되는 거지?’
행운이 가득 차면…… 뭐가 되는 걸까?
련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백지 위에 그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