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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30)화 (30/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30화

“아, 자네 혹시 청련수 말하는 건가?”

“아! 예! 그거 말입니다. 어떻게 한 병만 구할 수 없겠습니까? 저희 아들도 부끄럽지만 향시에 합격은 한 덕에 이제 회시를 치러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좋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그걸 쓴다고 아들 녀석이 회시에서 뭐 얼마나 대단한 성적을 내겠느냐마는…….”

우리 아들이 그걸 쓴다고 해서 당신 아들의 성적을 위협할 정도는 되지 못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좀 알려 주면 안 되겠느냐는 뜻이다.

견언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그대에게라면야 내가 뭔들 못 주겠나? 그런데 이제 그게 물건이 없어. 자네도 예까지 들었는가? 내 의형의 손녀가 만든 것이라고…….”

대행수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견언조가 얼른 덧붙였다.

“그리고 그게 있어도 말이야, 그게 사실 한두 푼 하는 게 아니어서…….”

“저희한테 돈이 대수겠습니까?”

장원 급제를 시켜 주는 전설의 비약이 몇 푼밖에 안 할 리가 없지 않나!

견언조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를 보여 주었다.

“요만한 작은 병에 은자 한 냥이라네.”

대행수는 잠시 속으로 주판을 튕겼다.

그가 전장에서 다루는 돈에 비하면야 푼돈이지만, 그래도 하인 하나를 한 달 내내 부리고도 남음 직한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도 이제 은자 두 냥을 줄 테니까 먼저 찾아 달라는 이가 있어서 말이야…….”

“제가 은자 세 냥을 드릴 테니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아니, 은자 닷 냥에 두 병은 어떨까요?”

“흠.”

견언조가 잠깐 침묵하며 고개를 기울이자 대행수가 얼른 몸을 가까이하며 웃었다.

“아이고, 조카분께서 성심성의껏 만든 거라고 하셨지요? 그게 어디 두 병 세 병 덜컥덜컥 나오겠습니까? 닷 냥에 한 병이면 족하지요. 아무렴요.”

“내가 일단 의형께 말씀은 드려 보겠네만 너무 큰 기대는 말게나.”

견언조가 은근한 미소를 그리며 답했다. 대행수 역시 그와 비슷하게 은근한 미소를 그렸다. 두 사람의 대화는 곧 향시에 장원 급제 한 견위학을 축하할 잔치 쪽으로 옮겨 갔다.

* * *

삐이이이익!

“났다! 소리 났…… 어어엇!”

지금까지 피리를 입에 대고도 쉭쉭 소리밖에 못 냈던 련이 처음으로 힘차게 음을 내고는 벌떡 일어났다가 숨이 모자라 휘청했다.

곁에 있던 화륜의 품에서 도로롱거리며 낮잠을 즐기던 하얀 고양이 백련이 폴짝 뛰어올라 련의 다리를 받쳐 주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화륜이 련의 왼팔을, 맞은편에 앉아 있던 단목현우가 벌떡 일어나 련의 오른팔을 부축했다.

련은 잠깐 그들에게 기대 어질어질한 숨을 헉헉거리다가, 기쁜 얼굴로 단목현우를 바라보았다.

“숙부, 숙부! 들으셨죠?”

“그럼, 그럼. 내가 들었다마다. 벌써부터 소리를 내다니 네게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 같구나!”

단목현우는 뿌듯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련은 잠깐 창피함을 느꼈다. 화륜이 다시 품으로 돌아온 백련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이 쌕 웃었다.

소리 좀 냈다고 기뻐한 건 좋았지만 그게 특출난 재능이라는 소리를 면전에서 들으니 부끄러웠다.

“아, 아니. 흠흠. 재능까지는 아니고요…… 소리만 겨우 났는데.”

“소리 한번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이건 정말 굉장한 거야! 이제 곧 나와 합주할 수도 있겠다.”

“아니, 그건 정말 아니에요.”

련은 단호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단목현우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은 것 같았다.

단목현우는 일단 숨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따뜻하게 데운 차를 내주고는 쉬운 악곡을 실어 놓은 유량보(有量譜)를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아…… 숙부…….”

애잔하게 단목현우를 부르는 련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질 때 옆에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하던 화륜이 킥킥 웃었다.

“내년엔 향소란이 다시 태어났다며 항주에 난리 나는 거 아니에요?”

향소란은 음공의 고수로, 그가 피리를 한번 부는 것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다는 사람이다. 지금은 우화등선했다고 하는.

하지만 련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농담을 던졌던 화륜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약당주님이 말씀하시는 게 그래서…….”

그러나 련이 대꾸하지 않았던 건 달리 생각하고 있던 게 있어서였다.

“륜아 너도 피리 배워 볼래? 아니면 비파? 비파! 비파 어때?”

어렸을 때 음악 교육을 통해 정서 함양을 도모하지 않던가?

지금 련이 노리는 것도 그쪽이었다. 자신만 피리를 배워서 될 일이 아니다. 자신이야 세상에 이십 년 남짓 살면서 피 본 거라곤 자신의 각혈뿐이었지만 이쪽은 다르지 않았나!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다잡으면 다를 것이다.

‘다르…… 겠지?’

화륜이 호다닥 손을 잡아 뺐다.

“아 진짜. 누이.”

“비파 싫으면 칠현금은?”

화륜이 앉은 채로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누이가 연주하는 걸 듣는 건 잘할 자신 있어요.”

“그렇게나 관심이 생기지 않아? 잘 생각해 봐. 합주하면 재밌지 않을까? 나는 피리 하고 너는 비파 하고.”

“비파는 뭐 약당주님이 천하제일인이시라면서요? 두 분이서 하시면 되죠.”

“그럼 칠현금.”

“손끝이 아플 것 같은데.”

련은 잠깐 이마를 짚었다. 손이 아플 것 같아서 금 뜯기 싫다고 말하는 이 애가 예전엔 마천교에서 소교주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조금 힘들어서였다.

‘아닌가? 오히려 잘된 건가? 그랬던 애가 이제는 손 아프다고 금 연주하기 싫다고 하니까.’

“저보다는 비아 녀석한텐 뭐 배우고 싶은지 물어봤어요?”

“그 앤 아직 손가락도 다 안 났잖아.”

“아니, 그 애도 뭐가 나기는 다 났어요…….”

화륜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련은 양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칠현금의 크기와 비파의 크기를 가늠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아한텐 비파 배우라고 해야겠다.”

화륜이 기어코 웃음을 터뜨리려고 할 때였다. 멀리서 정영과 총관 강립이 창백한 얼굴로 달려왔다.

련은 공기가 바뀐 것을 감지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기씨! 아기씨. 지금 당장 월영재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야?”

정영이 련의 외투를 어깨에 걸쳐 주는 사이에 화륜이 고개를 들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매가 조금 가늘어졌다.

“누이, 손님이 왔나 봐요.”

* * *

“금가장에서요?”

강립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로 묵묵하게 서 있었지만, 정영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련은 단목천기가 내미는 서찰을 펼쳤다.

“음…… 그러니까 금가장 장주의 첫째 아들 금종하가 가르침을 청한다는 거예요? 저한테요?”

“정확히는 단목세가에…….”

하지만 지금 그와 연배가 맞는 사람은 세가에 련밖에 없다. 련은 생각에 집중한 채 아랫입술을 쭉 내밀었다.

금가장이라고 하면 솔직히 아버지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금가장 쪽에서 그때 단목현성과 굳이 대련을 하겠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금가장의 장주와 대결했던 단목현성은 그 비무에서 결국 사망했다.

련은 미간에 힘을 단단히 주고 서찰을 양손으로 쥐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금가장과는 서로 본체만체하는 원수와도 같은 애매하기 짝이 없는 사이였다.

“뭐. 그럼 해야죠.”

“하지만 아기씨…….”

강립이 말끝을 흐렸다. 금가장 장주의 첫째 금종하는 이제 곧 열 살이 된다.

당연히 부유한 금가장주가 애지중지 온갖 영약을 먹여 가며 건실하게 키웠고, 벌써 근방에서는 그 재능으로 이름을 떨치는 소년이었다.

병석에서 겨우 털고 일어나 가문의 검술을 한번 학습한 게 전부인 단목련이 어찌 상대할 수 있겠나?

“어차피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세가에 그 애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무림의 명문세가에서 대련을 피할 수 있는 핑계는 지진이나 홍수, 그게 아니면 메뚜기 떼의 습격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해야만 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의외로 똑똑한 수인데?’

단목천기가 깨달음을 얻었다!

전대 천하제일인, 무림을 구원한 고수가 부상을 딛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갔다. 이제 단목세가는 약속된 부흥의 길만 남았다.

그런 단목천기에게 섣불리 비무를 신청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간 두문불출하여 항주에서 그 얼굴 본 사람 하나 없는 장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겠나.

그녀와는 한 번쯤은 해 볼 만하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할 수 있겠느냐?”

단목천기가 소맷자락에 손을 넣은 채 조용히 물었다.

련은 단목천기의 눈동자가 어쩐지 짓궂게 웃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단목천기가 깨달음을 얻은 그 날 이후로 이 조손 사이에는 기묘한 유대감이 흐르고 있었다.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비밀을 품고 있는.

“할 수 있어요.”

“그럼 되었다. 날짜를 잡는 서신을 보내도록.”

강립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련을 쳐다보다가 답신을 쓰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사이 련의 눈은 서찰 너머를 주시했다. 글자가 겹쳐 보였지만 알아보기 어렵진 않았다. 그녀를 미래의 저승에서부터 여기로 데려와 준 바로 그 글씨가 말하고 있었다.

[논검으로 연습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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