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37화
“이게 지금 풀린 물량이 다 팔렸을 때의 매출인데…….”
차르르르!
“……!”
“이번 향시 합격자 명단을 보자마자 내가 중간에 상급 청련수를 회수해서 가격을 조금 조정했어. 그런데 이것들이 전부 다 팔려서 지금은…….”
“……!”
차르르! 탁탁!
주판이 경쾌한 소리를 내고 련의 눈이 커다랗게 뜨이자 여태 이성적이기만 하던 견위운의 표정에 웃음기가 슬쩍 흘렀다가 다시 사라졌다.
“어쨌든 내 쪽에서 임의로 판매 물량을 조정한 건 사과할게. 사태가 좀 급박했거든.”
솔직히 이 정도 매출이면 두 번 급박해도 될 것 같긴 했지만, 련은 애써 침착함을 되찾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하는 걸 보고 아버지께서 내게 청련수 관리를 함께하자고 하셨거든.”
련은 눈을 반짝 떴다. 에둘러 말했는데도 견위운은 그녀의 말을 새겨들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급하게 찾아온 건 물량이 부족해서다. 지금이 제일 뜨거울 때인데…… 좀 많이 공급받을 수 있을까 해서.”
“반가운 이야기네요. 그런 거면 당연히 더 준비해야죠.”
련은 아이답지 않게 차분하게 대꾸했지만, 머릿속에서는 폭죽이 펑펑 터지고 있었다.
‘지금 금가장이 중요한 게 아니야.’
무식하게 서로 칼싸움이나 하는 건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짜 삶에 도움이 되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작고, 동그랗고,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말이다.
“그런데 약방에 들어간 순청련수도 다 팔린 거예요?”
상급 청련수와 상반되는, 련이 영기를 조금만 불어넣고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는 청련수를 ‘순청련수’라고 이름 지었다. 하급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였고, 견위운 역시 그 작명에 크게 감탄했다.
“응. 위학이 쓴 건 상급 청련수인데 아무래도 이 녀석이 장원 급제를 해 버린 바람에 말이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각이나 약당에 사람들이 몰린 모양이더라.”
“다음 회시까지는 얼마나 남았어요?”
“음?”
견위운은 약간 당황했다.
이미 향시로 이렇게 대박이 난 뒤로, 견위학이 치를 회시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 아마 반년, 아니다. 이번 회시는 내년 봄쯤이라고 들었어. 폐하께서 몸이 안 좋으셔서 잠시 밀렸다고 말이야.”
“그래요?”
“하지만 회시는…….”
“북경에서 치르지요?”
“그렇…… 지.”
련이 방긋 웃었다. 북경. 사람과 돈이 전부 휘몰아치는 그 도시는 그만큼 소문도 빠르리라.
“음, 련아. 위학이 이번에 향시에서 장원 급제를 하긴 했지만 회시에서도 잘할지는…….”
련은 그냥 눈을 깜빡깜빡하며 웃기만 했다. 그와 동시에 견위운은 흠칫했다가, 살짝 몸을 떨곤 빠르게 말했다.
“그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량이 필요하게 될 것 같구나.”
견위운의 팔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그러잖아도 청련수가 팔리는 병에는 작은 오리 형태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단목련의 숙부가 조카를 귀여워하며 그린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기꺼이 병 제조에 정성을 기울였던 견위운이었다.
그런데 오리 압(鴨)자는 갑(甲)과 조(鳥)로 되어 있다.
조(鳥)는 이름을 뜻하는 명(名)과 비슷하여, 과거 시험의 1등부터 3등까지를 이르는 갑과(甲科) 중에서도 1등인(第一名) 장원 급제를 기원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그런데 청련수의 병에 그 오리가 두 마리다?
이건 향시도 장원, 회시도 장원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한 마리는 진짜 장원을 해 버렸는데, 남은 한 마리도 제 몫을 할 것인가?
‘이렇게 생긴 애를 보고 진짜 오리를 그렸을 리는 없고. 설마 련아가 여기까지 내다본 건가……!’
“위학 숙부께서 회시 치르기 전까지 부지런히 청련수를 만들어 둬야겠어요.”
련은 청련수 물량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견위학은 회시까지 장원 급제할 것이다.
향시 장원 급제만으로 견위운이 놀라 달려올 정도라면, 회시는 과연 어떨까?
이 생각을 하자 갑자기 삼 년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만 같았다.
“위학 숙부께 보낼 답례도 준비하고요.”
이 정도로 난리가 난 건 견위학이 제법 성심성의껏 청련수를 써주었다는 얘기다. 광고를 맡긴 의도를 잘 헤아려 주었다고나 할까.
견위학은 청련수가 없었어도 과거에 급제할 인물이었으니—그리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값을 치르는 게 옳았다.
“위학에게?”
견위운이 미간을 모았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야 회시까지도 잘 써주시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 녀석이 정말 회시에도…….”
붙을까?
견위운이 몹시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견언조가 그렇게 기뻐하는 걸 봐서는 그가 다른 수단을 쓴 것 같진 않겠지만, 마음속에서 일 할 정도는 ‘그래도 아버지가 돈주머니를 들고 지부대인과 대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방탕하던 녀석이 어떻게 장원 급제를 한 것인지 아직도 놀라웠으므로.
“위학 숙부 말이에요, 한 번 본 건 잊지 않는 분이시라면서요.”
련이 견위학에 대해 들은 얘기 중에 하나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절대 잊질 않으니 그의 앞에서 말실수를 한번 했다가 곤욕을 치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 녀석이 어릴 때는 그런 얘길 듣긴 했지만…….”
“위학 숙부께선 한창 젊으신데 기억력이 갑자기 퇴보하진 않으실 거 아니에요?”
과거 시험이라는 게 기억력만 좋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그 정도로 기억력이 좋으면 당연히 얘기가 달랐다.
견위운은 동생이 딱 한 번이나마 펼쳐보는 시늉을 했던 책들이 몇 권이나 되는지 셈해 보다가 살짝 소름이 돋은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동생이 말을 하기로는 서가에 있는 책은 전부 한 번씩 봤다고 했었다. 어렸을 때는 그냥 허세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긴…… 하겠지만.”
견위운의 목소리에 조금이나마 억울한 기색이 서려서 련이 고개를 갸웃했다.
“고모?”
“그 방탕한 녀석이 기억력만 좋다고 장원 급제를 하다니. 열심히 공부한 수재들이 얼마나 억울할지…….”
련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럼 일단 상급 청련수…… 음, 진청련수라고 할까요?”
“그거 좋구나.”
“일단 세가에 있는 정유로 먼저 만들고, 그 뒤부터 재료 수급은…….”
“상단에서 준비해둔 재료가 좀 된다. 물론 이걸론 부족하겠지만 더 구매하고 있고.”
“세가에서도 만들면서 준비를 해 볼게요.”
거기까지 말한 련은 퍼뜩 떠오른 생각에 견위운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청련수 운송을 단목세가에서 조금 맡을 수 있을까요?”
“운송을? 표국 말하는 거니?”
“네. 세가에 표국이 있거든요. 크진 않아서 물량 전부를 당장 감당할 수는 없겠지만 상단을 오가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음, 좋아. 표국 일을 내가 맡게 되었으니 그걸 조정하는 건 어렵지 않겠다. 대신은 아니지만, 청련수가 만들어지는 대로 매일 받아 볼 수 있을까?”
견위운은 운송비도 제값을 치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손을 내저었다. 정말로 급한 모양이었다. 련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우리가 전부였어요?”
련이 소곤거리며 물었다.
대량 생산을 앞두고 세가 약당에 남은 정유를 모두 끌어모으면서 약당의 인원들도 소집했는데 덩그러니 세 명이 남았다.
약당주, 부당주, 그리고 련 자신.
‘이걸로 공급량을 채울 수 있나?’
사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단순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각각의 정유를 배합 비율대로 준비하고 한데 다 섞어서 보내기만 하면 된다. 분할해서 나눠 담고 포장을 끝마치는 건 상단에서 해 주기로 했으니까.
평소에는 혼자 혹은 단목현우와만 할 수 있었지만…….
“일손이 필요하다면 제가, 제가 돕겠습니다. 아기씨.”
련의 처소를 호위하는 무사인 정영이 신실한 태도로 말했다.
그전에도 충성을 다 하는 사람이긴 했지만, 련이 예전에 해 주었던 보법에 대한 조언을 유성환결로 체화한 뒤부터는 좀 더 깍듯해졌다.
‘우러러본다고 해야 하나?’
“마음은 고마운데…….”
그의 업무가 아닌 일에 동원하는 게 저어되어 망설인 련이었으나, 단목현우가 보여주는 종이를 보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견위운이 주고 간 발주 수량이 적혀 있었는데, 고사리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
“마음도 고맙고 도와줘서 진짜 고마워. 추가 수당도 따로 줄게.”
“아, 아니요. 세가의 일인데요. 당연히 제가 도와야 마땅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련은 고개를 내저으며 정색했다. 그리곤 정영이 거절할 새도 없이 작업에 착수했다.
제작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손을 깨끗하게 씻고, 그 사이에 련은 정화도 한번 사용했다.
청련수 한 단지에 들어갈 양을 계산해 벽에 붙여두고 각자 정유 두, 세 가지씩 담당해 계량하기 시작했다.
“오…… 무림인인 게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아무래도 감각이 예민하다 보니, 처음 몇 번 무게를 재어 본 이후로는 한두 번 만에 오차 없이 정유를 척척 나누어 담았다.
정영은 쑥스러워했고, 단목현우는 자신이 그래도 정유 계량하는 것보다는 더 멋진 모습을 많이 보여 줄 수 있다며 웅얼거렸지만 큰 소리로 말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단지에 계량한 정유들을 섞고 련이 조화와 정화를 한 번씩 둘러주면 순청련수는 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