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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42)화 (42/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42화

“일단 금우도는 좀 더 유연하게, 또 무조건 빠르게 힘차게 휘두르는 게 아니라 정확한 때에 맞추는 게 중요한데 그런 점이 부족하니까 내가 때를 조금 어긋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걸음이 흐트러지는 거야.”

금종하가 어깨를 움츠렸지만 련은 말을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리고 금우도는 상대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보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에 더 비중이 큰 도법인데…….”

련의 말을 잠자코 듣는 금종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말을 너무 길게 했나 싶어서 련이 슬그머니 입을 다물자 금종하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계속 얘기해 줘!”

“듣기 힘들면 그만하려고 했는데.”

“아, 안 힘들어…….”

련이 중얼거렸다.

“음, 말해 줬다가 깨달음이라도 얻으면 나만 손해 아닌가…….”

그 말에 금종하가 벌떡 일어나서 열변을 토했다.

“아니, 아니, 이게 어? 배우고 익히려고 비무 하고 이렇게 얘기도 하는 건데 여기에 손해와 이익 같은 걸 따지는 건 어? 소인배나 할 짓이고! 그리고 나도, 나도 너한테 말을 해 줄 건데!”

말을 어찌나 빨리했는지 금종하가 빨개진 얼굴로 숨을 헉헉거렸다. 련은 금종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얘기해?”

“그래!”

“음, 금가장 도법은 예측을 잘못하면 다 틀린다는 건데.”

“……내가 잘못 예측했단 거야? 네가 내 예측보다…….”

“그 얘기가 아니라, 그냥 잘못 예측하도록 움직였는데 정말로 다 속아 넘어가서.”

“……!”

금종하가 입을 떡 벌렸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엽운이 살짝 속삭였다.

“저러다 울면 어떡하지요……?”

그 말에 화륜이 중얼거렸다.

“이미 울지 않았나.”

련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고작 비무에서 좀 두들겨 맞고 이런 얘기를 했다고 울다니. 엽운은 자신의 말을 밤새 복기하더니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 생각으로 엽운을 흘낏 쳐다보다 엽운이 앉아 있던 자세를 바로 고치며 살짝 미소지었다.

그러는 사이에 금종하 곁의 하인이 안절부절못했다. 여기서 금종하가 무슨 사고라도 칠까 봐 걱정이 되어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련은 이쯤에서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궁금한 게 있거든.”

“으응?”

‘나를 말로 쥐어패는 것보다 궁금한 게 있다고…….’

금종하가 다소 멍한 눈으로 련을 쳐다보았다.

“이번 비무 신청은 대체 왜 했어?”

“……!”

그와 동시에 멍한 표정이 산산조각 났다. 불의에 기습을 한 살수라도 바라보듯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러곤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하인을 향해 손짓했다.

“네?”

“……라고.”

“도련님?”

“저리 가 있으라고!”

금종하가 거의 역정을 냈으나 하인은 그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련과 그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겨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금종하가 다급히 손짓을 하자 그제야 서너 걸음 더 뒤로 향했다.

그러곤 금종하는 련의 곁에 선 화륜을 흘끗거렸다. 그쪽도 하인을 뒤로 물리라는 뜻이었으나 련은 얼른 한 손으로는 화륜의 손을 꼭 잡고, 곁에 앉은 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륜아는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라서 들어도 상관없어. 엽운 도사님은 내 벗이고.”

“아니…… 쟤도 내…… 아니다. 됐어.”

금종하는 몹시 억울한 표정으로 입술 끝을 씰룩거리다가 내뱉듯이 말했다.

“우…… 우리 아버진 정정당당했는데 너희가 자꾸 뭐라고 하니까.”

“……?”

련이 고개를 기울였다.

“‘너희’가 누군데요?”

“너희! 단목세가 말이야!”

“우리가 언제? 뭐를?”

련은 금종하를 빤히 쳐다보았다. 금종하는 두 번째 대련 이후 처음으로 기세를 실어 빽 소리쳤다.

“우리 아버지가 네 아버지를 죽였다고 계속 뭐라고 하잖아!”

“그건 사실이지만 그걸로 뭐라고 한 적 없거든요!”

“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악독한 비겁자라고 욕했잖아…….”

련도 발끈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련이 탁상을 쿵 내리쳤다. 금종하가 흠칫했다.

“그…….”

“그리고 사실이잖아! 우리 아버지가 혈라곡하고 싸웠을 때부터 계속 부상을 입고 있었는데! 거기다 비무첩 보냈던 그해에는 우리 세가가 습격도 받았었는데, 그걸 다 알면서 일부러 비무 하자고 했으면서…….”

“몰랐단 말이야!”

소년이 외쳤다.

련은 잠깐 숨을 들이마시곤, 천천히 대꾸했다.

“몰랐대도 우리 아빤 이미 없잖아.”

“아…….”

뭐라고 외치려던 금종하가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다시 다물었다.

얼굴은 다시 새빨개진 채였다. 다만 이번에는 말 못할 수치심과 죄책감이 어우러진 표정이다.

련은 그런 금종하를 빤히 쳐다보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부친의 얼굴은 흐릿했다. 햇수로 따지자면 20년쯤 전에 본 것이 전부였다. 시간을 거슬러 죽음마저 뿌리치고 돌아왔는데도 아버지와는 말 한마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의 색이 흑백으로 바뀌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아빤 이제 없지만…….”

련은 귀 옆을 꾹꾹 눌렀다. 왜인지 비무를 할 때보다 지금 더 지친 것처럼 피곤했다.

“그래도 우린 뭐라고 한 적 없어. 단 한 번도.”

비무는 정당했고, 단목현성의 죽음은 사고였으니 뭐라고 말하겠는가.

오갈 데 없는 분노와 증오를 두고서도, 단목세가에서는 그에 관해 말한 적이 없었다.

* * *

아이들이 없는 자리는 싸늘하다 못해 어색했다. 서로 마주 보고 있긴 했으나 금적걸은 침묵만 할 뿐이었다.

그 사이에서 그나마 부드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위지청이 아니었다면 둘 다 그대로 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지독한 침묵을 깬 건 단목천기였다.

“금가장이 많이 컸구나.”

내려다보는 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금적걸은 자존심 상한 기색 없이, 그러나 겸양도 없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이 보셨다면 아마 까무러치셨을 것입니다. 어찌 항주에서 가문을 이렇게나 키워 냈느냐고.”

금적걸의 말에는 생략된 곳이 있었다. ‘단목세가가 있는 항주에서’.

두 사람은 다시 침묵했다. 위지청만 조용히 찻잔을 기울였다. 새 한 마리가 그들의 탁자 위로 날아올랐다가 다식을 조금 쪼아 먹곤 다시 날아갔다.

금적걸이 어색한 듯 눈썹을 찌푸린 채, 새가 날아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종하의 이번 비무……. 현성의 딸과 치를 줄은 몰랐습니다.”

햇볕이라곤 보질 못한 듯 창백하고 희기만 한 얼굴, 제대로 자라지 못하여 작고 여린 체구.

금적걸은 단목련을 보자마자 알았다. 항주 바닥을 떠돌던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 단목현성의 딸이 오래 아팠다는 게 사실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쩌면 그 딸이 시한부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조차 아주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그럼 이제야 하남성을 출발했을 외당주의 딸과 붙으려 했다는 얘기냐?”

“그렇습니다.”

“련의 상태를 알고서 이번 비무를 신청한 것 아니었나? 마치 이제야 알았다는 듯 말하는군.”

단목천기의 목소리는 다소 건조했다. 금적걸의 눈썹이 세차게 흔들렸으나 금적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그래요. 알고 했다고 합시다. 알고 했다면요?”

“……뭐라?”

“저희가 알고서 그리했다고 하면, 태상가주께선 이제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난 아이를 왜 굳이 비무대에 세우셨습니까?”

금적걸은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끝에 가서는 떨리는 목소리를 숨길 수 없었다. 그의 목덜미에서부터 열이 올라 서서히 붉어졌다.

단목천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입을 벌렸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기가 막히는군. 그걸 자네가 우리에게 묻는가?”

“아이가 비무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말 한마디면 없던 일이 되는데 왜 그러지 않으십니까?”

“무와 협을 청하는 자가 있으면 내치지 않는 것이 백도 무림의 도리니라!”

“그 도리만 찾다가 후계자를 잃더라도 말입니까?”

“갈!”

단목천기의 벼락같은 외침에 공기가 찌르르 울리고 새들이 멀리에서 다급하게 푸드덕 날아올랐다. 주위가 얼음장처럼 가라앉았다.

위지청이 가만히 단목천기를 바라보았다. 며느리의 눈빛을 받은 단목천기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의 얼굴에 자리 잡은 흉터들이 어지러이 꿈틀거렸다.

“네놈이 감히 그딴 소리를 지껄인단 말이냐? 그 덕에 금가장을 그리 키운 네가?”

단목세가의 소가주가 그렇게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금가장의 성세도 없었으리라 단언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금적걸의 얼굴이 한껏 달아올랐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과 금가장의 성장을 평가절하당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예, 금가장을 키웠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제 아비 어미 생전에는 항주에 금씨를 아는 사람이라곤 저희 이웃밖에 없는 한미한 도장이었던 것을 제가 예까지 키웠지요. 그럼 그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장의 자식이던 제가 단목세가의 후계자에 대한 내밀한 사정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금적걸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기어코 그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때 항주의 누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아무도 몰랐지 않습니까! 당신이 감췄으니까!”

비명 같은 외침이었다. 단목천기의 목이 뻣뻣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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