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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48)화 (48/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48화

“네 사촌도 함께 온단다. 단목성이라고 하는데 착한 아이이니 좋은 가족이자 벗이 되면 좋겠구나.”

위지청은 단목현요의 귀환이 못내 반가운지 그 얘기를 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역력했다.

련은 아주 오랜만에 ‘단목성’의 이름을 듣고 잠시 멍하게 있다가, 소리를 삼켰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갑자기 돌아오셨대요?”

“응? 글쎄, 아마 금가장과의 비무 소식을 듣고 급히 오신 게 아닐까 싶구나. 하남성에서 예까지 빠듯하게 달려오신 것 같아. 다행히 우리 련아가 잘해 냈지만.”

“아아아. 그렇구나.”

련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단목현요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평생 비리비리할 줄 알았던 단목련이 제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다른 가문의 후계자와 격돌한 사안이니 달려오지 않고 배길 수 있었겠나.

단목련이 패배하여 단목세가의 얼굴에 먹칠을 할 것도 걱정되었을 것이고, 금가장 후계자와의 비무에서 승리한 사람이 세가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그 비무가 이렇게 빠르게, 련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는 계산하지 못한 것이다.

* * *

“왜요? 그 사촌 싫어해요?”

련은 붓을 쥐고 글씨를 쓰려다 말고 다시 팔을 내려놓곤 옆을 돌아보았다.

글씨 연습을 재빠르게 끝낸 화륜이 그에게 말을 붙여 왔다.

옆에 있는 탁상에는 단목비가 미간에 힘을 잔뜩 준 채 글자를 외워 쓰느라 바빴다. 련은 조용히 속삭였다.

“난 그 애를 본 적도 없는데 뭘 싫어해…….”

지금 여기서는 그렇다.

“누이 표정이 많이 안 좋길래. 흠. 내가 때려 줄까요?”

“큰일 난다.”

“제가 진짜 해 줄 수 있어요.”

련은 아련한 얼굴로 화륜을 쳐다보았다.

이따금 화륜이 한때는 마천교 소교주였다는 사실을 깜빡할 때마다, 화륜은 그걸 잊지 말라는 듯이 이런 말을 해 주곤 했다.

“그런 거 아니야. 절대 그러면 안 돼. 알았지? 그보다 너는 그냥 성아 앞에 나오지를 마.”

“왜요?”

“성아는 고모하고 고모부 닮아서 많이 예쁘게 생겼거든. 그런데…….”

련은 다시 글자로 눈길을 돌리고 붓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래서 그런가 자기 같은 걸 좀 좋아해. 아니, 좋아한대. 널 보자마자 나한테 널 달라고 하면 어떡해? 그러니까 륜아 너는 고모 오셨다고 해도 그냥 안에 있어.”

“…….”

“그리고 제발 어디 나가서 누구 때린다는 말 하지 말고. 때리지도 말고.”

“제가 그렇게 생겼어요?”

“응?”

갑자기 엉뚱한 대답이 들려와서 고개를 들었더니, 눈앞에 왠지 방긋방긋 웃고 있는 화륜이 있었다.

“뭐가?”

“누이의 사촌이 저를 데리고 가고 싶을 것처럼 생겼냐고요.”

“어? 아…….”

련은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곤 화륜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당연하지. 우리 륜아는 아주 귀여워.”

“아, 아니 좋은 말로 물어봤는데 왜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어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고 있자 단목비도 고개를 들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이! 저도요!”

“비아, 우리 비아도 아주 귀엽, 누, 누이 넘어가! 넘어간다!”

조그만 소년이 얼마나 기세 좋게 달려와서 와락 안기는지 련이 의자 채 뒤로 넘어갈 뻔했다. 한숨을 내쉬던 화륜이 서둘러 발과 손을 놀려 의자를 받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련의 품에 안긴 단목비가 활짝 웃었다.

* * *

단목현요는 대단한 미인이었다. 화려한 작약 같은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얼굴로, 딸인 단목성과 나란히 서 있으면 마치 큰 작약과 작은 작약이 나란히 서 있는 듯 보였다.

절강성에 도착했을 때 단목현요는 자신의 귀에 들려온 소문이 너무 거창하고 대단해서 오히려 의심하고 있었다.

월영재에 칩거한 채 죽은 사람인 것처럼 살던 아버지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다시 일어섰다는 얘기는 너무 달콤하기에 꿈만 같았고, 세가에서 만든 청련수라는 귀한 물약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그 약을 만들어 낸 자신의 조카가 거부가 되었다는 말은 아무래도 헛소문 같았다.

도무지 그 청련수라는 걸 거리에서 구할 수가 없어서 더욱 그랬다. 들르는 의각이나 약당마다 죄다 품절이라는 얘기만 하니!

거기다 그렇게 큰 돈을 벌었다면서, 막상 세가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반긴 건 그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풍경이었다. 낡은 담벼락, 보수되지 않은 지붕, 오래되어 썩은 나무 기둥과 황량한 모래 먼지가 날리는 마당까지도.

먼저 태상가주 단목천기에게 절을 올린 단목현요는 우선 가장 중요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어머닌 많이 괜찮아지셨대요. 련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곤 기뻐하셨다네요.”

“…….”

단목천기는 한참이나 조용히 있다가 어렵게 입술을 열었다.

“만나 뵈었느냐?”

단목현요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몇 번이나 찾아뵙긴 했지만 거긴 여전히 봉문 중이었어요. 다행히 어머니께서 서신을 써 주신 게 있어서요.”

“그래…….”

단목현요는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서신 꾸러미를 꺼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들은 손때를 많이 타 조금 색이 변한 채였다.

단목천기는 그 서신 꾸러미를 보고서도 한참이나 손끝으로 매만지기만 하다가, 옆의 서랍장 안에 조심스레 집어넣고는 숨을 돌렸다.

“오는 길에 별다른 일은 없었고?”

“네. 거의 날 듯이 왔으니까요. 그나저나 오면서 별별 소문을 다 들었는데요, 아버지.”

단목현요는 부친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단목천기가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청련수 얘기 같은 건 헛소문이 아니라면 천천히 알게 될 것이라, 그녀가 가장 집중했던 건 금가장과의 비무였다.

그 비무에 대해 자세히 들은 단목현요는 감탄인지 짜증인지 알기 어려운 소리를 흘렸다.

“어머머. 련아가 일어났다더니, 누가 오라버니 딸 아니랄까 봐.”

“부인.”

곁에서 만류하듯 조용히 말하는 남자는 석반안, 산시성 출신의 풍림전장 장주의 셋째이자 단목세가에는 데릴사위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단목천기가 나직하게 혀를 찼다.

“무슨 경망한 소리냐.”

“금가장과 큰일이 터졌다고 해서 꽁지에 불붙은 것처럼 달려왔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네요.”

“그 일로 너희를 부른 것이 아니다. 하남성에 있는 거처를 정리하라 하지 않았느냐? 어차피 이만 너희를 불러들이려 했느니라.”

“네? 왜요! 지금이 한창 바쁠 때인데!”

단목현요가 발끈해서 외쳤다. 단목천기는 느긋하게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무얼 하느라 바쁘냐?”

“이제 곧 무림맹에 사신단이 창설될 거라는 얘기는 들으셨나요? 그중 한 자리를 우리 세가에서…….”

“단주로 누굴 세우려고?”

“네?”

“사신단이라 했으니 단주가 넷. 부단주까지 있다고 쳐도 여덟. 구파일방과 팔대세가, 흑천련의 십삼천이 그 여덟 자리를 다투는 가운데에 마천교는 개중 절반이 저들 자리라 할 것인데 그 와중에 우리 세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면 누굴 세우겠느냐?”

“부…… 부단주는 둘이에요. 그러니까 실제로는 열두 자리인 거죠. 그리고 그건, 유성도(流星刀) 단목한소…….”

“그이는 유랑 중이다.”

“……네?”

단목현요가 잠깐 입을 벌렸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자리에 없다는 단목한소를 찾을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유랑 중이라니, 언제부터요? 왜요?”

“몇 달 되었느니라.”

“몇 달이나요? 아니, 세가를 단단히 받쳐 줘야 할 원로가 왜 갑자기…… 벌모세수!”

말을 하던 단목현요가 도중에 깨닫곤 버럭 외쳤다.

“련이 벌모세수를 해 준 거죠? 내공을 얼마나 유실한 거예요? 그래서 세가를 떠나…….”

“조용히 하거라!”

단목천기가 나직이 하는 말에 단목현요는 억울해 죽을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 역시 련의 벌모세수에 관한 얘기를 들었지만, 그건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가망 없는 조카에게 되지도 않는 헛돈을 붓는다며 말렸을 텐데 그럴 새도 없었다.

기대하고 있던 사천당문과의 혼맥도 날아가고, 벌모세수에도 분명 누군가 큰 힘을 썼을 텐데 그가 누군지도 알 수 없었다.

내공을 유실했다는 건 당연히 큰 약점이 되는 일이다. 무림인으로 살면서 그 정도 성취를 이룰 때까지 적이 없을 리 없으니, 대법을 시행한 이들이 누구인지도 극비였다.

‘그걸, 그럴 돈이 있으면 우리 성아한테 해줬으면!’

7년 내내 비실거리던 어린애보다야 당연히 단목성 쪽이 더 가망이 있을 텐데!

단목천기는 그런 단목현요를 내려다보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어차피 그 자리는 화산파, 소림사, 제갈세가와 사천당문에서 네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흑천련의 십삼천에서 네 자리를, 그리고 남은 넷은 마천교에서 차지할 것이다. 넌 허튼짓 말고 이만 항주로 완전히 내려오도록 해라.”

현요의 눈이 분함과 불신으로 일렁거렸다.

“마천교나 흑천련의 자리를 몇 개쯤은 빼 올 수도 있어요!”

“네가 빼 올 수 있어? 그럴 수 있었다면 흑천련과 마천교까지 함께한 무림맹도 필요치 않았다.”

현요는 제 성질을 못 이겨 버럭 외치려고 했다가 돌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백도 무림 백도맹이 흑천련과 마천교까지 받아들여 무림맹을 결성한 건 혈라곡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북해빙궁의 힘까지 빌리지 않았나.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그녀의 눈앞에 흉터와 상처로 얼룩진 채 남아 있었다. 곁에는 아무도 두지 못한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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