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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51)화 (51/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51화

“제가 잘 못하면 어쩌려고요.”

“해 보고 재미없으면 다른 거 하면 되지.”

“재미 말고요. 저한테 재능이 없으면 어떡해요?”

“너 재능 없을까 봐 여태 안 배우겠다고 한 거야?”

장래의 마천교 소교주도 어릴 땐 이런 고민을 하나?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화륜은 대답하지 않고 련을 쳐다보기만 했다.

“왜? 재능이 없으면 하기 싫을까 봐 걱정돼?”

련이 묻는 말에 화륜은 당황스러운지 눈을 크게 떴다가 가슴을 두드렸다.

“아, 답답하네. 그 말이 아니잖아요. 누이가 괜찮으냐고요.”

련은 처음에 화륜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알아차렸다.

“내가 괜찮고 말고 할 일이 아닌데? 네가 무공에 재능이 없으면 내가 지켜 주면 되지.”

“무슨…….”

그럴 일은 없겠지만, 련은 잠깐 무공은 조금도 못하는 화륜을 상상해 보았다. 그렇게 나쁜 그림은 아니었다.

“무공을 못하면 다른 잘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걸 찾아서 하면 되겠지.”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으면요?”

사춘기가 이렇게 일찍 오기도 하나? 련은 뺨을 매만졌다.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기는. 넌 이미 잘하는 거 있어.”

“그게 뭔데요?”

련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정영 외에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 말했다.

“쑥쑥 크는 거.”

“뭐라고요?”

화륜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련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련은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 여기 처음 왔을 땐 나보다 이만큼이나 작았는데 벌써 눈높이가 비슷해졌잖아. 진짜 깜짝 놀랐네.”

“그렇게 안 작았거든요. 그리고 작은 건 누이고요.”

화륜은 그렇게 툴툴거리긴 했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그럼 진짜 비아랑 무공 배울 거지?”

“……보통 무공은 돈 들고 가르쳐 달라고 해야 가르쳐 주는 거 아니에요? 이렇게 가르쳐 준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렇지. 그렇지만 륜아는 보통이 아니잖아.”

“보통이 아니면요?”

“내 동생이니까!”

련은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었다.

화륜은 햇빛에 눈이 부신 듯 눈만 연거푸 깜빡거리다가, 조그맣게 ‘기초만 배울 거예요…….’라고 중얼거렸다.

“정말요. 기초만이요.”

“알았어, 알았어!”

* * *

“너도 폐관 수련을 깨고 나왔구나.”

“누이도 왔어요?”

두 남매가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단목현요의 곁에 앉은 석반안이 조금 불안한 듯 몸을 움찔거리긴 했지만 아내의 언사에 첨언하진 않았다.

단목현요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온 지 며칠이나 됐다.”

“나도 폐관 수련 깨고 나온 지 몇 달 됐습니다.”

단목천기가 오길 기다리는 사이, 잠깐 동생과 티격태격한 단목현요는 머리카락을 슬쩍 쓸어 넘겼다. 그 순간 단목현우가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요.”

“……너 좀 웃긴다? 내가 뭘 했다고 갑자기 말을 하지 말래.”

“누이가 그렇게 머리카락 넘기면 항상 이상한 얘기 했으니까 그러지.”

“내가 언제.”

“하남성 가기 전에 가주 대행 자리 달랄 때도 그랬잖아요. 그리고 또…….”

뭐라고 말하려던 단목현우는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도.’라는 말을 하기에는 석반안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그게 왜 이상한 소리야?”

“그럼 지금 할 얘기는 뭔데요?”

“아니…….”

단목현요가 약간 민망해진 얼굴로 남동생을 쏘아보았다가 몇 번 헛기침을 하곤 말했다.

“이제 슬슬 세가에서 소가주를 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서. 아버지가 별말씀 안 하셔?”

“…….”

단목현우가 눈을 네모나게 뜨고 누이를 쳐다보았다. ‘이상한 얘기 안 한다며.’ 단목현요가 시선을 살짝 피했다. ‘그렇게까지 이상한 얘기 아니라고.’

“말씀 안 하시냐고.”

소가주란 장차 세가의 후계자이자 주인을 정하는 것이고, 태상가주가 번듯하게 살아 있는데 주위에서 입을 대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누구로 하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누이가 하게요?”

“아니, 우리가 무슨 소가주니?”

단목현요도 단목현우도, 직접 소가주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만큼 죽은 형의 그림자가 그들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럼요? 뭐 련아가 하겠죠.”

“네 조카가 련아만 있니?”

“비아도 있죠. 성아도 있고.”

단목현요의 미간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단목현우가 원하는 말을 해 주지 않는다는 항의였다.

“련아는 계속 병석에 누워 있다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렇게 연약한 애한테 어떻게 소가주 같은 큰일을 맡기겠어.”

“성아도 계속 절강성을 떠나서 살았잖아요. 누이한테 끌려가서. 여기에 대해 아는 것도 하나도 없는데 예서 뭘 하겠어요?”

“아버지가 이제 항주에 남으라고 하셨어. 지내다 보면 금방 배울 수 있지.”

“련아도 이제 일어났으니 금방금방 배우겠죠.”

“너 내당주 편이니?”

“내당주님이 남이에요? 형수님이고 우리 세가 사람인데 네 편이니 내 편이니 어쩌니 하게.”

“그런 얘기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잖아.”

단목현우는 뺨을 긁적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누이의 말과 고민이 이해되긴 했다.

세가의 소가주 자리는 단목현성 사후 계속 공석이었다.

차기 가주를 정한다는 건 세가의 앞날에 대해 공표하는 것과도 같다. 지금까지는 모두들 그 자리를 차마 어쩌지 못했다.

“무슨 시끄러운 얘기들을 하고 있느냐?”

그때 문이 열리며 단목천기와 위지청이 나란히 들어왔다.

단목현요가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빙긋이 미소 짓는 동안 위지청이 그들을 보고 환하게 웃음을 그렸다. 단목현요가 찔린 듯이 눈을 슬쩍 피했다.

“아, 아버지.”

“남들이 보면 너희가 가주인 줄 알겠구나. 소가주가 어쩌고저쩌고! 바깥의 참새까지 그 소리를 다 들었다.”

단목현요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위지청의 안색을 살폈지만, 위지청은 여전히 단목현요를 보며 반갑게 웃는 낯이었다.

“아직 열 살도 안 된 애들을 놓고 무슨 허튼소리를 하고 있어?”

“애들이 어리다는 건 저도 알아요, 아버지. 하지만 오라버니가 가고 아직까지…….”

거기까지 말한 단목현요는 입술을 꽉 깨물고 위지청의 눈을 피한 채 말했다.

“아직까지 빈자리잖아요.”

“……그래서 그 빈자리에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를 앉혀 두면 그건 의미가 있고?”

“그, 그래도요. 저도 이제 가주 대행 자리에서 내려왔잖아요.”

단목천기는 엄한 눈으로 자신의 딸을 쳐다보았다.

단목현요는 입술을 깨문 채로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단목천기가 손을 내저었다.

“시기상조다. 아이들이 충분히 자라거든 그때 차기 가주를 정해 자리를 물려주면 될 일.”

“하지만 아버지, 이미 너무 늦은…….”

“너는 이 아비더러 빨리 죽으라고 고사라도 지내겠단 소리냐?”

순간 단목현요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게 아니라고 그녀가 더듬거리는 사이에 단목천기가 단언했다.

“아이들의 자질을 한 해에 두 번씩 확인하며 지켜볼 것이다. 후계자를 정하는 건 그 이후니라.”

결정을 내리는 건 아이들이 장성하고 난 이후라는 얘기였다.

단목현요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지만 이윽고 납득했다.

그녀로서는 세가의 후계자를 단목현성의 첫째로 하겠다는 확답을 듣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었다.

* * *

삐이이익!

향린적을 부는 련의 솜씨는 더디게 늘었다.

다른 것보다 폐활량이 부족한 게 제일 문제였는데, 그러다 보니 소리가 다소 거칠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음률 비슷한 소리를 내게 되었다.

“서운하지 않으냐?”

열심히 삑삑거리다가 지친 련은 피리를 옆에 내려놓고 백련을 쓰다듬어 주다가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에서 련의 말도 안 되는 음률에 맞추어 용케 비파를 튕기던 단목현우가 현을 가다듬으며 한 질문했다.

련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요?”

“네 할아버지가 너를 곧장 소가주로 삼지 않은 것 말이다.”

련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일로 주위가 제법 시끌시끌했다. 당장 유모 장 씨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정영을 붙들고 남몰래 억울함을 토로했다.

─ 어떻게 외당주님이 돌아오자마자 련아 아기씨를 몰아내려고 그러실 수 있어요…….

정작 련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저는 괜찮아요.”

“괜찮아? 성아가 차기 가주가 되어도?”

단목현우가 걱정 반 놀림 반이 섞인 표정으로 되물었다. 련은 하얀 고양이의 정수리를 살살 문질렀다.

“할아버지가 저희 다 크고서 정하자고 한 거잖아요? 그때 가 봐야 아는 거 아니에요?”

련은 오히려 단목현요가 후계자 얘기를 꺼낸 덕에 일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미뤄져 잘됐다고 생각하는 차였다.

지난 생에서 자신은 지나치게 병약하고 단목비는 아직 어려, 임시로나마 단목성을 소가주로 정했었다.

승부욕과 자존심이 강한 단목성은 소가주로서 태상가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그녀는 기대를 받고 사명이 주어질 때 더 많은 성취를 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었지만 그도 한계가 있었다.

태상가주도 모친 단목현요도, 전대 소가주 단목현성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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