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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55)화 (55/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55화

* * *

“숙부, 아까 제가 살짝 얘기를 들었는데 서쪽 거리 안쪽에 엄청 대단한 약초꾼이 있대요.”

“대단한 약초꾼?”

“아까 약초당에서 산 약초 중에서도 좋은 것들은 다 그 약초꾼이 캔 거랬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그 집에만 들렀다가 돌아갈까?”

“네!”

하지만 단목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거리에 나왔으니까 돌아갈 때는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 들고 가야 해요.”

조카가 똑 부러지게 하는 말에는 단목현우도 수긍했다. 아무래도 약초 꾸러미는 선물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럼…….”

“아까 올 때 장신구 가게를 봐 뒀어요.”

“좋아, 그럼 약초꾼을 한번 보고 그 가게에 들렀다가 가는 거야. 어떠냐?”

두 소녀가 모두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작고 허름한 움막 같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집 뒤쪽은 아무렇게나 자라난 나무들이 빽빽했고 앞뜰은 삭막하니 쨍한 햇빛을 받고 있다. 덩그러니 부서진 울타리는 노끈으로 어렵사리 여며 둔 채였다.

“여기…… 인가?”

그때 소쿠리 한가득 말린 약재를 챙겨 오던 한 소녀가 그들을 보고 멈춰 섰다.

마르긴 했지만 치켜 올라간 눈초리에서 기세를 엿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누구세요?”

소녀가 방어적으로 물었다.

낡고 구석진 곳을 찾아오기엔 기이한 일행이긴 했다. 이제 약관을 넘긴 젊은 청년 하나에 여자아이 둘.

하지만 련은 혼자서 그리워하는 마음을 꾹 갈무리했다.

소녀는 약여청이었다.

아직 어리고 앳된 얼굴은 하루 종일 산을 타고 다녀 그을려 있었고, 그렇게 풍족하게 지내지 못하는지 팔다리가 앙상했다.

약여청

특성 : 대나무 / 잊지 않는 / 산의 아이

자질과 오성 : 중-중

고민 : 다음 끼니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련은 마음을 가다듬고는 약여청이 품에 안고 있는 소쿠리를 가리켰다.

“약초 사러 왔는데.”

“여기…… 까지요?”

믿기지 않는다는 것처럼 약여청의 눈에 경계심이 섞였다. 련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청의 소쿠리 위로 글씨가 반짝 떠올라 있었다.

말린 두송자 열매

상태 : 최상

직전에 들렀던 약초당에서도 못 본 최상품이 여기 있다!

“할머니! 할머니, 손님 오셨어요! 음, 일단 안으로 들어오세요.”

련이 약초를 보고 눈을 반짝 빛내는 걸 본 약여청이 안쪽을 향해 버럭 외치곤 안내했다.

작은 곁채를 조그만 약방처럼 꾸려 놓았는데 살살 바람이 불어와 쌉싸래하고 상쾌한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찾는 약재 있으세요?”

약여청은 잽싼 손길로 받침대를 꺼내와 올라서서는 말린 두송자 열매를 한쪽 서랍에 챙겨 넣으며 물었다.

련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질문에 답했다.

‘양은 별로 없지만 대부분 최상품이고 상품인 게 몇 개.’

“응, 도라지.”

“어디에 쓰시게요?”

“도라지청 만들 거야.”

련의 말을 듣고 입을 꾹 다물고 생각하던 소녀가 안에서 손질한 도라지 한 꾸러미를 꺼내 왔다.

작은 소쿠리 위에 세 뿌리씩 네 개가 담겨 있다.

련은 그걸 보자마자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도라지 주위로 청량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만한 물건은 처음 봤다.

“저기, 이렇게 한 소쿠리에…… 5문……?”

“……?”

약여청이 눈치를 보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련이 가격을 듣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라도 할까 봐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5문이면 한 가족이 다 함께 국수 한 그릇도 먹지 못할 가격이었다.

“어…… 그, 그럼 4문……?”

련은 미간에 힘을 주고 소쿠리를 노려보았다. 조금 전 약초상은 도라지 한 소쿠리에 40문을 불렀다.

“누가 그 가격에 사 가는데?”

“아…… 아니, 그게요…… 그래도 요 앞에 청운 약초당에서…….”

약여청이 어깨를 움츠리고 변명하듯 말했다.

“거기도 4문에 이만큼 사가?”

“사실 거긴 3문에…… 하지만 그 약초당에서 사는 것보다는 저한테 바로 사시는 게, 4문이긴 하지만 더 저렴할…….”

약여청이 더듬더듬 변명하듯 말했다.

련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왜 그 사환이 조심스레 말했는지 알았다.

그 상인이 약여청을 후려쳐 헐값에 약초를 사다가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터무니없이 비싼 값은 아니었다. 약초의 품질을 생각하면 지불할 만한 가격이니까.

하지만 3문에 산 걸 40문에 팔다니.

“거기서 이 약초를 얼마에 파는지는 알아?”

련의 질문에 약여청은 우물쭈물했다.

“6문……?”

련은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어 맑은 가을 하늘이 푸르렀다.

‘그 나쁜 자식이…….’

조모와 함께 사는 소녀, 낡은 집, 어리지만 삶이 절박하고 실력이 있으니 그 다급함을 이용해 먹은 게 분명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단목현우도 정황을 파악하곤 낮게 혀를 찼다.

“아무리 상인이라지만 상도가 없어도 너무 없는 이였군.”

일행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약여청은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련은 자신이 알던 약여청과는 다른 어수룩한 모습에 웃음이 나올 것 같다가도, 약여청이 지금 왜 저렇게 불안해하는지를 생각하면 웃음이 싹 가시고 말았다.

련은 약여청에게 값을 더 치르고 약초를 살 테니 포장해 달라고 부탁한 다음, 단목현우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본 약초들 중에서 여청이 캔 약초가 제일 질이 좋은데, 우리 약당 약초도 여기서 사면 좋을 것 같아요.”

“호선의각보다 여기가 나은 거냐?”

“네!”

“하지만 그…… 너무 어리지 않니?”

단목현우가 목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어리다고 실력이나 재능이 없는 게 되진 않잖아요.”

련의 말에 단목현우는 련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다고 실력이나 재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 말의 산증인이 저렇게 말하고 있었다.

“좋아, 그렇게 하자꾸나. 실력이 좋은데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으니 그걸 내버려 두고 싶지도 않고.”

단목현우는 그렇게 말하며 셈을 마쳤다.

“일단 저 아이 혼자서 양을 전부 감당할 수는 없을 테니까, 모자란 부분은 호선의각과 계속했으면 하는데 그건 괜찮겠느냐?”

“네!”

단목현우와 련이 빠르게 얘기를 마친 사이에 약여청이 포장을 마친 도라지를 품에 안고 쭈뼛거리며 나타났다.

“정말…… 사실 건가요?”

“응. 그리고 거래도 계속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저…… 저하고요?”

“응. 우리 약당에 넣을 약초를 너한테서 받고 싶어서.”

약여청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만 깜빡거리다가, 한 대 맞은 듯이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는 우당탕탕 안으로 달려갔다.

“할머니! 할머니!”

식기가 뒤집히는 소리와 분주하게 달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 등이 한껏 굽은 노인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소녀의 팔을 붙잡은 채 나타났다.

“할머니, 이분들이세요!”

“뭐여? 가게 안 판다고 했잖수.”

“아뇨, 이분들이 가게를 사신다는 게 아니라요. 제가 캔 약초를 계속 계속 사고 싶으시다고 하셔서요!”

약여청이 외쳤다.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련과 단목현우, 그리고 단목성까지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곤 약여청이 포장한 도라지를 가리키고는 타박했다.

“손님들한테 물건을 판다는 것이 저리 포장을 해서 어쩌려고 해? 썩 다시 해 오너라!”

그러면서 등을 후려치는 소리가 짝 하고 났다. 약여청이 울상을 지은 채 등을 뒤틀면서 도라지 꾸러미를 가지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소녀 한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주위가 엄청나게 조용해졌다. 노인이 헛기침을 하곤 단목현우에게 물었다.

“긍디 거래를 계속하고 싶다는 것은, 뭔 말씀들이신지……?”

노인의 물음에 단목현우가 련을 쳐다보았다. 련은 소녀가 사라진 쪽을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음, 앞으로 꾸준히…… 계속 이쪽 약초방에서 약초를 사고 싶어요.”

“그쪽은…… 뉘신데……?”

노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사람들 중에서 어린 여자애가 결정권자라는 걸 알자 의아함이 증폭된 눈치였다.

련은 그제야 자신의 소속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걸 알아채곤 머쓱하게 말했다.

“단목세가요.”

노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단목세가? 이번에 금가장 도령을 패대기쳤다는?”

“패대기까지는 아닌데.”

련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노인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굴렀다가 오른쪽으로 굴렀다가 하느라 바빴다. 머릿속에서 주판 튕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허음. 지금 아시겠지만서두 여기 약초는 전부 여청이 저 기지배가 캐온 것인디…….”

“네. 그래서 거래를 하자는 거예요.”

“진짜로? 뭘 보고 그러신다요?”

“도라지 보고요. 그리고 다른 약재들도요.”

련은 마당 한쪽에 낡은 천으로 쳐 둔 천막을 바라보았다. 그쪽에는 길초근을 말리고 있었는데, 련의 눈에는 무엇을 봐도 ‘품질 최상!’ ‘품질 최상!’ ‘품질 최상!’만 떠 있었다.

여청과의 의리 이전에 이건 잡아야 한다. 꼭 여길 잡아야 한다! 다른 의각에서 아직도 여길 눈여겨보지 않은 것도 기적처럼 느껴졌다.

아마 약여청처럼 어린 약초꾼을 믿지 못한 탓일 테지만.

“헌디 다른 데는 팔지 말라고? 그러다 남으면 우리는 어쩐대요…….”

“우리가 다 살 거예요. 절강성에서 제일 좋은 약초를 단목세가 약당에서 쓰고 싶어요.”

‘절강성에서 제일 좋은 약초‘라는 말에 노인이 움찔했다.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노인의 목울대가 꿀꺽 울었다.

“그, 혹시 영감을…… 아시는 분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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