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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59)화 (59/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59화

“아니에요, 어머니. 련아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궁금해서 제가 따라간 거였어요. 한 달이지만 제가 언니잖아요.”

“그래! 장손은 네가 장손이란다!”

단목현요가 딸의 양손을 움켜쥐고 외쳤다.

어쨌거나 단목성이 이번 항렬의 첫째이니, 장손이라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부, 부인.”

석반안이 조심스레 단목현요를 진정시키는 사이에 단목성도 말을 이었다.

“사실 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드릴 선물을 사 오고 싶었는데 금가장 녀석하고 만난 바람에…….”

“세상에, 아무것도 안 사 와도 돼요, 우리 딸! 이 엄마는 우리 딸이 재미있게 놀다 오는 게 제일 중요해.”

그렇지만 사촌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다녀 주기만 했다니. 단목현요는 가슴이 조금 미어졌다.

“다음번에는 련아 장신구도 하나 사 주려고요. 저랑 비슷한 모양으로…….”

“걔 건 안 사 줘도 돼.”

순간 단목현요가 정색하고 말했다.

“네?”

단목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석반안도 놀란 표정을 짓는 통에 단목현요는 다소 창피해졌지만 말을 바꾸진 않았다.

하지만 단목성이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그래도 제가 한 달은 언니니까 장신구 같은 것도 챙겨 줘야죠. 련아는 일어난 지 이제 일 년밖에 안 됐으니까 사실 한 살 아기인 셈이잖아요.”

“그렇게 부자인 한 살 아기도 있다니.”

“네?”

“그 애가 이번에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 보고 왔단다. 우리 중에 제일 부자래.”

단목현요는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단목성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동생이 부자라고 선물을 사 주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그게 그렇긴 하지만. 아휴, 우리 딸은 어쩜 이렇게 착하니. 누가 키워서 이렇게 잘 자랐어, 응?”

“어머니 아버지가요.”

“아이고. 상공, 아이가 하는 말 들으셨어요?”

“들었습니다, 부인.”

석반안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조각한 듯이 아름다운 얼굴 위로 근심 걱정이라고는 없는 반듯한 미소가 어리자 단목현요의 마음도 스르르 풀어졌다.

‘그래…… 아이가 어린 시절에 비무 좀 하면서 이기고 지고 하는 거야 무슨 상관이겠어?’

이런 공부도 싫어하지 않고 기꺼이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단목련이 그 많은 돈을 벌어들인 건…….

‘그건 어차피 그 애 돈이고. 벌모세수도 뭐 아버지 돈으로 했지 내 돈을 쓴 것도 아니니까. 그걸로 세가에 보태 준다니까 잘됐지 뭐.’

다만 재경각주 설관희가 마치 련을 세가의 후계자로 점찍은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마음속 깊이 거슬렸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그간 얼마나 살림이 고달팠겠어?’

세가의 가산을 꾸려 나가는 자리인데 들어오는 돈은 없이 나가기만 했으니 피가 바짝바짝 말랐을 것이다.

단목현요는 그의 잿빛 머리카락을 생각하며 내심 혀를 찼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눈에 은괴 궤짝을 가져온 단목련은 월궁항아처럼 보였을 터다.

그럼 이쪽도 돈을 벌어 오면 될 일이었다. 지금껏 무림에서의 입지를 다지는 일에만 집중해온 단목현요였지만, 그 일이 아무런 소득이 없기도 했거니와 집안일에 집중하라는 부친의 뜻을 새겨들을 참이었다.

“상공.”

“예, 부인.”

아이가 다시 도법이 쓰인 책에 몰두하는 사이에 단목현요가 조용히 석반안을 불렀다.

“우리도 뭔가 사업 같은 걸 해서 가산을 좀 불리면 어떨까요?”

석반안은 잠깐 침묵했다가 조각한 듯이 아름다운 미소를 그렸다.

“부인. 우리는 둘 다 장사에는 아무 소질이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게 그렇긴 한데. 정말 조금도 없을까요?”

“있으면 제가 풍림전장을 물려받았을 것 같아요.”

“전장 일하고 장사 일하고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돈을 파는 것이나 물건을 파는 것이나 큰 맥락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단목현요는 재차 ‘정말로 우리가 아무 재능이 없어 보이나요?’라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석반안과 자신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숨김이 없는 사이였다.

“아버님께서 부인께 기대하시는 것은 돈을 벌어 오는 게 아니라 새 제자를 들이는 일 아닙니까? 제자를 들이려면 입히고 먹이고 가르쳐야 하니, 이 방안을 알뜰히 준비하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니겠습니까.”

“돈 쓰는 거야 여기서 저만큼 잘하는 사람이 또 어딨겠어요. 하지만 련아도 벌써 저리 벌어다 제 몫을 하는데…….”

석반안은 조금 놀랐다.

명망 있는 무림 세가에서 태어난 단목현요는 단 한 번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돈은 ‘어떻게든’ 생기는 거니까.

그런 단목현요마저 이런 얘길 할 정도라니, 이번에 조카가 대단히 큰 돈을 벌었다더니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인 듯했다.

“혹시 좋은 사업이 어디에 있진 않은지 제가 형님께 한번 서신을 보내 볼까요?”

단목현요는 한참이나 갈등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상공 말씀이 옳습니다. 제 일은 돈을 벌어 오는 게 아니고 아버님이 명하신 걸 똑바로 하는 거죠. 새 제자들 들이는 일에 집중해야겠어요.”

단목현요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자신이 애쓰지 않았는데도 가문의 무언가가 변하고 달라졌다는 사실에 가장 먼저 큰 상실감이 들었고 그다음에는 왜인지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단목현요는 그런 마음이 잠시 들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며 생각을 떨쳐 냈다.

* * *

단목련은 세가의 서고에서 도법과 관련된 서책이란 서책은 전부 가져와서 옆에 쌓아 놓고 읽어 갔다.

그중에서도 세가의 도법인 ‘흑풍단천도’를 정확히 필사해 놓은 책은 두 권뿐이었다.

낙성십이검의 필사본이 수십 권에 이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정말 적은 권수다. 그걸 단목성과 한 권씩 나눠서 들고 왔다.

‘세가에서도 우연히 어쩌다 한 명이 읽어보고, 그 한 명이 읽는 걸 보고서 대체 뭘 보는 건지 보호자가 확인할 용도로 한 권씩 해서 두 권인 건가?’

단목비는 누이가 하는 걸 따라 하려고 하다가 옆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 사촌 도와주게요?”

곁에서 련의 부채를 가지고 팔랑대며 놀던 화륜이 물었다.

서책에서 설명하는 자세와 원리가 이해되지 않아서 팔을 기이한 각도로 움직여 보던 련은 흘끗 화륜을 쳐다보았다.

“나도 이참에 도를 어떻게 쓰는지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서. 여기선 어떻게 하라는…… 아!”

련은 금방 팔을 움직이는 체계를 이해하곤 서책 대신 화륜을 쳐다보았다.

화륜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일렁이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 사촌이 더 강해져서 가주가 되면 어쩌려고요?”

“내가 가주 하고 싶으면 내가 성아보다 더 강해지면 되지.”

“누이는 가주 안 할 거예요?”

련의 말에서 미묘한 의미를 알아챈 화륜이 좀 놀랍다는 듯 반문했다.

련은 벌러덩 드러누워서 화륜의 손에 있던 부채를 빼앗아 흔들며 대꾸했다.

“내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안 하면 뭘 하게요?”

그걸 제외하면 인생에 대체 뭐가 남느냐는 듯한 목소리였다.

련은 부채를 살랑거리며 부채 너머로 화륜을 쳐다보았다.

우화륜

특성 : 천마파순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무공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자질과 오성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고민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여전히 아무것도 동기화되지 않은 채, 화륜의 이름과 딱 하나 뜬 특성만 눈에 밟혔다.

‘마음이 착잡해지는군.’

“오래 살기?”

“……?”

화륜이 미간을 찌푸렸다. 터무니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이번엔 련이 역공했다.

“난 그러는 네가 더 걱정이었어. 재밌는 것도 없다 그러고. 그나마 앞으로는 무공을 배운다고 해서 천만다행이다.”

“제가 걱정이요?”

련은 거기까지 말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화륜은 재미있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한 표정이었다.

“내가 뭘 할지가 걱정이 아니지. 네가 뭘 할지가, 이 누이는 정말 걱정이다.”

련이 한숨까지 쉬면서 하는 말에 화륜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깜박거렸다.

“아니, 하인이 앞으로 뭘 할지가 무슨 걱정이에요?”

“하인이 아니라 동생이니까 네가 나를 누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흐음.”

화륜이 작게 헛기침을 했기 때문에, 련은 이 소년이 조금 쑥스러워한다는 걸 알아챘지만 괜히 놀리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저한테 뭐라고 안 하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니까.”

화륜은 아무리 봐도 고아 하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투로 그녀를 대하곤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요령껏 굴었다.

그 덕에 유모 장 씨나 다른 식솔들은 아무도 화륜의 행동거지에 불만이나 걱정을 가지지 않았다.

할 일 똑바로 하고 있는, 그러나 일개 하인의 앞날을 누가 걱정하겠는가?

“어쨌든 무공 배우기로 했잖아요. 비아랑 같이.”

“맞아. 그랬으니까 그나마 한시름 놓은 거지.”

“누이는 정말로 제가 무공을 배웠으면 좋겠어요?”

화륜의 질문은 뭔가를 가늠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련은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이나 한 대화였음에도 지겨운 기색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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