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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2)화 (62/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2화

“으음…….”

단목성은 도보를 앞뒤로 펼쳐 보며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뭔가 알아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알았다! 상대의 공격 범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구나!”

“그와 동시에 공격할 거리를 얻으려는 생각도 있는 것 같아. 도는 이렇게 휘두를 공간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니까…….”

련이 살짝 덧붙여 준 말을 새겨들으며 단목성은 도보를 여러 번 앞으로 뒤로 넘겨 보길 반복했다.

[단목성의 배움]

[행운 수치 : 23/120 (2▲)]

‘오오.’

명석하고 재능이 있는 단목성이 몰두하자 배움이 쭉쭉 느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알아낸 놀라운 깨달음에 잠시 심취해 있던 단목성은 겨우 표정을 정돈하고는 도보를 조금 더 앞쪽으로 넘겼다.

“내, 내가 물어보고 싶었던 건 이거였어. 세 번째 초식. 도를 매끄럽게 움직일 수 없는데 너는 어떻게 하는 거야?”

“아! 그 초식은 검을 상대하려는 생각으로 만든 부분 같았어. 찌르러 들어오는 방향에서 한 보 옆으로 비켜서면서 그 힘으로 무기를 내리치는 거지. 그러니까…….”

련은 간식을 집을 용도였던 젓가락 두 짝을 가지고 간단하게 시범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반짝이던 단목성이었으나 이윽고 조금 가라앉았다.

“그럼 이번 대련에는 쓸모없겠네. 금가장 걔는 도를 쓰니까…….”

련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단목성이 도를 배우면서 그 재능을 꽃피우고 있다는 건 옆에서 보기만 해도 알았다.

그리고 재능 여부를 떠나서 단목성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도.

“어차피 지금 배운 거 그냥 기억해 두면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련이 작게 소곤거렸다. 그 말이 계속 도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로 들렸는지 단목성은 저도 모르게 조금 웃으려고 했다가 멈칫하고는 얼른 련에게 다른 질문을 하라고 종용했다.

련은 단목성의 그 눈매에서 단목현요의 얼굴을 떠올리곤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고모는…….’

이 집안의 그 누구도 단목현성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단목성의 성은 단목현성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한때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러웠지만 점차 쇠약해져 가는 그를 보면서 지은 이름.

단목현요는 자신의 딸이 오라비처럼 검으로 정점에 서 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련은 괜히 조금 침울해져서, 먹던 과자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서책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싸매고 있던 단목성은 그런 련의 기분을 완전히 눈치채지 못했다.

단목성이 련의 질문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하여 련은 하나하나 성심성의껏 알려 주었다.

덕분에 행운 수치가 ‘1’ 더 올랐지만, 련은 처음처럼 편안하게 웃지는 못했다.

* * *

단목비가 그녀에게 쓴 짧은 편지에 답신을 다 적은 련은 조심스럽게 붓을 내려놓았다.

“휴. 비아가 배운 글자로만 답신 쓰기 힘드네…….”

“걔가 괴롭혔어요?”

옆에서 고양이의 흰 털을 쓰다듬으며 련이 편지 쓰는 걸 멀거니 바라보고 있던 화륜이 불쑥 말했다.

련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뭐? 비아가?”

“아니, 무슨 소리예요…… 단목성 말이에요.”

“가, 갑자기 내 사촌은 왜? 걔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저한테 뭐라고 한 게 아니라 누이한테 뭐라고 한 거 아니에요? 왜 단목성하고 놀고 오더니 기분이 안 좋아졌어요?”

“아니…… 아니, 내가? 기분이 안 좋아졌어?”

련이 계속 얼떨떨한 얼굴로 반문했지만 화륜은 뭘 당연한 얘길 자꾸 하느냐는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말 화륜이 단목성에게로 달려 나갈 것 같아서 련은 얼른 화륜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야! 륜아야, 그런 거 아니야.”

“그러면요?”

“일단 기분이 나빠진 게 아니고.”

화륜이 거짓말하지 말란 표정으로 련을 빤히 쳐다보았다. 련은 짧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음. 나빠진 게 아니라 조금 이상해진 거야.”

“걔 때문에요?”

“아니, 그게 성아 잘못은 아니고…….”

“그럼 단목현…….”

련은 얼른 화륜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 꼬마는 앞뒤도 없고 위아래도 없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자신 앞에서만 그러긴 하지만.

“음. 성아 이름이 우리 아빠 이름 끝 글자를 따온 거거든.”

“그런데요?”

“우리 아빤 이미 없는데, 성아는…….”

련은 흘러내린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성아에겐 아무래도 부담이 되겠다 싶어서. 갑자기 이젠 없는 아버지 생각도 나고…… 성아 걱정도 좀 되고 그래서 기분이 좀…….”

“흠, 전 아버지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르는데요.”

갑자기 화륜이 던지듯 한 말에 련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벽력탄이 터지고 난 뒤에도 이처럼 고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 지독한 침묵에는 말을 꺼낸 당사자인 화륜도 당황했다.

“아니, 제 말은요. 음, 저 같은 경우도 있으니까 누이는 기분을 풀었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는데.”

“넌 부모님이 둘 다 없고 난 어머니는 있으니까 기분 좋아지라고 하면 내가 너무…….”

이거 보통 쓰레기가 아닌데?

련이 당황스럽게 중얼거리는 말에 화륜이 기침까지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그런 말을 해요.”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무슨 그런 말을 해?”

“하긴 뭐 하나 없다고 더 괜찮고 둘 없다고 덜 괜찮고 그러진 않겠죠.”

“너 아기 아니지.”

“네, 네?”

화륜이 고개를 번쩍 돌렸다.

“내가 봤을 때 넌…… 이제 일곱 살 아기라기엔 너무 똑똑해. 진짜. 너 진짜 뭘 하든 대성할 수 있겠다.”

“아, 진짜! 또 뭐예요…… 무공은 이미 배우기로 했잖아요.”

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배시시 웃었다.

“비파 어떠니?”

“비파도 배울게요. 됐어요?”

“그럼 칠현금도…….”

“둘 중에 하나만 배우는 게 낫지 않겠어요?”

련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럼 비파.”

“왜 비파로 골랐어요?”

“칠현금은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기가 어렵겠어. 나중에 나랑 같이 강호 유람도 나가야 되는데 못 들고 갈 것 같아.”

“아.”

련과 화륜은 그 화제 아닌 화제로 좀 더 티격태격하다가, 련의 벼루에서 먹물이 조금 부족해질 때야 멈췄다.

“비파는 그렇다 치고, 그런데 누이까지 그 도법을 배우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아요?”

화륜이 먹 몇 가지를 들어 보며 말했다.

지금 련이 검보를 정리하려는 것도 흑풍단천도에 적용시킬 만한 요령을 찾아보려는 생각에서였다.

검을 배우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이 굳이 하지는 않는 일이다.

련은 근육통을 느끼는 팔을 툭툭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배워 두면 다 나중에 쓸모가 있지 않을까?”

화륜의 무릎에서 고롱거리며 졸고 있던 백련이 눈을 반짝 뜨고는 풀쩍 뛰어올라 련에게로 안겼다. 그 바람에 벼루가 흔들릴 뻔했지만 화륜이 날렵하게 막아 냈다.

“백련이…… 많이 컸다?”

처음 주웠을 때는 분명히 어른 주먹만 한 조그맣고 하얀 고양이었는데 지금은 왠지 앞발도 두툼하고 꼬리도 통통한 것이 점점 기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련은 봉황의 일을 잠깐 떠올렸다가 애써 생각을 흐트러뜨렸다. 그런 일이 그렇게 뚝딱뚝딱 여러 번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있지, 륜아 네 생각에도…….”

혹시나 이 뽀얗고 예쁜 고양이가 백호가 될 것처럼 보이냐고 물어보려고 한 순간이었다.

단목한소의 깨달음 5

현재 행운 수치 : 28/120(4▲)

받은 도움을 일부 갚았습니다. 보은을 통해 더 많은 행운 수치를 얻게 됩니다.

‘아니, 뭐야. 날 노려보기만 엄청 노려보더니…… 혼자서 이렇게 깨달음을 얻었다고?’

단목한소에게는 큰 빚을 졌으니 가능하면 그 빚을 갚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덜컥 깨달음을 얻었을 줄이야?

‘내 말의 뭘 듣고 그렇게 된 거야?’

자신한테 행운 수치가 온 걸 보면 자신과 있을 때 뭘 보고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싫다는 건 아니지만.

“누이?”

“아…… 아니. 음, 그러니까 고양이 말이야. 식단 조절을 좀 해야 할까?”

하얀 고양이의 복부를 슬쩍 잡아 늘이며 말하자 화륜이 정색했다.

“그거 백련이 살 아니거든요.”

“아니, 내 말은…….”

“얘가 먹어도 뭘 얼마나 먹는다고, 그걸 못 먹게 하려고.”

“아니, 륜아야. 내 말은.”

화륜이 련의 품에서 백련을 번쩍 낚아챘다. 하얀 고양이가 팔다리를 허공에서 대롱거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화륜이 몹시 억울한 표정으로 련을 쳐다보다가 처소를 빠져나갔다. 뒤에 남은 련이 팔을 뻗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리곤 화륜을 쫓아갔다.

“륜아야!”

“누이는 이 조막만 한 게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게 하고 그러고 싶어요?”

“아니지.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그런데 고양이도 살이 찌면 무릎이 아프기도 하다니까…….”

“아직 성장기라 괜찮아요. 이때 많이 먹어야 쑥쑥 큰단 말이에요.”

“맞아, 맞아. 내가 잘못했네.”

련이 어르듯 말하자 화륜은 눈썹을 치뜨고 그녀를 보곤 약간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말려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련은 그런 화륜의 머리를 와라락 헤집듯 쓰다듬었다. 화륜은 한숨을 깊이 내쉬곤 고양이 백련을 추슬러 안았다.

백련이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야옹 하고 작게 울었다.

“방금 백련이 울음소리 좀 이상하지 않았어? 묘하게 그르렁거리지 않았어?”

“이제는 고양이 목소리까지 구박하는 거예요? 애가 마음대로 말도 못하게 하려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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