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3)화 (63/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3화

* * *

낮 동안에는 단목한소에게서 사사하고, 밤에는 련과 함께 공부하기를 꼬박 한 달.

금종하와의 대련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다. 서호 일대가 또 이 소식으로 시끌시끌했다.

“내일이 비무 하는 날이니 오늘 훈련은 없다. 푹 쉬도록 해라.”

단목한소의 말에도 단목성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스승님! 저와 대련이라도 해 주시면.”

“필요 없다.”

“그래도…….”

“그보다 이제 앞으론 어떻게 할지를 정해야지.”

당장 내일이 아니라 더 먼 미래를 얘기하자 단목성의 의식도 그쪽으로 쏠렸다.

련은 단목성을 바라보는 단목한소의 표정에 짓궂은 장난기가 어려 있는 걸 보고 내심 고개를 흔들었다.

단목성이 그 표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심각하게 물었다.

“앞으로 더 이상은 도를 배울 수 없는 건가요?

“흠. 네가 원하면 더 할 수도 있지.”

“……!”

“하지만 네 어머니가 뭐라고 할진 모르겠구나.”

“어머니가…….”

뒤늦게 어머니 단목현요를 떠올린 단목성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자식만큼 부모의 욕망에 민감한 존재가 또 있을까? 단목성은 어머니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금가장과의 비무를 가져왔을 때, 그래서 도를 배우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던 건 이번 한 번만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 표정을 살펴본 단목한소가 씩 웃었다.

“흠. 내가 젊었을 적에도, 내가 도를 잡는 것에 관해선 집안의 아무도 찬성하지 않았지. 여긴 검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인간들만 잔뜩 있지 않으냐.”

단목성은 단목한소의 갑작스러운 비방을 듣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가, 어머니 단목현요도 그 바보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곤 애써 입술을 꽉 물고 웃음을 참았다.

“그럴 땐 이걸로 보여 줘야지.”

단목한소가 허리춤의 커다란 도를 툭툭 건드렸다.

“이겨서 꼼짝 못하게 만들면, 아무도 말 못하는 법.”

“……!”

“무림은 힘의 세계다. 힘의 세계에서는 말이 아니라 힘으로 얘기해야 하느니.”

“……네!”

“그리고…… 이전에 소가주는 말이다. 못하는 게 없었느니라.”

“네?”

련은 부친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단목한소가 허리를 굽히고 소녀들에게 속살거리듯 말했다.

“검에 있어서 그만한 천재는 없다고 모두들 떠들었지만 그렇지 않았어. 못 다루는 무기가 없었지. 내가 이 집안에서 나 혼자 도를 연마했다면 여기까지 오진 못했을 거다.”

“아…….”

“그러니 그를 따라잡는다고 쳤을 때 도를 먼저 배운 다음, 검은 그 이후에 생각해도 되지 않겠느냐?”

련이 낮게 기침했다.

사실 단목현성이 진짜 온갖 무기를 다 다뤘을지도 의심스럽고, 그렇다고 해도 그건 진짜 세기의 천재인 단목현성이나 가능한 얘기일 것이다.

일단 어떤 핑계를 대든 도를 잡고 정도 이상으로 성취를 얻고 나면, 그때 다시 검으로 돌아가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하지만 단목성은 단목한소가 몹시 합리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단목한소가 몹시 만족스럽게 껄껄 웃었다.

오늘도 하루 일을 마치기 전, 착용한 검을 다시 정돈하고 련에게 인사하려던 정영은 인기척을 느끼곤 몸을 단숨에 긴장시켰다가, 그 기척의 정체를 알아채곤 몸에서 힘을 뺐다.

“대장?!”

“이야! 우리 영이 아니냐. 오랜만이다.”

“오셨다는 얘긴 한 달 전에 들었는데 어떻게 한 번도 저희 얼굴을 안 볼 수가 있어요?”

당장 매서운 비난이 튀어나오자 단목한소가 어깨를 움츠렸다.

“아냐. 나 이제 대장 아니다.”

“진짜 어떻게 사람이 이러실 수 있지? 갈 때도 그냥 이제 관두겠다며 휙 떠나 놓고 올 때도 언제 왔는지 말도 안 하시고 그러지?”

마치 눈앞에 단목한소가 없다는 듯이 비난하는 말투에 단목한소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뭐라 하지 못했다.

“그래 놓고 이제 대장 아니다 한마디면 다 되는 거예요?”

“야, 그게 다 큰 뜻이 있어. 이 대장이…….”

“대장 아니라면서요.”

“이 자식 좀 컸다.”

련이 사천당문의 도움까지 받아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때 받은 대법이 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대법을 시전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극비에 부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목한소는 다른 이유로 그걸 비밀로 하고 싶었다.

자신은 조금 더 깊이 단목천기를 따르고 있는 데다가 어쨌거나 단목련과는 멀어도 친척이기에 한 선택이었지만, 세가의 무사들이 주인을 위해서라면 내공과 가진 모든 걸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무슨 마천교도 아니고.’

그 동네는 교주가 아랫것들의 내공도 흡수한다던데, 여긴 나름 명문 정파 아닌가.

그런 자신의 대의를 알지도 못하고!

단목한소는 괜한 서러움을 삼키려 헛기침을 하다가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 그새 키가 음, 많이 컸구나.”

“조금 전에도 컸다고 하셨잖아요.”

“그 뜻이 그 뜻이 아닌 거 알면서 너 이럴래?”

“한 일 년 사이에 제가 좀 많이 컸나요?”

정영이 곧장 말을 돌렸다. 단목한소는 탄식했다.

“그래. 진짜 많이 컸어.”

“그럼 대장님은 세가로 완전히 돌아오신 겁니까?”

계속 심통만 부리던 무뚝뚝한 막내의 얼굴에 은근한 기대가 어려 있어, 단목한소는 내심 웃었으나 티 내지는 않았다.

단목세가 정예 타격대인 유성십팔숙은 딱 그 열여덟만 있는 조직이 아니다.

열여덟 명에 더해 그 아래로 예비대 열여덟 명이 더 있고 그 예비의 예비 서른여섯이 있다.

지금은 그 예비의 예비는 유지할 수 없어서 이미 사라졌고, 정영은 그 예비대 중에서도 열여덟 번째, 즉 막내였다.

아마 자신이 나가면서 모두 한 계단씩 올라와도 정영 밑으로 들어올 사람은 없으니 여전히 막내일 테다.

“……그럴까 한다.”

단목한소는 이 얘길 들으면 왠지 단목천기가 껄껄 웃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툴툴거렸다. 안 그래도 ‘한 달만 가르치기로 했다며?’라며 눈을 부라리고 있는 사람인데.

정영은 나직이 말하는 단목한소의 목소리에서 그가 떠나기 전보다 더 깊이 있고 중후해졌음을 눈치챘다.

본래라면 그런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요즘은 의식이 맑고 기민했다. 조금 전에도 단목한소의 기척을 바로 눈치챘을 정도로.

“대장, 혹시 성취가…….”

“뭐? 냄새가 나나?”

“냄새가 난다고 하진 않았습니다…….”

단목한소가 자기 옷깃 킁킁거리던 걸 그만두고 껄껄 웃곤 정영을 잡아끌었다.

“술이나 한잔하자!”

“당장 내일이 저희 금가장 가는 날이잖아요. 성 아가씨 비무요.”

“네가 비무 하냐? 성 아기씨가 하시지.”

가르칠 때야 이름을 부르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꼬박꼬박 아기씨라고 부르는 단목한소였다.

“그렇지만…….”

“너 이제 퇴근 아니야? 퇴근했으면 자유지.”

“아, 알았어요. 잠시만요.”

정영은 그렇게 말하곤 처소 안쪽으로 향했다.

안으로 고개를 밀고 작게 고하자 문이 열리며 조그만 소녀가 나왔다. 눈동자에 별무리가 떠 있는 소녀, 단목련이었다.

단목한소는 두 사람이 의외로 친분이 제법 있어 보인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단목련이 정영에게 손짓하자 정영이 고개를 숙였다. 단목련이 작게 소곤거렸다.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지만 단목한소는 은근슬쩍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유성도께서는 술 많이…… 좋아해?

— 네?

— 술을 많이 권하시는 편이야?

— 아, 조금이요. 애주가이시긴 한데.

— 먹기 싫으면 술 먹지 마. 내가 먹지 말라고 했다 해.

— 네!

‘아니 둘이서 나를 뭘로 알고!’

단목한소가 투덜거리는 사이에 정영이 련에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커흠. 빨리 가자. 봐 둔 데가 있다.”

서호 근처의 조금 구석진 곳, 멀게나마 서호가 슬쩍 보이는 객잔에 자리 잡았다. 술상이 나오자 술잔을 꺾기도 전에 단목한소가 물었다.

“너도 성취가 제법 늘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정영은 조금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련은 어찌하고 있느냐?”

“일 시작하기 전에 두 시진, 끝나고 두 시진 정도 연마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쉬는 날에…….”

정영은 허리를 조금 더 곧추세우곤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목한소는 유성십팔숙의 대장이자 구성원들에겐 정신적인 스승이기도 했다.

“그래? 아기씨가 뭘 해 주신 건 아니고?”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정영의 손이 살짝 움찔했다.

그러고는 의혹이 떠오른 눈동자로 단목한소를 쳐다보았다.

“어찌 그런 걸 물으십니까?”

“네가 갑자기 성취가 물이 오른 듯 보이는데 근래에 네 곁에는 련 아기씨밖에 없으니 그렇지.”

단목한소의 말에 정영은 신중한 표정으로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보며 생각을 거듭했다.

‘이젠 아니라고 하시지만 여전히 유성십팔숙의 가장 첫 번째 검. 태상가주께 충성하는 사람.’

그럼 자신은?

‘유성십팔숙의 말단. 아기씨 처소를 지키는 무사……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 아기씨한테 약간의 조언을 들은 사람 정도일 것이다.

정영은 괜히 단목련에 대해 한번 생각했다.

무공을 바삐 익히고, 약당을 오가면서 어떻게든 세가를 일으켜 보려고 매일같이 고군분투하는 작은 소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