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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4)화 (64/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4화

“왜…… 왜 물으십니까?”

조금 전의 질문과 비슷한 말이었다. 단목한소는 술잔에 술을 채우며 놀리듯 말했다.

“세상에나. 아기씨가 정말로 단물이라도 주셨느냐? 그래서 나한테는 이제 말도 안 하려고?”

“대장, 그런 얘기가 아니라…….”

정영은 조금 당황해 손을 내저었다.

“갑자기 아기씨 일을 제 일처럼 말씀을 하시니까 당황스러워서 그러지요.”

“네 일이 아기씨 일이지. 네가 아기씨 처소 담당 아니냐.”

“그렇지요. 그러면 제가 아기씨 일을 다른 데서 말할 수 없는 것도 아시겠지요?”

정영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하려고 애썼지만 그게 오히려 단목한소의 심기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아니, 아기씨가 뭐 대단한 걸 해 주신 거야? 뭐 이렇게 숨기려고 하나? 약당주님이 아기씨를 많이 돌봐 주신다더니 남겨 놓은 영약이라도 넘겨주셨대? 내가 대단할 걸 물은 것도 아닌데…….”

“대장,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정영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단목한소를 바라보았다. 단목한소는 고아인 정영에게 있어서 뒤늦게 만난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멀고 높은 단목천기나 거의 얼굴도 본 적 없는 단목현성보다 그의 얼굴을 보고 그를 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서운해하며 몰아세우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왜 갑자기 아기씨 일을 궁금해하시는 겁니까?”

“아기씨 일을 궁금해하는 게 아니라 네 일을 궁금해하는 거라고 말을 하지 않았냐?”

단목한소가 혼자 술을 들이켰다. 정영은 한참이나 말을 하지 못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아기씨께서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래서…….”

연거푸 술잔을 들이켜던 단목한소의 동작이 뚝 멎었다.

그러곤 술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정영을 바라보다가 혀를 찼다.

“네 주인이 하신 일을 여쭌다고 곧이곧대로 고하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이냐?”

갑자기 단목한소의 태세가 바뀌어, 정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예? 아니…… 대장께서 자꾸 캐물으셨잖아요. 전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럼 끝까지 안 했어야지!”

“하…… 하지만 대장이시니…….”

“대장이 아니라 무림맹주가 와도, 천지신명이 와서 물어도 주인에 대한 것은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주인의 검이 할 일이지.”

“주인의 검도 술 같은 걸 마신답니까?”

정영이 불퉁하게 대꾸하자 단목한소가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정영은 그를 흘겨보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제 주인은 가주님이시죠…….”

“그러냐?”

“네.”

정영이 입을 꾹 닫았다. 단목한소는 그걸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곤 그의 잔에도 술을 채워 주었다.

현재 단목세가는 가주가 없다.

단지 태상가주가 뒤에서 살피고 있는 형국일 뿐인데, 그의 그림자가 원체 크기에 버티는 셈이었다.

태상가주를 생각하고 한 얘기였다면 태상가주라고 엄밀히 지칭했을 것이다.

일을 끝마치면서 가는 술자리까지 제 아기씨에게 보고하는 놈 아닌가.

‘아직 가주가 없는데 가주가 자신의 주인이라…….’

단목한소는 코웃음을 한번 치곤 말했다.

“그래서 아기씨께서 이것저것 잘 가르쳐 주시고?”

정영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방금 전까지 주인의 일을 발설했다고 사람을 괄시해 놓고!’

단목한소가 그 표정에 조카를 울리는 데 성공한 숙부처럼 껄껄 웃고는 말을 이었다.

“내게는 잘 가르쳐 주시기에 하는 얘기다, 인석아. 아기씨 곁에 딱 붙어서 잘 배우거라.”

“아기씨께서 대장을요……?”

정영은 조금 놀랐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윽고 천천히 그 놀람과 불신이 가라앉고 수긍과 납득의 빛이 차올랐다.

단목한소는 그 표정을 보고서 오히려 더 놀랐다.

유성십팔숙에게 자신이 지나치게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건 그도 인지하고 있었다.

막내인 정영이 태상가주보다 자신의 명을 더욱 따르는 듯하여 불안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단목한소를 가르쳤다는 말을 듣고도 순순히 수긍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제는 금방 단목한소의 유람으로 바뀌었다. 단목한소가 떠돌며 본 풍경과 벗 삼은 무림인들에 대해 얘기해 주자 정영이 들뜬 듯이 귀담아들었다.

단목한소는 아직 덜 자란 아들 보듯이 정영을 내려다보며 술과 함께 이야기를 주절주절 풀어냈다.

“내가 원랜 이대로 사천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사천성까지요?”

“그쪽 두반장은 화끈한 맛이 보통이 아닌데, 그걸 써서 돼지고기를 볶은 게 그렇게 맛이 좋다는 거야…….”

* * *

다음 날, 단목세가 사람들은 성과 금종하의 비무를 위해 금가장으로 향했다.

“세상에, 온통 번쩍번쩍하는 것 같네요.”

위지청은 신기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금가장의 장원은 아주 세련된 모양새였다. 정원의 모양새나 심어 놓은 수종도 못 보던 것들이다.

역사와 전통을 오래도록 유지해 온 단목세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꾸며진 장원이었다.

그러나 단목현요는 흥 하고 코웃음 쳤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당주께서는 너무 소박한 것만 즐기셔서 잘 모르겠지만.”

위지청이 빙긋 웃었다.

“그래도 참 장원이 아름답지 않아요? 꽃이나 장식도 다 못 보던 것들이네요.”

“흠. 사람이 자기 취향대로만 살면 별것 아닌 걸로도 놀라게 되는 것 같네요.”

“하지만 저 모란 장식은 외당주께서 혼례 올릴 적에 달았던 것과 비슷하지 않아요? 아아, 그때 제일 고왔던 건 외당주이시기는 했지만요.”

위지청이 방긋 웃으며 하는 말에 단목현요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벌렸다가 거세게 다물었다.

위지청을 보며 입만 달싹이는 단목현요를 보며 련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남들이 보면 면박 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사람을 추켜세우듯 말하는 위지청이지만, 위지청은 진심이 아닌 말을 할 바에야 어색하게 웃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련은 어머니가 단목현요를 저렇게 좋아하는 이유 역시 알고 있었다.

위지청은 섬서성에서 여기까지, 오직 단목현성과의 혼인 때문에 온 고아였다.

그녀에게 가족이라곤 화산파의 제자가 된 의형제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니 그 혼례 준비가 얼마나 빈곤했겠는가.

그걸 보다 못한 단목현요가 오래지 않아 있을 자신의 혼례식용으로 사 둔 물건들을 모두 빌려주었다고 했다.

남의 결혼에 쓴 물건을 다시 쓸 수는 없으니 말이 빌려주는 것이지, 결국엔 전부 준 것이다.

단목현요는 제 오라비가 가난한 신부를 맞이한다는 걸 동네방네 외치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을 거라며 그런 것이지만, 받은 사람의 마음은 그런 것으로 희석되지 않았더랬다.

그사이 단목비가 련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부유한 금가장의 장원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다.

“우와아아! 누이, 저거 봤어요? 처마 끝에 달린 물고기가 헤엄친 것 같아요.”

련은 눈을 가늘게 떴다. 과연 처마에 비늘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금속 물고기가 매달려 있었다.

“바람을 받으면 움직이게 만든 작은 기관 장치 같네.”

‘금가장은 돈이 많다더니 진짠가 봐. 처마에 저런 걸 달아 놓고.’

련의 말에 먼저 대답해 주려고 입을 달싹거리던 단목성이 주춤하며 련을 쳐다보았다.

“……네가 어떻게 알고 있어?”

“어? 어어, 책에서 봤지.”

“그렇구나.”

모처럼 아는 척할 수 있었는데 실패한 단목성이 조금 시무룩해진 눈치라 련은 얼른 다른 조각을 가리켰다.

“앗! 저건! 저건 뭐야, 성아? 신기하다!”

“……그…… 그건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닌 것 같아. 빨리 가자, 난 오늘 비무 해야 하니까 거기에만 집중하고 싶어.”

“아.”

단목성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인 듯 말을 돌렸다.

그리고 그 말대로, 얼마 되지 않아서 안쪽에서부터 금가장 일족이 우르르 나타났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금 장주님. 송 부인,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럼요. 예까지 오는 길 무탈하셨는지요?”

금가장주의 부인 송영랑이 호들갑을 떨며 그들을 맞이했다.

옆에 선 금가장주가 묵묵하게 포권하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조용히 말했다.

“태상가주께서는 아니 오셨습니까?”

절강성에 살면서 단목천기를 존경하지 않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한때 반쯤 원수나 다름없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렇다.

위지청이 빙긋 웃으며 부드럽게 고개 저었다.

“아이들끼리 겨루고 배움을 얻는 자리라 당신께서 괜히 끼어들어 분위기를 어렵게 만들기 싫다 하셨습니다.”

“……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우선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팔을 펼쳐 안쪽을 가리키는 금가장주 금적걸은, 련의 예상과는 다르게 썩 나쁘지 않은 표정이었다.

금적걸

특성 : 앞만 바라보는 / 활화산 같은 / 승부욕 넘치는 / 비익조

금우도 : 11성 (1▲)

금우신공 : 7성

유영보(柳泳步) : 10성 (1▲)

자질과 오성 : 중-중(中-中)

고민 : 화해 선물을 마련했더니 아들 녀석이 또 이런 일을…….

도움말 : 그냥 주시면 될 텐데요.

‘아니, 사람이 왜 이렇게 독기가 빠졌어?’

아무리 오해를 풀기 전이었다곤 하지만 자신과 금종하의 비무 때만 해도 눈빛만으로 누구 하나 담가 버릴 것 같은 흉흉한 표정을 하고 있던 금적걸이었는데, 지금은 냄비 바닥에서 오래 졸여진 무처럼 흐물흐물했다.

다만 단목세가 사람들 뒤쪽에 조용히 서 있는 단목한소를 흘끗 바라볼 때는 눈빛이 한번 번뜩이긴 했다.

도를 주력으로 쓰는 도장이니만큼 도의 명수들끼린 통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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