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5화
* * *
비무대를 앞두고, 단목성이 주먹을 꽉 움켜쥐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내 어깨에 단목세가의 미래가 걸려 있다…….”
련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슬쩍 돌아보았다.
가을바람이 기분 좋게 스치고 지나가는 날이었다. 나뭇잎들이 쏴아아 울고, 금가장의 가솔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멀찍이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
부담을 느끼면 압박감에 실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걸 사명감으로 느끼고 더욱 힘을 내는 사람도 있다. 단목성은 후자이긴 했으나 지난 생에는 그렇게 힘을 내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조금 저렸다.
‘성아는 그때도…….’
단목비를 먼저 보내던 단목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상한 음식에 날파리가 꼬이듯 기울어 가는 세가에 손을 뻗는 사람들 사이에서 악전고투했던 단목성과 단목비, 그리고 가족들까지.
련은 단목성의 무복 옷깃을 단단히 여며 주고는 조금 차가워진 소녀의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 쥐었다. 련의 손이 조금 더 작았지만.
“다, 단목련. 뭐 하는 거야?”
“성아를 응원하는 거.”
단목성은 이런 접촉이 간지러운지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난 뒤에 련의 손을 뿌리쳤다.
“난 걱정할 필요 없어. 네가 그러지 않아도 이미 괜찮으니까.”
그런 것치고는 좀 오랫동안 손을 뿌리치지 않은 것 같지만 련은 미소 짓기만 하고 더는 지적하지 않았다.
단목성이 비무대 위로 올라가자 그에 맞추어 금종하도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비단 무복에 머리에는 영웅건까지 둘러 척 봐도 부귀하게 자란 훤칠한 소년이었다.
금가장의 무사 중 한 사람이 비무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단목성과 금종하가 서로 포권지례를 하곤, 제각기 날을 세우지 않은 연습용 도를 뽑아 들었다.
“흥. 너희 도법이 얼마나 훌륭한지 똑똑히 봐 주마!”
“네가 알아볼 수나 있겠니?”
단목성이 눈매를 사납게 치켜올리며 대꾸했다.
“조용!”
나선 건 금적걸이었다. 아무래도 련의 비무 때와 달리 제삼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이 중에 가장 지위가 높은 그가 가운데에 섰다.
“서로 겨루어 배움을 얻고자 하는 비무다! 알겠느냐? 비겁한 수를 사용해선 아니 되고, 살수를 써서도 아니 된다. 정정당당하게 겨루며 상대를 농락해서는 안 되느니라.”
“네!”
“네!”
금적걸은 한숨을 갈무리한 채 뒤로 물러서 비무대를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두 소년 소녀가 격돌했다.
그리고 심안을 일으킨 눈동자에도 별빛이 차르르 떠올랐다.
“하아아앗!”
단목성이 먼저 발을 내디디며 몸을 움직였다. 위험하게 다가오는 도를 알아챈 금종하가 팔을 비틀어 막고는 다른 쪽으로 거세게 움직였다.
련과의 비무와는 양상이 제법 달랐다.
도와 도의 싸움인 것도 있었고, 금종하가 련과의 대련 때보다 확실히 한 단계 더 성장했기도 했다.
‘성아가 쉽게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이 차이도 있고—금종하가 두 살 연상이다—, 검법을 오래 수련했다고는 해도 이제 겨우 도법을 딱 한 달 배운 아이가 그걸로 쉽게 이길 수 있겠는가.
다만 금가장의 도법이라면 자신이 한번 겪어 보았으니만큼 단목성에게 속성강의를 해 주었고 그게 조금쯤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의외로 금종하가 단단했다.
‘게다가 금종하가 성아를 좀 얕볼 줄 알았는데. 지난번에 내가 너무 두들겼나?’
단목성이 련보다야 크다곤 해도 금종하보다는 작고, 이제 겨우 한 달 배운 아이이니 쉽게 볼 거라고 생각했으나 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으, 으윽!”
“큽!”
소년 소녀가 재차 격돌한다. 처음에는 단목성이 다소 부치는 듯했으나 점차 기세를 되찾아 갔다.
그 두 개의 칼이 서로 맞닿은 순간, 련은 금종하의 어깨 너머로 단목성과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여 보였다.
“흐아아앗!”
하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쉽게 끝을 보이지 않았다.
단목성의 재치 있는 공격은 금종하의 단단한 방어에 막혔고, 금종하가 방향을 숨긴 채 휘두르는 초식은 단목성의 순간적인 기지가 막아 냈다.
금종하의 영웅건은 떨어져 나간 지 오래였고 옷도 흙먼지와 땀으로 너덜너덜해졌다.
단목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단하게 묶었던 머리카락도 흐트러지고 손과 뺨에는 생채기가 났다.
둘 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휘두르는 칼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할 때 비무대 밖에서 지켜보던 금적걸과 단목현요가 시선을 마주하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금적걸이 비무대를 지키고 섰던 무사를 향해 눈짓하자 무사가 가볍게 뛰어올라 비무대 위로 진입해서 소년 소녀의 연습용 도를 양손으로 하나씩 잡아 세웠다.
“비무 중지! 일각이 넘도록 승패가 갈리지 않았으므로 무승부를 선언합니다.”
무승부 선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목현요가 날듯이 비무대로 달려갔다.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단목현요가 자신의 소매로 딸의 얼굴을 다급히 훔쳤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눈을 찌푸리고 있던 단목성은 무승부라는 말을 그제야 간신히 인식한 듯했다.
“어, 어머니…….”
단목현요는 승패를 가르지 못한 것이 못내 억울하여 입술을 꽉 깨물고 턱에 한껏 호두 모양으로 주름을 만든 딸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주 잘했다. 성아야, 아주 잘했어!”
“……고모.”
“너는 고작 한 달 배워서 금가장의 후계자와 싸워 비겼으니 이만한 성취가 어디 있느냐? 아주 장해!”
“고, 고모!”
단목현요의 뒤를 따라온 련은 성을 달래 주는 단목현요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다가, 그녀의 말이 점점 더 주체하지 못하는 곳으로 향하는 것을 듣고 서둘러 말렸다.
그러는 사이에 금가장의 송 부인 역시 자신의 아들 금종하를 붙들고 있었다.
“아이고, 요 녀석아! 무림인에게 승패는 병가지상사인걸!”
“욱…… 어머니…….”
금종하는 빨개진 눈으로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세게 깨물고 있었다.
“우리 아들 잘 싸웠다. 최선을 다했으면 됐지.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니!”
“저…… 저 더 할 수 있어요! 무림인들끼리 생사결을 할 때도 일각만 싸우고 말고 그러진 않잖아요!”
금종하가 고집을 부렸지만 목도를 쥐고 있는 손이 파르르 떨려서 거의 떨어뜨릴 뻔했다.
송 부인이 얼른 금종하의 목도를 낚아채 다른 무사들에게 넘겼다.
단목세가 사람들과 금가장 사람들이 서로를 묘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단목현요가 뻣뻣하게 굳어 있는 사이에 위지청이 웃으면서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우리 현요 아가씨가 딸아이 사랑이 어찌나 지극한지, 비무 내내 제대로 보지를 못하였을 정도입니다.”
딸 사랑이 과해서 말이 그리 나온 것이니 양해해 달라는 뜻이 담겨 있는 말에 금가장주가 헛기침했다.
“부인, 부인도 그만하고 이리로 오시지요.”
“아이고.”
송부인은 멋쩍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아들의 뺨을 세게 쓸어 주고 남편 금적걸 곁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아들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지 못한 금적걸의 표정이 잠깐 굳었으나.
“후우.”
금적걸은 그 역시 깊은 한숨을 짧게 끊어 내쉬는 것으로 아쉬운 감정을 갈무리했다.
어쩌겠는가! 남들도 다 본 비무 결과를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종하는 격렬한 비무 끝에 물을 한 동이나 더 마시고, 단목성과 서로 빨개진 눈으로 한참 노려보다가 크게 숨을 들이켜곤 번쩍 손을 들고 외쳤다.
“아버지! 어머니! 단목세가 내당주님, 외당주님! 그러면 저희는 복기하러 가 보겠습니다!”
“아, 아니, 종하야. 너 이렇게 상거지 꼴을 하고 뭘 어쩌자는 거니.”
송영랑이 질색을 하며 만류했다. 번쩍 손을 들었던 금종하가 어깨를 움츠렸다.
“성아 소저도 비무를 제법 격렬히 하셨으니 두 사람 모두 의복을 다시 깨끗이 하고 지난 비무를 복기하는 게 좋겠어요. 그동안 다과상도 차리고요.”
그사이 평정을 되찾은 단목현요가 송영랑을, 그리고 그녀의 뒤에 선 금적걸을 바라보았다. 그를 향하는 눈길에는 말하지 못할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금적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목현요는 고개를 돌려 곁에 선 위지청을 바라보았다. 위지청이 희미한 미소를 그리며 단목현요의 한 손을 조심히 감싸 부드럽게 두드렸다.
그때야 단목현요가 숨을 한번 토해 내곤, 빙긋 미소 지으며 금적걸과 송영랑을 바라보고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저희 역시 과자와 작은 선물을 조금 챙겨 왔답니다. 함께 나눌 시간이 될 것 같아 다행이에요.”
단목현요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송영랑이 활짝 웃으며 두 소년 소녀를 제각기 하인들 편에 딸려 보냈다.
* * *
못 견디게 어색한 시간이다.
련은 한숨이 턱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꾹 누르고 손에 쥐고 있는 백옥 부채를 살살 흔들었다.
금종하
특성 : 앞만 바라보는 / 그늘 아래에서 자라는 새싹 / 불타는
금우도 : 3성
금우신공 : 2성 (1▲)
유영보 : 3성 (1▲)
자질과 오성 : 중-상(中-上)
고민 : 어떻게 단목련과 함께 복기할 수 있을까?
단목성
특성 : 대나무 / 표리부동 / 앞만 바라보는
낙성십이검 : 2성
흑풍단천도 : 2성 (新)
무한보 : 4성 (1▲)
자질과 오성 : 중-상(中-上)
고민 : 이기지 못했어!
어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둘 다 가진 재능이 뛰어나서 그런 건지 부쩍부쩍 실력이 는다.
“그런데…….”
둘의 비무를 복기하는데 왜 자신까지 있느냐고 묻기 위해 운을 떼려고 했던 련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동시에, 그리고 몹시도 간절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마주하곤 도로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