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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7)화 (67/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67화

상자에는 물총새 깃털로 만든 장신구, 양지옥을 깎아 만든 노리개에 사천성의 촉금으로 만든 비단 무복과 신, 혁대, 산삼 세 뿌리와 옥로환(玉露丸) 세 알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와중에, 단목현요가 불쑥 말했다.

“솔직히 금전으로 기를 죽여 보겠다, 이런 속셈인 게 아니겠어요?”

단목현요는 내심 정도에 넘치는 선물이라고 여겼지만, 좋은 뜻으로 건네는 거라며 활짝 웃는 송영랑을 앞에 두고 ‘우리가 이딴 걸로 주눅 들 줄 알아요?!’라곤 외치지 못했다.

“금전으로 기죽이겠다고 이만큼이나 허공에 흩뿌리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안 좋은 뜻으로 돈을 주는 사람도 있답니다, 내당주. 내당주는 잘 모르시겠지만…….”

단목현요는 뭐라고 떠들려다가 괜히 기운이 빠져서 그만두었다.

혼사마저도 자신의 것을 빌어다 한 위지청에게 돈과 관련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아이들끼리 비무를 한 게 도움이 많이 되었대요, 송 부인과 금 장주께서 말씀하시기를요. 그래서 지난번부터 보답을 하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애들끼리 치고받는 게 뭐 얼마나 도움이 됐다고 이만큼이나요? 말도 안 돼.”

괜히 위지청의 말을 부정하기만 하던 단목현요는 단목성이 잠결에 몸을 뒤채자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곤하게 잠든 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성아가…….’

아이 이름을 단목성으로 지을 때, 남편 석반안은 그녀가 오라비의 그림자에 짓눌려 있는 걸 알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아이가 검을 쥐게 한 것도 반절은 그게 단목세가에서는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고 남은 반은 단목현성이 검 한 자루로 모든 걸 이뤄 냈듯이 그의 딸 역시 그러길 바랐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했던, 이 세가를 이끌어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갈 거라고 믿었던 오라비처럼…….

“아이들은 하고 싶은 걸 할 때 제일 열심히 하게 되나 봐요.”

“……!”

단목현요가 어깨를 움찔 떨며 위지청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뭐라고 반박의 말을 하기도 전에 위지청이 빙그레 웃었다.

“련아도 그냥 검술을 배울 때는 그저 차분하기만 했는데, 사촌과 같이 공부하기 시작하니까 저리 재미있어하네요.”

지레 찔린 자신이 과잉 반응하려 했단 걸 자각한 단목현요가 입술을 달싹였다.

하지만 마차가 단목세가에 도착할 때까지, 위지청은 단목성의 앞날에 대해 조금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목현요 역시 무엇도 말할 수 없었다.

* * *

야심한 시각, 퇴청에는 작은 술상이 차려져 있고 그 술상을 두고서 험한 흉터로 얼굴이 얼룩진 노인과 중년의 남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금가장엔 잘 다녀왔고?”

“와, 으리으리하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세가 한창 잘나갈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 않나?”

“그렇더냐?”

“돈이 많다고 하던데. 어디서 그 돈이 다 났을까요?”

“금 장주가 재주가 좋지.”

“아내 복도 있고요?”

송영랑의 처가는 남직례의 거상이다. 단목천기는 그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좀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그쪽과 우리 사이가 화기애애하더군요. 사실 전 현요 아가씨가 거기서 누굴 찌르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그 애가 다혈질이긴 해도 그렇게까지 분별이 없지는 않아!”

단목천기가 눈살을 찌푸리곤 투덜거렸다. 자식에 대한 너무 진솔한 평가는 입에 쓰기 마련이다.

“어쨌든 별문제 없이 잘 보고 왔습니다. 다만, 제가 알던 금 장주의 경지가 아니던데…….”

단목천기가 찻잔을 기울였다.

“성아와 금종하의 비무 이전에 련아와의 비무가 먼저 있었다. 련아가 서신으로 복기한 내용을 적어 주었고.”

단목한소가 억울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 말만 들어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적에게 깨달음을 주었다고요?”

“비무를 통해 배움을 가져간 걸로 그리 말할 수야 없지.”

“그 자식들이 이번 비무가 끝나고도 련 아기씨를 데리고 복기를 하겠다고 하더니 다 알고 그런 거 아닙니까? 약은 놈들만 이익을 보고…….”

단목한소는 한참을 씨근거리다가, 단목천기가 비무에 대해 물어보자 그제야 진정하곤 빠르게 말했다.

“비무는 뭐 괜찮았습니다. 금종하와 우리 성 아기씨 둘 다 재능이 있더군요. 그래도 손을 들어주자면 전 성 아기씨라고 하겠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그 집 아들내미에게 그 집 도법이 어울리지 않아요.”

“금우도법 말이냐?”

“제가 데려다 키울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 녀석은 금우도법보다는 차라리 우리 흑풍단천도 같은 게 더 잘 맞을 녀석입니다. 금우도는 훨씬 더 세심하게 움직일 때 빛을 발하는 도법인데 그놈은 힘이 좋고 본능으로 움직이니까요.”

“잘도 아는구나.”

“바로 옆에 있는 금가장도 못 꺾으면 검 쥐라고들 할 거 아닙니까. 제가 눈에 불을 켜고 익혔죠.”

“크흠. 아무래도 우리 세가는 검에 대한 공부가 깊지 않으냐. 선배들의 족적이 있으니 성취를 얻기도 더 편할 것이고.”

“제가 싫다는데.”

“너 혼자 컸느냐? 세가의 힘으로 자란 것 아니냐! 그럼 그 의견을 다 수용하지는 않더라도 귀 기울여 듣기는 해야지.”

“제가 그래서 받은 건 좀 갚지 않았습니까.”

“……!”

단목천기는 순간 입만 크게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련의 벌모세수 이야기를 하면 그 역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단목한소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음 지었다.

“제가 련 아기씨를 통해 성취를 얻은 것이 있으니 그 얘길 하시면 저울이 맞지 않겠습니까?”

“빚을 진 건 난데 갚은 건 련아이니 내가 어찌 입을 대겠느냐?”

“그도 그렇긴 합니다.”

단목한소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그런데 후계자는 발표하셨습니까? 제가 세가로 돌아온 지 한 달밖에 되질 않아서 그런 얘긴 잘 모르네요.”

단목천기는 엉뚱한 소리에 찻잔을 기울이다 말고 인상을 찡그렸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단목한소는 당당했다.

“무슨 후계자 말이냐?”

“련 아기씨 말입니다.”

후계자를 정하는 건 온전히 단목천기의 권한이지만, 단목한소 정도 되면 이 정도로 말을 얹을 수 있었다.

하물며 단목련은 단목천기의 부족함 없는 장자이자 후계자였던 단목현성의 첫째 아닌가.

다른 세가였다면 이미 단목련을 소가주로 모시고 있었을 것이고, 단목현성이 살아 있기만 했어도 단목련을 큰아기씨로 모셨을 것이다.

“그 애는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고, 자네 덕에 깨어난 지는 이제 겨우 한 해 될까 말까 한다네.”

“그러니까 이제 발표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태상가주님!”

“그 성질 급한 것 좀 죽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젊어서 굳이 남들과 다른 무기를 손에 쥐고, 그러고도 그들 가운데에서 정점에 오른 성미가 보통 독하고 급하겠는가.

“애들한테 도법 좀 가르쳐 보라 했을 때는 싫다고, 싫다고! 그리 난리를 쳤던 것이 기억은 나는가? 한 달 전 일인데.”

단목한소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할 말만 이었다. 심드렁하게 들릴 만큼 덤덤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태상가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아기씨는 세가를 다른 지평으로 끌고 가 줄 분이라 생각합니다.”

순간 술잔을 내려놓는 단목천기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제가 그 아기씨들 앞에서 흑풍단천도를 펼쳤습니다. 자신이 앞으로 뭘 배울지는 직접 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련 아기씨는 한 번 본 순간에 이미 다 알더군요.”

“그 애가 다 안다는 걸 자네는 어찌 알고?”

“한번 보여 줬으니 따라 해 보라고 하는데 그걸 머뭇거리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그리고 조금도 틀리지도 않고 그대로 펼쳐 보이는데요. 그럼 모를 수가 없지요.”

“하하하.”

단목천기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단목한소가 자신이 보고 놀랐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놀란 것이 우스워서였다.

단목한소는 웃기만 하는 단목천기를 흘끗거리며 내심 투덜거렸다.

사실 단목한소는 그때 선 채로 기절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를 세워 놓은 건 그가 거쳐 온 긴 시간과 경험이었다.

“아, 성 아기씨 역시 그 성취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성 아기씨는 정말로 검보다는 도가 더 잘 맞지 싶은데. 그걸 어찌 알고 제게 들이미셨습니까?”

“뭐…….”

“하긴 태상가주님 눈에는 특별한 것이 보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놀라긴 했습니다. 현요 아가씨 성미가 있으니 이 정도 큰일이 아니었으면 성 아기씨가 도를 잡아나 봤겠습니까.”

그러게 말이다, 라고 단목천기도 속으로 맞장구쳤다. 여기서 그것도 련아 생각이었다는 얘길 하면 당장 단목련을 소가주 삼자고 할 것 같아서였다.

“내가 그래서 성아는 잘할 거라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련아는? 도를 잡게 할 생각이 아니 들었나?”

단목한소가 정색했다.

“련 아기씨는 쥘 무기가 뭐든 아무 상관이 없을 겁니다. 저보다 더 잘 아실 거 아닙니까, 가주님.”

“흠.”

단목천기는 눈을 내리감고 천천히 기감을 퍼뜨렸다. 총관도 물러난 뒤라 주위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왜…… 그러십니까?”

단목천기는 한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술잔으로 입매를 가리며 말했다.

본심을 가리고 조용히.

“련아는 아마 어려울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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