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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70)화 (70/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70화

새벽에 뛰쳐나간 단목성이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서 한참이나 찾다가, 뒤늦게 딸이 여기 있다는 얘길 듣고 데리러 온 단목현요는 무척 심경이 복잡한 얼굴이었다.

“넌…….”

단목현요는 한참이나 련을 내려다보다가 중얼거렸다.

“넌 새언니만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라버니도 닮았구나.”

항상 위지청을 ‘내당주’라고 말하던 단목현요가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련은 잠든 사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성아는 고모를 닮은 것 같아요.”

“아냐, 성아는…….”

단목현요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평생을 이 애는 우리 오라버니를 닮았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못했어도 우리 오라버니가 그랬듯 대단한 기재일 것이라고, 그래서 세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거라고…….

“성아는…… 그래. 성아는 날 닮았지. 누굴 닮았겠어, 이 앤 하나뿐인 내 딸인데…….”

단목현요가 말끝을 흐리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성아를 재워 줘서 고맙다. 이 빚은 언젠가 갚으마.”

단목현요는 그렇게 말하곤 단목성을 직접 안아 들고 월영재를 나섰다. 꿈에 빠진 단목성은 잠결에야 어머니에게 달라붙어 치근거려서 단목현요를 기쁘게 했다.

* * *

경항운련.

경항 대운하를 따라 이어진 지역의 무림 세가들의 모임으로, 북쪽의 하북 팽가와 진주 언가에서부터 황보세가, 산동 악가, 남궁세가와 마지막으로 단목세가가 함께하여 무의 정진을 꾀하는 모임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인근의 도장들까지 참가하면서 규모가 커진 모임이었다.

다만 이런, 작은 소속감을 느끼는 사이에서 더욱 민감해지는 것이 자식 교육 문제다.

그 건에 있어서 지난 십여 년 전까진 거의 단목세가의 독주나 다름이 없었다가, 그 독주의 근거였던 단목현성의 사후에는 다소 시들해진 모임이었다.

아들이 죽은 사람 앞에서 제 아들이 더 잘났다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련이 깨어나고, 모임을 주최할 차례였던 남궁세가가 강력하게 추진하여 내년 봄에 다시 모이게 된 것이다.

내년 일이니 아직 멀었는데도 아이들은 들뜨고 어른들은 참석 준비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에 여기,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되지는 못했으나 아이도 아닌 청년 한 사람만이 심란해하고 있었다.

‘막상 갔는데 조카들이 실망하면 어떡하지…….’

아무리 의와 협을 찾는다 해도 무림 세가는 속세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혈족들의 집합체이지 도나 불의를 공부하는 문파가 아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이 그렇게 대규모로 모이면 시기, 질투도 있으며 때로는 서로를 무시하기도 한다.

단목현우는 제 형이 재능의 정점을 찍을 무렵 그들에게 눈짓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던 사람들이, 형이 죽기 직전쯤에는 어떻게들 변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숙부?”

고민에 한참 잠겨 있던 단목현우는 눈앞에 불쑥 나타난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를 마주하고는 한숨을 삼키고 미소 지었다.

“련아, 아니 근데…… 너 벌써 다 씻었니?”

“네? 네.”

한동안 청련수의 치솟은 인기로 인해 련은 거의 청련수 짜내는 기계처럼 청련수를 만들어 내다가, 요령이 좀 더 생기고 수요와 공급이 안정화되면서 그나마 요즘엔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고서 최근 시도하고 있는 건 도라지청이다. 그들이 ‘백약청’이라고 이름을 붙인 단목련 특제 도라지청 자체의 효과는 확실하게 봤는데, 치명적인 맛이 문제였다.

아무리 약효가 좋아도 이렇게 쓰고 맛이 없으면 팔리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 련은 요즘 틈이 나면 이렇게 도라지청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도라지 밑 준비부터 함께하기로 한 날이다.

그런데 련의 손엔 벌써 새하얗게 씻긴 도라지들이 한 대야 가득 담겨 있었다. 그에 반해 단목현우와 약당 부당주 풍소강의 도라지들은 여전히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다.

단목현우가 놀라서 묻는 말을 듣고 옆을 흘낏 쳐다보기만 하려고 했던 풍소강도 새하얀 자태를 드러낸 도라지들을 보고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어떻게 벌써?!”

도라지의 긴 잔뿌리 사이의 흙을 씻어 내고 겉껍질을 다듬으며 손질하는 건 지루하고 고된 일이었다.

흙은 끝없이 나오는데 세심히 껍질을 벗기기엔 도라지의 형태가 그렇게 사람 사정을 봐주는 모양이 아니었다.

그런데 련이 씻어 낸 도라지들은 껍질을 벌써 따로 벗겨 낸 것처럼 새하얗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거칠게 씻어 낸 것 같지도 않았다. 담긴 물에는 흙가루만 있을 뿐이고 도라지들은 상처 하나 없이 매끈했다.

“물에 살살 씻으니까 되더라고…….”

“혹시 어떻게 했는지 보여 줄 수 있겠니?”

풍소강은 단목현우가 대신 말해 준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단목련을 주시했다.

단목련은 갑자기 주목을 받은 이 사태가 다소 곤혹스러운 것 같긴 했지만, 잠깐의 고민 끝에 단목현우의 도라지 몇 뿌리를 가져왔다.

그러곤 새로 물을 받아와 살살 흔드니까…….

“어…… 어어? 어?”

“이렇게 하니까 되는데.”

“어?”

흙먼지가 사르르 떨어져 나가더니 새하얀 도라지가 나왔다.

단목련이 몇 뿌리 더 시범을 보여 주었지만, 단목현우도 풍소강도 도무지 그 묘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일부러 정화를 쓰려고 한 것도 아닌데 이런 건 그냥 되고 마네.’

‘평타가 나가지 않는다’는 게 바로 이건가? 련도 조금 당황해서는 둘을 쳐다보았다.

“안 되겠다. 도라지는 그냥 제가 다 씻어 줄 테니까 두 사람이 다른 손질 해 줘요. 다지고 그런 거.”

풍소강은 어떻게 손에 물 닿는 것을 단목련에게만 일임할 수 있겠나 싶어 어깨를 움츠렸지만, 련이 둘을 떠미는 손길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단목현우가 항복 선언했다.

“어, 으응. 그래. 그래! 그건 내가 잘하지. 그렇지 않나, 풍 부당주?”

“아…… 그러믄요.”

풍소강은 여전히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이 련의 손끝만 바라보다가 단목현우에게 이끌려 칼을 쥐고 도라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칼질하는 속도보다 도라지가 씻어 나오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보니…….

‘자괴감 느껴…….’

단목련은 자신의 몸만 한 대야에 가득하던 도라지를 눈 깜짝할 새에 다 씻어 놓고서는 그들을 기웃거리다가 부채질을 해 주기 시작했다.

부채 바람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풍소강이 더 큰 자괴감을 느끼는 사이에 련이 말했다.

“다음부터는 약초를 씻어서 밑 준비 하는 건 내가 해 줄게.”

“아, 아뇨. 어떻게 그런 허드렛일을 아기씨께서 하신다고…….”

그런 건 원래 약초방에서도 가장 신입이나 막내가 하는 일이었다. 단목련이 고개를 사르르 흔들었다.

“세가 일에 허드렛일이 어디 있어? 당연히 나부터 솔선수범해야지.”

차마 세월아 네월아 씻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답답해서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아, 아이고. 아기씨…….”

“내가 쓱쓱 하는 게 서너 명이 하는 것보다 더 빠를걸?”

“그건…….”

때려죽여도 부정할 수가 없다. 풍소강은 허망한 얼굴로 산처럼 쌓인 도라지를 쳐다보았다. 흙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의 뿌리가 저렇게 흴 수가 있나.

‘아니, 정말로. 어떻게 이렇게 빠르고 깨끗하게 씻을 수 있지?’

무림 세가의 직계들이란 약초 씻는 일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것인가? 이래서야 약당이 존재하는 이유가 뭔가. 장손께서 알아서 다 하시면 되는 거 아닌가. 청련수도 혼자서 만들어 내셨는데.

풍소강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단목현우를 흘끗 쳐다보았다. 단목현우가 도라지 씻는 건 자신과 썩 다를 바가 없었는데. 오히려 숙련도 차이로 인해서 자신이 좀 더 나은…….

“풍 부당주,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 하는지 안다.”

풍소강은 화들짝 놀라서 칼에 손을 베일 뻔했다. 단목현우가 으름장 놓듯 말했다.

“그래도 다지는 건 내가 나을걸.”

“그거야 물론입지요.”

이쪽 종류의 칼질은 아니래도 검 쓰는 것만 해 온 세월이 있는데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단목현우는 자신이 먼저 자랑한 거였으면서도 오히려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 * *

련은 뿌듯한 얼굴로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눈앞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백약청 제작을 마무리 짓고, 단지를 단단히 봉하여 끈으로 묶어서 조르르 늘어놓으니 가슴이 벅찼다.

“이번 건 좀…… 맛이 괜찮겠죠?”

“그, 글쎄…….”

조카 일이라면 무한히 긍정하는 줄만 아는 단목현우도 말끝을 흐렸다.

도라지청이라는 건 사실 꿀과 설탕을 넣어 만들다 보니 그 맛도 간식처럼 맛있진 않아도 죽을 만큼 맛없지도 않아야 할 텐데 이상하게 세가에서 만든 것만은 맛이 오묘했다.

이상하게 청량하고 상쾌한 매운맛이 쓴맛과 어우러져 형용하기도 어려운 맛.

나이 든 노인들은 몸에 좋은 거라면 독이라도 눈 딱 감고 먹는다던데, 련의 조부인 단목천기조차 물에 탄 것을 한 모금 마시고 놀라서 고개를 돌리고 기침을 했다.

‘하아. 륜아도 사약이니 어쩌니 하고 말이야.’

“이건 우리 약당 백약청만의 특색 아니겠느냐?”

“맛없는 게 특색이면 안 팔리지 않을까요?”

“이것도 팔려고?”

단목현우가 좀 놀라서 쳐다보았다. 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련수 하나에만 기댈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 여청이 준비해 준 약초도 써야 하고요.”

“아! 그 약여청, 그 약초꾼 말씀이십니까?”

여청의 이야기가 나오자 풍소강의 눈빛이 희번덕거리며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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