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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79)화 (79/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79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들 많았느니라.”

크게 외치는 것도 아닌데 그의 목소리가 연무장을 꽉 채웠다. 방계 아이들 모두가 몸을 곧추세우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오늘은 단 열 명만 남지만, 돌아가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곧 다시 부를 것인즉!”

행여나 떨어져도 낙심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이를 짧게 말한 단목천기가 옆을 향해 눈짓했다.

강립이 징을 울리고, 그와 동시에 스무 명의 아이들이 앞뒤로 줄을 맞추어 섰다.

다 함께 열을 맞추는 걸 연습해 본 적 없는 데다가 아직 다들 어려서 어설펐지만 곧 어찌어찌 맞춰졌다.

그때.

“어? 한 명이 없는데?”

턱을 괴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단목현요가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고 단목현우가 사람을 한 명씩 헤아렸다.

“그러네요. 열아홉 명인데? 한 명이 없습니다.”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련은 동그란 부채로 입을 가리는 척하며 아이들의 이름과 서류를 하나씩 확인하곤 말했다.

“서극림? 서극림이 없네요.”

‘얜 내가 눈여겨봐 둔 앤데.’

서극림은 단목천기의 사촌누이의 외손자인데, 자질이 뛰어나고 올해로 열한 살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간을 보낸 차였다.

련이 본 아이들 중에서는 제일 자질이 좋았었다. 그렇게 풍족한 형편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근성이 있는지 외조모에게 배운 낙성십이검을 혼자 1성까지 익혀 온 소년이었다.

그다음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진 건 단목완이었다. 단목완은 구석진 곳에 서서 불안한 얼굴로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다.

“서극림? 없는 애가 그 애인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새 얼굴을 다 외우셨습니까?”

단목한소가 몸을 기울여 말을 붙였다.

“아, 스승님.”

“스승은 무슨요. 말씀 편히 하시지요, 아기씨.”

“네? 어떻게 그래요…… 그보다 이 애가 어디 갔는지 아는 사람 없나요?”

련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래쪽 아이들에게도 질문했지만 모두 수군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사이에 그나마 촌수가 좀 가까운 아이들끼리는 친해진 것 같았는데, 서극림과 친분이 생긴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때 련의 부채 위로 다른 것이 떠올랐다.

단목준

특성 : 상한 귤 / 밥그릇을 걷어차는 / 어두운 그늘 아래 / 웃자란 가지

자질 : 중-하(中-下)

고민 : 설마 내가 극림에게 상한 고기 먹인 걸 눈치채진 않았겠지?

도움말 : 가지치기가 필요합니다.

련은 부채로 이마를 내리치고 싶었다.

단목준!

서극림의 문서를 살펴보자 그 밑에 참고 사항이 몇 가지 적혀 있었는데, 거기에는 단목준의 이름도 있었다.

— 단목준과는 서로 가까운 마을에 살며 교류하였음.

둘이 이미 아는 사이였다. 그러니 단목준은 서극림의 실력도 알았을 것이다.

‘아직 아무 일도 안 벌인 애를 미워하지 말자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련은 눈을 날카롭게 뜨고 단목준을 쳐다보았다.

“단목준!”

앳된 목소리인데도 냉기가 서리자 모두가 련을 바라보았다가, 그다음에는 단목준을 쳐다보았다.

“서극림과 같이 고향에서 출발하여 항주까지 왔다고 했지? 지금 서극림이 어디 갔는지 몰라?”

“네…… 네?”

‘천재라서 앉아 있겠어? 직계니까 앉아 있겠지. 넌 방계라서 여기 있는 거고.’라며 이죽거렸던 소년, 단목준이 화들짝 놀라서 말을 더듬으며 대꾸했다.

서극림의 행방을 묻는 말에 지나치게 놀라는 모양새가 남들이 보기에도 다소 수상쩍어 보였다.

련은 손끝을 파르르 떨었다. 상한 걸 먹었으니 탈이 났을 것이다. 토사곽란(吐瀉癨亂) 상태일 테니 연무장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거기다 상한 걸 많이 먹었으면 진짜 위험한데!’

상한 고기를 잘못 먹고 탈이 나면 그대로 사망할 수도 있다.

“서…… 서극림의 일을, 저는 잘은, 잘은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눈동자 굴리는 거 다 보인다!’

“너는 여기까지 함께 온 벗이 마지막 시험을 받으러 나타나지 않았는데 의아해하지도 않았어?”

“네? 아, 아니, 그게…… 그게 극림이 녀석은 소심증이 심해서요…… 마지막 시험이 두렵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련은 증거 하나 없이 단목준을 추궁만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곤 곁의 조부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할아버지, 지금 당장 접객당 숙소로 의원이랑 사람을 보내서, 아니 제가 가 볼……!”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서, 서극림, 왔습, 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얼굴이 창백하고 비쩍 마른 소년이 반쯤 뛰어 들어왔다.

바람이 쌀쌀한 가을인데도 이마와 턱에 식은땀이 줄줄 맺힌 채 팔다리가 후들거려서 누가 봐도 아픈 행색이었다.

서극림

낙성십이검 : 1성

무영보 : 1성

자질과 오성 : 상-하(上-下)

도움말 : 상한 닭고기 섭취로 인한 수육독(獸肉毒)입니다. 정화가 도움될 것입니다.

련은 선경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자리에서 뛰어내려 서극림에게 달려갔다.

“아, 아기, 씨……?”

서극림은 아직 어려도 진중한 성격으로, 접객당을 벗어난 일이 거의 없어서 련과 직접 인사를 한 적은 없었지만 멀리서나마 몇 번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저 아기씨가 단목련이구나.’라고 단번에 알아보았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이따금은 동생이나 사촌과 함께 있었고, 대부분은 바쁘게 여기저기 오갔다.

가끔은 하인 소년과 함께 꽃무리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서극림은 막연히 단목련이 좋은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꽃잎 시들한 것 하나하나 챙기는 사람이 좋은 사람 아니면 무엇이겠나.

그렇게만 생각했던 소녀가 바로 눈앞에 다가와서, 서극림은 당황한 채 몸을 숙여 인사하려고 했지만 다리가 후들거리고 토기가 일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입술이 바짝 말라붙어 피까지 비쳤다.

“괜찮아? 아픈 거 아니야?”

“괜찮, 괜찮습니다!”

어쩌면 늦어서 이대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서극림은 필사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련이 서극림의 손목을 낚아챘다. 물살을 유영하는 잉어처럼 부드러운 동작이었는데 일전에 단목천기가 련의 손목을 통해 내력을 짚어 보려 할 때의 그 움직임이었다.

“무, 무슨 일…….”

“잠시만.”

그와 동시에 련은 정화를 불어 넣었다.

서극림의 몸이 약해진 상태라 많이 해 주지도 못하고, 당장의 수육독(獸肉毒, 고기를 잘못 먹어 생긴 식중독)만 치료해 주려는 생각에서였다.

‘정화를 사람에게 곧장 써도 괜찮은 거였구나. 어쩌면 이걸로 우리 숙부도…….’

주의!

급격한 상태 변화를 요구하는 정화는 많은 양의 영기가 소모됩니다.

영기 : 13 / 100 (-30)

‘뭐?! 아니 그건! 그런 건 미리 말을 해 줬어야지!’

한 방에 영기가 훅 떨어지자 아찔해졌다. 여기서 수치가 3만 더 떨어졌어도 사달이 났을 것이다.

비틀대며 뭔가를 토하는 게 서극림이 아닌 단목련이 되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숙부 정화 계획은 일단 뒤로 미루자.’

련은 속으로 식은땀을 닦아 내며 생각했다. 식중독을 완쾌시키는 것도 아니고 잠깐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데 영기가 30이나 빠져나갔는데, 사람의 심마를 정화하려면?

‘영기가 한 200, 300 이렇게 필요한 거 아냐? 그러다 나도 죽겠네.’

그 잠깐 사이에 토기와 어지럼증이 가시자, 서극림은 놀라서 눈을 끔벅였다.

“어…… 이게…… 지금…….”

“괜찮아? 할 수 있겠어?”

“네? 네! 네,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련이 다가와 부축을 좀 해 주고 나니까 서극림이 씩씩해진 듯한 형국이었다.

다만 단상 위의 단목천기만이 눈을 날카롭게 뜨고 련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을 주시했다.

련이 자리에 앉자 단목천기가 자신의 손으로 손녀딸의 손을 덮듯이 감쌌다. 차갑게 식었던 련의 손이 조부의 손아래서 그나마 온기를 전달받았다.

“저 아이는 괜찮은 것 같으냐?”

“예, 할아버지. 할 수 있어요.”

그사이 련은 머리를 팽팽 굴렸다. 단목준이 미래에는 세가까지 말아먹을 수작질을 해도 아직은 열몇 살밖에 안 된 어린애다.

아직 어린아이가 이런 일까지 벌였다는 사실이 소름 끼치긴 했지만, 그건 제쳐두고서 그가 용의주도하게 일을 처리했을 것 같진 않았다.

‘분명 어딘가에 증거가 남아 있을 텐데…….’

접객당 쪽을 뒤져 보면 뭔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련은 붓으로 글자를 빠르게 휘갈겨 쓴 뒤, 뒤에 있는 정영에게 건넸다.

정영은 종이에 적혀 있는 말을 훑고는 련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빠르지만 조용히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늦게 나타났고, 심사를 할 직계혈족이 사람을 따로 내보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났다는 신호나 다름없었다.

그 모습을 보는 단목준의 눈길이 단상 위에서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러나 심사는 더 이상 지체 없이 그대로 진행되었다.

“약당주.”

단목천기의 호명에 단목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사람씩 나와 상대하면 된다.”

어린아이들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단목현우를 쳐다보았다.

키가 훤칠한 단목현우를 보고서 몇몇은 주눅이 든 듯 어깨를 수그렸지만, 또 다른 몇몇은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번뜩였다. 무엇이라도 증명해 보겠다는 뜻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단목현우는 긴장한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 멋쩍은 듯 목 뒤를 매만지다가 단상 위를 흘끗 쳐다보았다.

련은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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