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80화
* * *
전 씨가 머리를 싸매고 외쳤다.
“아니, 아니 이놈들아! 대체,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의원, 의원님!”
“우, 우웨에엑!”
“저, 저 뒷간에! 다녀, 다녀오겠습니다!”
“대체 너희 다 뭘 주워 먹고 온 거야!”
방계 식솔들을 본가까지 불러 모은 건 아주 오랜만의 일이라, 이쪽에서도 제대로 접대하기 위해 월영재 주방의 사람을 접객당으로 보냈다. 그게 바로 전 씨였다.
마지막 날까지 아무 문제없이 잘 끝나나 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방 하인 서넛이 동시에 안색이 나빠지더니 한 놈씩 구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멀쩡하던 사람도 남의 구토 장면을 보면 토기가 드는데, 한 놈도 아니고 여럿이 이러니 난리가 났다.
퀭한 얼굴의 하인 하나가 구토로 인해 핏발이 선 눈으로 주저하며 고백했다.
“주, 주방에 남아 있던…….”
* * *
아이들은 많이 긴장했으면서도 있는 힘껏 최선을 다했다.
단목천기는 다시 부활했고, 세가는 예전의 부귀를 되찾고 있으니 여기서 눈에 들어 이 본가에 남기만 하면 남은 삶이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그들 중에 단목준만은 눈앞의 시험에 집중하지 못했다. 자신을 서늘하게 꿰뚫어 보는 직계 여자아이의 눈빛 때문이다.
마치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 도무지 그 또래 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던 눈빛.
서극림은 단목준의 옆 마을에 사는 친척이었다.
자신의 조부와 그의 조모가 한때나마 같이 지낸 적이 있었다며 교류하곤 했지만 서극림의 가계는 사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나마 서로 친척이라고, 단목준네에서 식자재나 단목준이 입던 낡은 옷가지 따위를 주고는 했다.
그쪽 집안이 ‘본가’에서 청간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도 놀라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서극림이 여기까지 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 하나를 항주까지 보낼 만한 형편도 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도 꾸역꾸역, 가산을 다 모아 여비를 챙겨선 떨어질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한번 구경만이라도 해 보고 싶다는 핑계를 대고 기어 나와서는…….
단목준은 그런 서극림이 자신보다 검술에 더 큰 재능을 보이는 것 자체가 불손함이고 또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준 음식과 옷을 입고 컸으면서 어떻게 감히 자신을 앞질러 갈 생각을 했단 말인가?
‘고기는 잘 처리했겠지?’
요리는 데려온 하인을 시켰을 뿐이라 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갑자기 자신에게 서극림에 대해 물어볼 줄도 전혀 몰랐다.
단목준은 세가 안에서 서극림에게 거의 아는 척도 하지 않고서 다른 아이들과 친분을 쌓으며 바쁘게 지냈기 때문이다.
‘아냐, 아니지. 설마 그 볶음이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어도 상한지 몰랐다고 하면 되지!’
단목준은 마음을 다잡았다. 요리를 한 건 자신이 아니니까.
‘그러게 외손자 주제에 왜 날뛰어서…….’
저쪽은 단목천기의 사촌의 외손자라면, 이쪽은 그래도 아직 단목 씨를 가지고 있었다.
단목 씨조차 아닌 자들은 이제 더 이상 같은 핏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저자들에게는 당연히 이번 방계 모집 청간조차 보내선 안 됐다는 얘기다.
‘단목세가에서 극림에게 청간을 보내지만 않았어도.’
불만이 차올라 입술을 깨물고 목검을 쥐었다.
서극림이 비록 귀동냥으로 배운 잡스러운 게 많아 자신이 이것저것 미리 처치해야 했지만, 단목준은 자신이야말로 천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일 등으로 합격해야만 하는 천재.
검을 가르쳐 준 조부는 언제나 그를 보면 천재라고 추켜세우기 바빴다.
— 고아에게서 태어나 이젠 아비도 없는 그런 애가 아니라, 준아 네가 다음 대 가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 단목 씨도 아닌 방계에게 네가 질 리가 없지 않으냐?
— 어찌 그것밖에 못해! 아니다, 더 잘할 수 있단다. 너는 이 조부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지 않았더냐.
단목준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만약 합격해서 세가에 남더라도 일 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그의 조부도 사실은 천하제일인이 되어 가주가 될 뻔했다고 들었다. 그런 조부의 장손인 자신도 당당하게 합격해야만 했다.
그때 단목현우가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단목준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뭐, 뭐지?’
“검을 뽑아 보거라.”
“네? 네…… 네!”
단목준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목검을 꺼냈다. 지금껏 생각만 거듭하느라 단목현우를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 꼴이었다.
“그럼 오너라.”
“가, 갑니다!”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서 말을 더듬었다. 단목준은 수치심을 느끼며 뺨을 붉히곤 서둘러 발을 움직여 보법을 밟았다. 이렇게 한 다음에, 이 목검을……!
타앙!
그런데 단 일합에 목검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말았다. 목검을 놓친 손이 얼얼했다.
단목준은 당황하고 어이가 없어서 멍한 얼굴로 목검이 날아간 곳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와 동시에 단목현우의 무기가 단목준의 목에 닿았다.
“이래 보여도 비무나 다름없거늘. 도중에 다른 데 정신이 팔리면 안 되지.”
“……!”
이렇게 빨리 끝난 건 단목준뿐이었다.
그의 얼굴이 분노와 수치심으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지금의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자신이 단목천기도 아니고 그 막내아들의 단 일합에 목검을 놓치고 무방비 상태가 된단 말인가?
단목현우는 단목준의 그 눈빛을 내려다보곤 조용히 말했다.
“다른 생각을 하고서도 이 시험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다. 마음을 가다듬고 수련에 정진한 연후에…….”
“자, 잠시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만…….”
“적과 만났을 때도 한 번만 더 해 보자고 할 테냐?”
단목현우의 물음에 단목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얼굴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건 그렇지만 제발 다시 한 번만…….”
“자, 이만 다음!”
“공자, 물러나시지요.”
“이, 이거 놔라!”
자존심까지 굽히고 간절하게 애원했지만 단목현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목준은 굴욕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붙잡는 손을 거세게 뿌리치고는 씩씩거리며 자기 발로 단상을 내려왔다.
그때 단목준은 자신의 다음 차례가 서극림이라는 걸 알았다. 순간 단목준의 얼굴이 거세게 일그러지며 서극림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항상 그의 낡은 옷을 받아 입던 서극림은, 어째서인지 담담한 얼굴로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 * *
련은 단목현우가 상대해 주는 서극림을 내려다보며 심안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눈동자 위로 별빛 광채가 떠돌기 시작했다.
자질이 상-하(上-下)인데 이 정도면 단목성보다도 우수하다는 뜻이다.
배운 건 낙성십이검 1성에 무한보 1성뿐이지만, 옷차림과 몸 상태에서 느껴지는 가정 형편을 고려해 보았을 때는 저만큼 익힌 것도 서극림의 자질과 노력 덕분이었다.
과연 단목현우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제법 즐거운 듯 몇 번 검을 주고받았다.
“오! 그런 식으로 움직일 생각을 했나?”
“흐, 흐압!”
정형적이지 않고 재치 있는 서극림의 움직임에 단목현우는 흥이 오른 듯, 마지막에는 극림이 드러낸 약점을 직접 지적해 주기도 했다.
서극림은 그저 검을 받아 내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어서 대답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그 이상 가지는 못했다. 연무장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구토와 어지럼증에 시달리던 서극림이었기에 그 이상은 무리였다. 련의 정화로 아주 잠깐 버텨 낸 것뿐이었다.
서극림이 크게 휘청이자 단목현우가 놀라서 아이를 받쳤다.
“우, 우왓! 어, 어떡해! 괜찮으냐? 의원, 의원!”
대기하고 있던 의원이 후다닥 달려왔다. 그와 동시에 련도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이 서극림이야말로 세가의 동량이 될 인재인데 허투루 대할 수 없었다. 련은 의원에게 빠르게 말했다.
“극림이 상한 고기를 잘못 먹어서 계속 구토했는데 그걸 참고 방금 전까지 시험을 받은 거야.”
서극림이 놀라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가 다시 어지러워하는 사이에 의원이 애잔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수육독(獸肉毒)이로군요. 그래도 다 토해 내서 그런가? 상태가 좋은 편입니다. 해독단과 함께 노근(蘆根, 갈대)의 즙을 내어 먹고 안정을 취하게 하지요. ……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상한 고기를 먹은 겁니까?”
의원이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번에 불러 모은 방계 식솔들의 음식은 월영재 주방 소속인 전 씨가 담당했다.
앞으로 절강성 제일의 숙수가 될 거라는 야망이 있는 전 씨는 일전에 월영재의 오골계 흑월을 잃어버린 뒤로 매사 심혈을 기울였는데 이런 대형 사고가 나오다니.
‘전 씨가 이 일을 알면 울지도 모르겠는걸.’
의원은 종종 야식을 만들어 주곤 하던 전 씨의 얼굴을 떠올리곤 내심 이 소년이 바깥에서 뭘 잘못 먹었다는 얘기라도 하길 바랐다.
“그건…….”
그 순간이었다. 사람 여럿이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아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날카롭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목준! 그 자리에 꿇어라!”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서, 성아야?”
딸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알아들은 단목현요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련도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는 사이에 다른 무사들이 얼른 단목준을 붙잡고 무릎을 꿇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