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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81)화 (81/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81화

정영이 비무대 한쪽 구석에 있는 련에게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아기씨, 명을 수행했나이다.”

련의 명령은 한 마디였다.

채증(採證).

단목준이 이런 짓을 벌인 증거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낼 줄은 몰랐다. 단목성이 직접 나타나서 단목준을 직접 무릎 꿇리는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더 몰랐다.

“어떻게 벌써?”

련이 단목성과 정영을 번갈아 쳐다보는 사이에 단목성은 우선 단목천기 앞에 양손을 맞대고 절을 하며 외쳤다.

“태상가주님! 저 녀석이 이 단목세가 안에서 사람들을 해하려고 했기에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먼저 무릎부터 꿇린 점 사죄드립니다.”

사람을 해하려고 했다니 보통 큰일이 아니다. 단목천기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무어라?”

“뭐라고?”

“성아야! 그게 무슨, 무슨 소리니!”

단목성을 자세히 보니 이마에 땀방울도 맺혀 있는 것이, 아마도 증거를 찾자마자 여기까지 달려온 것 같았다.

단목준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가 빨개졌다가 반복하다가 갑자기 분기에 찬 얼굴로 손가락질했다.

“저, 저놈이!”

자세히 보니 단목성의 뒤에 눈물로 엉망진창이 된 얼굴을 한 낯선 하인이, 거의 반쯤 절하듯 엎드린 자세로 서 있었다.

그사이 정영이 련에게 조용히 소곤거렸다.

“화륜이…… 잉어밥을 가지러 가다가 접객당 주방이 소란스러운 걸 알고 무슨 일인지 알아봤답니다.”

“륜아가……?”

련은 이 대목에서 정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화륜이 그녀나 단목비가 아닌, 다른 주변부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본 일이 없었다.

“접객당 주방에 닭고기 볶음이 남았길래 하인들끼리 그걸 먹었는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들 토하거나…….”

정영은 어린 아기씨 앞에서 차마 하인들이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고 있단 말은 하지 못하고 말끝을 돌렸다.

“하여간 그래서 접객당 주방 담당이었던 전 씨도 혼비백산했고요.”

‘아이고! 그걸 또 여럿이서 나눠 먹었어!’

그 얘기를 함께 듣고 있던 의원과 서극림도 안색이 변했다.

“세상에. 며, 몇 명이나 먹었답니까?”

“아, 네댓 명쯤 되는데 제일 많이 먹은 사람 말고는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아서요. 제가 확인했을 땐 의원이 이미 진찰하고 있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서? 무슨 증거가 어떻게 나왔는데?”

“전 씨가 문제된 요리의 맛을 보고는 요리가 전부 상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상한 고기로 만든 것 같다는 걸 알아냈는데…….”

정영이 흘끗, 단목성 뒤의 하인을 쳐다보았다. 달달 떨고 있는 하인은 이 자리에서 그대로 혼절이라도 하고 싶은 눈치였다.

단목성은 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당차게 말을 이어 갔다.

“바로 몇 각 전부터 구토와 설사, 고열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자들이 있어 알아보았더니 접객당의 남은 요리를 나눠 먹었다고 했어요. 무슨 요리인가 했더니 이놈의 하인이 접객당 주방에서 몰래 만든 요리였습니다!”

단목준이 단숨에 창백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 그, 그래요! 저, 저놈이 만들었잖아요! 저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그러더니 단목준은 무릎걸음으로 단목성 곁에 선 하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잡아채 캐물으려는 듯 위협적인 손짓에 하인이 단목성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울음과 자백을 거의 동시에 했다.

“도, 도련님께서 제게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고기를 주시면서, 이걸로, 이걸로 볶음을 만들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내, 내가 언제 그랬어!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사이 이제 단목준의 하인이 넙죽 엎드렸다.

이제 거의 둘 중 한 사람만 살아남는 생사결과 같은 자백 경쟁 시간이었다.

먼저 나선 건 눈칫밥만 먹고 이 생을 헤쳐 나온 하인이었다.

“제, 제가 아무래도 고기가 이상한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벗과 함께 보양을 하려고 가져온 진귀한 거라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저 같은 천것은 모르는 거라고…… 하지만 제가 아무리 천해도 고기가 썩은 것과 진귀한 것도 구분하지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도련님 말씀을 도저히 거역할 수가 없어…….”

“그 벗이 누구냐?”

단목천기가 나직한 목소리로 묻는 순간 좌중이 숨 들이켜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모두 호랑이 앞에 선 토끼처럼 꼼짝을 하지 못하고 발발 떨었다.

“그 벗이 누구냐고 묻지 않으냐!”

쾅!

단목천기는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가볍게 탁상을 내려쳤지만 그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단목준이 자지러지게 놀라며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대신 하인이 얼른 말했다.

“그, 극림 도련님입니다!”

사태 돌아가는 양을 보고 있던 서극림은 의원이 주었던 해독단을 하나 먹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단목천기가 서극림을 쏘아보듯 강렬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다시 단목성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럼 둘이 같은 요리를 먹었을 것인데, 왜 하나만 탈이 나고 하나는 멀쩡한 것이냐.”

“주, 준 도련님은 안 드셨습니다…….”

“아니야! 아닙니다!”

단목준이 격렬하게 부정했다.

“저 하인 놈이 혼자서 저지른 짓이에요!”

“제, 제가 왜 상한 고기를 몰래 가져와서 도련님께 드리겠습니까!”

“나도 모르지! 네가, 네가 평소에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더니 이 시험에서 고꾸라지길 기도한 것 아니냐? 그럼 뒤에서 몰래 나를 비웃으려고……!”

“시끄럽다!”

단목천기가 싸늘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다 한숨을 내쉴 때, 자리에서 일어난 서극림이 단상 앞으로 걸어와 단목천기에게 포권지례를 올리고 입을 열었다.

“태상가주님, 단목준이 오늘 저에게 보양할 만한 고기를 몰래 구해 왔다며 같이 점심을 들자 하였는데, 거기에 닭고기 요리가 한 접시 있었습니다. 단목준은 평소와 달리 고기 요리를 먹지 않고 제게 권하기만 했습니다.”

“네가 늦었던 것이 그 탓에 탈이 났기 때문이더냐?”

“예, 송구합니다.”

서극림은 그새 더 지쳤는지 얼굴이 한층 더 창백해졌다. 사태 돌아가는 모습이 심상치 않자 단목준은 얼른 말을 바꾸었다.

“태, 태상가주님! 오해십니다. 제가 극림에게 요리를 대접하려고 했지만, 그건 정말 그게 좋은 고기인 줄 알아서 그랬던 겁니다!”

“그런데 왜 너는 먹지 않았느냐?”

“모, 모처럼 좋은 고기라 극림에게…… 양보를 하고 싶어서…….”

“그렇게 사이가 좋은데 왜 서극림이 심하게 구토하며 아파하는 것을 내버려 두고 너 혼자 온 것이야?”

“그, 극림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저는 극림을 찾지 못해서…… 하지만 시험에 늦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그때 벌벌 떨리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 사람이 닭고기 훔치는 걸 어제 봤어요.”

‘단목완!’

긴장했는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조그만 체구의 소녀가 단목준을 지목하며 말했다.

단목천기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쏠렸으나 단목완은 최대한 침착하고 또렷하게 말했다.

“어제 새벽에 주방에 몰래 들어가 천으로 싼 덩이 하나를, 가지고, 가지고 나오는 걸 보았습니다.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고 배가 고픈가 보다 했는데…….”

그때 총관이 작은 목소리로 단목천기에게 말했다.

“어제 아침 접객당에 들어간 요리가 닭고기 죽이었습니다.”

“즈, 증거 있어요? 내가 그랬다는 증거……!”

단목준이 맹렬하게 부정할 때 단목성은 가져온 천을 불쑥 내밀었다.

딸 가까이 다가간 단목현요가 그 천을 받았다가 거의 비명을 지르고 싶은 얼굴로 단목천기를 돌아보았다.

오래되어 색이 좀 바랜 낡은 무명천이었다. 다만 끈적한 점액 같은 게 묻어서 괴상한 냄새를 풍겼다. 쾨쾨한 삶은 계란과도 흡사한 냄새였다.

“이게 그 닭고기를 싸고 있던 천이에요. 여기에 이름이 수놓여 있습니다. 단목준이라고!”

“허어어!”

“맙소사…….”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오는 사이에, 썩은 닭고기 냄새에 미간을 찌푸린 단목현요가 떨리는 목소리로 단목성을 돌아보았다.

“서, 성아야. 이런 건 또 어떻게 찾았니……?”

단목성이 진지한 얼굴로 련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사실 이 모든 건 련아의 하인과 무사가 련아의 명을 받아 조사하고 있던 겁니다.”

“……!”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련에게로 쏠렸다. 정영이 슬쩍 눈을 내리깔고 련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실 저는 아니고, 화륜이 거의 다 하였습니다…….”

약간 시무룩해진 목소리였다.

그사이 일은 일사천리로 정리되었다. 뭔가 잘못됐다며 발악하는 단목준은 끌려 나가고, 버티고 있던 서극림 역시 약당으로 옮겨졌다.

몹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마지막 사람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여전히 긴장한 표정이긴 했지만, 어딘가 안정된 기색의 단목완이었다.

서극림을 배웅하고 자리로 돌아온 련은 빙그레 웃었다.

단목완은 단목현우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모자람 없이 선보이고는, 모든 걸 털어놓은 사람 특유의 뿌듯한 표정으로 비무대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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