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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82)화 (82/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82화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단목현요가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을 내지 않는 건 그나마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딸인 단목성이 활약한 부분이 있어서였다.

“무슨 일이긴. 전부 다 잘 해결된 일이지.”

“아버지! 이게 그렇게 넘어갈 일이에요?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방계 하나도 제대로 다스리질 못해서 제자 선발에서도 이 사달이 났다고 할 것 아니에요.”

단목현요가 뾰족하게 말했다. 속상해 죽겠다는 말투에 단목천기가 혀를 찼다.

“이 일로 극림이 세가에 남지 못했다면 그리되었겠지.”

마지막 시험에 늦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점 요인이 있고, 남의 술수에 당해 몸 상태가 저리 된 줄 몰랐다면 그 역시 감점할 사안이었다.

‘그나마 련아가 도와주어 다행이다.’

그때 단목천기는 알아챘다. 련이 서극림의 손목을 부드럽게 낚아챈 수법은 바로 자신의 금나수(擒拿手, 손으로 낚아채는 수법)였다.

지난번에 련의 손목을 잡아 상태를 확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딱 한 번 보인 것을 련이 그대로 해낸 것이다.

그때 단목천기는 심각한 상황인 것도 모르고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칠 뻔했다. 태상가주로서의 이성이 그를 단단히 붙들어 맸기에 망정이지.

“어휴, 그건 그래요. 어린 게 어찌 그리 잔인하대요. 정말 깜짝 놀랐네. 그래도 좀 마지막 시험이 다 끝나고 남들 몰래 조용히 해결했으면 좋았겠지만…….”

단목현요가 애석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다른 이도 아니고 딸이 버럭 소리치며 들이닥쳤던 것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커도 힐난할 생각까진 들지 않았다.

“성아가 기개가 있는 성미라 그런 것이지. 귀한 성정이니 너는 탓할 생각 하지 말거라.”

“그럼요. 제가 제일 잘 알지요. 우리 성아가 얼마나 대쪽 같은지! 그러니 거기서…….”

단목현요는 조금 아깝다고 생각했던 걸 들키기 않게 잘 갈무리하곤 말을 이었다.

“련아가 이리저리 애를 써 주었다고 그 자리에서 곧장 련아까지 추켜올려 줬잖아요. 보통은 안 그럴 텐데.”

덕분에 소리쳐 외치고 단목준을 무릎 꿇리는 건 단목성이 다 했는데, 정작 가장 대단한 건 단목련이 되었다.

‘뭐…… 대단하긴 했지만. 어떻게 알고서 사람부터 보낼 생각을 했는지 몰라.’

서극림의 상태를 보자마자 그의 식중독이 누군가가 술수를 쓴 거였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 짓을 한 게 단목준이었다는 건 또 어떻게 안 걸까?

‘뭔가 느낌 같은 게 딱 오나?’

사실 단목현요는 좋게 여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사람을 본다고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바로 알아챈 경우가 드물었다.

그 때문에 석반안과 처음 만났을 때도 잘 풀리지 못할 뻔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단목현성은 좀 달랐다. 그가 슥 보고서 ‘저이는 사람이 별로다’라고 한마디 하면 그자는 반드시 사고를 쳤고 ‘겉으로 보기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하면 반드시 의리를 지켰다.

그런 단목현성의 딸이니만큼 단목련도 그런 느낌이 온 걸까?

“어쨌든 그쪽은 우리 가문에서 아예 추방해요! 어린 게 어떻게 고기를 훔쳐다가 그걸 또 상하게 해서 먹일 생각을 하고.”

“그 일은 가법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고. 그래서 이번에 남길 아이들은 이들로 하는 것에 아무 이의 없느냐?”

단목현요는 마냥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고, 단목현우는 만족한 듯 벙긋벙긋 웃었다. 마지막으로 단목한소가 쭉 훑어보고는 대답했다.

“예. 이대로 발표하면 될 듯합니다.”

“련아한테는 안 보여 줘도 돼요?”

잠자코 있던 단목현요가 조금 뾰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의 딸은 어리다는 이유로 연무장 단상에 발도 못 디뎠는데, 단목련만 시험관 노릇까지 한 것이 썩 맘에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련아에게는 이미 보여 주었느니라.”

“네? 대체 언제요?”

“너희도 다 알았다고 해 놓고 왜 이제 와서 딴소리야? 언제 봤든 그게 뭐가 중요해서.”

“련아한텐 아직 안 보여 준 줄 알았죠!”

단목현요가 새침하게 외쳤다.

“그래서 지금 이 명단에 불만이라도 있느냐? 누굴 붙이고 누굴 떨어뜨리고 싶은 것이야? 타당한 이유는 있을 테지?”

“아, 아니. 불만은 없어요. 그냥 물어본 거죠.”

단목현요는 그렇게 말하곤 입을 꾹 다물었다. 단목천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몸을 일으키며 손을 내저었다.

이만 나가들 보라는 뜻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단목천기는 곁에 선 강립에게 물었다.

“련아는?”

“아직 약당에서 약을 달이고 계십니다.”

“앓아누운 것이 한둘이 아니니 또 걱정이 되어 그런 게지.”

“예에. 그래도 처방이 빠르고 약재가 좋아서인지 벌써 다들 많이 괜찮아졌다 합니다. 특히 서극림 그 아이는 벌써 쾌차했다더군요.”

“그 녀석은 련아가 특별히…….”

비척대는 서극림이 나타났을 때 안색이 하얗게 질려 달려가던 손녀의 얼굴을 떠올린 단목천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서극림에게 빛나는 재능이 있다는 것은 단목현우의 검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알았다.

그런 몸 상태로 그만큼이나 해낸 근성도 볼 수 있었다. 세가의 동량이 될 제자, 서극림이 바로 그런 이였다.

그러나 서극림의 상태가 좀 더 심각해서 도저히 마지막 시험을 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래서 아무도 그를 남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련이 ‘제가 제자 한 명은 고를 수 있게 해 준다고 하셨잖아요.’라는 얘기를 하며 그를 세가에 남겼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예, 그래서 벌써부터 아기씨한테 절을 하니 마니 하면서 난리법석이었답니다.”

“허허.”

서극림 입장에서는 마지막 순간에 단목련이 무언가 수를 써 주어 가까스로 시험을 칠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단목천기는 내심 흐뭇하게 웃다가 강립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흠칫 표정을 고쳤다.

“흠흠. 하늘의 도우심인지 벌써 재능이 빛나는 아이들이 많으니 기대가 크구나.”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외당주님과 약당주님께서 많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그래. 그런데 자네…….”

약당의 단목련을 보기 위해 슬슬 걸음을 옮기던 단목천기가 문득 떠오른 바를 물었다.

“그날 접객당 아침 식사가 닭고기 죽이었던 건 어떻게 알았나?”

순간 총관 강립의 얼굴이 약간 경직되었다. 강립은 크흠 하고 헛기침하더니 작아진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전 씨가…… 요리 실력이 정말 좋습니다.”

“알고 있느니라.”

“아침 식사가 죽이라 물 한 잔 부으면 두 그릇을 더 만들 수 있다고 들고 가라며 권하기에…….”

“권한 게야, 달라고 한 게야?”

강립이 또 작게 헛기침하곤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그날 새벽에 고기가 부족하다 해서 제가 두어 덩이를 더 구해다 주고…….”

“그래서, 그 죽이 맛이 좋더냐?”

“예에. 닭고기는 푹 익혀서 야들야들하고 쌀알은 딱 반은 으깨고 반은 살렸는데 뜨끈한 것이 술술 넘어가면서도 씹는 맛이 일품이었지요. 닭고기 육수를 써서 그런지 그 감칠맛이 아주…….”

“허이고. 맛이 좋단다, 좋아.”

“크, 크흠. 부족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용서…… 용서하십시오.”

“전 씨에게는 식자재 관리를 못한 책임을 물어 환자들이 다 나을 때까지 알맞은 요리를 하라고 전하라. 환자들이 다 낫거든 월영재로 돌아오도록 하고.”

“예, 알겠습니다!”

* * *

합격자 명단을 발표했을 때, 반은 아쉬움에 탄식과 눈물을 글썽거렸고 남은 반은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그새 친분이 생겨 서로 손을 맞잡고 방방 뛰는 아이들도 있었다.

“됐다! 됐어!”

“으아아아아! 붙었다!”

“붙었습니다, 됐습니다!”

“아이고, 이를 어째…….”

“울지 마세요, 도련님…….”

희비가 엇갈린 와중에 탈락한 사람들은 더 이상 본가에 있을 특별한 이유가 없기에 서러움을 꾹 참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사이 련은 그들을 하나씩 방문해, 작은 서찰을 하나씩 건네주고 있었다.

“아기씨? 이게…… 이게 무엇입니까?”

눈가가 빨개진 소녀 단목진이, 련이 왔다는 소리에 옷가지를 챙기다 말고 달려 나와서는 서찰을 보고서 눈만 깜박였다.

“마지막 시험을 볼 때 진아 네가 검 휘두르는 걸 보고, 이렇게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써 본 건데…….”

련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금 민망해서 뺨을 긁적였다.

무공을 배울 때도 적기라는 게 있다. 너무 늦게 시작하면 근골이 굳어 앞으로의 성취에 한계가 생긴다.

지금 불려온 아이들은 이미 나이가 아슬아슬했다. 단목천기는 열심히 노력하면 다시 데려올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정말 그렇게 되긴 어려울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인 걸 알기에 이토록 아쉬워하는 것이다.

“무공을 익히는 것이야 항주에서 하나 다른 곳에서 하나, 마음이 바로 서 있으면 같은 법 아니겠니.”

일부러 근사한 말도 한번 읊어 주었다. 그러면 이 서찰을 제대로 살펴볼 마음이 들까 싶어서였다.

“여, 열심히 정진하여 꼭! 다음에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기씨!”

세가를 떠나는 아홉 명 중에 넷 정도는 직계인 련이 떠나는 날까지 챙겨 준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아 눈물을 글썽였고, 셋은 서찰이 궁금해 죽을 것 같다는 반응을, 둘은 몹시 시큰둥한 표정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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