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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90)화 (90/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90화

“그렇게…… 하는 거 맞아. 여기서 이 초식으로 가는 건 왜 그러는지 알겠어?”

“갑자기 방어를 상정한 것 같은데 왜인진 모르겠어요. 왜지?”

“뒤에 있는 사람을 지키려고 그런 거야.”

“그냥 앞에 있는 사람을 죽이면 굳이 그럴 필요 없지 않아요?”

“하하…….”

이제 나는 강해졌다!

이 정도 발언에 놀라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련은 호기롭게 웃었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으니까. 가령 이길 수 없는 적이지만, 뒤에 있는 사람을 보호해야만 한다면…….”

“도망치지 않고요?”

“다른 사람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 줘야 하잖아.”

“아니, 못 이길 상대라면 자기가 먼저 도망쳐야죠. 자기 몸도 간수를 못 하는데 누가 누굴 지켜요?”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왜요?”

“내가 그들보다는 강하니까.”

화륜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련은 문득 이제 화륜에게 ‘먼저 도망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지켜 주어라’라는 말을 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족이 남을 지키다가 죽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련은 갑자기 목이 타서 잠깐 말을 멈췄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네 말도 맞는 것 같아. 자기 몸도 못 지키면서 남을 지킨다고 나서는 것도 바보다. 그치.”

“바보까진 아니고요. 멍청이 정도?”

련은 괜히 화륜을 한번 쏘아봤다가, 화륜을 불러와 그 손을 꽉 쥐었다. 화륜은 어색해하면서도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래, 자기 몸 상하면서 남 돕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야. 그냥…… 륜아도 남을 도와줄 수 있을 때만 남을 도와주면 돼.”

“바보…….”

“왜 갑자기 날 바보라고 해?”

“그냥 중얼거린 말이에요!”

“아닌데? 꼭 날 보고 한 말이었잖아.”

두 사람은 한참 티격태격했다. 그러다 화륜이 포기했다는 투로 손을 들었을 때야 련은 원래 화제로 돌아와 다시 말했다.

“어휴, 어쨌든 알겠지? 륜아야, 못할 것 같을 때는 그냥…… 도망치면 돼. 알았지?”

“……왜요? 제가 약해서요?”

“아니. 이 누이가 다 지켜 줄 거니까.”

“……저를요?”

“응. 륜아는 내 동생이니까.”

“제가 약하고 쓸모없는데도요?”

몇 번이나 한 대화인데도 화륜은 매번 처음 하는 이야기인 것처럼 몇 번이나 물어왔다.

련은 화륜의 또랑또랑한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화륜의 뺨을 붙잡고 세게 비볐다.

“넌 내가 약하고 쓸모없으면 버릴 거야?”

“그거랑은 관계없는 얘기인데요. 그리고 누이는 단목세가 장손인데 어떻게 쓸모가 없어요?”

‘차가운 자식…….’

“이럴 땐 그냥 안 버리겠다고만 해 주면 되는 거야, 륜아야…….”

“제가 하인인데 버릴 수 없는 게 당연하잖아요.”

련은 마른 입술을 다시고는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화륜에게는 입장 바꿔 생각해 보고 이런 게 잘 통하지 않았다.

“일단 넌 약한 게 아니고, 사람은 쓸모를 가지고 지켜 주고 말고 하는 것도 아니야. 나한테 소중하니까 지켜 주는 거지.”

“제가요? 누이한테요?”

“안 소중하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련은 화륜의 뺨을 쭉 잡아 늘렸다. 화륜이 비명을 질렀다.

“아파요!”

“소중하니까 검도 가르쳐 주고, 글자도 같이 배우자고 하고, 맛있는 것도 나눠 먹고, 응? 이렇게 따박따박 ‘누이 말은 다 틀렸는데요?’ 이래도 귀엽다 해 주고!”

“허어엉.”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양손으로 감싸 쥔 화륜이 울상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련은 한탄하는 화륜의 머리카락을 한껏 흐트러뜨렸다.

자신이 그에게 기만이나 다름없는 말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순진한 생각만으로 현실을 살아갈 순 없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람의 쓸모를 따지게 되겠지만, 심지어 자신조차도 그가 미래의 마천교(摩天敎) 소교주가 될 정도로 재능이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손을 내밀었지만.

‘그래도 륜아가 조금만…….’

재능과 시대가 맞물린 사람은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세상이 그를 찾아줄 테니까.

온 세상이 그의 편이 될 텐데, 그런 화륜이 누구의 편도 되지 못한 사람들을 조금만이라도 보듬어 줄 관대함을 가질 수 있다면…….

‘아니다, 우리 륜아는 말로만 이러지 사실은 착한 아이니까!’

매번 입으론 매몰찬 얘길 해도 자신이 더위를 먹고 늘어져 있던 것도 못 봐 넘겨서 얼음을 구해다 왔던 게 화륜 아니었던가.

“어쨌든 방금 제가 그렇게 초식을 펼친 건 다 잘했다는 거죠?”

“어, 그래. 한 번만 더 해 볼까?”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더니 화륜은 곧장 목검을 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줄곧 무공 같은 건 배우기 싫다더니, 지금 화륜의 얼굴은 새로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겨울의 찬 공기도 그 열의를 식히지는 못했다.

한 번 배운 초식이라고 두 번째는 훨씬 더 유려해졌다.

련은 거울을 들고 보여 주고 싶었다. ‘이 얼굴이 하기 싫은 얼굴이야?’라고 물어보면서.

‘더 가르쳐 줄 게 없는데? 일단 보법을 좀 알려 줄까? 그다음엔 심법이라도?’

련은 교육 과정을 고민하며 부채로 눈을 돌렸다가 그대로 숨을 들이켰다.

우화륜

특성 : 천마파순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낙성십이검 : 2성 (新)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자질과 오성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고민 : 일부 동기화에 실패했습니다.

‘아, 아니, 방금, 지금까지 한 시진도 안 배웠는데 벌써 2성이라고? 정말 방금 조금 배운 건데?’

“왜 그래요? 제가 뭐 잘못했어요?”

그럴 리가 없는데? 화륜이 중얼거렸다. 련은 눈을 꾹 감았다.

‘그래. 세상에 공평한 게 어디 있겠어. 누구는 이렇게 재능을 타고나서 한 번 보고 바로 2성까지 올라가고 그러는 거겠지……. 내 행운 수치도 3이나 올려 주고…….’

그렇게 생각하던 련은 문득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지 좀 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남의 것만 보고 다니느라 바빠서.

특성 : 무한한 영기의 샘 / 반쯤 알게 된 / 악의 추모를 받은 / 온실 속 화초

조화 : 7성 -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심안 : 6성 - 장점을 볼 수 있습니다.

정화 : 3성 - 사기를 정화할 수 있습니다.

내공 : 습득 불가

자질 : 측정 오류

영기 : 55 / 120

성적표를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괜히 긴장이 된 련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부채 너머를 바라보았다.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자신의 무공 경지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내공은 습득할 수 없다고만 뜨고, 자질도 그렇다.

‘어? 그런데 영기가 55나 있는데 왜 경고음이 안 뜨는…….’

거기까지 생각하던 련은 영기의 최대치가 늘어나 있는 걸 보곤 아주 잠깐 기뻐했다가, 그다음엔 곧장 아찔해져 눈을 감았다.

담을 수 있는 영기의 최대치가 늘어났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요즘 이상하게 영기가 차오르는 속도가 좀 빨라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예전과 같은 양의 청련수를 만드는데, 산에 갈 일이 없어진 탓이었다.

오히려 간헐적으로 영기 수용량의 절반을 넘겼다는 경보가 뜰 때가 있었다. 청련수나 흑곡단을 만드는 데 바로 쓰면 되니까 크게 개의치 않았을 뿐이다.

‘근육도 쓰면 는다더니 영기도 쓰면 쓸수록 더 빨리 차오르게 되고 용적도 늘어난 거구나!’

용적이 늘어난 건 다행이지만, 영기가 더 빨리 차오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얼마나 빨리 차게 되는 거지? 요즘 이것저것 만드느라 바빠서…….’

영기를 바로바로 쓰지 않으면 곧장 생이 시한부에 돌입하는데 계속 쓰면 쌓이는 속도가 빨라진다니.

련이 허망하게 눈을 뜬 순간 목검까지 내팽개친 화륜이 코앞에 와 있었다.

“누이, 괜찮아요?”

갑자기 련이 눈앞이 아찔한 듯 굴자 화륜이 놀라고 걱정한 모양이었다. 련은 얼른 고개를 흔들곤 빙긋 웃었다.

“아냐, 아냐, 괜찮아. 륜아가 바로 직전에 한 것보다 이번에 한 게 빠르던데 어떻게 한 거야?”

“의원 부를까요? 아니면 약당에 갈까요?”

련이 낙성십이검 쪽으로 대화의 물꼬를 열어 보려 하는데도 화륜은 동문서답하듯 대답했다.

“아니야, 진짜 괜찮아. 열도 안 나고, 피도…… 안 나고! 내가 아프면 아프다고 하지.”

“그러게요…….”

련의 말에 수긍한 화륜이 납득한 표정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눈길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 박혀 있는 채였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프면 남한테 얘기하실 거죠?”

“한다니까? 당연히 하지. 너 내 엄살 못 봤구나. 그때 귀찮다고 하기만 해 봐.”

련이 웃으며 말했다. 화륜은 알았어요, 라고 대답하고는 내팽개쳤던 목검을 주워 들어 흙먼지를 툭툭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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