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91화
* * *
새해를 넘기고 추위가 찾아들었다. 피었던 가을꽃들도 모두 지는 가운데, 가볍게 달려서 몸을 덥힌 아이들이 연무장 가운데에 모였다.
오늘이 바로 경항운련에 갈 사람을 선발하는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다.
수를 짜낸 아이들은 의기양양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수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모두들 준비운동은 끝마쳤느냐?”
“네!”
“네!”
아이들이 다 같이 대답했다.
“그럼 시험을 치를 준비도 되어 있느냐?”
“네!”
“네!”
“누가 가장 먼저 도전해 볼 테냐?”
“호, 혹시 실패하면…… 그걸로 끝인가요?”
단목완이 질문했다. 단목현우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 번 더 도전하고 싶다면 해도 된다.”
그때 중간에 있는 한 명이 살그머니 손을 들었다.
“저어…… 먼저 했다가 뒷사람이 따라 하면 어떻게 되나요……?”
“너희는 모두 한 가족인데, 좋은 걸 서로 배우기 꺼리느냐?”
질문을 했던 소년, 단목반이 입술을 다물었다. 단목현우의 말이 옳다곤 해도 억울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험이기도 하니, 자기가 생각한 방안을 모두 각자 최선을 다해 선보일 것이다. 그렇지?”
“네!”
그 말에 단목반은 그제야 표정을 풀고 다시 의기양양하게 웃음 지으며 다른 아이들과 함께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는 다섯 명이 함께 도전하겠습니다!”
“뭐?”
단목현우는 잠깐 당황했지만 그러지 말라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단목반, 단목풍, 단목권, 공소옥, 단목해가 동시에 앞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단목풍이 딱 두 걸음 달려가 제 무릎을 짚고 등을 보였다.
그다음에는 단목권이 한 걸음 박차고 뛰어오른 뒤 단목풍의 등을 짚고 뛰어넘어간 뒤 단목풍처럼 무릎을 짚었다.
“오오!”
의외의 방식에 모두 감탄하는 사이, 다섯 명의 아이들이 앞선 아이의 등을 짚거나 밟고 뛰어넘길 반복하며 어찌어찌 모두 긴 거리를 넘어갈 수 있었다.
당연히 발자국은 세 개보다 많이 남았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걸 발자국 세 개만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최선을 다하면 경항운련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여긴 탓이었다.
“어찌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느냐?”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서로 협동해서 나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바로 가족의 손 아닐까요?”
“허허…… 정답은 아니었지만 이것 역시 틀린 답도 아니구나. 고생 많았다. 다음은 누가 하겠느냐?”
그다음은 단목규와 여선훤이었다. 여선훤은 기다란 장대를 들고 왔다. 모두의 눈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러나 기세에 비해 그다지 높게 뛰어오르지 못한 데다가 착지 지점에서 허둥거리느라 반절도 넘어가지 못했다.
여선훤은 다섯 번쯤 더 시도했으나 마지막으로 장대가 부러지면서 끝났다.
그리고 단목규는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발자국이 아니라 손자국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가 보려고 하다가 반절밖에 가지 못하고서는 고꾸라져 웃음을 터뜨렸다.
그다음 단목완이 그 앞에 섰다. 그러곤 크게 심호흡하더니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앞에 흩뿌렸다.
“자갈?”
어른 손가락만 한 돌멩이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돌멩이들의 위치를 눈에 담은 단목완은 그대로 가볍게 뛰어올라 돌멩이들 위로만 보법을 밟아 나갔다.
팟, 팟, 팟!
돌멩이들이 깊이 파이긴 했지만 과연 발자국은 남지 않았다. 그러나 한 손에 쥘 수 있는 자갈에는 한계가 있어서, 마지막 부분에는 자갈이 부족해 결국 딱 발자국 세 개를 만들고 말았다.
“완아, 훌륭하구나!”
그러나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목완 역시 상기된 얼굴로 쑥스러워하며 물러섰다.
그다음은 서극림과 매신유였다.
매신유는 손에 물주머니를 하나 쥐고 나타났다. 그러곤 보법을 밟아 움직이면서 손에 쥔 물주머니의 물로 발자국을 지우며 마지막 선을 넘었다.
“이런 생각은 나도 하지 못했는데, 굉장하구나!”
다들 탄식을 흘리는 사이 서극림이 마지막으로 섰다. 땅이 조금 젖은 탓에 새로 줄을 긋고 선 서극림은 크게 심호흡하고는 자신의 목검을 뽑아 들었다.
“어어?”
모두가 의아해하는데 단목현우와 련만은 눈을 마주치고 빙긋 웃었다.
“가겠습니다.”
서극림이 숨을 들이켜고는 한 보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그가 쥔 목검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목검 끝에서 낙성십이검이 펼쳐지며 검풍이 일어 발자국을 지워 갔다. 한 보 한 보에 따라 낙성십이검이 어우러졌다.
그러나 검풍이 아직 약하고, 검법과 보법이 완전히 어우러지지 않아서 모든 발자국을 지우지는 못했다. 반절 정도 남은 발자국이 세 개쯤 나왔다.
이 시험의 의도를 뒤늦게 깨달은 아이들이 탄식을 흘렸다.
단목현우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서극림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 많았다.”
“부족했습니다…….”
서극림이 고개를 푹 숙였다. 단목현우는 고개를 내젓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배우는 모든 것은 우리를 무(武)의 이치 속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 시험 역시 그러했다. 그것을 알겠느냐?”
“예!”
단목현우는 아이들을 한번 훑어보곤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곤 서극림이 했던 것처럼, 낙성십이검과 무한보를 함께 운용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검무처럼 보였다. 검의 궤적에 따라 바람이 일어 바닥을 쓸어냈다.
단목현우가 도착 지점에 섰을 때는 처음 단목현우가 금을 그어 둔 것까지 모두 지워져, 자국 하나 남지 않은 맨땅만 드러난 채였다.
“와……!”
아이들이 경탄 어린 눈을 반짝거리며 쳐다보자 단목현우가 작게 웃었다.
“내공 한 점 없다 해도 올바른 자세로 담아내는 검로는 그 자체로 힘이 깃들 수 있다. 나 역시 내공을 운용하지 않고 한 것이고. 너희들 모두 할 수 있단다.”
“하지만 저희는 아직 키도 작고, 팔 힘도 부족한데…….”
단목규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목현우는 고개를 흔들고는 손짓으로 련을 불러냈다.
“키가 작아도, 힘이 부족해도, 정확하게 익혀 그것을 몸 밖으로 꺼낼 수 있다면 기세가 담기는 법.”
단목현우가 그렇게 말하며 한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련에게 해 보라는 뜻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련에게 쏠렸다.
성인인 단목현우가 해내는 건 아무리 대단한 걸 봐도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또래인 단목련이 해내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흠흠.”
련은 유려한 동작으로 목검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단목현우가 그랬던 것처럼 보법과 검법을 운용해 한 걸음 전진했다.
련이 펼치는 무한보와 낙성십이검은 각기 다른 무공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무공이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맞물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검로를 위한 포석이 되고 검은 허공의 존재하지 않는 적을 가르며 련에게 길을 터 주었다.
마침내 련이 멈춰 섰을 때, 단목현우가 그랬듯이 련 역시 위치를 표시하는 금조차 모두 지워진 채였다.
“우와아아!”
“정말로 되는구나…….”
“세상에.”
“와…….”
단목규는 눈까지 크게 뜨고서 경탄을 내뱉었고 아이들도 제각기 감탄을 흘렸다. 련은 목검을 갈무리하곤 이마의 땀을 훔쳐냈다.
* 매신유의 배움 1 *
단목규의 배움 1
단목완의 배움 1
서극림의 배움 1
현재 행운 수치 : 44 / 120 (4▲)
행운 수치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상승했다. 련은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아이고, 이 똑똑하고 예쁘고 착한 것들!’
“지금 이것이 이번 시험의 정답이라곤 했지만, 다른 방식을 생각해 낸 것도 아주 훌륭했다. 다른 길이라 해도 오답이 아니고, 그 어떤 길이라 해도 너희의 생각과 의식이 무를 익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정답이다.”
“네!”
“다만 약속은 약속! 이번 경항운련은 단목완, 매신유, 서극림이 간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목완과 매신유, 서극림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스스로도 격차를 느꼈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시험을 치렀으니 자유 시간을 주려는 단목현우가 뒤로 물러나자, 아이들이 쭈뼛거리며 련에게 다가왔다.
“조금 전에 정말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저희도 정말 할 수 있을까요?”
“전 아직 심법을 잘 모르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말을 한 건 단목규였다. 련은 ‘난 아예 내공을 쌓질 못한단다!’라는 말을 꾹 참고 말했다.
“무한보는 정말 좋은 보법이야. 우리 세가의 모든 무공을 받쳐 줄 수 있으니까. 언제 어느 부분에서든.”
‘옛날 사람들은 진짜 대단하다니까.’
무한보라는 보법은 마치 만능 대들보에 가까웠다.
세가의 그 어떤 무공을 가져와도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맞아 들어갔다. 기본부터 모든 부분을 이해했을 때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