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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92)화 (92/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92화

“그래서 보법에 숙달되면 당연히 할 수 있지.”

“검법보다 보법이 더 중요한 거예요?”

“중요하지 않은 게 없는 거야. 모든 게 다 중요한 거지.”

아이들은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우열 가르는 걸 제일 좋아할 나이이기도 했다.

‘아니지. 무림인들은 죽을 때까지 순위 매기는 것에 목을 매긴 하지.’

그놈의 천하제일인 따지는 것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나이 지긋하고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이 모여서 네가 일 등이니 내가 일 등이니 싸우느라 난리 아닌가.

“그러니까 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인데…… 힘들지?”

련이 장난스레 묻는 말에 단목규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씨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천재셔서 그래요?”

“아니, 내가 천재는…… 아니고…….”

‘진짜 천재는 비아나 륜아가 아닐까?’

자신이야 심안과 조화와 정화를 온몸에 둘둘 감고 있지만, 그런 것 하나 없는 단목비와 화륜이 보이는 성취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지경 아닌가.

화륜이야 자신이 직접 가르쳐 보았다가 그 성취 속도에 기함했고, 단목비 역시 단목천기에게 배워 와서 자신에게 펼쳐 보이는 걸 보면 범상치 않았다.

“너희도 다 할 수 있어. 정말이야. 이게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래. 자주 봐서 익숙해지면 금방 쉽게 느껴질 거야.”

“무보(武譜)를 보면 되나요?”

“무보를 읽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펼치는 걸 보기도 하고.”

“련 아기씨는 몇 번이나 보셨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한 번만 봤다고 말했다간 애들이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나도 많이 봤지. 나…… 나도 백 번쯤…….”

“저, 저희를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돼, 돼요!”

단목완이 눈을 꾹 감고 외쳤다. 부끄러움을 이겨 내려 애쓴 건지 얼굴이 붉은색이었다.

“저희도 열심히 할게요!”

“저도요!”

“근데 한 번만 더 보여 주시면 안 돼요……?”

“한 번만 더요!”

아이들은 와글대며 조르면서도 련의 눈치를 살폈다. 그간 여러 번 보고 싶어도 차마 말을 못 했다가 오늘은 용기를 낸 모양이었다.

련은 활짝 웃으며 팔을 걷어붙였다.

“두 번, 세 번도 돼!”

그러곤 목검을 다시 쥐고 ‘잘 봐 봐.’라고 말을 하곤 방금 보였던 보법과 검법을 다시 재연했다.

“여기서 이 걸음이 이쪽 방향으로 가는 이유가 뭐였을까?”

“…….”

“…….”

아이들이 눈에 힘을 주고 서로 머리를 팽팽 돌렸다. 한참이나 대답이 나오지 않자 매신유가 슬쩍 손을 들곤 대답했다.

“뒤로 후퇴요.”

“맞아, 맞아. 후퇴야. 왜일까?”

“조금 전에 왼편으로 오는 공격을 방어했으니 밑에서 위로 올려치는 공격을 위해서 뒤로 한 발자국…….”

* 매신유의 배움 1 *

서극림의 배움 1

여선훤의 배움 1

현재 행운 수치 : 47 / 120 (3▲)

“맞아, 맞아! 신유야, 그럼 여기서 왼쪽 발이 뒤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이유는 뭘까?”

“음…….”

잠깐 고민하던 매신유는 팔을 들어서 시늉을 해 보다가 약간 망설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 동작을 했을 때 왼쪽이 노출되는 걸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맞아, 맞아! 이해 된 사람?”

* 매신유의 배움 1 *

서극림의 배움 1

단목완의 배움 1

현재 행운 수치 : 50 / 120 (3▲)

단목완과 서극림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련은 함박웃음을 그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쑥쑥 크다니! 행운 수치로 뭘 할 수 있는진 아직 몰라도 차곡차곡 쌓이는 걸 보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손만 휘저었을 뿐인데 손안에 쌀알이 가득 담기는 걸 보는 것처럼 기쁨이 차곡차곡 차올랐다.

‘탈락한 애들한테 서찰을 보낸 것도 효과는 좀 있었지만 역시 눈앞에서 바로 보여 주는 게 제일이구나.’

방계 선발이 끝난 뒤 떨어진 아이들에게도 무공을 공부할 길에 대해 써 주었는데, 그것도 뜨문뜨문 련의 행운 수치를 올려주긴 했으되 지금처럼 격렬하지는 않았다.

련은 그중에 단목완을 불러와 목검을 들게 하곤 매신유가 말한 장면을 재현했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 그다음에, 앗, 완아!”

“어어, 아기씨! 죄송, 죄……!”

열심히 련의 목검 끝만 바라보고 있던 단목완의 걸음이 살짝 엉킨 순간, 련도 놀라서 서둘러 잡아 주려고 하다가 둘이서 나란히 기우뚱하며 옆으로 쓰러질 뻔했다.

그걸 매신유와 서극림이 동시에 잡아 주었는데 그 모습이 자못 우스꽝스러워서 아이들이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 으엇, 으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완아 집중력이 좋아서 그런 거야!”

련이 울상을 짓고 있는 단목완을 웃으며 달랠 때였다.

갑자기 번쩍 하고 련의 시야에 빛이 번졌다.

“아, 아기씨? 괜찮으세요?”

* 단목현우가 심마에서 벗어났습니다! *

현재 행운 수치 : 58/120 (8▲)

‘뭐?’

그간 야금야금 쌓아 왔던 행운 수치가 단숨에 팍 치솟았다. 단목현우의 심마가 그렇게 컸다는 이야기다.

련은 놀라서 고개를 빼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단목현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숙부? 대체 어떻게 심마에서 벗어난 거지?’

“나…… 지금 급한 일이 생각나서! 가 봐야 할 것 같아! 혹시 숙부, 약당주님 어디로 가셨는지 봤어?”

“방금 저쪽으로…….”

누군가 담벼락 너머를 가리키자마자 련은 그쪽으로 달음박질쳤다.

과연 곧 단목현우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높이 자란 나무 기둥에 손을 짚고 몸을 수그린 채 등을 보인 모습이었다.

“숙부! 숙부, 혹시 지금…… 숙부?”

“어, 려, 련아 왔니?”

이번엔 련이 놀라서 주춤거리며 멈추어 섰다. 단목현우는 황급히 손을 움직여 얼굴을 훔쳤지만 숨길 수 없었다.

뺨과 소맷자락은 흠뻑 젖어 있었고 지금도 단목현우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중이었다.

“수, 숙부…… 숙부? 괜찮아요?”

“아이고, 괜찮아! 괜찮다. 눈에 뭐가 들어갔어. 갑자기 그, 뭐야…….”

그렇게 둘러댄다고 눈물이 그치는 건 아니었다.

“어휴, 이 숙부는, 괜찮, 괜찮은데. 왜 여기 왔어. 아이들하고 있어야지.”

“숙부가 갑자기 없어져서요……. 왜 우세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아무 일 없었다. 정말 아무 일 없었어, 없었는데…… 이 숙부는 그냥 우리 련아가…….”

단목현우는 그렇게 말을 잇다가 련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마주했다. 그러곤 련의 머리카락과 뺨을 쓸어내렸다.

“련아가 그렇게 또래 아이들하고 떠들고 노는 걸 보고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 그래서…….”

“아…….”

그제야 련은 알아차렸다.

지난 생에 련은 한 번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 생에도 줄곧 그러지 못했다는 걸.

련이 주위의 또래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요란하게 구는 모습을, 단목현우는 오늘 처음 본 것이다.

“숙부, 전…….”

“내 소원이었어.”

“소원이요?”

단목현우는 눈물이 넘치는 동시에 한껏 웃음을 지어 도리어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네가 벗들과 웃고 떠드는 걸 보는 게…… 이 숙부의 소원이었다…… 네가…… 네가, 네가 나 때문에, 내가 널 못 지켜 준 바람에 넌 어린 시절 내내…….”

련은 잠깐 망설이다가, 그대로 팔을 벌려 숙부를 끌어안았다. 다 큰 어른이 련을 꼭 끌어안고는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련은 어깨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리고 숙부가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걸 들으며, 왜인지 눈물이 핑 돌았다.

“숙부…… 이제 괜찮아요. 전 처음부터 괜찮았어요.”

그의 오랜 자책이 눈물에 쓸려 내려갔다. 자신의 탓을 하지 않곤 견딜 수 없었던 청년은 오랫동안 울었다.

* * *

“이 추운 날에 밖에서 한 식경 내내 울었으니 사람이 탈이 안 나고 버티겠니! 이제 곧 있으면 남궁세가로 떠나야 하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

단목현요는 날카롭게 말하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난로를 한 채 더 들여놓으라는 말만 남기고 쌩하니 나갔다.

하지만 단목현우는 여전히 실실대는 중이었다.

“열은 좀 나는데 몸은 가뿐해. 허공답보도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앗, 그래도 가까이 오지는 말거라. 혹시라도 감기가 옮으면 어쩌니.”

단목현우가 얼른 이불로 입가를 가리며 련에게서 멀어졌다. 련이 웃는 사이에 위지청이 따뜻하게 데운 탕약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그걸 보고 단목현우는 또 혼비백산했다.

“내, 내당주님! 이런 것은 하인을 통해 보내시지…….”

“괜찮습니다. 그보다 련아, 비아가 잉어 밥을 같이 주자고 하던데. 네 숙부가 잉어를 돌볼 수 없으니 네가 대신해 주련?”

련은 두 사람이 얘길 나눌 것이 있다는 걸 알아채곤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방문을 나섰다.

두 사람만 남자 단목현우는 열이 심하게 오른 것도 아니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다 위지청의 눈을 피한 채 얼른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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