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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94)화 (94/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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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94화

“그게요…… 물론 안 그러는 좋은 사람도 있지만…….”

백의명은 우물쭈물했다.

“뭐 그건 알아서 해라. 데리고 있으면서 허튼 생각 안 하게 네가 잘 교육하고.”

“교, 교육이요?”

그런 건 생각하지 못했던 백의명이 허둥거렸다. 소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럼 그걸 옆에 놔두고 뭐 하려고 했는데?”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것 정도만…….”

“겸사겸사 허튼짓 안 하게 잘 가르쳐 봐.”

“제가 어떻게 가르칩니까?”

“정 모르겠으면 단목세가에 헛짓거리 안 하게 세뇌라도 하든가.”

“미…….”

미쳤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추궁과혈의 아픈 추억이 아니었다면 말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이 사람 백도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어디의 대마두가 반로환동한 거라고 농담 삼아 생각했었다가 사실은 단목세가 사람인 걸 알아챘을 땐 괜한 헛기침이나 좀 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사실 자신의 생각이 맞았던 게 아닐까?

“저 어르신, 성함이…… 어떻…… 어떻게 되십…… 니까?”

“화륜이라고 했잖아.”

“성은요……?”

예전에 우화륜이라고 듣긴 했지만, 백의명은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뭐라고 말하려고 했던 소년이 미간을 찡그리곤 그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데?”

‘왜 말을 안 해 주냐고!’

자신이 잊은 척 모르는 척 물었을 때 그냥 단목화륜이라고 말해 줬으면 그게 거짓말이든 뭐든 눈 딱 감고 믿으려 했던 백의명이었으나 소년은 도와주지 않았다.

백의명이 마지막 용기를 끌어내 물었다.

“……백도 사람은 맞으신 거죠?”

“너 죽고 싶어서 이래?”

“아하하, 아뇨, 아니, 아니 그냥 여쭤봤죠…….”

‘아니구나! 아니었어! 아니구나!’

백도가 아니면?

흑천련? 마천교?

‘우 씨 성을 가진 마두가 누가 있더라?’

그도 아니면…….

‘혈라곡은 아니겠지? 아냐, 아닐 거야. 거긴 다 죽었다고 했으니까. 거기다 어르신이 혈라곡이었으면 내가 산 사람이었겠냐고.’

진작 피 빨려 골목길에서 말라비틀어진 고깃덩이로 발견됐겠지!

어쨌거나, 그러면 그는 백도 무림인도 아니면서 대체 왜 단목세가 일에 끼어들어서 이러는 거란 말인가?

“어, 어쨌든 그…… 단목세가 애인데, 제가 데리고 있어도 별문제는 없는 거겠죠?”

아무래도 단목세가의 혈족이라니까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애가 제 발로 따라왔고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다지만…….

“그 방계 가문은 세가 호적에서 파였어. 이제 단목세가와는 관계없어.”

“……!”

아이를 잘 챙겨 줬다며 보상 같은 걸 꿈꾼 적은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칼 같은 사이일 줄도 몰랐다.

“뭐 애를 두들겨 패는 집안보다는…… 많이 모자라도 네가 낫겠지.”

“왜 자꾸 모자라다고 하시는데요.”

“그럼 네가 똑똑하냐?”

“보통은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점이 모자라다는 거야.”

소년은 혀를 쯧쯧 차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잠깐 망설이다가 품에 가지고 온 걸 그에게 내밀었다.

“하…… 아까운데.”

“뭐, 뭔데요?”

“만두. 가서 둘이 나눠 먹든가 해.”

“만두요? 웬 만두…….”

“좋은 날에 좋은 거 먹으면 좋은 거라고 하니까. 녀석이 이상한 짓 할 거 같으면 데리고 오든가 나한테 말하든가 하고.”

“아, 네, 넵!”

그러곤 몸을 홱 돌려 들어가려던 소년이 잠깐 멈추더니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왜, 왜, 왜 그러십니까요?”

왠지 자신을 못마땅한 듯 노려보는 시선에 백의명은 어깨를 모으고서 말을 더듬었다.

“넌 진짜 운 좋은 줄 알아라.”

“아, 알고 있습니다요…….”

그렇지 않고서야 길 가다가 얻어걸려 추궁과혈을 받는 기연을 얻을 리 없었다.

소년이 팔짱을 끼고서 물었다.

“심법은 뭘로 수련하고 있는데?”

“네?”

백의명은 갑작스러운 화제에 따라가지 못하고 눈만 끔벅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사…… 삼재기공이요…….”

“삼재, 흡, 뭐?”

“삼재기공…….”

백의명은 왠지 기가 죽어 조그맣게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삼재기공(三才氣功). 삼재심법이라고도 한다. 저잣거리에서 종이 값 정도만 내도 묘리(?)가 적힌 비급을 구할 수가 있는 삼류 심법이었다.

육합권, 삼재검법과 함께 삼류 무공계의 삼형제라고나 할까.

“하긴 네가 어디 가서 무슨 심법을 익히겠냐.”

“호, 혹시 뭔가 가르쳐 주실…….”

백의명이 간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으나 소년은 손을 내저었다.

“이미 심법 잘 배웠는데 내가 뭘 더 가르쳐?”

“사, 삼재기공이잖아요! 이런 삼류 심법 말고 어르신께서…….”

“내가 뭘 가르쳐 줄 줄 알고 무턱대고 배운대.”

순간 심장이 덜컹거린 백의명은 입을 합 모았다.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 소년은 잠깐 이마를 긁적이며 기억을 되짚었다.

“삼재기공… 잘 배웠네. 네 처지엔 그게 딱이다. 요령만 좀 더 챙겨서 해 봐. 일단 들이마실 때 깊이 들이마신다. 기가 전신으로 퍼지도록 들이쉬었을 때와 같은 시간 동안 숨을 멈추었다가, 속에 든 것을 천천히 끌어올려 역시 같은 시간 동안 숨을 뱉어낸다. 들었어?”

“네? 네…… 네?”

“넌 기혈이 한번 뒤틀렸다가 펴진 상황이니 어렵고 난해한 것보단 단순한 걸로 혈도를 닦아 두는 게 우선이다. 이상한 심법 배우려고 들지 말고 우선 이것부터 열심히 연마해. 들이마신 기운을 몸 안으로 퍼뜨렸다가, 갈무리해서 나쁜 기운만 밖으로 뱉어 내는 것.”

“네…… 네! 그런데 제발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소년이 그를 쏘아보곤 빠르게 한 번 더 읊어 준 뒤 쌩하니 몸을 돌려 사라졌다.

백의명은 뒤에 남아서 멍하니 서 있기만 하다가 얼른 구결을 외며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들이마실 때 깊이, 전신으로, 같은 시간, 같은 시간…….”

* * *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만두는 처음 먹어 봐. 정말이야!”

“그런데 웬 만두래? 아침부터.”

“보니까 엊그제부터 만두를 왕창 빚어서 준비한 것 같던데?”

“또 누구 생신인 거 아니야?”

“련 아기씨 생일이래.”

“뭐!”

단목련의 생일임을 알려 준 건 매신유였고 만두를 우물거리다가 펄쩍 뛴 건 단목완이었다.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만두를 먹으며 수군거리는 동안, 련도 처소에서 만두를 빚어 먹었다.

위지청은 련이 만두 먹는 걸 흐뭇하게 지켜보면서도 단목비와 화륜 앞에도 만두 챙겨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올해는 만두 맛이 더 좋구나. 그래도 잔치를 할 걸 그랬나…….”

“날도 추운데 다 같이 만두 나눠 먹는 게 더 좋아요. 그리고 저 때문에 성아도 생일잔치 안 했는데 저만 말 바꿔서 할 수는 없잖아요.”

1월에 태어난 단목성은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자 련이 평소 생일잔치를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았다.

아마도 서로 맞추어 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인데, 사람들에게 만두를 나눠 주기만 했다는 얘기를 듣곤 자신도 그와 똑같이 하기로 한 것이다.

단목현요가 서운해서 바닥에 드러누웠다는데도—세가에서 크게 벌이는 첫 생일잔치가 될 것이었는데— 단목성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고집을 부려서 기어코 만두를 빚어다 모두와 나눠 먹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성아에게도 생일잔치를 열어 주었어야 했는데.”

“에이, 성아도 저도 이게 더 좋다니까요.”

련이 몇 번이나 말하자 위지청은 그제야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타지에 가기 전에 어미와 같이 생일상 먹고 가니 그건 좋구나.”

“저도 좋아요!”

단목비가 그렇게 말하고는, 애틋한 눈빛을 한가득 담아 자신 몫의 만두를 련 앞에 양보해 주었다.

련은 그런 단목비의 뺨에 연거푸 입을 맞춘 뒤에 만두 개수를 두 배로 불려 돌려주었다. 단목비의 얼굴에 함지박만 한 미소가 걸렸다.

식사가 정리되고 난 뒤에는 련과 위지청의 바둑 시간이었다.

련은 체력 문제로 피리를 더디게 익힌 것과는 다르게, 바둑 솜씨는 아주 빠르게 늘었다. 어머니의 교육이 아주 훌륭한 덕분도 있었다.

“네 아버지는 다른 건 뭐든 잘했는데 바둑은 어쩜 그리 못 뒀는지 몰라.”

“정말요?”

“네 아버지와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를 해 줬었던가?”

“아뇨! 지금 해 주세요!”

련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위지청은 눈을 내리뜨고 단아한 동작으로 바둑돌을 옮기며 말했다.

“이 어미가 섬서성에 있었을 적에…… 아마 네 아버지가 무림맹에 들렀다가 항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거야. 화산 아래에 있는 의각(醫閣)에서 처음 보았단다. 둘 다 의원을 기다리다가 무료한 마음에 바둑을 두게 되었지.”

의각에서 만났다는 말에 련은 가슴이 조금 아팠다.

그때 아버지는 이미 혈라곡과의 싸움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입었을 때였고, 어머니는 타고난 병마를 앓고 있었을 때였으므로.

“그런데 어찌나 못 두는지. 다른 사람보다야 조금 낫긴 했지만, 지금 련아 너보다도 더 못 두었단다.”

“정말요?”

“응. 그런데 자긴 여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고, 다시 한번 두자고 하는 게 아니니?”

둘의 재대결은 의원이 찾아온 바람에 흐지부지되었지만, 두 사람은 두 달여 동안 의각에서 마주할 때마다 대국을 이어 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자기가 이기면 할 말이 있다는 거야. 그냥 하라고 해도 꼭 날 이긴 뒤 말을 하겠다는데 어쩌니? 이러다 내세에나 그 말을 듣겠다 싶어서…….”

“져 주셨어요?”

위지청은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아주 힘들었단다. 내가 조금만 일부러 악수를 두어도 귀신같이 눈치를 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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