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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0)화 (100/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0화

“이게 정말 뱃멀미가 맞긴 해요?”

“으응…….”

아니라고도 맞는다고도 말을 못한 채, 련은 물만 들이켰다. 그러면 헌 속이 어떻게 괜찮아지기라도 할 것처럼.

마치 한껏 매운 걸 먹은 것처럼 속이 화끈해진다 싶더니 신물 비슷한 게 올라왔다.

멀미해서 하는 구토와는 조금 다른 느낌, 지난 생에서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감각. 속에서부터 핏물이 치솟는 바로 그것.

련은 애써 올라오는 토혈을 삼키며 조화와 정화를 돌렸다. 눈앞이 아찔하고 입 안에서 비릿한 쇠맛이 났다.

* 영기의 낙폭이 큰 경우 후유증이 발생합니다! 주의하세요. *

너무 많은 영기를 가지고 있던 것도 그렇고, 그 영기를 한 번에 너무 많이 빼 버린 게 또 문제가 된 것이다.

‘대체 어쩌란 말이야!’

“누이, 많이 아파요? 제가 대신 아플까요?”

“그럼 못 써! 많이 아픈 것도 아니란다. 그냥 멀미야.”

단목비는 누이 아프지 말라며, 오늘 단목천기를 찾아온 사람들이 주고 간 자잘한 선물과 과자들을 전부 련의 침상 위에 올려놓곤 련의 품으로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화륜이 아픈 사람 괴롭히지 말라며 끌어내린 바람에 련의 손만 잡고 칭얼거렸다.

‘그런데 륜아도 진짜 눈치가 보통이 아니네. 아니, 이게 눈치로 되는 건가?’

어른들에게는 조화를 써서 얼렁뚱땅 뱃멀미로 잘만 넘겼는데 얘만 왜 이렇게 미심쩍게 바라보는 걸까?

‘그래도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까 또 금방 찬다.’

련은 시간을 셈했다. 이대로면 영기 수치가 또다시 금방 60을 넘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많이 번 셈이었다. 잠시 몸 상태가 나빠진 것도 누워서 쉬면 나을 것이다.

운하에서 내린 뒤 번화가를 열심히 정화한 다음에 새로 살 단목비의 옷가지와 장신구에 영기를 좀 덜어 놓으면 괜찮지 않을까?

‘시간이 만든 빛을 지참하라는 게 이 소리였어. 그런 소릴 들었을 땐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천비궁에서 들은 조언이 뭔가 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땅에서 오랜 시간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 보석을 가지고 가란 얘기였음을!

‘내가 평소 쓰던 영기가 생각보다 정말 많았구나.’

백약청이나 청련수를 만들고, 세가 구석구석을 정화하면서 쓰던 영기가 의외로 제법 됐던 데다가, 영기를 쓰면 쓸수록 숙련되어 차오르는 속도가 빨라진 게 타격이 컸다.

‘안 쓰면 죽는데 많이 쓰면 능숙해져서 더 빨리 써야만 한다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륜아야. 배에서 내리면…… 내려서 옷도 사고 보석도 사고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사치를 부려야 낫는 병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대체 무림인이라는 사람이 무슨 뱃멀미를 이렇게 심하게 하냐고요.”

“내가 지금 완전한 무림인은 아니라…….”

“아직 아기라고요?”

“우리 륜아 똑똑한데?”

“어떻게 비아랑 똑같은 얘기를 해요?”

화륜이 뒷골을 붙잡고 싶다는 얼굴로 련을 쳐다보았다. 앳된 소년의 얼굴에 그런 기색이 깃들어도 귀엽기만 했다.

련이 웃자 화륜이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아기면 잠이나 자든가.”

“이 녀석, 누이한테 못되게 말하면 혼난다.”

“네, 네, 주무시든가요.”

화륜이 툴툴거렸다. 련은 자신의 손을 주물러 주는 화륜의 덜 여문 손가락을 느끼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멀리서 물살 일렁이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 * *

단목련의 손은 어린아이처럼 보드랍기보다는 마르고 가늘었다.

가만 살펴보면 그나마 상처나 흉이 없는 게 위안이 될 정도다.

누이가 없으면 평소보다 훨씬 더 의젓해지는 단목비가 또박또박 물었다.

“우리 누이 많이 아파?”

“조금. 그래도 금방 괜찮아질 거야…….”

단목비가 이렇게 걱정하는 건 아마 화륜 자신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신경 쓰는 티를 감추지 못해서 단목비 역시 큰일이라 여기곤 걱정하는 눈치였다.

화륜은 자신을 흘겨보던 련의 눈빛을 떠올리곤 한숨을 삼켰다.

“정말 괜찮대.”

“정말로?”

화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련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계속 안기려 들고 칭얼거리던 단목비였으나, 막상 련이 죽은 듯이 잠에 빠져들자 그저 침상 곁에 딱 붙어 앉아 고개를 기대곤 련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화륜은 그런 단목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불쑥 물었다.

“네 누이가 그리 좋으냐?”

“응? 응!”

단목비는 당연한 것을 질문받은 사람 특유의 의아함이 어린 얼굴로, 그러나 빠르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왜 좋은데? 너한테 맛있는 거 많이 줘서?”

단목비는 화륜을 살짝 흘겨보았다. 어린애 취급을 받아서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이었다.

“누이가 그런 거 하나도 안 줘도 돼. 내가 누이에게 주면 되니까.”

“용수당도? 빙당호로도? 하나도 안 먹고 전부 누이 줄 수 있어?”

단목비는 조금 흠칫했지만, 그리고 입술을 꾹 깨물기도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다…… 당연하지.”

“그런 걸 다 줄 만큼 누이가 좋아?”

“응!”

“왜 좋은데?”

조금 전에 했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단목비는 고개를 돌려 잠든 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이가 어머니 아픈 걸 다 가져갔대.”

“뭐?”

“그래서 어머니도 이제 건강하고, 나도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었던 거래.”

“누가 그래?”

“몰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른 어른들이…….”

단목비는 투정 부리듯 입술을 웅얼거렸다.

“나랑 같이 반반 나눴으면 좋았을걸.”

“…….”

“그런데 그렇게 안 한 건, 누이가 나를 진짜 진짜 좋아해서 그런 거래. 정말일까?”

화륜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그건 아무 상관 없는 거야. 누이가 태어날 땐 네가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을걸.”

“…….”

단목비가 또 화륜을 흘겨보았다. 화륜은 놀리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곤 덧붙였다.

“하지만 누이가 널 좋아하긴 해. 진짜로.”

“그렇지?”

“응.”

그 깊은 우애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팔을 내밀면 작은 몸으로도 안아 주려 하고, 곁에서 재우고, 쓰다듬어 주고, 맛있는 걸 나눠 주고…….

단목련이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태도에는 어딘가 초월적인 면이 있다.

그 또래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한정 없이 퍼부어 주는 태도에는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없었다.

“형, 진짜 나하곤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야? 누이가 아픈 건 날 위…….”

“상관없다니까.”

화륜은 조금 심술을 담아서 확답해 주었는데, 단목비가 활짝 웃었다.

“그럼 더 좋아.”

“왜? 뭐가?”

“누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동생을 좋아해 주는 게 아니니까!”

그러곤 씩씩한 외침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한껏 기죽은 목소리로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나 때문에 아픈 것도 아니니까…….”

단목비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단목련의 이불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누이가…… 나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어.”

단목비의 목소리가 침구 속에서 부드럽게 뭉개졌다.

“언제?”

“매미가 울고 누이가 더워서 누워 있던 날에…….”

더위를 먹은 누이가 걱정이 되어서 품으로 파고들었던 날이었다.

지금에서야 그때 누이가 자신 때문에 더 덥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단목비는 속으로 작게 결심하며 말을 이었다.

“누이가 천하제일인 같은 거,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된다고 했어…….”

조부는 무림을 구원한,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이고 아비는 이 무림에서 제 아비의 자리를 당연히 계승할 거라고 칭송했던, 비극적 사연을 가지고 산화한 천재였다.

병약한 누이를 두고 태어난 단목현성의 아들에게 쏟아지던 유무형의 기대들은 얼마나 깊었을까.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 무게를 가늠해 본 사람은 있었을까.

“……그런데?”

“그러면, 내가 천하제일인 같은 거 싫으면 이제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그건 누이가 다 알아서 해 준댔어.”

“…….”

무거운 것이 무거운 줄 몰랐고, 이것이 무겁다는 걸 알았을 때는 내려놓는 방법을 몰랐다.

그때 누이가 그것들을 온몸으로 받아 주는 걸 보았다.

단지 말뿐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말을 해 준 적 없으니까.

“나는 누이가 좋아. 내가 빨리 커서 지켜 줄 거야…….”

이불 밑에 고개를 박고서 웅얼웅얼한다 싶더니 머지않아 새근새근하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화륜은 헛웃음을 한번 짓고는 단목비를 옆쪽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러곤 고개를 돌려 침상에 누워 있는 단목련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단목련의 손목을 붙잡고서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화륜의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렸다가 가라앉았다.

화륜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하나씩 더듬었다.

아직 덜 여문 속은 엉망진창으로 헐었고, 호흡에는 핏기가 어렸다. 그리고 지금도 거의 들리지 않는 얕고 위태로운 호흡.

‘이게 대체 뭐지? 왜 자꾸 이러는 거지?’

화륜은 손목을 내려놓았다.

침상에 누워 잠이 든 단목련은 마치 죽은 것 같았다. 코 근처에 손을 대자 얕고 긴 숨이 겨우 느껴지는 게 도리어 안타까울 지경이다.

오랫동안 아픈 몸이었다는 건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심하게 아파하는데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도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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