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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2)화 (102/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2화

“단지 내가……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거냐?”

“네, 사람들이 세가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을 거니까요…….”

련은 말끝을 흐리곤 단목천기를 돌아보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쓰러진 거인을 일으켜 세울 수는 없잖아요.”

거인은 스스로 일어나야만 한다. 단목천기는 련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그리고 련은 한 걸음 앞서 나가는 단목천기의 등을 올려다보았다.

자신 때문이었을까?

벌모세수까지 받은 손녀가 아무런 보람도 없이 매일 피를 토하는 것이 그를 한층 더 좌절하게 했을까?

그래서 단목세가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조용히 삭아 가는 돌처럼 그 안에서 숨을 거두었을까. 일어설 힘을 낼 수가 없어서.

그가 단 한 번 세가 밖으로 나서기만 했다면, 힘을 모두 회복하지 못한 채였다 해도 사람들은 모여들었을 것이다.

그와 옷깃 한번 스쳐 보려고 천리 밖에서 걸어온 사람들도 있었을 게 분명했다.

그들이 모두 지금 여기 있었다.

밖으로 나온 단목천기에게 그저 인 사 한 번을 하기 위해 생업을, 하던 일을, 모든 것을 잠시 접어 두고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들이.

남궁세가의 문이 닫힐 때까지 그들의 환호성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련은 닫히는 문 틈새로 한 무사가 오열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난 생에 그는 단목천기를 다시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문이 닫히고, 바깥의 소음이 뚝 끊기자 련은 생각했다.

전부, 자신 한 사람 때문이었을까…….

* * *

대가주 남궁환은 그다지 체격이 건장한 편은 아니었다. 키도 조금 작고, 왜소한 쪽에 가까웠으나 그가 지닌 무게감이 도리어 그의 키를 가늠할 수 없게 했다.

바깥의 소란과 웅성거림을 뒤로하고 모두가 숨을 죽인 가운데 단목천기가 말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두 거성은 마주한 채 한참이나 아무 말이 없다.

그 웅장한 침묵을, 두 세가 사람들 모두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벗과 마주한 남궁환이 떨리는 입술을 뗐다.

단목천기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 흐지부지되었던 경항운련을 기어코 강행했으면서도, 막상 오랜만에 단목천기와 마주하게 되자 마음이 수선스러웠다.

남직례성 양주와 절강성 항주는 서로 다른 성인 데다가 멀다면 멀지만 다른 무림 세가들 사이의 거리를 생각하면 가까운 축이다.

그러다 보니 두 가문은 서로 끝없이 견제하고 경쟁하는 관계였으나 미운정이 무섭다고 누가 그랬던가?

수십 년 전 단목천기가 혈라곡을 물리치기 위해 검을 들고 모든 무림을 규합하고자 했을 때, 제갈세가와 함께 가장 먼저 그들을 지지한 게 남궁세가였다.

“자네…….”

“뭐야, 살아 있었구만?”

“……!”

단목천기가 툭 던진 말에 순간 남궁환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리고 그가 곧장 외쳤다.

“그럼 내가 죽었을까 봐? 나야말로 자네가 죽은 줄 알았네! 집구석에 처박혀서 바깥에는 얼굴 한번 내비치지도 않고 아주 그냥 몸에서 곰팡이가 필 때까지 틀어박혀……!”

“아, 아버지!”

옆에 섰던 남궁경해가 화들짝 놀라서 외쳤다. 그와 동시에 그 말을 듣고만 있던 단목천기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리 걱정이 됐으면 항주에 한번 왔으면 될 것 아닌가.”

“나, 나라고 한가한 줄 알아!”

“태허진인은 그 먼 곤륜산에서 항주까지 왔거늘. 남궁세가에도 들르겠다고 말하곤 떠났는데, 만나 보았던가?”

“흐, 흐흠.”

남궁환이 괜한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단목천기도 그런 남궁환을 더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때때로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위안이 아니라 상처가 될 때가 있다.

단목천기와 남궁환이 그랬다. 두 사람 모두 혈라곡과의 전투에서 장남을 잃은 자들이었다.

몇 년을, 서로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이번 경항운련이 아니었다면 죽고 나서야 만나 보았겠지.’

단목천기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옆에 선 작은 손녀딸을 흘끗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그때의 부상을 떨쳐 냈다는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면 남궁환이 용기를 내 경항운련을 다시 열어 보자고 했을 리가 없다.

어쩌면 생전에 벗의 얼굴을 한 번 더 보게 된 것도 손녀딸 덕분인 셈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저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 것 역시.

자신이 잊히지 않았다는 걸 영영 알지 못한 채 죽었으리라.

“그렇다고 환영 인사 한번 하자고 저 사람들을 다 긁어다 모아 왔나?”

“내가 모아 온 줄 알아? 자네가 세가에서 나왔다는 소식을 받은 날부터 날파리들이 우리 남궁세가 옆에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는데!”

뭐 하는 놈들인가 싶어서 잡아 봤는데 우물쭈물하더니 이번에 남궁세가에서 열리는 경항운련에 단목천기 어르신도 오신다는 얘길 들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남궁세가에서 단목천기를 찾긴 왜 찾는지, 에잉!”

그가 오기로 했다고 말하곤 놓아주었더니 봄날 꽃가루 번지듯 인파가 확 불어났다.

“그래서 저리 모이게 내버려 두었나?”

“흥, 잔치도 열어 줄 테니 참견 마시게.”

남궁환이 연이어 투덜거렸다.

“그렇다고 이날 이때까지 어찌 꼼짝도 하지 않고 세가 안에 처박혀서……. 그리고 사람이 한 보 나아갔으면, 어? 동네방네 붙어 보자고 할 것이지 혼자만 좋은 걸 야금야금 처먹으니 좋으냐? 좋아?”

“아, 아버지. 제발…… 제발…….”

남궁경해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간절히 말했다.

그러나 남궁환은 자신보다도 더 큰 아들의 손을 홱 뿌리치고는 계속 단목천기를 향해 삿대질했다.

“대체 얼마나 몸에 좋은 걸 처먹었길래 그 나이 먹고도 경지를 넘어서? 얼마나 더 젊은 애들 앞길 막으려고 그래! 금분세수 몰라, 금분세수(金盆洗手)? 그런 거 할 생각은 안 하고!”

금분세수란 금으로 만든 대야에 손을 씻는다는 말인데, 무림인으로서의 은원을 모두 털어내고 은퇴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당연히 손 한번 씻었다고 어제까지 있던 원한이 내일은 없어지는 놀라운 일은 잘 벌어지지 않기에 유명무실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원한을 가진 사람은 남아 있는데 혼자만 산뜻하게 털고 가는 건 부처님도 용서치 않을 것 아닌가!

“그래? 그럼 요즘 젊은 것과 한번 붙어 볼까?”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던 남궁환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자신이 그보다 다섯 살 어리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막역하게 지낸 지가 수십 년이 넘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건만!

“젠장, 그놈의 나이 가지고 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셈이야! 남들이 보면 이제 내가 더 나이가 많은 줄 알 텐데!”

“이제? 젊었을 때부터 그랬지 않았나?”

“이, 이, 이……!”

남궁환이 손을 파르르 떠는 사이를 틈타 그의 아들이자 소가주 남궁경해가 얼른 끼어들었다.

“어르신! 그간 간녕하셨습니까.”

“경해 아니냐.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구나.”

단목천기가 나직하게 하는 말에 남궁경해는 복잡한 심경을 갈무리한 얼굴로 그에게 포권지례를 올린 채 한참이나 그대로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간 단목천기가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고는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덮고서 한참을 그대로 있다가 손을 풀었다.

“그래, 다른 이들은 왔는가?”

“대부분 도착했습니다. 멀리 모용세가에서 오실 분들만 남았지요. 어르신, 얼른 안으로 드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옆으로 비껴선 남궁경해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얼굴로 련과 단목비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련아구나. 비아도 왔니?”

“저 녀석이 경항운련에 참석하고 싶다고 마차의 짐칸에 몰래 타서 따라왔지 뭔가.”

단목천기가 훈계하듯 엄히 말했지만 목소리 끝에는 은근한 온기가 묻어났다.

무가의 자손이라면 마땅히 이런 자리를 피하지 않고 달려들 용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잘못했습니다!”

단목비가 씩씩하게 외치곤 련의 옷자락을 꼭 쥐고서 련의 곁에 붙었다. 그러면서도 배시시 웃는 것이 사랑받으며 자라 온 막내 티가 났다.

“부단주, 손님들에게 장원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나?”

단목비의 머리칼을 한번 흐트러뜨리고 몸을 세운 남궁경해가 뒤에 서 있던 청년을 향해 말했다.

큰 키에 어깨를 조금 움츠리고 있는 청년은 남궁경해의 동생 남궁경무였다.

남궁경무

특성 : 관찰 / 만화경 / 대나무 / 힘줄 수집가

자질과 오성 : 중-중(中-中)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 : 5성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 : 3성

천뢰지(天雷指) : 8성

대연십구식(大衍十九式:) : 7성

고민 : 벗어나고 싶다.

도움말 : 손재주가 뛰어나고 관찰력이 좋습니다.

‘특성에 관찰과 만화경?’

관찰이라는 특성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었다. 남을 기민하게 잘 살펴보는 능력인 듯했다.

‘대나무나 힘줄 수집가도 알겠는데.’

자기가 한번 정하면 부러져도 뜻을 바꾸지 않는 게 대나무요, 힘줄 수집가라면 고집 세기로는 따를 자가 없다는 뜻이었다.

두 개가 같이 있으니 그가 뜻을 한 번 정하면 그를 죽여도 꺾을 수가 없을 테다.

그런데 만화경은 처음 보는 특성이었다. 거기다 익힌 무공의 상태도 조금 특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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