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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3)화 (103/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3화

‘재능이 중-중밖에 안 되는데도 지법인 천뢰지나 금나수인 대연십구식은 어떻게 8성, 7성까지 익혔네?’

손재주가 좋다더니 손으로 하는 건 그 나이에 비해 성취가 대단한데, 그 외의 것은 직계라기엔 많이 부족했다.

“아버지, 숙부는 바쁘실 테니 제가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때 그들 사이에 있던 소년이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열두어 살은 된 듯해 보였다. 남궁경무는 조카가 끼어들어서 도리어 안도한 듯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서건아.”

“련 소저와 성 소저에게도 또래인 제가 더 편하지 않을까 해서요.”

숙부와 손님을 위하는 듯한, 제법 의젓한 목소리였다.

남궁경해는 동생 남궁경무를 보며 잠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자신의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하라는 뜻이었다.

련은 자신을 흘끗 쳐다보는 남궁서건에게 눈인사하면서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를 저렇게 친근하게 쳐다보지? 처음 보는 거 아닌가?’

마치 오랫동안 못 만난 친척이라도 만난 듯한 시선이었다.

* * *

‘여긴 진짜 거의 궁궐이나 다름없구나.’

금가장도 부유함으로는 어디 가서 밀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역사가 짧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에 반해 남궁세가의 장원은 어지간한 궁궐 뺨치는 모습이었다.

다만 같이 온 서극림, 매신유, 그리고 단목완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차분한 아이들이라 그런지 장원을 둘러보면서도 침착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남궁서건은 크게 놀라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도리어 좀 놀란 듯했으나 빙긋 웃으며 안내를 이어 나갔다.

“여기가 접객당이란다. 경항운련 준비하면서 지금은 손님을 받지 않지만, 원래는 항상 줄이 담벼락 밖까지 이어져 있어.”

남궁서건이 휘황찬란한 전각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궁서건이 부드럽게 눈을 접고 웃으며 또 련을 흘끗 쳐다보는데 묘하게 친근한 기색이 감돌았다.

“아! 정원은 예쁘다고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돼. 여긴 진법과 기관들로 가득 차 있거든. 만약 정원을 돌아다니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내가 같이 올 테니까.”

신묘한 원리로 물건이나 기관, 혹은 사람을 배치하여 효용을 얻는 것이 바로 기문진법(奇門陣法)인데, 무림에서 기문진법으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제갈세가이고 바로 그다음이 남궁세가였다.

작은 암기나 기관 장치를 다루는 데 능한 사천당문이 진법에까지 눈독을 들였다면 서열 다툼이 치열했을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그런 남궁세가에서 장원을 둘러싼 정원에 작정하고 쳐 둔 진법 속에서 길을 잃으면 아마 내세에나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남궁서건

특성 : 표리부동 / 자부심 / 목에 부목 / 작학관보(雀學觀步)

자질과 오성 : 중-하(中-下)

창궁무애검(蒼穹無涯劍) : 3성

창궁대연신공(蒼穹大衍神功) : 1성

천풍신법(天風身法) : 2성

고민 : 이번 경항운련에서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도움말 : 참새는 다리가 찢어질 것입니다.

정원의 평화로운 풍경 속에 담긴 진법을 신기해하는 척하며 슬그머니 부채를 내려다봤던 련은 속으로 혀를 찼다.

표리부동.

‘이거 성아한테도 있던 건데, 성아는…….’

단목성의 표리부동은 겉은 쌀쌀맞은데 반해 속내는 그다지 모질지 못하다는 뜻이었지 않은가?

그럼 지금 남궁서건의 표리부동은?

겉이 저리 봄날 민들레 홀씨 날리듯 살가우니 그에 비해 속은 그렇지 못하다는 뜻 아닌가.

‘그런 데다가 작학관보(雀學觀步)까지?’

참새가 황새의 걸음마를 배우려 든다는 얘기인데, 그러다가는 결국 도움말의 얘기처럼 다리가 찢어지는 결말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럼 황새는 누굴까?’

련은 부채를 슬그머니 등 뒤로 돌리며 남궁서건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번 경항운련에서는 일주일 내내 어르신들 강연이 있다는데, 련아 너는 괜찮겠어? 얼마 전까지 아팠다면서?”

남궁서건이 다정한 투로 물었다.

본래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구는 사람인 것 같긴 했는데, 련에게는 유독 정도가 심한 느낌이었다.

“예전에 그랬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

“……정말? 다행이구나.”

목소리가 묘했다.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 여기가 너희가 머물 전각이야. 혹시 필요한 게 있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면 나한테 얘기해. 하인들을 보내도 되고. 먹고 싶은 게 생겼다거나 장원 바깥 구경 가고 싶을 때도 말이야.”

편하게 얘기하라며 남궁서건이 눈을 접고 싱그럽게 미소 지었다.

“저! 진법 구경해 보고 싶어요!”

그 얘길 듣고 단목비가 번쩍 손부터 들어서, 련은 웃으며 그 손을 잡아 내렸다.

“그런 건 함부로 보여 달라고 하면 안 돼, 비아야.”

“안 돼요?”

“그래, 누가 비아의 보물을 보여 달라고 하면 비아는 보여 줄 거야?”

“누이가 보여 달라고 하시면…….”

단목비가 꾸물거리며 련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련이 그런 단목비의 뺨을 쥐고 살살 흔들며 웃는 사이, 남궁서건이 얼떨떨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둘이 사이가 참 좋네…….”

“응? 으응, 동생이니까.”

련의 대답에 남궁서건은 잠시 아무 말 하지 않고 련을 쳐다보기만 하다가 금방 꾸며 낸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보기가 좋아. 아! 나는 지금 좀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먼저 자리를 비워도 될까?”

단목세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궁서건은 왜인지 차가워진 기색으로 등을 홱 돌려 사라졌다.

남궁서건이 묘한 태도를 보이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궁세가의 접객당 마당에 아이들이 한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경항운련에 참가하는 무가의 아이들이었다. 그중에 제법 체격이 좋은 아이가 불쑥 다가와 그들을 향해 물었다.

“오늘 단목세가가 도착했다고 하던데. 단목…… 련이었나? 선이었나?”

“그러는 넌 누군데?”

누군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단목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련의 앞을 막아섰다.

그 딱딱한 태도에 상대방도 움찔하고는 머쓱한 태도로 대답했다.

“나…… 나? 나는 산동악가! 악소형이다. 이 녀석은 하북팽가 팽주란.”

“어…… 아, 안녕.”

두 사람 다 어디서든 대장 노릇을 어렵지 않게 해 왔는지 성의 태도에 약간은 당황한 듯했다. 그런 와중에도 다른 아이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단목성은 그제야 옆으로 한 발 비켜 주었다.

“난 단목성. 얘네는 단목련, 단목비. 그리고 뒤에는 단목완, 서극림, 매신유.”

“어? 다들 단목세가에서 온 거 아니었어?”

팽주란이 중얼거리듯 물었다. 련이 뒤의 세 아이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는 사이에 단목성이 대꾸했다.

“우리 방계야. 같이 왔어.”

“방계도 데려왔어? 그런데 왜 계속 같이 있어?”

악소형이 질문했다. 마치 격이 맞지 않은데 왜 어울리냐는 듯한, 순수한 의문이 깃든 말이었다.

련은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우린 가족이고 같이 공부하니까 당연히 같이 있지. 그렇지, 얘들아?”

“네, 그럼요!”

련의 말에 가장 자연스럽고 빠르게 대꾸해 준 건 줄곧 눈치를 보고 있던 단목완이었다.

세가에서의 소심하고 조용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어서 매신유가 놀라 흘끗 쳐다볼 정도로.

그 대화에 악소형은 묘하게 자신이 비난을 받는다고 여겼는지 조금 발끈한 표정으로 말했다.

“같이 공부를 할 수가 있어? 방계는 수준이 좀 안 맞지 않아? 못 따라오잖아. 너희가 아무리 가르쳐 주고 그래도 시간 낭비 아니야?”

련은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이런 얘기를 방계가 있는 자리에서 직접 할 수 있는 그 성미가 놀라웠다.

“그래? 애들이 왜 못 따라가? 우리 애들은 잘하는데?”

“흥, 잘해 봤자…….”

“너 여기서 저기까지 발자국 하나도 안 남기고 갈 수 있어?”

련이 손으로 발치와 저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뭐?”

“우리 애들은 할 수 있어.”

련이 어깨를 추어올리며 하는 말에 악소형의 표정이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건 나도…….”

‘나도 못하는 건데.’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가 저절로 내려갔다.

련은 씩 웃으며 뒤에 선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은 악소형에게 모욕당한 것도 잊었는지 쑥스러운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게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얘기로 읽혔는지 악소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어떻게 하는 건데?”

“말해 주면 할 수 있어?”

“다, 당연하지! 너희 방계도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어.”

“못하면?”

“어?”

“어떻게 하는지 말해 줬는데도 못하면?”

련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 걸음 바짝 다가갔다. 악소형이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모, 못할 리가 없잖아!”

“못하면 우리 애들한테 사과하고, 너도 경항운련 동안 우리랑 같이 공부해.”

“뭐…… 뭐라고?”

“안 돼!”

악소형이 뭐라고 반발하려는 순간, 모여 있던 아이들 사이에서 화려하게 입은 소년이 창호지를 뚫고 나오는 공처럼 튀어나왔다.

“뭐, 뭐야?”

“뭔데…… 뭐야?”

“누구야?”

“몰라, 뭐야…….”

다들 수군거리는 가운데 련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금… 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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