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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5)화 (105/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5화

“주, 주란?”

팽주란과는 함께 운하를 타고 남궁세가까지 왔는데, 같이 있으면서 팽주란이 먼저 나서는 걸 본 건 처음이었다.

“하기로 했으면 하는 거지, 소형?”

“어? 그렇…… 그렇지.”

“나도 끼어도 될까?”

“다 같이 하면 더 좋지!”

련이 기뻐하며 하는 말에 팽주란이 안도의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양새를 보고 있던 금종하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같이 공부할 벗이 필요하다면 내가 한다고 했잖아.”

“에이, 다 같이 하면 좋잖아.”

금종하는 ‘좋긴 뭐가 좋아!’라는 눈빛으로 악소형을 쏘아보았다. 괜히 발끈한 악소형이 금종하와 눈싸움을 하는 사이에 팽주란이 슬쩍 다가왔다.

“단목세가는 검의 명문 아니었어? 창법도 잘 알고 있네.”

“검이든 창이든 다 무기를 쓰는 거니까, 큰 틀은 같은 셈이지? 그리고 우리도 검만 쓰는 거 아니야. 성아는 도를 잡았으니까.”

련이 슬쩍 단목성의 팔을 끌어당기며 하는 말에 성은 콧대를 세우면서도 그 손을 뿌리치진 않았다.

팽주란이 다소 놀란 눈으로 단목성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단목성의 허리춤까지 흘끗 보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세가 안에서 아무도 뭐라고 하진 않았어?”

팽주란의 질문에 단목성이 딱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히 어른들은 무슨 말씀이든 하실 수 있지. 하지만 나의 길은 내가 개척하는 거야.”

“……!”

아이들이 듣기에 굉장히 멋있는 말이었는지 모두가 잠시 침묵했다가, 금종하가 “멋지다, 성 소저!”라면서 먼저 박수를 치자 모두 ‘우와아아’ 하며 따라서 박수 쳤다.

련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가 함께 박수를 쳤다.

단목성은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그만두라고 하진 않고 고개만 홱 돌렸다.

* * *

“주란, 넌 왜 그 공부 하려고 했냐?”

잠시 열의에 차서 공부하겠다고 기세 좋게 말은 했지만, 말하고 나니 걱정이 앞선 악소형이 팽주란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미묘한 표정이던 팽주란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걔…… 좀 이상해서.”

“이상하다고?”

“정확히는…….”

팽주란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걘 네 창법을 처음 본 건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았을까?”

“어?”

악소형이 눈을 끔벅거렸다.

팽주란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냥 신기해서. 같이 공부해 보면 뭐가 뭔지 좀 알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리고 그 단목성? 걔도 도를 쓴다고 하니까 그것도 궁금하고.”

“아아…….”

“너도 걔들 중에 한 명이 창을 쓴다고 했으면 궁금했을걸?”

“그건…… 그렇지만.”

‘단목련은 창을 쓰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그걸 다 알았을까?’

다 알았으니까, 다 알아주었으니까 악소형이 그 와중에도 련의 말에 혼이 팔리다시피 한 것이 아닌가.

자존심 강한 악소형이 순순히 사과를 한 것도 자신의 창을 알아봐 준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 있으니 마음이 풀려서지, 다른 상황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터였다.

자신이 졌든 아니든 방계한테 사과 같은 건 못 한다고 악을 썼을 텐데.

‘소형이 멈춰 섰을 때 그것도 못하냐고 비웃을 줄 알았는데.’

지켜보던 아이들 중 몇몇은 분명 그런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부드럽게 잘 해결되는 그 과정이, 흡사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신묘한 기문진식이 발동된 걸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악소형은 갑자기 신이 나서 자기 창술 얘기를 하고, 구경하던 애들도 홀린 듯 거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멋쩍고 쑥스럽게 사과를 한 다음 앞으로는 같이 공부하기로 하다니.

‘무슨…… 전래동화인가, 이게?’

그래서 팽주란은 그 공부에 자신도 동참해 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 기묘한 현상을 옆에서 관찰해 봐야 할 것 같았다.

* * *

밤이 깊어 가는 시간이었다.

전각에는 등불이 매달려 달처럼 빛을 발했다. 그 아래에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입으로는 한참이나 검술을 논하던 두 노인은 바깥이 번잡해진 걸 느끼곤 술잔을 내려놓았다.

두 노인 중 한 사람, 남궁환은 미간을 모은 채 혀를 차고는 총관을 손짓해 불렀다.

“무슨 일이더냐?”

총관은 조금 잠깐 머뭇거리다가 알아온 것들을 남궁환에게 보고했다.

그 얘기를 잠자코 귀 기울여 듣던 남궁환이 조금 놀라 눈썹을 치켜올렸다.

“애들끼리 저녁에는 자율 수련을 하기로 했단 말이냐?”

“예, 단목세가의 련 아기씨가 제안하여 하북팽가의 주란 도련님과 산동악가 소형 도련님, 그리고 금가장의 종하 도련님까지요. 조금 전까지 함께 모여 공부를 하시다가 숙소로 돌아가셨답니다.”

“그놈들이 수련하자는 말에 다 하겠다고 모여 앉았다고?”

“예, 련 아기씨와 내기를 하셨다가…….”

그 내기의 내용을 상세히 들은 남궁환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총관을 내보낸 뒤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예까지 와서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다 함께 공부를 했다고?”

남궁환의 앞에 앉아 있던 단목천기는 슬그머니 그려지는 미소를 찻잔으로 가렸다.

남궁환은 그 미소를 놓치지 않고서 단목천기를 흘겨보았다.

“어쩐지 오란다고 냉큼 온다 했지. 제 손녀들 자랑하려고 납셨구만.”

“불러 놓고서는 왔다고 난리야? 돌아갈까? 가? 그리고 애들이 저 혼자 명석한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술을 한 동이를 싹 비웠다.

“내일이면 모용세가도 도착할 것 같더군.”

“그네들은 평생 이런 것에는 참석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단목천기가 빈 술잔을 흔들며 말했다.

모용세가는 경항대운하의 북쪽 끝에서도 한참 위인 요녕성에 위치해 있어 거리가 있는 편이고, 여태껏 이런 모임에는 참석한 역사가 없었다.

“자네가 온다고 하니까 오는 게지.”

“이 늙은이 얼굴을 봐서 무엇하려고?”

“모르는 척하고 싶은 겐가? 그들의 북쪽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지 않나.”

“…….”

단목천기는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모용세가의 위치도 여간 북쪽인 건 아니지만 그들보다 더 북쪽, 더 추운 곳에는…….

단목천기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나 좋을 대로 되는 이야기 아니겠나.”

“어휴, 이렇게 미련한 인사를 보았나.”

“헛소리 그만하게. 그보다 우리 련아가 여기까지 와서 아이들을 다 모아다 공부를 한다는데 자네 손주들은 왜 소식이 없나?”

“아, 아니, 사람이 모처럼 좋은 말을 해 줬더니 왜 갑자기 공격을 하고 난리야!”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보는 거지 않나.”

“우, 우리 애들도 같이할 거야! 설마 자네 아이들이 우리 손주들만 빼놓고 따돌리고 그러진 않겠지?”

“그건 아이들끼리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끼어들어서야 ‘자율’이 아닐 텐데.”

“어휴, 깐깐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우리에겐 어린 것들을 바르게 이끌 의무가 있다고!”

* * *

아이들은 공부를 하는 건 썩 내키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낯선 곳에 와서 무리에서 배제되는 건 더욱 싫은 듯했다. 다 함께 어울려 밤까지 수련을 하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음, 그냥 공부라기보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잘난 척 무대 같아서 더 신난 건가?’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그건 자기도 할 줄 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시끌벅적했다.

“너는 창법은 배울 생각 없어? 아, 아니, 그냥 물어만 본 거야!”

그때 악소형이 련에게 무심코 물었다가 단목성의 날카로운 눈길을 받고는 화들짝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

대답은 단목성이나 련이 아니라 금종하가 했다. 한껏 으스대는 표정이었다.

“우리 련 소저는 검에 있어서 눈부신 재능을 가졌는데 갑자기 무슨 창이야?”

“이 듣도 보도 못한 게 진짜!”

“그럼 넌 유명하냐? 유명해?”

“난 유명하거든? 산동신창(山東神槍) 악소형! 모르냐? 어?”

“자기 사는 데랑 쓰는 무기 붙여서 별호 만드는 건 우리 전생에나 유행했던 거 아니야? 아무나 다 하겠네. 나라면 ‘절강신도(浙江神刀)’ 이런 건 줘도 안 한다.”

“……!”

순간 악소형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듣고 보니 스스로도 부끄러운 마음이 든 것 같았다.

“이…… 이익…….”

그쯤 했으면 됐다 싶어서 련이 아이들을 말리려고 할 때였다.

련의 눈에 조그만 소년이 들어왔다. 접객당 처소의 담벼락 근처에서 이쪽을 기웃대고 있는 아이였다.

“……!”

아이는 련과 눈을 마주하자 어깨를 움츠렸다. 그때 금종하가 아이를 알아보았다.

“남궁서진?”

“서진?”

“그 서건 공자 동생일걸?”

아이는 잠깐 머뭇거리다, 련의 손짓을 보곤 주춤거리면서 다가왔다.

“아…… 안녕하세요. 남궁서진이에요…….”

말솜씨가 유창하던 형과는 전혀 다른 유약한 인상이었다.

“안녕, 나는 단목련이야. 거기서 구경하고 있었어?”

“네? 네…… 재미있어 보여서요…….”

“얘도 끼워서 공부하려고?”

단목성이 나직하게 물었다. 다소 날카롭게 들리는 성의 목소리에 남궁서진이 어깨를 움츠렸다.

련은 웃는 얼굴로 남궁서진을 바라보았다.

“너도 같이할래?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진 산만한 장기자랑에 가까웠지만, 어린아이 눈에는 그것도 재미있어 보인 것 같았다. 남궁서진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고 싶어요. 목검도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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