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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6)화 (106/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06화

단목성은 열심히 하려고 목검을 챙겨 온 아이가 제법 귀여웠는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곤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단지 사람이 또 늘어나서 괜한 불만을 가진 금종하만 입술을 한번 삐죽이곤 말했다.

“얘 형까지는 안 왔네.”

그런데 그 말에 남궁서진이 퍼뜩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혀, 형님은…….”

형님은, 하고 몇 번 말끝을 어물거리던 남궁서진은 몹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다 점점 울상을 지었다.

“형님은…… 제가 여기 있는 걸 알면…… 안 오실 텐데…….”

“어? 아니, 불러오란 말이 아닌데……. 그보다 동생이 있는데 왜 형이 안 와, 와야…….”

“형님은…… 형님은 제가 모자라서 별로 안 좋아하시니까…….”

갑자기 형제간의 비사를 듣게 된 아이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아이들의 시선을 받게 된 남궁서진은 눈에 눈물까지 가득 채우고는 자신이 챙겨 온 목검을 꼭 끌어안았다.

“저…… 저는 이거 그냥 안 할게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곤 고개를 푹 숙여 사과한 뒤 도망치듯 달려가는 것이었다.

남은 아이들의 시선이 금종하에게로 쏠렸다. 마치 그가 남궁서진을 쫓아낸 형국이지 않은가?

“아, 아니, 아니! 아니 내가 무슨 얘길 했다고 갑자기 이렇게 된 거야!”

“어린애를 쫓아내니까 좋냐?!”

“형은 안 오냐고 했을 뿐인데……!”

악소형과 금종하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련은 자신이 본 것을 곱씹었다.

‘저 애가 황새였구나.’

* * *

“남궁서건과 남궁서진은 사이가 나쁜 걸까?”

조용히 물은 건 단목성이었다.

양쪽으로 땋아서 둥글게 말았던 머리카락을 풀어 굽슬굽슬해진 부분을 손으로 들어보던 련은 고개를 돌려 단목성을 쳐다보았다.

단목성은 조금 전에 봤던, 눈물을 글썽이다가 돌아간 남궁서진의 모습이 눈에 밟힌 듯했다.

단목성은 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그래, 사이가 나쁜 형제도 있겠지? 다 사이가 좋을 순 없을 테니까.”

처음으로 사이 나쁜 형제를 봤다는 목소리였다. 련은 머리카락을 내버려 두고서 단목성에게 다가갔다.

“그 애들이 신경 쓰여?”

“……조금. 남의 집 사정이니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도 있잖아. 우리의 우애에도 위기가 생길 수 있으니까.”

“……!”

왠지 가슴이 저릿했다.

련은 애써 그 감정을 털어내곤 단목성에게 바짝 다가가 그 애의 손을 잡았다.

“우리가 싸우면 그땐 어떡할까?”

잠깐 고민하던 단목성이 명쾌한 결론을 내린 듯 고개를 들고 련과 마주했다.

“사과해!”

“나, 나 말이야?”

“그래.”

“나만…… 사과해?”

“난 너 절대 배신 안 하고 상처도 안 줄 거니까. 우리가 싸웠으면 네 잘못이야.”

“그게 그렇게…… 되나……?”

“그래. 그래도 사과하면 용서해 줄게.”

“나, 나도 너 배신 안 할 건데…… 상처 안 줄 건데…….”

“흠. 그럼 우린 안 싸우겠네.”

단목성은 처음의 근심 어린 안색은 사라지고, 굉장히 상쾌한 표정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좋아. 오늘 좋은 결론을 내렸다. 난 이제 자러 갈게.”

“어? 어…… 잘 자, 성아야…….”

“창문 잘 닫고 자도록 해. 괜히 타지까지 와서 감기 걸렸다가 남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단목성은 그렇게 말했으면서도 다소 신경이 쓰였는지 직접 방 안 구석구석을 살펴 창을 다 닫고는 그제야 돌아갔다.

단목성이 나가고, 침상의 이불을 탁탁 손끝으로 펴 보던 련은 옆에 스윽 나타난 인기척에 소스라쳤다.

“우와아앗!”

“뭐 그렇게 놀라요?”

“그렇게 인기척도 없이 나타나면 당연히 놀라지.”

련은 괜히 화륜을 한번 흘겨보았다.

“바깥에 구경하다 온 거야?”

“네, 비아랑 여기저기요. 그런데…….”

그게 용건이 아닌 듯, 화륜은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왜 그래? 뭐 묻었어?”

자신의 뺨을 손으로 가린 련이 묻는 말에도 대답하지 않은 화륜이 눈을 가늘게 떴다.

“왜 그래요?”

“아니, 내가 물어봤잖아.”

“누가 또 괴롭혔어요?”

“아무도 안 괴롭혔어! 너야말로 왜 그래? 자꾸 이상한…….”

“그런데 왜 기분이 나빠졌어요? 아까부터 계속.”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련은 마른침을 삼켰다. 표정을 잘 감추었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괴롭혔어요?”

“괴롭혔으면 뭐 어쩌려고…….”

왠지 맥이 풀린 련은 힘없이 대꾸하며 침상으로 기어들었다. 옆에 바짝 따라온 화륜이 말을 이었다.

“제가 때려 주고 올게요.”

“그러면 안 돼. 말로 해야지.”

괜히 의미 없는 정서 교육용 한마디를 한 련은 화륜이 없는 가해자를 색출하려 들까 봐 서둘러 덧붙였다.

“그리고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어.”

“그럼 아무도 안 괴롭혔는데 왜 그렇게 기분이 가라앉았어요? 무슨 일 있어요?”

화륜의 얼굴은 마치 ‘조그만 게 대체 왜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는 거야?’라고 한탄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련은 침상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서는 화륜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눈을 내리떴다.

“있지, 륜아야.”

“네.”

“만약에…… 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더니 주변이 전부 엉망진창인 거야.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고 다 그냥…… 망가지고, 엇나가고.”

“네.”

“그러다가 네가 이렇게 저렇게 딱 해 보니까 그땐 일이 다 잘 풀리는 거야. 엄청 잘.”

“흠. 그런데요?”

“그러면 네가 아무것도 안 했던 게 말이야…….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

여기서 말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몰라서 련이 망설이는 사이에 화륜이 불쑥 말했다.

“그건 그냥 내가 엄청난 거지 제가 뭘 안 한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전 아직 아긴데요?”

“어?”

련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화륜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뭐 다른 사람들은 다 ■■ ■■ ■■■래요? 나 하나 안 한다고 일을 다 엉망으로 만들게?”

련은 정말로 눈을 크게 떴다.

“■■ ■■ ■■■?!”

“……!”

“나 누가 말로 하는 거 처음 들어봤어. 그거 욕이지? 그거 다시…….”

화륜이 뜨악해서는 입을 딱 벌리곤 외쳤다.

“말하지 마요! 맙소사, 하지 마요!”

“왜? 나도 욕 잘하고 싶어. ■■ ■■ ■■■…….”

“우아아악! 하지 말라니까요!”

“너는 하면서 왜 나보곤 하지 말라고 해?”

“아니, 저한테도 하지 말라고 해야지 뭘 나란히 앉아서 쌍욕을 하겠다고 해요!”

“그런 욕 정도는 잘해야 어른이 되지. 나도 불의의 사고가 생기면…….”

“그런 사고 생기면 그냥 상대방 멱을 따고 말지 그런 말은 하지 마요.”

“……!”

욕설을 지껄이기보다 그냥 죽이라는 말에 련은 그만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아니지, 아니지! 그냥…… 그냥 욕을 하는 게 낫지!”

“원인을 없애는 게 제일 확실한 거 아니에요? 말만 해 봤자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행동으로 보여야죠.”

말보다 행동이 우선해야 한다는 건 경전에도 나올 법한 말이었으나.

‘그렇다고…… 그렇다고……!’

“안 돼!”

“입만 앞선 사람이 되란 말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뭐든 대화를 먼저 하란 얘기지. 사람 멱을…… 아니…… 아니, 사람을 한 번 잃으면 돌이킬 수 없잖아. 오해였으면 어떡해.”

“제 입에서 욕이 나올 만한 행동을 했으면 오해가 아니지 않을까요?”

“……!”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아니, 아니지! 아니지!’

련은 얼른 정신을 챙겼다.

과연 마천교가 채갈 만한 인재다운 언변이었으나 여기서 넘어갈 순 없었다.

“강자는…… 강자는 여유를 보여야 하는 법이야. 일희일비하고 작은 원한도 용서하지 못하는 건 약자가 하는 일이야. 자기 스스로를 지킬 힘이 부족하니까, 작은 위협도 크게 느끼는 거지.”

“전 약자 맞잖아요. 작고 아기인데요.”

“그래, 그러니까 내가 지켜 줄게. 너는 가만히 있어. 알았지?”

“……맨날 지켜 준대.”

“그럼 맨날 지켜 주지. 어제도 지켜 주고 오늘도 지켜 주고 내일도 지켜 줘야지.”

“제가 강해져도요?”

“응, 륜아가 세상에서 제일 강해져도.”

그러니까 수틀리면 사람 멱딴다는 소리 같은 건 하지 말고, 입으로만 욕 좀 하고 말아…….

련은 하고 싶은 말을 꾹 삼키고서는 화륜의 머리를 삭삭 쓰다듬었다. 어째서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련을 바라보던 화륜이 스르르 눈을 내리깔았다.

그사이 련은 화륜에게서 배운 단어를 속으로 뇌까렸다.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오면 자연스럽게 뱉을 수 있길 기원하면서.

‘■■, ■■, ■■■…….’

* * *

드디어 경항운련의 마지막 참가자인 모용세가가 도착했다.

바깥에는 자주 얼굴을 비추지 않는 일가라더니, 경항운련의 참석자들도 그들과 만난 적이 없는 듯 서로 낯을 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셨습니까, 백룡신검(白龍神劍) 어르신!”

가주인 남궁경해가 한발 앞서 포권하며 모용세가 사람들을 환영했다.

가장 앞에 선, 새하얀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넘긴 노부인이 자신의 아들뻘인 그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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