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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15)화 (115/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15화

“나라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닌데.”

“네가? 무슨 걱정을 하는데? 고구마를 어떻게 구울지?”

‘이 자식이…….’

“내가 오래 살 순 있을지, 일찍 죽으면 후계 문제가 어떻게 될지, 비아랑 성아는 괜찮을지, 뭐 그런 거.”

“……?”

약간 당황한 얼굴의 남궁서건이 련을 돌아보았다. 련은 수유 바구니를 손으로 매만지며 입술을 삐죽였다.

“나 아팠던 거 알고 있었잖아? 왜 처음 듣는 얘기라는 표정이야?”

“아, 아니, 그건, 다 나은 거라고…….”

“다 나았어도 칠 년 내내 아팠는데 뚝딱! 하고 되겠어? 나 언제 죽을지 모른대.”

“거짓말하는 거지……?”

련은 어깨를 으쓱했다.

“오래 살 수도 있고.”

“그래, 그…….”

“아닐 수도 있고.”

남궁서건은 많이 놀란 표정으로 말을 하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련이 새침하게 물었다.

“넌 언제 죽는대?”

“아니, 나는…… 모르지만…… 아마도 팔십……?”

“오오. 좋겠네.”

“오…… 오래 사는 것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 아니래.”

갑자기 전황이 역전되어, 남궁서건이 련을 달래기 위해 아무렇게나 말을 하기 시작했다. 련은 작게 웃었다.

“고민 대결을 하려는 건 아니고. 갑자기 나보고 ‘넌 좋겠네.’ 그러니까.”

“……미안…….”

서건이 저도 모르게 사과했다. 자존심과 열등감이 강해서 여태 남에게 쉽게 고개 숙여 본 적 없는 그로서는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정신이 없는 남궁서건은 스스로에 대해 고찰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 죽을지 간당간당한 게 고민이고, 너는 뭐가 고민인데?”

“난…….”

다시 자신이 화제의 중심이 된 남궁서건은 입술을 달싹였다. 생과 사의 고민에 비하자니 자신의 고민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지만…… 사실 나보고 재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수군대는 사람들이 있어서…….”

련은 심각한 표정으로 남궁서건을 흘끗 쳐다보았다.

‘하긴. 자긴 자질이 ‘중-하’ 정도인데 동생은 ‘상-중’이면 격차 엄청 심하게 느꼈겠지.’

‘뭐지? 보통 재능 있다고 위로해 줄 때 아닌가?’

고민을 털어놓은 건 남궁서건 자신이었지만, 막상 련이 ‘그렇겠네, 힘들겠다.’라는 표정을 짓고 있자 기분이 점점 이상해졌다.

“재능이 뭐…… 얼마나 부족하대? 가주 못 시켜 줄 정도래?”

“무, 무슨, 뭐, 아니야! 그런 식으로 얘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럼 뭐에 비해 부족하대?”

“……!”

남궁서건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홧김에 말했다.

“남궁서진보다. ……내가 동생이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하더라.”

형만 한 아우 없다는 얘기도 다 옛말이라며 수군거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귀에 선명했다.

“서진이는 가주 하고 싶대?”

“그건…… 모르지…….”

“넌 하고 싶어?”

“그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첫째니까 해야만…… 하는 거.”

그것도 잘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가 안 한다고 해도, 남들이 엄청 수군거리겠지. 어차피 동생한테 뺏겼을 자리 가지고 생색내냐고 하거나 아니면 얼마나 모자랐으면 제 발로 그만두냐고 하거나…….”

“아니, 다른 얘기 하지 말고. 하고 싶어? 하기 싫어?”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뚝 끊겼다.

남궁서건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련을 쳐다보다가 자신의 이마를 꾹 눌렀다.

“……몰라. 하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련은 팔짱을 끼고서 진지한 얼굴로 주억거렸다.

‘하긴, 이제 겨우 열 살 넘겼는데 벌써부터 진로를 결정하긴 좀 어렵지.’

“난 무공이 좋은 가주의 조건이라고는 생각 안 해.”

단목세가도 한때 천하제일인이었던 단목천기가 오랫동안 가주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가 부상을 입자 그대로 고꾸라지지 않았던가.

“…….”

“으, 으음. 듣고 싶은 말이 이 얘기가 아니었어?”

‘이런 게 아니라 재능 있고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 줬어야 했나?’

그냥 손가락질하는 사람 욕이나 해 줬으면 됐던 걸까?

련이 고민하는 사이에 남궁서건이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너하고는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로서는 처음으로 가식 없이 말해본 것이었지만, 련도 남궁서건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게.”

“진짜로.”

남궁서건이 한 번 더 강조했다. 이번엔 련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기껏 고민 상담 열심히 해 줬더니.”

순간 남궁서건이 퍼뜩 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러더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조용하게 웅얼거렸다.

“……고마워.”

“그래도 너하곤 안 맞는 것 같아.”

련이 엄하게 말했다. 남궁서건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구마를 다 구워 먹고 제각기 자신의 처소로 흩어지려는 길, 아이들의 보호자 혹은 하인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아이들을 데려갔다.

뺨에는 검댕이 묻고 불티에 옷가지가 상한 아이들의 차림을 본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더 울상이었으나 서로가 있는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흩어졌다.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은 건 단목현요와 모용취려였다.

단목현요는 손끝이 거뭇해지고 모닥불의 열기에 뺨이 달아오른 단목성의 얼굴을 보고서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가, 련과 단목비까지 보고서는 실제로 짧고 작게 비명을 질렀다.

“악…….”

그러곤 자신의 소매 끝으로 세 아이의 얼굴을 문질러 닦다가 이걸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허리를 폈다.

그걸 보고 있던 모용취려가 빙긋 웃었다.

“현요 네가 항상 고생이 많다.”

“어…… 어르신.”

단목현요가 얼굴을 붉혔다.

그사이에 모용설호가 애써 자신의 얼굴을 닦으려고 했지만 어디에 뭐가 묻었는지 몰라서 번지기만 할 뿐이었다.

모용취려는 손자가 제 또래처럼 구는 걸 처음으로 목도하면서도 큰 내색이 없다가 련을 흘끗 쳐다보았다.

“련아와 잠깐 얘기할 수 있겠는가?”

“네? 련아랑요?”

단목현요는 좀 놀란 듯했으나,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목현요가 졸음기가 역력한 단목비를 챙겨 들고 단목성과 함께 먼저 처소로 돌아가고, 모용설호도 하인의 손에 이끌려 처소로 돌아갔다.

단둘만 남은 자리에서 모용취려가 련을 향해 부드럽게 손짓했다. 련은 조금 전 단목현요가 문질러 준 뺨을 손으로 가리며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걸음을 맞추었다.

“……이 노부(老婦)가 너를 보자 한 연유를 알겠느냐?”

어느덧 주위에는 사람이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호 공자 때문이지요?”

“알고 있었군.”

“설호 공자는 숨김이 없으니까요.”

같이 지낸 건 고작 며칠이지만 그 며칠만 봐도 그의 성격은 분명했다. 약은 말이나 거짓말 같은 건 할 줄도 모르고 매사 진심만 얘기하는 고지식한 성격.

손자가 어떤 배움을 얻었다는 걸 모용취려는 곧장 눈치챘을 것이고, 모용설호는 자신이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거짓 없이 밝혔을 테다.

“그럼 네가 얼마나 큰일을 해 주었는지 알고 있느냐?”

련은 여기서 겸양의 말을 할까 하다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취려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여태 아무도 네 재능을 찬탄한 적 없더냐?”

“네?”

련은 놀라서 눈만 끔벅였다. 꿀 바른 고구마를 구워 먹고 오는 길에 재능 얘길 듣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긴 했다.

“아니면 너는 경쟁심이 없느냐? 그래서 설호 그 아이를 그리 쉽게 도와준 것이냐?”

“아, 그건…….”

련은 뺨을 긁적였다. 모용취려가 의아해하는 바도 알 만했다.

지금 경항운련에 모인 아이들은 모두 장래에 후기지수(後起之秀)로 이름을 올릴 테고, 제각기 우열을 가리게 될 터였다.

“경쟁심을 가지지 않는 건 네 재능이 압도적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냐? 아니면…… 내공을 쌓지 못하기에 미래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냐?”

“……!”

순간 련은 걸음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려올 만큼 무거운 정적 속에서 모용취려가 조용히 말했다.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걱정할 것 없다.”

“어떠…… 어떻게…… 아셨어요……?”

뒤늦게 모르는 척 잡아뗐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은 입 밖으로 나오고 난 뒤였다.

모용취려가 깊은 눈으로 련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 경지에 이르면 아주 조금이라도 내공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알아볼 수 있게 되지. 단목세가의 방계들조차 심법을 일부 깨치고 미약하게나마 내공을 쌓고 있거늘, 네게는 솜털만 한 내공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 때문이겠느냐?”

“그건 제가…….”

“네가 아둔하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기만이로구나.”

아둔하여 심법을 깨치지 못해서?

그러나 단목련은 스스로 증명하지 않았던가. 본인이 얼마나 명석한지를.

주위 아이들의 배움을 끌어올리면서, 의혈도의 도 앞에 마지막까지 남아 버티면서, 여태껏 자신이 본 아이 중에 가장 재능이 뛰어났던 모용설호에게까지 가르침을 주는 모습을 보이면서.

심법 같은 것은 한 줄만 들어도 깨우칠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공 한 점이 없다는 건 결국 내공을 쌓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

“네가 오래도록 아팠음을 안다. 기적같이 일어났음도 들었다. 그러나 기적에는 대가가 있기 마련이겠지. 그래서…… 그래서 설호에게 거리낌 없이 배움을 나눠 준 것이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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