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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17)화 (117/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17화

모용취려는 맑은 동심원이 퍼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꽃잎은 오던 방향 반대로 틀어져 조용히 날아갔다. 변덕스러운 봄바람이 다시 휘몰아치기 전까지.

련이 목검을 거둬들이고 활짝 웃으며 모용취려를 쳐다보았다.

“와, 이거 정말 대단해요! 상대의 움직임과 힘의 방향과 결을 이용해서 그대로 되돌려 보내는 요령이 숨어 있네요.”

“……완벽히 이해했으면서 어찌 내 공격은 받아치지 못할 거라는 얘길 했느냐?”

“어, 그랬다가는 목검이 부서질 것 같아서요. 예전에…… 비슷한 방식으로, 그러니까 알려 주신 것보다는 훨씬 무식한 방식으로 받아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산산조각 났거든요…….”

“그건 좋은 무기를 쓰면 될 일이다. 네 조부에게 현철로 만든 신검을 내놓으라고 해!”

말미에 이르러서 모용취려는 반쯤 윽박지르듯 외치고 말았다.

모용취려가 보여 준 것은 말하자면 상대와 널뛰기를 하는 것과 흡사한 것이었다.

바람을 탄 꽃잎의 힘의 방향을 꿰뚫어 보고, 꽃잎이 날아오는 방향과 정확히 맞대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려면 근육의 아주 미세한 결까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방향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당연히 한 번 만에 해낼 수는 없는…….

모용취려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사이에 모용취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거처 안쪽에서 모용세가 사람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련이 그런 모용취려의 속도 모르고 배시시 웃으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이런 걸 알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아니다.”

‘현철로 만든 신검은 내가 구해다 줘야 하나?’

련이 너무 쉽게 해내니 뭘 알려 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모용취려가 작게 탄식했다.

‘우리 설호가 아직 혼약을 하지 않았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어떻게든 모용세가와 엮어 볼 생각을 했던 모용취려였으나 그 생각 역시 빠르게 그만두었다.

단목세가에서 저런 아이를 내줄 리도 없거니와, 자신이 탐을 냈다가는…….

‘설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겠군.’

그 성격에 단목세가에서 련을 남 줄 거면 북해에 달라고 난리를 칠 게 분명했다. 모용취려는 작게 몸을 떨었다.

머리가 희끗해지고 얼굴에 주름이 져도 친우의 무시무시한 성정을 생각하면 여전히 몸서리가 처졌다.

“저 할머니는 뭐래요?”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희희낙락하며 발랄하게 걸음을 옮기던 련은 담벼락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콩알 두 개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서 뭐 해?”

“누이 기다리고 있었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 할머니가 뭐래요?”

“나 힘내는 방법 알려 주셨어.”

“아…….”

화륜은 그 말만으로도 대강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 집 손자한테 뭐 또 알려 주는 거 같더라니.”

“누구한테요? 뭐 알려 줬어요? 저도요, 저도요!”

단목비가 다급하게 말하며 련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남궁세가에 오고 나서부터 누이의 관심을 독점하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배우고 있는 단목비는, 요즘 누이가 남에게 눈길을 기울인다 싶으면 얼른 끼어들기 위해 바빴다.

“검술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나~ 그런 거였어.”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좋아, 내일 알려 줄까?”

“지금은 안 돼요?”

“지금은 자야 해. 잘 자야 쑥쑥 크고, 쑥쑥 커야 좀 더 고수가 될 수 있단다. 키가 큰 사람은 팔도 길고, 팔이 길면 더 멀리 있는 적도 상대할 수 있잖아.”

단목비는 몹시 갈등이 되는 얼굴이었으나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래요…….”

“아이 착하다.”

련이 그런 단목비를 쓰다듬어 주자 단목비가 몹시 의젓한 표정으로 배시시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던 화륜은 단목비가 먼저 잠들자 련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그 할머니랑은 그렇다 치고, 남궁서건이랑은 무슨 얘기 했어요?”

“어?”

갑자기 남궁서건 이야기가 나온 터라 련은 고개를 갸웃하기만 하다가 뒤늦게 알아챘다.

“아, 아까 고구마 구워 먹을 때?”

“네.”

“어라? 그걸 봤어? 내가 너 고구마 주려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데! 그래, 너 어디 있었어!”

“네?”

“여긴 정원에도 진법이 엄청나니까 내가 조심해야 된다고 했잖아. 너 또 이상한 데 들어가고 그런 거 아니야?”

련은 그렇게 말하며 화륜에게 바짝 붙어서 화륜의 옷가지를 여기저기 살펴보다, 기어코 옷깃 사이에서 나뭇잎 하나를 찾아냈다.

“이거! 이거! 어디서 났어. 어디 갔다 왔어?”

“이 앞에! 바로 이 앞에 있는 나무잖아요!”

“……아, 그런가?”

“하아…….”

“쪼끄만 게 한숨 쉬는 거 봐.”

련이 흘겨보자 화륜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무슨 말을 못하게 해요. 그래서 걔랑은 무슨 얘기 했는데요?”

“고민 상담해 줬어.”

“뭐 그럼 상담을 해 줬지 누이가 했겠어요? 걘 무슨 상담할 게 있대요? 누이랑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먹고살기 힘든가 봐, 걔도.”

“하이고.”

“우화륜 아저씨 다 됐네.”

“이런 집에서 태어났으면서 뭘 먹고 살기가 힘들대요?”

“그…….”

“하긴. 뭐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고 누구나 자기 딴엔 고민이 있겠죠.”

“…….”

련이 눈을 가늘게 뜨고 화륜을 쳐다보았다. 미심쩍은 그 눈길에 화륜이 어깨를 움츠렸다.

“뭐…… 뭐야, 뭔데요.”

“너는 무슨 고민 있어?”

“아 또 나야.”

“이 누이가 이렇게 관심을 가져 줄 때 고맙게 생각해.”

“네, 네. 감사하고요. 고민은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생기면 바로 말해야 된다!”

“말하면 다 해결해 주려고요?”

“그건 아니고……. 내가 해결 못하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보통은 얘기만 해도 풀리기도 하거든.”

“얘기를 하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된다고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마음이 좀 편해지는 거지.”

이번엔 화륜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사교에서 교도 모집하는 수법인 거 아니에요?”

“…….”

련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화륜의 코를 살짝 비틀었다.

“악!”

“비아 깬다. 조용히 해.”

“진짜 누이는 나만 괴롭혀.”

“이게 다 사랑이고 관심이고 애정이야.”

“……흥.”

화륜은 입술을 삐죽이고는, 창문만 닫고 련을 돌아보았다.

“내일은 누가 수업한다고 했죠?”

“남궁세가 대가주 어르신께서 하실 거래. 너도 같이 들을래?”

화륜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도 바쁘거든요. 하인에게는 하인의 일이 있어요.”

련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캐물으려고 했지만 화륜이 그녀를 침상으로 떠미는 게 먼저였다.

“일찍 자야 쑥쑥 큰다면서요? 이래서야 언제 커요, 대체?”

“너 나보다 빨리 큰다고 유세 부리니?”

“이 정도 성장 속도면 유세 부릴 만한 것도 같은데.”

“키 컸다고 나이까지 먹은 거 아니다.”

“같은데요, 같은데요! 됐죠?”

“그래, 그래.”

련이 침상에 누워서 이불을 끌어올려 입가까지 덮고 나자, 그걸 잠깐 지켜본 화륜이 조용히 등롱의 불을 껐다.

* * *

열 살 전후의 아이들끼리 모여서 왁자지껄 어울리는 사이에, 어른들은 어른들의 일을 했다.

스물 언저리의 청년들은 모처럼 동생이나 조카들에게서 해방되어, 저들끼리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곧 용봉지회(龍鳳之會)를 다시 연다는데, 다들 갈 건가?”

“비무대회 말이지? 우승하면 무영신투의 비동(秘洞)에서 발견된 보검을 준다던데.”

“어? 용봉지회 그게 비무대회야?”

“후기지수들 모아 놓고 비무하는 거 아니었어? 귀한 내단이나 보검 걸어놓고.”

“아, 그랬어?”

“넌 뭔 줄 알았는데?”

“옛날엔 그냥 우리 또래 모임이었다는데. 서너 명씩 한 조 짜서 무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랬대. 순찰 비슷하게.”

“옛날? 얼마나 옛날?”

“우, 우리 할머니 말로는 그랬는데.”

“너무…… 많이 옛날얘긴데.”

“아니, 그보다 보검은 무슨 얘기야? 무영신투의 비동이 발견됐다고? 거기서 보검이 나왔어?”

“너 뭐…… 너희 동네는 표국 지부가 어제 생겼냐?”

옆에서 혀를 찼다.

흑천련의 무영신투(無影神偸) 연학철은 그림자가 없다는 별호에 걸맞게 귀신같은 도둑질 솜씨만으로 흑천련주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와 척을 지면 어떻게 죽는 줄도 모르고서 죽는다는 이야기가 은밀하게 강호에 떠돌 무렵, 그는 잡음 하나 없이 흑천련주의 자리에 올랐다.

흑천련의 십삼천 수장들은 어디에서 솟아난 것인지, 누구에게 사사한 것인지도 모르는 그를 저들 머리 위에 앉혔다.

무영신투가 십삼천의 은밀한 비밀을 전부 한 가닥씩 꿰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런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본인이 훔친 걸 여기저기에 숨겨두고서는 그걸 다 잊어먹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비밀리에 물건을 묻어 둔 동굴이 몇 개나 되는지,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본인조차도.

그러다 이번에 우연찮게 비동 한 곳을 발견한 것이다. 거기서 대단한 보검이 나왔는데—무영신투는 자신이 언제 훔친 것인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에게도 제자에게도 필요가 없는 물건이라며 덜컥 내놓았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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