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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28)화 (128/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28화

“그냥 눈에 보이는 걸로 아무렇게나 던진 거예요.”

“그것 봐! 너한테는 재능이 있다니까. 돌아가면 좀 더 배워 볼까? 이제 무공에 재미도 붙지 않았어?”

“…….”

화륜은 대답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다만 련의 목덜미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쪽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다. 련은 팔을 휘휘 흔들었다.

“이 누이는 멀쩡하니 걱정할 것 없어요, 륜아 공자.”

“네, 네.”

“나비 볼래? 아니면 새?”

낮게 뜬 아침 해가 긴 그림자를 드리워서, 련이 손으로 만든 새 모양 그림자도 괴이쩍은 모양이었다.

련이 어색한 표정으로 얼른 손을 등 뒤로 숨기자 그 모습을 보고서야 화륜이 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고 안심한 련은 그만 먼저 앞서 나가느라 화륜이 무언가를 결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 * *

련이 산책을 끝내고, 이른 낮잠까지 자고 일어나서 몸을 회복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온 사람은 금가장의 금종하였다.

“련아!”

그리고 련은 그와 마주하자마자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는 걸 마주했다.

* 행운 수치를 소모하여 인명을 구하였습니다. *

* 금종하의 깨달음 *

* 금종하의 심정적 변화 *

행운 수치 : 8 / 120 (8▲)

련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 뜬 선경의 글자를 해석할 틈도 없이, 금종하는 련을 도로 침상에 앉히고는 조잘거렸다.

“아냐, 일어나지 마! 앉아 있어.”

“그래, 련아 네가 무리할 거 없다. 앉아 있도록…….”

“네가 갑자기 쓰러져서 정말 놀랐다, 련아! 역시 영웅의 길에는 시련이…….”

“종하야!”

금종하와 함께 온 송영랑이 얼른 종하를 끌어당기며 입을 다물렸다. 송영랑 곁의 금적걸 역시 표정이 무겁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구해 줘서 고마워. 그 말을 하려고…….”

련은 잠깐 당황한 표정으로 금종하를 쳐다보았다. 그에 옆에 선 금적걸과 송영랑의 표정이 더욱 무거워졌다.

“다 같이 고생했지, 뭘. 다친 덴 없어?”

“역시 너에게는 대인의 풍모가…….”

“금종하! 자꾸 허튼소리 말거라.”

“하지만 아버지.”

금가장의 부자가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다른 손님들도 도착했다.

하북팽가의 팽무혁과 팽주란, 산동악가의 악소형과 악강평, 그리고 모용세가의 모용설호와 모용취려, 남궁세가의 남궁서진, 남궁서건과 남궁경해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이자 련의 방이 꽉 찰 지경이었다.

그사이에 련은 연이어 눈앞에 선경이 떠오르는 바람에 잠깐 눈이 부셔서 눈을 흐리게 떠야 했다.

* 행운 수치를 소모하여 인명을 구하였습니다. *

* 팽주란의 배움 *

* 팽주란의 심정적 변화 *

행운 수치 : 15 / 120 (7▲)

* 악소형의 배움 *

* 악소형의의 심정적 변화 *

행운 수치 : 22 / 120 (7▲)

* 남궁서건의 배움 *

행운 수치 : 26 / 120 (4▲)

* 남궁서진의 깨달음 *

* 남궁서진의 심정적 변화 *

행운 수치 : 35 / 120 (9▲)

* 모용설호의 깨달음 *

* 모용설호의 심정적 변화 *

행운 수치 : 47 / 120 (12▲)

‘세상에.’

사람이 위급한 순간에는 비이성적으로 가진 자산을 막무가내로 쓰고 마는 것처럼, 련도 화재 속에서 가진 행운 지수를 다 털어 쓴 차다.

‘아쉽진 않지만 마음은 헛헛하긴 하다…….’라고 되뇌는 중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이야!

련이 눈부셔 하는 걸 보고 팽무혁이 하인에게 손짓하려다 말고 직접 움직여 차양막을 쳐 주었다.

아이들은 모두 련이 무사한 걸 보고서야 한시름 놓은 표정을 지으며 그 며칠간 있었던 일을 조잘거렸다.

“너희 할아버님 보러 왔던 사람들도 계속 양주에 있었나 봐. 다들 도와줘서 얼른 다 해치웠대!”

“우리가 있던 데는 다 불타서 새로 짓고 있다더라. 이름을 고민 중이래. 그치, 서건?”

“어…… 아무래도 그렇지.”

남궁서건이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사이에 왠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당당해진 태도의 남궁서진이 조르르 다가왔다.

“누님, 누님.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서진아.”

련이 반가운 표정을 짓자 남궁서진이 얼른 말했다.

“비아가 누님 똑바로 모실 거면 인사드려도 된댔어요.”

“그, 그랬어?”

언제 또 둘이 그런 얘길 했니?

련은 어색하게 웃기만 하면서 남궁경해의 눈치를 살폈다. 아들이 어디 가서 누구를 모신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기분이 즐겁진 않을 텐데.

그러나 남궁경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심약하기만 했던 둘째에게 자신감이 생긴 것만으로도 만족했을지 모른다.

금적걸은 자꾸 영웅이니 대인이니 치켜세우는 소리만 하는 아들을 옆으로 밀어 두고 말했다.

“련아.”

“예, 어르신.”

어른들이 말문을 열자 아이들도 분위기를 맞추듯 침묵했다.

금적걸은 잠시 입 밖으로 낼 단어를 다듬었다.

물 한 방울의 은혜는 넘치는 샘물로 갚아야 하는 법이다.

하면 하나뿐인 자식의 생명, 더 크게는 금가장이라는 장원의 미래를 구원받았다면 무엇으로 갚아야 할까?

“불길 속에서도, 혈라곡 혈귀와 만났을 때도 우리 아들을 몇 번이나 구해 줬다 들었다. 너무 큰 빚을 졌으니 갚을 길이 막막하구나.”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으니까 다행이죠.”

“네가 그리 생각한다고 해서 네가 한 일이 묽어질 리 없음이라. 우리가 당장 내줄 수 있는 금은보화나 영험한 영약도 네가 한 일에는 미치지 못하니 지금 당장 할 말은 하나뿐이구나.”

“어르신…….”

금적걸이 숨을 들이켜고 말했다.

“금가장은 네가 필요로 할 때 손을 내밀 것이며, 우리의 검은 결코 너를 향할 일이 없을 것이다.”

공기가 찌르르 울렸다.

금적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소 성격이 급한 팽무혁이 아들의 뒤통수를 잡아 숙이게 하고는 말했다.

“우리 하북팽가 역시 네가 필요로 할 때 손을 내밀 것이며, 우리의 도는 결코 너를 향할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 산동악가 또한 네가 필요로 할 때 손을 내밀 것이며, 우리의 검이 너를 향할 일이 없을 것이다.”

다소 냉혹한 인상의 악강평이었으나 맹세를 말할 때는 눈 끝이 조금 붉었다. 아들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순간을 상기한 듯했다.

“련아, 우리 남궁세가는 오래도록 단목세가와 벗이었지. 이런 일이 아니었어도 우리는 단목세가가 도움을 청한다면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궁경해가 천천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단목세가가 아니라 네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역시 손을 내밀 것이다. 우리의 그 어떤 무기도 결코 너를 향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남궁경해의 눈길이 자신의 두 아들들에게로 향했다.

그간 아들들 사이의 갈등과 불안에 대해 알면서도 제대로 손쓰지 못했다.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모른 채 막연히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었다. 자신과 동생 사이가 여전히 서먹한 걸 알면서도 자식들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 두 아들을 모조리 잃고 덧없는 후회만 할 뻔했다. 그 생각을 하면 눈앞이 아찔했다.

그의 말을 끝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용취려에게로 향했다.

모용취려는 천천히 일어나 련에게로 다가와, 처음에는 련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지더니 한쪽 무릎을 접고 련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멀리 보는 자만이 멀리 가는 법이니 너는 발밑의 돌멩이에 개의치 말지어다.”

“어르신……?”

“우리 모용세가 또한 네가 도움을 청할 때…… 네가 물에 빠졌다면 가진 걸 다 강에 버리고서라도 너를 구하러 갈 것이고 너의 집이 불탄다면 맨몸이라 할지라도 너를 구하러 갈 것이다.”

모용취려가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네가 바라본다면 눈을 마주할 것이고 손을 내밀면 맞잡을 것이며 걸음을 옮길 때면 발맞출 것인즉, 우리의 그 어떤 무기도 결코 너와 너의 혈육을 향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이 공간을 묵직하게 울렸다.

항상 솔직한 말만 앞서 하기 일쑤였던 모용설호는 조용히 조모 곁에 서서 그녀의 모든 말에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련을 바라보기만 했다.

* * *

남궁세가는 객들의 피해를 보상하는 데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억울해하는 것 없이 호쾌하게, 불탄 접객당에 있던 물건을 다 배상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일에 도움을 주었던 낭인 무사들—단목천기 보겠다고 멀리서부터 와서는 경항운련 끝날 때까지 남궁세가를 기웃거리던 무사들—에게도 값을 치렀다.

그런 그들이 가장 공을 들여 보은하고자 한 상대는 단목련이었다.

련은 솔직히 이렇게까지 할 일은 아니지 않나 생각했다가—아이들을 데리러 간 바람에 우연히 그런 일이 벌어져서 다 같이 화염을 뚫고 나온 것이니—그 화재가 벌어진 천화당에 가게 되었던 원인이 남궁서진과 남궁서건임을 떠올리곤 잠자코 주는 대로 받기로 했다.

“그래도 뭐가 너무 많은데…….”

련은 고급 상아를 얇게 저미고 세공해서 만든 접선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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