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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34)화 (134/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34화

련이 일어난 뒤, 어머니가 잠깐 기절하는 동안 단목성 역시 죽은 듯 잤다가 일어났다.

꿈속에서 단목성은 련이 불타 재가 되어 사라지는 걸 몇 번이나 보기만 해야 했다.

꿈속의 련은 재가 되어 흩날리며 성을 향해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녀가 본 모든 단목련이.

잠에서 깨어난 단목성은 걱정하는 어머니 품에 안겨 펑펑 울면서 더는 그 애가 다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그 애를 위해서라면 불길도 맨발로 굴하지 않고 걸어갈 거라며 맹세했었는데…….

그걸 지금 련과 마주해서 말하자니 너무 부끄러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나이가 되도록 어머니 품에서 우는 아이는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않을 것도 같았다.

그 생각을 하자 단목성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었다. 눈물을 참느라 힘이 들어가서 표정이 사나워졌다.

“성아야! 난 정말 괜찮아. 정말이야. 난 네가…… 아이고, 난 너희가 다 무사히 나와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걱정 끼쳐서 미안해. 얘들아, 진짜 내가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다. 얘들아? 얘들아…….”

“흐어어엉, 아기씨~!”

“훌쩍…….”

“킁…… 이제 그러지 마세요.”

숨어 있던 방계 아이들이 셋 다 튀어나와서는, 단목완은 대성통곡을 하고 서극림은 눈가만 훔치는 와중에 매신유마저 코를 작게 훌쩍이고는 ‘그러지 마세요.’라고 기어코 말을 했다.

거기에 련과 성까지 나란히 앉아서, 아이들은 울며 불며 웅얼거리는 맹세를 했다.

온 힘을 다해 서로를 지킬 테니까 한 명만 쓰러지는 건 금지라는 규칙이, 단목세가에 새로이 생겼다.

* * *

경항운련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은 훨씬 더 성대했다. 아무래도 예기치 못했던 사고가 있었으니만큼 서로 대단히 유난을 떨어 비극을 덮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어른들의 유난은 알 바 아닌 아이들만 됫박의 콩알들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 손을 꼭 붙잡고 훌쩍거리는 중이었다.

“우리 우정…… 잊지 않기로 약속했다.”

“배신자에게는 죽음뿐이다. 알고 있겠지?”

“천 년이 지나도 우리 우정 변함없이 이어질 거야. 비석에 새겨질 거니까 잘해야 해.”

“아, 알았어…….”

다들 모두 열렬하게 눈물 젖은 맹세를 하고 각자의 보호자에게로 흩어졌다. 그러면서도 연신 뒤돌아보는, 서운함이 한가득 담긴 얼굴에 어른들 모두 웃음을 흘렸다.

남궁서건은 미묘한 표정이었다. 작별이 서운하고 아쉬운 듯도 했고 드디어 고통과 멀어지는 듯 안심한 것도 같았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훨씬 솔직하고 나은 얼굴이었다.

“잘 지내…… 다음에 봐.”

남궁서건은 잠시 망설이다가 작별 인사를 남기고는 자신의 부모님 곁으로 돌아갔다.

남궁서진과 단목비는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양 뺨이 눈물로 젖어서는, ‘우리 집으로 갈래?’, ‘우리 집에서 살래?’ 따위의 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련은 곤혹스러움을 티 내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자 단목성이 몹시 진지하고 엄격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본 탓이었다.

“련아야, 벗이 아무리 좋아도 남이다.”

“……아니…… 그…… 벗은 벗이고…… 우린…… 가족이지.”

“그래, 알고 있지?”

“그, 그럼.”

그런데 제발 조용히 말하면 안 될까? 련은 속으로 간절하게 중얼거렸다.

몇 보 뒤에 떨어져 있던 모용설호의 눈빛이 어찌나 번뜩이는지 뒤통수가 뚫릴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집안들이 다 제각기 귀갓길을 선택했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모용설호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남보다 못한 가족이란 말은 안 들어 봤나?”

“너 지금 련아 가족이 련아를 불행하게 할 거라고 저주하는 거야?”

“……!”

모용설호가 움찔했다.

“아니, 내 말은 벗도 중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렇게 말해야지.”

“벗이 가족보다 못하다고 한 건 네가 먼저였잖아!”

“그건 사실이잖아. 피가 이어진 것도 아니니 남 아니야?”

“진실한 벗은 영혼이 이어진 가족과 같다.”

“결국 벗의 최종 목표는 가족이 되는 거네. 가족이 더 좋은 거니까 그런 거겠지.”

순간 모용설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말로든 검으로든 져 본 일이 별로 없는 그에게는 드문 경험이었다.

련이 진땀을 흘리며 그 둘을 얼른 갈라놓았다.

“나의 가족과 벗들아, 사람들의 관계는 한 가지 가치만 중요한 게 아니지 않겠니…….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 그렇지? 국수도 먹어야 되고 동파육도 먹어야 하고. 우리 숙부 말씀이 송서궐어도 맛있대…….”

련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단목성이 모용설호의 등 뒤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국수야, 너희 할머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얼른 가 봐.”

아무래도 국수는 조금 더 별미에 가깝다. 즉 밥이야말로 매일 함께하는 것이니 이쪽이 더 중하다 할 터였다.

“하. 백미밥은 안녕히 계시게. 련아야, 다음에 보자. 서신 보낼게.”

“백미밥이라고 해 주니 고맙네? 조심히 가, 고기 국수.”

“……!”

모용설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단목성을 쏘아보고는 몸을 홱 돌렸다. 단목성이 련을 바라보며 작게 승리의 미소를 그렸다.

“나는요? 저는요?”

“응?”

“성 누이가 백미밥이면 저는요?”

단목비가 조르듯 말했다. 련은 다 내려놓은 표정으로 미소를 그렸다.

“비아 너는…… 수수밥…….”

“수수밥?”

“수수 알갱이는 조그맣고 귀엽거든.”

“저는 이만큼이나 큰데요?”

“이 누이보다는 작잖아.”

“그래도 많이 컸는데.”

“더 크면…… 율무밥.”

“율무는 더 커요?”

“응, 백미보다 더 커. 두 배만 해.”

“그럼 내가 율무밥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성아 너까지…….”

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목성을 쳐다보자 그제야 조금 창피해졌는지 뺨을 붉히고 고개를 돌렸다.

“그럼 나중에 율무밥은 제 거예요?”

“어어, 그래.”

“제가 율무밥 되면 서진이한테 수수밥 물려줄게요.”

막내라 누구에게 뭘 물려준 경험이 없어서인지 단목비가 들떠서 중얼거렸다.

“서진이도…… 그걸 원할진 모르겠지만…… 비아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련이 반쯤 포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뒤에 붙어선 화륜이 피식 웃었다. 어린애 장난을 보고 기특해하기라도 하는 듯 거리감 있는 미소였다.

“너도 밥 해야지.”

화륜이 눈동자를 굴렸다.

“전 또 무슨 밥이요?”

“넌, 음…… 너도 아기니까…… 조밥?”

“…….”

“……아니, 조도 작으니까…….”

“…….”

“조밥 하기 싫어?”

“아니…… 아니니까, 알겠으니까 그 말 하지 마요.”

갑자기 정색하는 화륜의 표정을 찬찬히 살피던 련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이거도 ■■ 같은 욕이야?”

“아, 아니라니까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라고 말할 때 네 표정이랑 지금 네 표정이랑 똑…….”

“악! 말하지 마요. 진짜 그 말 하지 마요. 저도 안 쓴다고 했잖아요.”

“나는 그래도, 너도 가족이니까 밥 준 건데…….”

“감사하고요, 됐어요. 괜찮습니다. 진심으로요.”

화륜이 진심으로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 련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럼…… 찹쌀떡 할래?”

“말 안 들으면 천 개 먹어야 하는 그거요?”

“…….”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그럼 찹쌀 경단.”

“그 둘에 차이가 있어요?”

“찹쌀 경단 쪽이 더 작고 귀여워.”

“제가 이젠 누이보다 큰 건 알죠?”

“그래도 넌 영원히 나보다 작고 귀여운 동생이지.”

“진짜…….”

“진짜 뭐?”

“진짜 앞으로 살면서 바르고 예쁜 말만 쓰겠다고요. 업보도 아니고 이게 뭔지…….”

화륜이 투덜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련은 싱글벙글 웃었다.

“좋아, 우리 귀여운 찹쌀 경단.”

“사람을 음식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

“알았어, 화륜.”

“…….”

화륜의 표정이 조금 기묘해졌다. 련이 박수까지 치면서 큰 소리로 웃었다.

“푸하하! 거 봐, 역시 찹쌀 경단이 더 좋지? 이리 오렴. 길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나의 작은 찹쌀 경단아.”

련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화륜의 손을 잡아끌었다. 드물게 화륜은 투덜거리지도 않고 잠자코 련에게 손을 잡힌 채 끌려갔다.

* * *

처음 남궁세가에 도착했을 때 단목세가 사람들을 반겨 주었던 사람들은 경항운련이 끝나는 날 배웅까지 해 주었다.

그렇게 항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또 열렬하게 환영해 주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 전쟁이라도 하고 온 거야? 우리도 모르는 새에?”

마차 밖에서 말을 몰고 가던 단목현우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중얼거렸다.

혈라곡과의 다툼은 큰일이긴 했지만 전쟁이라고까지 하긴 좀 부족할 것인데 환영 인파가 범상치 않았다.

꽃잎이 끝없이 휘날리고 전혀 모르는 항주 사람들이 휘파람을 불고 박수를 치고 누군가는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그들의 행렬을 이끌어 주고 있었다.

련도 마차 안에서 조그만 창으로 고개를 빼 그 풍경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기만 했다.

“우리하고 다른 누구하고 착각한 거 아니에요? 황제 폐하 시찰이라도 오는 건데 우리가 이걸 날름 했다 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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