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35화
단목현우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윽고 심각하게 가늘어지는데, 상황을 확인한 정영이 헐레벌떡 돌아와 고했다.
“이건 전부 만송상단에서 준비한 거라고 합니다.”
“만송상단에서? 대체 왜? 청련수가 많이 부족했나? 련아한테 돌아오자마자 만들어 달라고 하기 무안해서 이러는 거 아니야?”
긴장이 풀린 단목현우가 실없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나 정영은 웃지 못했다.
“그……… 그게 이번 봄 북경에서 치른 회시의 결과가…… 나온 덕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정영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단목현우는 왠지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점점 더 멀고 아련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설마…….”
련의 청련수가 이렇게나 대박이 난 건, 련이 물건을 잘 만든 덕도 있겠으나 남은 반은 만송상단의 셋째 견위학이 향시에서 장원 급제를 하며 그리된 것 아니었던가?
“설마 견위학이 정말 회시까지 합격을?”
단목현우의 목소리에 견위학을 견제하는 긴장감이 어렸다. 정영은 다소 멍한 눈으로 단목현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떨어졌다더냐? 하긴 뭐 향시 합격해서 거인이 된 것만으로도 충분…….”
“……원 급제라 합니다…….”
정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단목현우의 뺨도 파르르 떨렸다.
“아, 아니지?”
“자, 장원 급제라 합니다! 견 공자께서 회시에서도 회원(會元, 회시의 1등)으로 급제를 하셨는데 이후 황제 폐하 앞에서 시험을 치르는…… 전시에서까지…… 장원 급제를…… 하셨…… 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정영의 목소리가 띄엄띄엄 흩어지는 와중에도 단목현우는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생각에 빠졌다.
‘이걸 이길 수 있나?’
련의 숙부는 자신뿐이라고 기고만장했는데 지금 견위학은 향시에 회시에 전시까지 전부 휩쓴 삼원(三元)이 되었다. 역사상 몇 명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 된 것이다.
그럼 자신도 그쯤은 되어야 체면이 서지 않겠나?
‘무림인으로 이 나이에 비슷한 성취라고 하면 대체 어느 정도인 거지?’
갑자기 막막해지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그러나 련이 그의 속도 모르고 손뼉까지 치면서 기뻐하는 게 아닌가.
“정말 잘됐네! 그럼 집으로 돌아가서 우선 어머님한테 안부 인사 올리고, 그다음에는 만송상단에 축하 인사를 보내야 하려나? 선물은 뭘 보내는 게 좋을까요? 고모부한테 부탁해서 멋진 그림을 그려서 보내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숙부?”
“그건…… 좋은 생각 같구나…….”
“우와! 견 아저씨가 시험에 붙은 거예요?”
“그렇대. 비아도 축하한다고 편지를 써 볼까? 글자도 다 외웠으니까.”
“네!”
단목비가 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단목현우는 ‘어떻게 해야 삼원을 이길 수 있나?’에 대해 고민하면서 착잡한 눈길로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았다.
* * *
그러나 일행이 세가에 도착했을 때, 일행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어, 어머니! 어머니! 저 진짜 무사해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련은 팔을 양쪽으로 활짝 펼치고서 위지청 앞에서 뱅글뱅글 돌았고, 그사이 단목비는 눈물 쏙 빠지게 혼이 났다.
말도 없이 몰래 일행을 따라갔는데 남궁세가에서 그런 일까지 있었으니 응당 혼이 나야 했다.
그리고 단목현요와 단목현우는 죄인이 되어 고개만 푹 숙였다. 아이들의 보호자로 갔으면서 그런 사고가 났으니 면목이 없다. 아이들은 괜찮다고 해도 어른들은 괜찮지 않은 법이었다.
“아니, 세 분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그저 걱정이 되어서…….”
‘세 분’이라는 소리에 단목현요와 단목현우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과 비슷하게 면목 없는 자세로 묵묵히 서 있는 단목천기가 있었다.
“아가, 내 면목이 없다…….”
“사고가 일어난 걸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그래도…….”
“련아와 비아가 잘못될 거였으면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지 않겠습니까. 무사히 돌아왔으니 되었지요. 그래도 제가 아이들 어미이다 보니 걱정이 되는 마음이…….”
위지청의 눈가를 타고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어린 막내아들도 가출 비슷하게 빠져나가서 심장을 떨어지게 하더니 양주에서 그런 큰일이 있었다는 걸 서면으로만 전해 들은 그녀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표정이 안 좋기로는 위지청 곁에 서 있는 석반안도 마찬가지였다. 큰불이 났고 단목현요가 아이들을 구하려고 죽을 생각까지 했다는 얘길 들었으니.
“내당주, 내가…… 부족해서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심려를 끼쳤습니다.”
단목현요는 차마 석반안과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위지청에게만 조그맣게 사과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제가 걱정도 못 하게 하시려 그러십니까.”
“아무 일 없었대도 걱정했을 맘을 아는데 내가 어떻게 미안하지 않겠어요? 나라고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단목현요는 그렇게 말하곤 손을 움찔거리는데 그사이에 석반안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석반안의 눈가가 붉었다.
단목현우는 고개까지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낯선 곳에서 큰일이 났으니 모두 당황했을 텐데…… 아이들을 무사히 데리고 돌아와 주셔서 또 감사드려요.”
눈가가 젖은 위지청이 조용히 말했다.
련이 ‘어머니……’ 하며 조그맣게 칭얼거리면서 안겨 들자 위지청은 그런 련의 이마를 따라서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겨우 웃음 지었다.
잠깐 머뭇거리던 단목비도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안겼다.
그리고 련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던 만송상단 사람들 모두 다소 어색하게 구석에 박힌 채 조용히 서 있기만 했다.
* * *
“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구나.”
견위운도 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강 알고 있었으나, 사실 이 어린 소녀에게 어떤 이해하지 못할 불행이 닥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단목련은 도무지 그런 것에 꺾일 인상이 아니었다.
련이 방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면, 왠지 모르게 사특한 것들은 놀라 흩어지고 부정한 것들은 울며 뛰쳐나갈 것 같다고나 할까…….
그때 련이 견위운이 새로 지어온 옷으로 몸을 감싼 채 병풍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에이, 별일 아니었어요. 그보다 위운 고모! 오는 길에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요.”
금목서를 녹여 만든 것 같은 밝고 깊은 주황색 비단에 청록색 실로 수를 놓고, 함께 준비해 온 청록색 끈으로 머리를 묶었다.
“좋은 소식…… 아니, 련아. 옷이 정말 잘 어울리는구나. 만년 된 금목서 나무가 사람으로 변하면 이와 같을까?”
“청련수 많이 필요하세요?”
“아니…… 내 진심이었다…….”
견위운이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많이…… 정말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래, 맞아요. 위학 숙부께서 전시에서까지 장원을 하셨다면서요!”
“그 때야말로 아버지가 졸도하실 뻔했다.”
“저런.”
“그 덕에 내가 아버지 일을 많이 맡아 하느라 바빴단다.”
견위운은 피곤하다는 듯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련은 배시시 웃었다.
부친의 일을 맡아서 했다는 건, 견위운이 후계자로 거의 내정되었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바쁘신 와중에 세가에까지 와 주신 거예요?”
“나는 네 고모이니 네가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환영해 주는 것도 내 의무 아니겠느냐?”
견위운은 침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서도 들뜸이 엿보였다.
자신의 남동생이 잘해도 이렇게까지 잘하리라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련아야, 네 청련수 말이다. 네가 그 약은 사람을 그렇게 똑똑하게 만들어 주는 약이 아니라고 했지 않으냐?”
그런데 정말 아닌 게 맞으냐?
견위운의 질문에 련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건 아니라니까요. 그냥 정신을 맑게 해 주고 피로를 덜어 주는 거예요. 똑똑한 사람이 자기 실력을 다 발휘하게 해 주는 거지, 책 한번 안 펼쳐 본 사람을 장원 급제시켜 주는 게 아니에요.”
“그래……. 그렇겠지? 그런데 나도 도통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다.”
“위학 숙부께서는 청련수가 없었어도 장원 급제하셨을 거예요. 제가 운이 좋아서 옆에서 득을 본 거죠.”
련의 침착한 말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견위운은 한번 심호흡을 하곤 천천히 주판을 꺼내 들었다.
“그래, 그 ‘득’을 계산해야지.”
련은 양주로 떠나기 전, 위운에게 회시와 전시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판매량을 조절하는 게 좋을 거라는 조언을 건넸다.
견위운으로서는 견위학이 회시에서 낙방하면 아무래도 청련수의 판매에도 차질이 있을 테니 그 전에 최대한 많이 팔고 싶었으나, 생산자의 뜻을 최대한 받들어 최소한의 수량을 뒤로 빼 두기만 했었다.
‘젠장…… 그냥 련아 말 듣고 다 빼 뒀어야 했는데.’
장원 급제라니…… 심지어 향시, 회시, 전시를 전부 장원으로 급제한 삼원(三元)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