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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37)화 (137/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37화

‘홍린도 좀 작아졌던데.’

련은 한 손으론 백련을 쓰다듬으며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이마를 매만졌다.

물이 깨끗해지면서 토실하게 살이 오르고 색이 돌아와 반짝거린다고만 생각했던 잉어 홍린도, 돌아와서 살펴보니 기가 팍 죽어 있었다.

기만 죽은 것이 아니라 크기도 작아졌다.

‘물을 맑게 해 주면서 썼던 영기를 흡수해서 벌써 반쯤 영물이 된 건가? 그래서 내가 없으니까 작아지고? 작아져서 불쌍하긴 한데 그렇다고 다시 영기를 주다가 또 영물이 되면 그건 어떡하지?’

흑월은 자력으로 떠나갔다. 영물이 되면 한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련의 추측이었다.

그런데 잉어는 어떡한단 말인가? 오골계처럼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순간 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스, 스, 스…… 승…….’

“누이? 괜찮아요?”

“아니, 륜아야! 너 백련이 좀 돌봐 주고 있어. 나…… 나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누구지, 그, 아! 숙부, 숙부를 좀 보러 약당에 갔다 올게.”

“네? 같이 가면 되잖아요.”

“아냐! 백련이랑 놀아 주고 있어. 여기 있어. 금방 갔다 올게.”

련은 그대로 헐레벌떡, 약당이 아니라 단목현우의 처소로 달려갔다.

단목현우의 처소를 지키고 있던 그의 하인 문영이 련을 보고 조금 놀랐지만 침착하게 응대했다.

“아기씨, 주인님은 지금 약당에…….”

“아, 아니야. 숙부가 아니라 나 연못에 물고기 좀 보러 왔어.”

“아…….”

매사에 침착한 문영인데 그 화제에는 조금 당황했다.

홍린은 단목현우의 잉어이지만 련도 아끼는 걸 알고 있는데, 그 잉어가 경항운련 사이에 기운이 쇠하고 말랐으니 그간 잉어를 돌봐 온 문영도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내가 좀 보면 금방 좋아질 거야. 문영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할 일 하고 있어.”

련은 그렇게 문영을 내보내고는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곤 연못으로 향했다.

잉어 홍린은 련의 인기척을 알아채자마자 몹시 반가운 듯이 작고 좁은 연못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련은 안타까움과 답답함, 불안과 걱정이 섞인 눈으로 잉어를 내려다보았다.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작아진 걸 보고 놀라서 연못물도 맑게 정화해 주고 잉어 밥도 신경 써 주었는데…….

“너…….”

련이 조그만 목소리로 부르자 잉어가 꼬리를 날렵하게 움직여 물방울을 튕겼다.

련이 착잡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영물이 되거나 그럴 거 아니지……?”

물고기가 슬그머니 눈동자를 돌려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련은 이날 이때까지 그런 걸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보자마자 알았다.

“야! 너 진짜 그럴 거야? 너 영물이 되려고 그래?”

홍린이 느릿느릿 연못 안을 헤엄쳤다. 마치 사람이 할 말이 궁하면 말을 돌리는 것처럼.

“잉어면 뭐 화리(火鯉)가 되는 거야? 여긴 따뜻한 온천물도 아닌데. 그리고 화리가 되면…… 된다고…… 내가 너를 잡아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련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연못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몹시 슬픈 눈의 잉어가 잠깐 고민하는 듯 헤엄치더니, 뭔가를 웩 토해 연못 밖으로 뱉어냈다.

진한 갈색, 둥근 경단처럼 생긴 무언가였다. 그리고 련은 놀람과 질색이 섞인 얼굴로 누가 볼세라 얼른 경단을 다시 연못 안으로 밀어 넣었다.

“너 미쳤어? 내, 내, 내단을 토해? 빠, 빨리 다시 먹어! 빨리!”

내단을 토해 내곤 마치 10년은 늙은 듯 핼쑥해졌던 잉어가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자신의 내단을 꼴깍 삼키고는 금방 원기를 회복하여 쌩쌩해졌다.

련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잉어를 쳐다보기만 하다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벌써 몸 안에 내단까지 만들었으니 곧 누군가는 알아보겠지?’

“약당 간다더니. 여기서 뭐 해요? 저기서 문영이 엄청 눈치 보고 있는 거 알아요?”

“륜아야…….”

“왜, 왜, 왜요?”

품에 백련을 안고 나타난 화륜은 처음엔 련의 작은 거짓말을 질책하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련이 울상을 지으며 올려다보자 당황해서는 눈동자를 굴렸다.

“왜 그래요? 잉어가 마른 게 불쌍해서 그래요? 금방 살찔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

“나랑 잉어 방생하러 가 줄 수 있어?”

“…….”

“얘…… 더는 안 되겠다. 내보내야겠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잉어가 어디론가 가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설마 이 연못에서 그대로 승천이라도 해 버리면? 현령이 아니라 혈라곡의 혈귀들이 잡으러 오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화륜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입술을 한 번 안으로 말았다가, 숨을 크게 몰아쉰 다음 련에게 고개를 기울이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설마 흑월 같은 그런…….”

“……응.”

내가 방금 뭘 봤는지 아니?

련은 속으로 생각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자락에 묻은 흙먼지가 사르르 흩어졌다.

“이제 우리 세가는 식물 기반 의약품만 취급하게끔 정해야겠다.”

“……그런데 이건 약당주 잉어잖아요. 그냥 가져다 방생해도 돼요?”

“아…… 숙부가 서운해하면 어떡하지? 아니다, 서운해하시겠지? 하…… 산책하러 데리고 나갔다가 잃어버렸다고 할 수도 없고.”

“그것도 문제가 있는 핑계죠…….”

“일단 비가 오는 날에…… 서호에다…….”

“서호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하면 어떡해요?”

“부, 불길한 소리 하지 마!”

련이 화륜의 입을 찰싹 때렸다. 화륜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가 툴툴거렸다.

“자기가 다 키워 놓고 나한테 뭐라 해.”

“비 오는 날로 하자. 숙부한테는 내가 솔직하게 말할게. 외출하려면 어른도 있어야 하니까.”

“제 말은 들은 척도 안 해요? 에휴……. 그냥 잡아먹으면 안 돼요?”

련은 강한 비난과 충격이 실린 눈으로 화륜을 쳐다보았다. 잉어가 철썩 꼬리 짓을 하여 물방울이 튀었다.

“절대 안 돼. 이렇게 애지중지 키웠는데 어떻게 잡아먹어? 너 내공 필요해?”

“제가 필요하단 말이 아니라요.”

“내공 때문이면 나한테 말해. 알았지? 이상한 거 잡아먹지 말고! 사람이 필요해서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이익 때문에 동물 사냥하고, 그러면 안 돼. 못 써.”

“알았어요……. 아니 근데 다른 누가 필요하다고 하면.”

화륜이 또 도끼눈을 뜨고 훈수를 놓으려고 해서, 련은 손을 파닥거리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영단 같은 거 퍼다 주겠다는 거 아니니까! 하인 백 명 생겨도 영단 안 줘! 안 줘! 아니, 하인 안 만들기로 했잖아.”

“좋아요.”

“진짜 웃긴 애야.”

련이 화륜을 흘겨보며 투덜거리다가, 다시 맥 빠진 얼굴로 잉어를 쳐다보았다.

서호에 방생해 주겠다는 얘기가 나온 이후로 잉어의 눈동자에 한층 더 생기가 돌아 반짝거렸다.

* * *

‘이 노친네들 왜 이렇게 정정하지?’

백의명은 탁해진 눈동자로 두 노인을 쳐다보았다.

화륜에게 전신을 구타당하고 난 이후—추궁과혈— 백의명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의도치 않은 새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돌보는 아이가 생겼고—단목세가에서 방계 선발 때 서극림에게 상한 고기를 먹였다가 쫓겨난 단목준—, 그 탓에 주루를 떠나 교룡 객잔에서 새로이 일을 시작했다.

그 전에 비하면 수입이 확 줄긴 했지만 그래도 버틸 만은 했다.

일단 단목준도 나름대로 그를 거들어 심부름을 도맡은 데다가 그의 어르신이 알려준 것들에 대해 밤새 골몰하느라 유흥으로 새던 돈이 줄었다.

그러나 성장기 아이가 전낭에 만든 구멍은 컸다.

단목준은 한창 성장기라 쑥쑥 자랐고, 밥 한 그릇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서는 빈 숟가락만 매만지고 있는 꼴을 보면 한 그릇 더 먹여 주지 않고서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백의명의 형편을 빤히 아는 단목준도 더 안 먹겠다고 완강히 거부했지만 ‘안 먹을 거면 버리든가.’라는 소리만 남겨 놓고 자리를 뜨면 멀리서 허겁지겁 먹는 소리가 났다.

그 와중에 낯선 노인네들이 교룡객잔에 나타났다.

하나는 노인이라곤 믿을 수 없이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졌고, 다른 하나는 아무리 노인이라지만 이렇게까지 하얄 수 있나 싶을 만큼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한 쌍이었다.

그들은 동파육을 주문해 먹더니 갑자기 객잔의 숙수를 북경으로 보내니 천산으로 보내니 하며 난리를 쳤다.

그 뒤로 계속 객잔에 방을 하나 잡은 채 머물며 세월아 네월아 하는 중이었는데, 어느 날 그를 불러세우더니 은자 한 덩이를 쥐여 주면서 ‘이 동네에서 맛있다고 하는 만두를 구해다 매일 가져다 달라.’라고 했다.

그때 백의명은 광명이 비춘다고 생각했다.

이 노인네들이 무림의 고수라는 건 눈치가 있으면 모를 수가 없었지만, 분위기만으로 따지면 그들보다는 반로환동까지 한 자신의 어르신이 더 대단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잡아다 가르침을 하사한 인연이 있는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가 어떻게든 해 주지 않겠나?

거기에 만두나 몇 접시 가져다주는데 은자 덩어리를 주면, 백 접시도 구해다 주고 말고!

……라고 생각했다. 그 만두 타령이 하염없이 길어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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