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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38)화 (138/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38화

“아니 그런데, 여기 단목세가의 만두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그 집 아해들은 아직 아무도 태어나지 않은 게야? 아직도 먹어 볼 수가 없는 건가?”

머리가 새카만 노인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갑자기 단목세가 얘기가 나와서 등 뒤로 식은땀이 쭉 흘렀다.

“그건 애가 태어나서 그런 게 아니고…… 그 댁 아기씨가 몸이 안 좋았던지라 덕을 쌓으려고 했던 거지요.”

“몸이 좋아졌으면 감사의 뜻으로 만두를 더 돌려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일어나시고 더 돌리셨어요…….”

“에잉. 이 집 만두는 그저 그렇구만. 너는 내가 맛있는 만두를 가져오랬지 이렇게 피는 퍽퍽하고 속은 쥐꼬리만큼 든 것을 가져왔느냐?”

“그렇게 큰 쥐꼬리도 있습니까?”

“이놈 봐라?”

저도 모르게 욱해서 대꾸했던 백의명이 자신의 입술을 꾹 깨물고는 노인네들의 눈길을 피했다.

‘이 노인네들이 백도맹이 아닌 것만은 확실한데.’

멀쩡한 사람을 손끝으로 부려 먹으면서 트집 잡고 투정하는 건, 백도맹 무인의 체면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흑천련? 마천교?’

내심 그들이 어디 소속인지 열심히 가늠해 보고 있는데, 문득 백발의 노인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흠…… 자네가 이 객잔 소속이던가? 이 객잔 주인을 모시고 있다고 했지?”

“아니, 소속이라고까지 할 건 아니고요. 그냥 여기서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 아무 소속이 없나?”

“아뇨……. 소속이 또 아예 없는 건 아니고요…….”

“아 어딘지 똑바로 말을 해!”

“따, 따지자면? 굳이…… 따지자면 일단은 제가 하오문에 이렇게 얽힌 게 있는…….”

“아 세상 모든 거지는 다 개방 소속이고 점소이는 다 하오문 소속이지 뭔 쓸데없는 소리를 해?”

“제가 점소이는 아닌데요…….”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모양새를 보니 네가 제법 기개가 있구나. 다니는 사찰은 따로 있느냐?”

사찰 얘기가 나오자마자 백의명은 직감했다.

백도맹의 종교는 세 가지다. 정의, 불교, 도교.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뜻을 같이한다고 생각하는 자부심이 있기에 결코 이런 질문을 하는 일이 없다.

흑천련은 그런 것을 마음에 심지 않는 것이 그들의 교리라면 교리일 것이다. 자신이 하오문에서 조금 굴러 보았기에 더욱 잘 알았다.

누가 사찰 다녀왔단 얘기라도 하면 심약하다고 비웃을 뿐이었다. 비웃은 놈들도 한밤중 남들 몰래 이상한 불상 하나 손에 쥐고 ‘제가 부처님 천지신명 태상노군 구천현녀 옥황상제를 욕한 것이 아니고요…….’라고 웅얼거리긴 하지만.

그렇다면 이놈들은.

‘이 자식들 마천교구나!’

“있습니다. 저, 저 위에 있는 절 다닙니다.”

“하오문도 주제에 부처라도 되려고?”

그 말 뒤에는 기가 막힌 소리를 들었다며 비웃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흑발의 노인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싹수 노란 어린애 데리고 뭐 하나 했더니 덕이라도 쌓으려는 거였구만. 한데 네가 부처라니.”

“그건 제가 정말 덕을 쌓으려는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건데요…….”

백발노인이 빈 접시에 젓가락을 탁 올리며 말했다.

“그럼 너, 이 노부와 사찰 한번 같이 가자.”

“어, 어디, 어디에 있는 사찰인데요? 아, 아니, 그보다 왜 이러시는데요?”

“아 좋은 거 먹여 주려 그런다, 왜? 네가 이리 우리에게 충성을 다하니 그에 보답은 해야지.”

“저…… 다니는 절도 따로 있고 모시는 어르신도…… 이…… 있습니다. 별로 어르신들께 충성하지도 않았는데 대체 왜…….”

“뭐야?”

흑발 노인이 눈썹을 홱 치켜올렸다. 배신감이라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아니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그 어르신이 누군데? 누구냐?”

“아, 알아서 뭣 하시게요!”

“노부가 봤을 때 너와 너의 그 싹수 노란 것까지 감당할 데가 많지가 않다.”

“말씀이 심하시네…….”

“우리가 모시는 구천현녀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우시니…….”

“마천교도이신 걸 숨기지도 않으시네요.”

“이게 뭐 부끄러운 거라고 숨긴단 말이냐? 자랑스러운 일이면 자랑스러운 일이었지!”

“그런 것치고는 객실 안에서만 말씀을 하시는데…….”

“너 뭐라 지껄였느냐!”

못 알아들었을 리 없건마는 흑담이 벌떡 일어나 삿대질하며 외쳤다. 그 기백에 간이 다 졸아든 백의명이 얼른 중얼거렸다.

“아니,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이 아니라요…….”

흑천련과 마천교 그리고 백도맹이 무림맹의 깃발 아래에 모였으나 평생 달리 살던 이들이 생각과 터전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제 색깔을 숨기지 않고 돌아다니는 곳은 무림맹 본거지인 하남성 정도다.

그 밖에는 다들 제 구역에서만 기를 세웠다. 항주처럼 백도 무림이 득세한 구역에서는 흑천련도 마천교도 조용하기 마련이었다.

‘그보다 이 마천교 노인네들이 이 먼 항주까지 대체 왜 온 거지?’

순전히 거리가 지독하게 먼 탓에, 마천교도들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었던 항주 아닌가?

“어…… 어쨌든 저는 달리 모시는 분도 있고, 절도 다니고요, 마천교에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만두는 내일 다른 곳에서 구해다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백의명은 숨넘어갈 만치 빠르게 후다닥 말을 내뱉고는 빈 접시와 젓가락만 챙겨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 * *

단목현요의 남편이자 세가의 데릴사위로 들어온 석반안은 애당초 산서성에서 전장(錢場)을 운영하는 가문의 셋째였다.

그 전장에 고용된 무사들이 익힌 무예 정도도 익히지 못했고 성정도 유약한 편이라 그간 단목세가 안에서도 그럴듯한 입지랄 것이 없었다.

최근에야 련과 단목현요가 종종 부탁하는 일들을 거들며 작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그래서 재경각주 설관희가 따로 사람을 보내 그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기꺼이 그의 부탁에 응했다.

“세상에나. 이게 전부, 이번에 만송상단에서 또 보낸 것들이라고?”

“예! 아기씨께서 청련수를 만들어 주신 덕분에 삼원(三元)을 하셨다고, 감사의 뜻으로 보내 주셨지요.”

설관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이 물건들을 살펴보고 정리하면 되겠나?”

“예, 아무래도 진귀한 것들을 많이 보내 주신 것 같은데, 저희는 무구나 비급이면 모를까 이런 반짝이는 보물들에는 영…….”

“자네라고 모를 리야 있겠느냐마는, 아무래도 내가 서화에도 취미가 있으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기쁘겠네.”

석반안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눈치챘다.

보물들을 이렇게 받으면 가치를 셈하고 장부에 기록하는 것도 큰일이기는 했지만, 매사에 일 처리가 분명한 설관희가 못 할 일도 아니었다.

아마도 이 보물들의 주인인 단목련의 부탁이었을 것이다. 집안에서 겉도는 자신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련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드러내지 않고 창고를 돌아보며 물건을 살피기 시작했다.

‘만송상단에서 정말 기뻤나 보군. 하긴, 그냥 급제만 했어도 대단한 일인데 과거 시험 세 개에서 전부 장원으로 뽑혔으니…….’

만송상단 셋째가 향시를 치르기도 전에 그의 조카 단목련이 청련수를 쥐여 주며 ‘장원 급제자가 사용한 약’이 될 거라고 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휘주 상인들이 관직 얻는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는 거야 위쪽 전장 출신인 석반안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감사 선물로 왔다는 것들을 보고 있자니 그 열망과 기쁨을 알 만했다.

전장에서 대단히 부유하게 큰 그조차도 이만한 보물 모음은 본 일이 드물 정도다.

“……부.”

“……?”

“고모부!”

그중에 자수가 놓인 비단을 펼쳐 보고 감탄하고 있던 석반안은 조금 아래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크기가 큰 창고들 특유의 코가 시큰한 먼지 냄새가 사라지고 청명한 공기가 감돌았다. 석반안은 금방 반가운 미소를 그렸다.

“련아 아니니. 여기는 어쩐 일이야?”

석반안은 이 조카를 제법 좋아했다.

이 애가 자신을 가문과 융화되도록 돕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도도하고 새침하기만 하고 사람과는 도통 정을 붙이지 않던 딸이 항주로 돌아와서는 이 사촌과 친구가 되어 한층 발랄해졌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게 다 네 것이지. 내가 재미없는 질문을 했구나.”

석반안이 부끄럽다는 듯이 허허 웃었는데, 잠깐 마주 웃었던 조카가 주위를 살펴보더니 조금 긴장되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고모부…… 제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왜 그러느냐? 편히 말을 해 보거라.”

속내를 솔직하게 말할 줄 모르는 딸 단목성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석반안은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목련이 서호를 사다 달라고 해도 전 재산을 다 털어서 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지금 나보다는 련아가 더 부유하겠지만.’

“좀 어려운 일일 수도 있어요. 혹시 제 말이 너무 무례하다면 못 들은 걸로 해 주셨으면 해요.”

석반안은 조카의 당부에 좀 놀랐다가 그 내용에 숨을 죽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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