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41화
‘여기에 내기가 운용이 되면 장풍?’
알 듯 말 듯 오묘했다. 그 표정을 보고서 단목한소가 얼른 덧붙였다.
“보통 장법은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의 묘리를 가장 중시하지요. 말씀하신 벽공장도 떨어져 있는 상대를, 정확히는 그 상대의 내부를 공격하는 공부입니다. 깊은 경지의 내가기공이지요.”
“그러면 내 손을 떠난 내공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건가요?”
“얇은 실과 같이 가느다란 내공의 끈이 연결되어 있지요.”
“아!”
련은 눈을 반짝이고는 양손을 슬쩍 움직였다. 왼손으로는 균형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검을 운용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렇게 해서 손을…… 팟! 하면.”
련이 ‘팟!’이라고 외치는 건 어린애 장난처럼 가벼웠는데 맞은편, 그 손바닥이 향하는 곳에 앉아 있던 단목한소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련의 움직임은 분명 단조로워 보였는데 련의 왼손과 어깨에 아주 잠시 시선이 쏠린 사이 오른손이 펼쳐졌다.
단목한소 정도 수준의 고수에게 상대의 한쪽 손 움직임을 아주 잠시라도 놓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공격하신 거였다면, 만약 내공이 실렸다면, 이대로 벽공장을 펼치신 거였다면…….’
고개를 내리자 자신의 가슴팍이 보였다. 거기엔 심장이 있었다.
단목한소는 다시 한번 련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아주 가벼워 보였던 왼팔의 움직임에 왜 시선을 빼앗겼을까? 그건 그 왼손이 마치 공격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이 공격하는 무림인의 바로 그 형태로 보였기 때문에.
그래서 저도 모르게 신경이 쏠린 바로 그 찰나에 오른손이 펼쳐졌던 것이다.
‘장법을 배운 적도 없고 무보를 읽은 적도 없는 사람이 몇 마디 설명만 듣고…….’
이렇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했기에 막간을 이용해 설명을 해 준 것이었으나, 정말 파군장의 기본적인 이치를 홀로 깨치리라곤…….
“앗, 제가 배우는 데 신나서 실례를…….”
단목한소가 계속 얼이 나간 얼굴로 앉아 있자 련이 얼른 사과했다.
마차에 앉아 있는 같은 세가 사람한테 대뜸 공격하는 형세를 취한 셈이었다. 련의 사과에 단목한소는 상념에서 깨어나 얼른 손을 흔들었다.
“아니, 아니아니, 아닙니다. 조금 전 동작을 다시 한번만 보여 주실 수 있을지…….”
* 단목한소의 깨달음 5*
현재 행운 수치 : 79 / 120 (5▲)
* 정영의 배움 2 *
현재 행운 수치 : 81 / 120 (2▲)
* 단목현우의 배움 2 *
현재 행운 수치 : 83 / 120 (2▲)
련은 잠깐 놀라서 눈만 깜박이다가 웃음 짓고 말았다.
“조금 전에 한 거요? 그건 그냥 단검을 쓰는 느낌으로 흉내만 내 본 건데…….”
“괜찮습니다! 훌륭했습니다!”
“으음, 이, 이렇게?”
“왼손의 움직임은…….”
“상대의 의식을 일시적으로 이쪽으로 쏠리게 하면서 동시에 약간의 반동이지만 오른손의 출수를 돕도록……. 앉아서 하려니까 약간 부끄러운데, 어쨌든 그렇네요. 왼손잡이라면 반대로?”
련은 어렵지 않게 좌우를 바꾸어 그대로 시전해 보였다.
“약간 어색하네. 저는 실전에서는 못 쓸지도…… 연습을 해 봐야겠어요.”
련이 머쓱해하는데 단목한소는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장법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던 단목현우는 거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삼원(三元) 숙부가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조카 본인보다 못한 숙부가 되게 생겼다.
“아…….”
그사이에 단목한소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련을 쳐다보기만 했다.
련은 허공에 요란하게 떠오르는 행운 수치를 보곤 오히려 더 놀라서 그들을 돌아보았다.
이 바보 같은 손장난만 보고도 뭔가를 깨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장법도 공부를 좀 해 봐야겠는데?’
생각해 보니 무기가 없어도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점인가 싶다. 맨몸이 된 유사시에도 유용하고.
마차가 세가에 도착하자, 억수같이 내리는 비 사이에서 유모 장 씨가 련과 화륜을 맞이해 주었다.
“아유, 이 날씨에 바깥에 나갔다고 하셔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일개 유모라곤 해도 련의 안위에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유모 장 씨가 단목한소와 단목현우를 진중하게 쳐다보았다. 두 어른이 얼른 고개를 납죽 숙였다.
련이 얼른 유모를 뜯어말렸다.
“아니야, 내가 나가자고 했어. 비 오는 날 서호가 보고 싶어서…… 도중에 비가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어.”
“아가씨가 나가자고 하실 순 있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이 오냐오냐해서 비도 오는 날 데리고 나가서는 안 된다는 엄한 눈빛이었다.
“나 목욕! 목욕할래. 륜아도 목욕하자!”
련이 얼른 유모를 막아 주는 사이에 단목한소와 정영, 그리고 단목현우가 후다닥 도망쳤다.
* * *
“와.”
— 내가 상방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아는 대로 정리해 주마. 그러면 될까?
석반안은 련의 부탁에 놀란 듯했으나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며칠 밤이 지나기도 전에 책 한 권을 뚝딱 만들어 왔다. 련은 지금 그 책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그사이 화륜은 한 손으로는 쟁반에 찻잔과 찻주전자를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처소의 문을 닫고 발로는 작은 의자를 끌어와 문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는 묘기를 보여 주며 련 앞에 앉았다.
“그건 웬 책이에요?”
“고모부한테 표국 일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거 있잖아. 그걸 이렇게나 해 주셨어.”
잘 알지 못한다고 했던 것치고는 엄청나게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가 상방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지만 상방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주시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누이, 표국 일 하게요?”
“난 아직 아기인데 무슨 표국 일을 해?”
화륜이 수긍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세가에 껍데기만 남은 표국 하나가 있잖아. 그걸 좀 살려 볼까 해서.”
“그게 표국 일을 한다는 거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다른 어른들이 표국을 살려 보게 해 본달까?”
련은 머쓱하게 중얼거렸다. 화륜이 고개를 내젓는 사이에 흰 고양이 백련이 폴짝 뛰어 련의 품에 안겼다.
“아무래도 이번 북해에 갈 때는 백련이도 데려가야겠다.”
“으음.”
보통 고양이는 거주지를 옮기거나 산책을 하지 않지만, 이 특별한 고양이가 련과 떨어져 있는 동안 얼마나 작게 쪼그라들었는지를 생각하면 놓고 갈 수가 없었다.
화륜은 백련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북해…… 정말 많이 먼데. 꼭 가야 해요?”
“멀다고 할머니를 안 뵐 수는 없지.”
“할머니…….”
무척 낯설다는 듯이 화륜이 중얼거렸다. 련은 화륜에게는 조부모도 부모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아차 했다.
“그게, 할머니가 나 벌모세수 해 준 분들한테 영단도 주셔서. 빚을 진 것도 있으니까…… 가서 감사하다고 해야 해.”
“가족끼린 한정 없이 주는 거라면서 뭘 또 감사 인사를 하러 북해까지 가요?”
“가족끼리 주는 건 주는 거고, 감사한 건 또 감사한 거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나 때문에 내주셨으니까…….”
“그깟 내단이야 누이…….”
화륜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곤 고개를 홱 돌렸다.
“응?”
“아니에요. 북해 갔다 오면 겨울이겠다 싶어서요.”
화륜은 그렇게 말하며, 창으로 보이는 세가의 풍경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련은 그런 소년의 뒤통수를 헤집으며 큰 소리로 웃었다.
“갔다 오면 눈으로 조각을 해 보자. 토끼 만들어 줄까?”
“여긴 눈도 안 오잖아요.”
“어쩌면 올 수도 있잖아…….”
“그럼 전 오리로 만들어 주세요.”
“…….”
“아기 오리가 좋겠어요.”
련이 입술을 꾹 다물자 이번에는 화륜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백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백련이 화륜의 품에 폭 뛰어들어 안겼다.
“백련아, 오리 누이에게 눈오리 만들어 달라고 하렴.”
-야오옹.
백련이 턱을 당당히 들고 야옹 하며 울었다. 결국 련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 * *
“표국 인원을 확충하는 게 너무 이르지 않니? 차라리 우리가 북해에 다녀와서 뽑으면 어떠니?”
단목현요가 질문했다. 북해에 가기까지 일정이 다소 촉박했다.
“북해에 같이 가려고요.”
“뭐? 표사들을 데리고?”
“아무래도 호위가 더 필요할 테니까 겸사겸사 우리가 고용해서 데려가면 어떨까요? 표사들에게도 장거리 경험이 있으면 좋잖아요. 할아버지도 같이 가니까 어느 정도는 안전하기도 할 테고.”
운하를 타고 곧장 도착할 수 있었던 양주의 남궁세가와 달리 북해는 새외에 있다. 경험할 수 있는 일들도 차원이 다를 터다.
“흠. 그건 좋은 일이겠구나.”
“그렇죠?”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조용조용 얘기를 나누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단목한소에게 수업을 듣는 단목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슬땀을 흘리는 단목성의 눈빛은 진지하기 그지없고, 그런 단목성 곁에는 하인 하나가 물동이를 들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성아는 엄하지만 좋은 주인이라는 걸 잘 아는 하인이에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흐, 흐흠.”
방계 제자 모집할 때 있었던 사달이 보통이 아니었다 보니, 그때 남은 하인에 대해서도 단목현요는 아직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