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43)화 (143/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43화

“그 잘난 어르신 얼굴 좀 보자!”

“얼굴 좀 보자!”

“뜨허!”

백의명이 입을 떡 벌리고 양팔을 휘저었다.

“아, 아니, 남의 방에 왜! 왜 언질도 없이 이렇게 들이닥치면 어떡합니까!”

“에잉? 어린애잖아?”

“이 꼬마가 네 어르신이냐, 설마?”

“네놈이 이런 어린 도련님 말은 듣고 우리 말은…….”

삿대질하던 검은 머리 흑담이 영문도 모르고 흠칫하는 사이에, 흰머리 백담은 백의명을 쥐 잡듯이 잡으려는 중이었다.

“설마 너, 저 도령의 푼돈에 얽매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네가 그러고도 무림인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응당 무림인이라면 금전이 아니라 믿음과 무공의 성취에…….”

“배, 백담.”

“그래서 우리 만두도 안 가져오고 지금 저 도령 심부름이나 한…….”

“백담! 백담!”

“서로 훈계할 때는 말 끊지 않기로 했잖느냐!”

버럭 역정을 냈던 백담이었으나, 흑담이 자신을 보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꼬마 어르신이 왜…….”

그러나 백담 역시 흠칫했다. 가만히 서 있는, 이제 열 살도 되지 않은 듯한 어린 소년이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돌연 팩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또 이렇게 되나.”

그의 말과 동시에 흑담의 품에서 보잔이 툭 떨어졌다.

고요해진 방 안, 보잔이 제 스스로 끝없이 진동하며 떨어 대기 시작하는 소리만 웅웅 울려 퍼졌다.

“어? 어어?”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백의명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 * *

“어떻, 콜록콜록,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가 있어요!”

“아니, 훌쩍, 아니 이게, 훌쩍, 크흥!”

련은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화륜이 작은 천을 코에 대 주자 킁 하고 코를 풀었다. 화륜은 얼굴을 한껏 찡그린 채 손을 휘저으며 창문과 처소의 문을 다 열었다.

작은 향로에는 련이 쪼물쪼물 반죽하여 작은 찹쌀떡 모양으로 빚어 놓은, 향 덩어리 같은 게 타고 있었다.

“다 알겠다고 했잖아요!”

“아니, 다 알았지. 다 알고 했지. 했는데 대체 이게 웬 일이지?”

련은 눈과 코가 빨개져서는 중얼거렸다.

화륜이 사 온 향을 하나씩 피워 보고, 이제 좀 알겠다 싶어서 재료를 구해다 만들어 본 것은 좋았는데…….

“다 말린 다음에 피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홍수 나는 와중에 장작을 태워도 이렇게 연기가 나진 않을 텐데.”

“말렸어. 다 말린 건데.”

“부채질 삼십 분 했나? 그걸로는 누이 머리 감은 것도 다 못 말리는……악!”

화륜은 정수리에 꿀밤을 한 대 맞고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련을 노려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소맷자락으로 련의 코끝을 닦아 주었다.

“자던 잠도 다 깨겠다고요. 기상향이다, 기상향.”

“에잇, 킁. 청련수는 쉬웠는데…….”

련은 부채질을 하며 쉼 없이 정화를 돌렸다. 환기를 해도 마음이 답답했다.

‘영기를 너무 많이 넣었나?’

집안에 걱정으로 숙면을 못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숙부, 고모, 고모부, 어머니, 할아버지까지— 숙면향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이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청련수처럼 장원 급제한 사람을 써먹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청련수의 그 엄청난 매출을 단번에 끌어올린 건, 아무래도 과거 시험 세 개를 장원으로 급제해 버린 견위학의 힘이 컸다.

“일단…… 이걸 화산에 보내는 거야.”

“흠.”

화산파는 본디 도교 문파인지라 향을 태우기도 많이 태운다.

“이번에 우리 북해 갈 때 어머니는 섬서성에 들르기로 했거든. 오랜만에 외숙부도 만나고, 할머니가 주신 영단도 전달해야 하니까…… 거기에 내가 직접 만든 향까지 보내려고 했지. 그럼 외삼촌이 써 주지 않으실까? 그러면 외삼촌의 사부님도…….”

그녀의 외숙부는 화산파 대제자다. 즉 사부가 장문인이라는 얘기였다. 화산파 장문인이 써 주는 향이라면야 누구나 귀가 솔깃하지 않을까?

“그렇게 사가의 인연을 다 챙기면 도사라고 하기 어렵지 않아요? 정을 못 끊었다고 괜히 누이 외숙부만 혼나는 거 아닌가?”

“태상노군께서 가족 친지 다 버리고 혼자만 득도해서 좋은 세상 가라고 하진 않으셨을 거야.”

“…….”

“내가 돈 벌어서 다 우리 외숙부 잘되게 해 주려고 하지 누구 좋으라고 하겠어? 어쨌든 그렇게 화산파에 먼저 보내고. 그다음에는…… 내가 어떻게 소림사와 연을 만들어서 거기에 보내는 거야.”

소림은 불교 문파이니 또 향을 많이 태운다.

“화산이랑 소림에서 왕창 쓰는 향! 그렇게 입소문을 타서 많이 많이 파는 거야. 어때?”

“그 소림사와의 연은 어떻게 만드는데요?”

“내가 일단 소림사에 가. 가서…… 아니, 그래도 내가 단목세가 장손인데 인연 만드는 걸 걱정해야 하나? 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소림사에 가기는 또 언제 가고요.”

“……무리일까?”

“화산파까지는 어떻게 되겠는데 소림사는 약간…….”

화륜이 눈을 내리감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런 걸 보내면 화산파 장문인이 항주까지 달려올 것 같은데요.”

“…….”

좋은 의미로 달려오진 않을 것이다. 련은 코를 훌쩍거렸다.

“조향하는 방법을 따로 배우는 게 나을까?”

“그러게요. 지금은 거의 독 아닌가.”

“……독…… 독은 사천당문이 전문인데. 거기가 향도 잘 알려나? 그래도 인연이 있는데 좀 배워 보자고 비벼 봐?”

“당문하고 무슨…… 아.”

화륜은 아직도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향로에 물을 착 끼얹어 껐다.

“사천성이 얼마나 먼데 무슨 소리예요? 그리고 독공에 강하다고 향에도 조예가 있을지는 누가 알고. 또 괜히 뭐 그쪽에서 다시 혼사라도 진행하자고 하면요?”

“에이. 그럴 일은 없을걸? 내 약혼자였던 애도 진짜 똑똑하대. 그래서 당문에서도 우리한테 장가보내기 싫어서 어쩌지 어쩌지~ 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이 깨 준 거잖아.”

“그래도 보낸다고 하면요?”

“그건 그때…….”

그때 처소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정영이 안쪽을 향해 고했다.

“아가씨, 신유 왔습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얼른 이리 오라고 해.”

련은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주변 공기를 부채질했다.

‘정화, 정화!’

대충 매캐한 공기가 맑아지자, 련은 챙겨 온 함에서 작은 경단 같은 걸 하나 꺼냈다. 이번에 경항운련에서 받아온 여러 가지 영단 중 하나였다.

개수가 넉넉하니 하나씩 먹여 주며 흡수를 돕기 위해 매일 일과가 끝날 무렵이면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매신유의 차례다.

다소 사나운 얼굴의 소년이 옷차림을 단정히 하기 위해 애쓰며 안으로 들어섰다.

“왔어, 왔어? 오늘 훈련은 어땠어?”

“어렵고…… 뭐 그렇습니다.”

매신유가 목뒤를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그로서는 사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대답한 것이었다.

련에게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기도 부끄럽고, 그렇다고 이깟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고 할 수도 없으니 얼버무린 것인데 련의 곁에 있던 화륜이 미간을 찌푸리고 매신유를 쏘아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나 분명하게 읽혔다.

‘지금 아기씨한테 성의 없게 말이 짧다?’

매신유가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자신보다 어린 소년인데 왠지 등 뒤가 서늘한 느낌이었다. 그 어떤 험악한 인상의 어른에게서도 받아 본 적 없던 감각.

“그렇지, 뭔가 배우는 게 정말 쉽지 않지. 그래서 이거 먹으라고 불렀어.”

련은 개의치 않고 당과 권하듯이 영단을 권하며 방긋 웃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몇 명이 이걸 먹고 돌아왔기에 련이 불렀을 때 짐작했던 것이지만, 눈앞에서 보자니 가슴이 좀 답답했다.

“아가씨, 저 이게 뭔지…… 압니다.”

“응, 당과는 아니야. 좀 써. 그래도 참고 먹어야 쑥쑥 크지.”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매신유는 부담감 가득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 왜?”

“실력도 그렇고, 제가 직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가에 뭔가 기여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귀한 걸…….”

“기여는 사실 방계 모집에 참석해 준 것에서부터 벌써 기여해 줬어. 직계가 아닌 건 아무 상관 없어. 비아한텐 아직 안 줬는걸.”

“네? 왜요?”

“너무 어릴 때부터 이런 고영양 제품을 섭취하면 몸에 안 좋아. 신유는 아기는 아니니까 써도 먹어야지. 빨리 먹어.”

“아니, 그게 제가…….”

“나한테 큰 꿈이 있어.”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련은 옆에 서 있는 화륜을 한 번 노려본 뒤에 다시 말했다.

“내 꿈은…… 무사고 무재해 무병장수야. 무병장수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데 무사고 무재해는 너희가 힘을 내줘야 하는 거거든. 세가의 무인들이 강해져야 하니까.”

“무사고 무재해는 사실상 이미 깨진…… 아닙니다. 네, 노력이요.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매신유는 무심결에 반문하다가 가슴 섬뜩한 시선을 받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련의 하인이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