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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44)화 (144/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44화

‘아니, 자기도 약간 웃은 주제에!’

매신유는 조금 억울했으나 련의 앞에서는 매서운 말씨도 나오지 않았다.

련이 약간 뾰로통해져서는 접시를 내밀었다.

“조용히 하고 빨리 먹어.”

“넵.”

매신유는 작은 그릇 위에 올라간 짙은 갈색 경단을 쳐다보다가, 눈을 딱 감고 입에 넣었다.

쓴맛에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걸 꾹 참았다.

“운기조식! 지금 운기조식 하면 돼.”

열기와 냉기가 번갈아 휘몰아치는 가운데 련의 말을 듣고 얼른 가부좌를 틀었다.

곧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땀을 식혀 주는 것 같더니 등에 따뜻하고 작은 손이 닿는 게 느껴졌다. 그러자 요동치던 호흡이 차분해지면서 점점 더 련의 목소리가 멀게 울려 퍼졌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내가 도와줄 거야. 내가 아니어도 다른 어른들이 다 도와줄 거야.”

매신유는 그 말을 희미하게 붙잡으려 애쓰면서 생각했다.

실낱같이 가느다랗게 이어진 핏줄은 같은 혈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타인에 가깝고, 말을 예쁘게 하지도, 생긴 것이 곱지도 않은 자신인데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십니까?

어린 단목비가 먹기에는 약성이 너무 강하다면 몇 년 묵혔다 먹이면 될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련 본인이 먹을 수도, 단목현요와 단목현우가 먹을 수도 있지 않나.

어쩌다 족보 끄트머리에서 살아남았고 간신히 시험을 통과하여 여기에 남았는데, 자신에게는 남들보다 눈부신 재능도 반짝이는 재치도 없는데.

그냥 갚을 수 있을 정도로만 받아서, 나중에 자립할 수 있게 되면 받은 건 다 갚고 훌훌 털어낼 생각이었는데…….

어디선가 소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저 웃음이 꺼지지 않게 지켜 주면 지금 받은 관심을 다 갚을 수 있을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매신유는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을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매신유는 운기조식을 하며 의문도 함께 갈무리했다.

* * *

“그런데 정말 재경각부터 해도 괜찮을지요……?”

“다른 공사들이 시작되면 각주께서 관리감독 해 줘야 하니까.”

“그야 그렇긴 하지만, 가능하면 월영재부터 하는 것이…….”

“할아버지께서도 동의하셨으니까 걱정하지 마.”

련이 청련수로 돈을 벌었을 때 가장 먼저 하인들 숙소를 보수하고 추가 임금을 지급했고, 지금은 재경각과 접객당을 보수하고 증축하고 있었다.

“재경각은 말하자면 세가의 심장이잖아.”

세상이 돈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지만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감히 심장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터였다.

재경각주 설관희가 울컥한 눈으로 련을 쳐다보았다.

“아가씨…….”

“그러니까 일단 심장부터 정비를 하고 잘 가꾸어서…… 각주께서 할 일이 많아.”

“아가씨……?”

설관희의 눈동자가 떨렸다.

“보니까 우리가 팔아치운 논밭이랑 과수원이 많던데 그걸 좀 수복해야겠더라고. 당장 전부 다는 아니어도 차근차근히.”

“아!”

논밭과 과수원은 바로바로 큰돈으로 환원되지는 않겠으나 일단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수단이므로 되찾는 게 좋았다.

“그거랑 아이들 수련복하고 도구들 좋은 걸로 다 바꿔 주고. 그거 다 하고 나면 다음에 혈족들 처소 수리하고요. 증축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 내부도 간단하게 깔끔하게만.”

“……그걸 제가 총괄…… 합니까?”

“돈 쓰는 거니까 재경각에서 하면 되지.”

그리고 련이 말을 잇기 위해 입을 벌렸을 때 설관희는 종이와 붓을 가져왔다. 련의 말을 받아 적기 위해서였다.

“하인들 옷도 전부 두 벌씩 맞춰 줘. 통일감 있고, 움직이기 편하면서 튼튼하지만 보기에 예뻐야 해. 알았지? 편하고, 튼튼하고, 보기에 꼭! 예뻐야 돼. 옷 끝자락 따라서 단목세가 표식을 수놓은 걸로.”

소속감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높은 급료와 멋진 제복에서 온다!

“유성표국 표사들도 모집했지? 이 사람들 무복을 전부 맞춰 줘야 해. 이것도 움직이기 편하고, 튼튼하고, 보기에 좋아야 해. 세 가지가 똑같이 중요해. 알았지? 남들이 저도 모르게 돌아볼 정도로 멋있고, 활동할 땐 다른 옷이 생각나지 않게 편하고, 또 오래 입어도 튼튼하게.”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이건 고모님한테 사람 소개해 달라고 하면 잘해 주실 거야. ……그런데 이걸 다 할 돈이 될까?”

설관희는 붓을 입 끝에 물고 품에서 작은 주판 하나를 꺼내 빠르게 튕겼다. 차르르 주판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다 뚝 멎었다.

“어렵지 않겠습니다. 아가씨의 자산으로 이 정도는 충분히…… 다만 저희가 그간 팔았던 과수원과 논밭을 다 사들이지는 못할 듯합니다.”

“모든 걸 한 번에 다 할 필요는 없으니까 예비로 쓸 자금은 남겨 줘.”

“예, 아가씨.”

“그리고…… 또 여유가 좀 되면…….”

련은 약간 민망해하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보석이 좀 필요해.”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화제에 설관희가 눈을 크게 떴다. 련은 빠르게 말했다.

“옥, 강옥, 마노, 진주, 금강석, 녹주석, 단백석, 청금석, 녹송석, 석류석, 자수정…… 이런 걸로 만든 장신구. 너무 눈에 띄지 않게, 몸 이곳저곳 내가 많이 하고 다닐 수 있는 걸로 골고루. 반지는 불편할 것 같으니 빼고, 머리 장식이나 허리띠, 팔찌, 목걸이, 노리개 같은 거 말이야.”

“어…… 얼마나 필요하실까요?”

련이 작정하고 사치를 부리고 싶어 한다고 해도 응할 생각이었던 설관희였다.

그런데 련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치장을 위한 보석 장신구를 원한다기보다는 마치 내일 대식구 먹일 쌀알 개수를 헤아리는 듯 절박하고 진지하게 느껴졌다.

“이번에 만송상단에서 나한테 선물로 좀 보낸 것들이 있었잖아.”

“아, 그랬지요.”

하지만 무가의 아이에게 보내는 선물이라 보석이나 장신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거 두 배 정도 필요해. 내가 고를 거니까 상인이나 장인을 불러 주면 돼. 사람 가리지 말고 팔겠다고 오는 사람은 다 들여보내 줘.”

“아, 알겠습니다.”

지난 경항운련이 그녀에게 남겨준 경험이 있었다. 련은 이번 여행을 허투루 준비할 생각이 없었다.

‘내 머리 장식…… 한쪽에 두 개씩 해서 네 개 올리고, 팔찌도 양쪽 팔에 손목보호대 모양으로 만들어서 두 개, 발목에도 하나, 허리띠도 촘촘하게 만들어다…….’

그다음은 단목성과 단목현요였다. 현요라면 기껍게 받아 줄 것 같은데 단목성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그들에게도 보석 장신구를 들이밀 셈이었다.

그러면 긴 여행길에 영기가 넘칠 때마다 수습할 수 있지 않겠는가?

련의 눈동자가 의지로 반짝반짝 빛났다.

* * *

그리고 그날부터 련은 서고와 월영재에서 살다시피 했다. 첫째는 세가의 무공에 대한 책을 모두 읽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영단 제조법을 구상하기 위해서, 셋째는 남궁환이 필사해 준 책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세가마다 제각기 영단 제조 비법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건만 무림에 이름 높은 영단은 손에 꼽힌다. 그만큼 만들기 쉽지 않은 탓이다.

하물며 의각이 한번 날아가고 약당만 남은 단목세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영단 제조법이 몇 있긴 했으나 련이 봤을 때는 그렇게 훌륭한 영단을 만들 만한 방법이 아니었다.

‘우리 세가에서 그렇게 대단한 영단을 만들 수 있었으면 영단을 팔아서라도 세가를 좀 유지했겠지……. 아닌가? 괜히 집안에서 만든 영약 먹었다가 나만 더 빨리 죽었으려나?’

장손 한번 살려 보겠다고 없는 살림 닥닥 긁어모아 벌모세수까지 시키는 집안인데, 집에 그럴듯한 영약이 남아 있었으면 진작 먹여도 먹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차라리 별거 없었던 게 다행이네.’

그럼 어디에도 없는 영단 제조법을 어디서 알아내는가?

련은 뿌듯함이 가득한 얼굴로 적은 걸 내려다보다가, 속으로 남궁세가가 있는 남직례성 쪽으로 살짝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이번에 다양한 종류의 영단을 얻은 덕분에 사람들에게 하나씩 먹이면서 심안으로 이리저리 뜯어볼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방법도 이치도 배합비도 알지 못해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오늘 낮, 마지막으로 단목완에게까지 영단을 다 먹인 련은 오늘 하루 종일 탁상 앞에 앉아서는 심안과 조화로 이리저리 조합에 조합을 거듭한 차였다.

흡수할 때 힘의 손실이 적고, 꾸준히 섭취하는 경우에도 독성이나 중독성이 없고, 재료가 지나치게 까다롭지 않고, 제조가 쉬우면서도 효능은 특별하게!

‘이러니까 아무나 아무 데서나 영단을 만들지 못하는구나.’

일단 영기가 서린 영초나 영물의 내단을 기본 재료로 해서, 만드는 사람이 직접 내공을 소모해 재료끼리 결속을 다지고 그걸 또 영험한 곳에서 숙성시키기를 해야만 나오는 게 영단이었다.

숙성시킬 영험한 곳이야 련의 방이면 될 것이고, 만드는 사람이 소모해야 하는 내공도 내공보다는 영기를 직접 쓰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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