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46화
“련 아가씨, 정말 직접…….”
“응. 설 각주, 빨리 빨리.”
소녀의 재촉에 옆에 섰던 남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상인과 장인들을 살펴보곤 차례대로 한 명씩 불러왔다.
“강소운!”
“예, 예!”
처음 이름을 불린 상인이 얼른 앞으로 다가가 소녀 앞에 가진 보따리를 풀었다.
소녀는 두 호흡 정도 물건들을 살펴보다가 딱 하나를 집어 들어 대금을 치렀다. 후한 값이었다.
‘어라…….’
강소운은 남유평도 아는 세공사였다. 기본기는 튼튼하나 참신하지는 못하여 그가 만든 화려한 장신구들은 다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형태였다.
그러나 그런 그가 만든 것들 중에서도 남유평이 남몰래 ‘저것만은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옥을 매화나무 가지 모양으로 깎은 것이었는데, 꽃송이 하나 없는 형태라 몹시 수수했으나 잘 보면 가지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매력이 있다.
소녀는 남유평이 눈여겨본 그 옥을 집어 든 것이다.
도리어 강소운은 그것만은 팔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남은 물건을 챙겨 돌아갔다.
그 뒤로도 소녀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물건을 고르기도 했고, 정말 호화로운 걸 두고도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처음 보는 세공사의 물건을 전부 다 사기도 했다.
‘어떻게……?’
다들 의아해하며 웅성대는 가운데, 남유평을 비롯하여 몇몇 안목이 빼어난 사람들은 조용히 경악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아보는 거지……?’
조금이라도 보석의 질이 나쁘거나 세공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 건 결코 소녀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남유평이 남몰래 저건 가짜 녹송석(綠松石)이라고 생각했던 장신구도 소녀는 선택하지 않았다.
‘견 장궤님이 알려 주시는 건가?’
그런 것치고는 견위운도 뒤에서 놀라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차례가 왔다.
남유평은 그의 이름을 들은 저 재경각 각주라는 사람이 당장 그를 쫓아내더라도 침착하게 나갈 거라고 속으로 되뇌며 품 안의 상아구를 꺼내 놓았다.
그와 동시에 소녀의 얼굴 위로 찬탄이 흘렀다.
일류 장인이 최상급 상아를 깎아 만든 5층 상아 다층구. 빼어난 상아에 일류 장인의 세공이 깃들어, 보다 많은 영기를 실을 수 있다 : 영력 용적 24
지금 영기를 담으실 수 있습니다.
련은 감탄했다.
백련의 작은 앞발 정도나 될까 싶은 조그만 구는 다채로운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안에 구 하나가 더 들어 있고, 그 안에 또 구가 들어가 전부 다섯 겹의 구가 교묘하게 움직이고 있는 형상이었다.
련이 지금까지 이런저런 장신구를 많이 봤지만 ‘일류 장인’이라는 말이 붙은 건 처음이었다.
‘거기다 일류 장인이 세공하면 더 많은 영기를 담을 수 있다는 거지?’
같은 보석에 더 많은 영기를 담을 수 있다니?
련은 알고 있었다. 행복은 곳간의 크기에서 온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남 장인? 이걸 직접 세공했어?”
련의 질문에 남유평은 다소 얼빠진 얼굴로 련을 쳐다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공방에 소속되어 있거나 운영하고 있어?”
그렇다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낚아채 와야 한다!
세가 안에 넣어 두고 평생 갖은 옥과 금강석, 산호와 진주로 장신구를 만들게 해야 한다!
련의 눈동자가 번쩍번쩍 빛났다.
“예? 아, 아뇨. 저는…… 저…… 식기 수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서쪽 골목 끝에…….”
“뭐? 이 실력으로? 말도 안 돼. 혹시 음, 단목세가 전속으로 일해 볼 생각은 없어?”
“전속…… 이요?”
“어, 그러니까 우리 세가에 소속되어서 내가…… 세가에서 하는 의뢰만 받는 거지. 일감은 충분히 줄 수 있어.”
‘내 명줄이 달려 있으니까…….’
련은 마지막 말을 삼키곤 남유평과 눈을 마주했다. 남유평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멍한 얼굴로 련을 쳐다보았다.
“제가…… 단목세가의……?”
“내가 금은보화라면 죽고 못 살아서.”
“그, 그, 그게…….”
그러나 남유평은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련은 그 모습에서 왜인지 모르게 약여청을 떠올렸다.
처음 세가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을 때 약여청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굴면서 자신의 약점을 몇 번이나 말하려고 했었다.
“당신, 혹시 무슨…….”
“아이고, 아기씨! 그놈은 남의 값비싼 비녀를 부러뜨리곤 모르쇠한 데다 진귀한 산호도 몽땅 가짜와 바꿔치기했다가 걸려서 치도곤을 맞은 놈입니다요!”
그때 누군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남유평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자신이 몰락한 뒤, 항주 제일가는 세공사로 올라선 기연웅의 제자였다. 그는 이런 자리에 직접 오지도 않고 제자를 보냈다.
제자는 자신이 정의를 위해 나섰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순간 남유평은 맥이 탁 풀렸다.
지난 세월 동안 아니라는, 모두 그들의 거짓말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에 그 말들이 모두 닳았는지 아무 소리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틀렸다. 그렇게 여긴 남유평이 천으로 상아구를 덮으려는 찰나였다.
련 옆에 있던 소년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소년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작게 한숨을 쉬는 것도 같았다.
련이 부채를 들고 살랑살랑 부치다가 외친 사람을 향해 부채를 까딱까딱했다. 가까이 오라는 뜻이었다.
남자는 얼떨떨한 얼굴이었으나 조심조심 다가갔다.
“아, 아가씨. 제가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까 보여 줬던 노리개 다시 보여 줘.”
“예?”
순간 남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련의 곁에 있던 정영이 날카롭게 말했다.
“아가씨 말씀이 들리지 않으냐? 당장 가져온 물건을 펼치거라!”
그 말에 남자가 화들짝 놀랐다가 얼른 몸을 움직여 가져온 장신구를 펼쳐 놓았다.
련이 전부 구매하지 않고 돌려보냈던 것들이었다. 련은 그중에서 녹송석으로 만든 나비 모양 노리개를 가리켰다.
“이게 뭘로 만든 거라고 했지?”
“노, 녹송석입니다. 어, 호북성에서 가져온 최상급 녹송석인데 색이 깊어 푸른빛이 신비하고…….”
그때 견위운이 툭 던지듯 말했다.
“녹송석은 반으로 잘라 보지 않는 한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가 어렵다지.”
“예?”
남자가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가 그 녹송석 노리개를 내려다 놓고 부채를 접어 겨누었다.
“이게 진짜면 네게 값을 두 배로 쳐주마. 한데 이게 가짜면 어쩔 테야?”
“아니, 당연히 진짜인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남자가 간신히 대답을 하는 찰나에 련의 뒤에 서 있던 두 사람 중 하나, 단목한소가 벌컥 외쳤다.
“단목세가 앞에 감히 가짜를 들고 왔으니 그 죄가 가볍다 할 수 없다. 그 무도함을 어찌할 것이냐고 묻고 있질 않으냐!”
우렁우렁 울리는 목소리에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퍼드득 떨었다.
“이, 이, 이것은 기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세공하신 것입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남자는 자신이 세공한 작품이 아닌데도 몹시 억울하여, 단목한소의 거센 기세에 기가 죽었으면서도 더듬더듬 변명했다.
“저희 공방은 가품이라면 진품가의 열 배로 배상한다는 규율이 있을 정도로…….”
“거 좋다!”
“예?”
남자가 휘둥그레 눈을 뜬 순간, 단목한소가 좋다고 외친 바로 그때 련이 아주 가볍게 손을 움직여 부채로 노리개를 내리쳤다.
타아앙!
“으아아악!”
조금 날렵한 손짓이었을 뿐인데 정교한 나비 세공 장신구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정확히 반으로 쪼개졌다.
“이,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을……어?”
그런데 반으로 쪼개진 나비의 단면이 기묘했다. 푸른 부분은 겉면 조금뿐이고, 안은 새하얀 색이었다.
련이 반쪽을 들어 보이자 아직 남아있던 상인과 장인들이 웅성거렸다.
“어?”
“뭐야, 뭐야?”
“……저건 녹송석이 아니라 백송석 아니야?”
“기 장인이 가짜 녹송석을 썼다고?”
짙고 푸른 색깔 위로 검은 금이 가 있는 녹송석을 흉내 내기 위해, 흰 돌덩이나 다름없는 백송석에 푸른 물을 들여 쓰는 수법이었다.
쪼개어 단면의 흰 빛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워 더욱 악질적이었다.
“아, 아니, 이게, 이게 무슨…….”
다들 경악한 얼굴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가장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건 그 장신구를 가져온 남자였다.
남자는 무례한 것인 줄 알면서도 손을 덜덜 떨며 소녀가 쪼갠 장신구를 들여다보았다.
“이, 이게, 이게 어떻게…… 어떻게 가짜일 수가……? 어떠…… 어떻게…… 아니,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럼 네 눈에는 이게 무어로 보여?”
“이, 이건…….”
“진품가의 열 배로 배상한다 했지? 그 값을 치르려면 너희 공방의 기 장인이라는 자를 불러와야겠네.”
그 뒤로 몇몇 장인과 상인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짐을 챙겨 들고 후다닥 도망치듯 세가를 빠져나갔다.
아마 가짜 보석을 챙겨 온 자들일 것이다.
남은 사람들만 묘하게 당당한 눈치로 혀를 차는 와중에 남유평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련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