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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47)화 (147/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47화

“이 녹송석이 가짜인 걸 어떻게 아셨…… 습니까……?”

“남 장인도 보고서 알지 않았어?”

“그야 저는…….”

녹송석을 아무리 잘 흉내 냈다고 해도 그 빛깔의 광채에 오묘한 차이가 있다.

다른 사람은 구분하지 못해도 남유평 그만은 알아볼 때가 있었다.

“하긴, 그대는 대단한 장인이니까 보자마자 알아봤을 거야.”

련이 천진하게 중얼거렸다. 순간 남유평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어떤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씻겨 내려갔다.

“설 각주, 이따 기 장인이 오면 제대로 처리해 줘. 감히 단목세가 앞마당에서 가짜를 들이민 패기를 칭찬해 줘야지. 그리고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덮어씌우려 들 수도 있으니까…….”

기 장인의 제자라는 남자는 아직도 가짜 녹송석 장신구를 들고 망연자실한 얼굴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설관희가 엄한 표정으로, 그러나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지요.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우리 상단에서도 그와 거래하던 것들을 모조리 반품해야겠다. 조 장궤, 처리해.”

“예! 아가씨.”

견위운의 사람인 만송상단 장궤 조정봉이 조르르 다가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래도 누가 일부러 누명을 씌운 것 같은데…….”

련이 좌중을 가볍게 훑어보며 말했다.

“그것도 함께 알아보지. 걱정하지 말아라, 련아야.”

남유평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설관희가 사람들을 불러모아 일처리를 명령하는 사이에 견위운이 복잡한 표정으로 그런 남유평을 바라보았다.

“남 장인.”

“네, 네…….”

“그간 고생 많으셨소.”

“저는…….”

남유평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굴러갔다. 허무와 기쁨, 슬픔과 원망, 안도와 불신이 어지러이 교차했다.

“저는, 그가…… 기 장인이 왜 가짜를 썼는지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남유평이 가장 처음 한 생각은 ‘이제 그의 차례다’라는 것이었다.

이제 기연웅은 남은 평생을 가짜 보석을 썼다는 멍에를 쥐고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불신과 증오의 파도 사이를 넘나드는 낡은 유목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연이어 든 두 번째 생각은 ‘대체 왜?’였다. 남유평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몰락한 뒤 항주 제일의 세공사가 된 기연웅이 대체 왜?

세공 실수와 가짜를 진품으로 속였다는 누명을 쓰고 밥그릇을 고치는 일을 전전하는 자신을 쓰레기 보듯 했던 그가 대체 왜.

“남 장인, 남을 해치는 자의 마음을, 해치지 않는 자가 어찌 헤아리겠소?”

“아…….”

견위운은 언젠가 스치듯 본 적 있는 그 기 장인이라는 작자의 눈동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줄도 모르는 머저리들에게는 진짜가 아깝다는 그 오만방자한 생각을 어찌 모르겠는가.

“험한 세상이지요. 천지신명께서는 무정하시고, 강호의 모든 억울함이 전부 풀리지 않고 모든 죄가 전부 벌 받지는 않지만…….”

견위운은 자신의 명을 받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한 조정봉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세가 사람들을 움직이는 설관희를, 그리고 진짜와 가짜를 알아본 련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이따금 굽어살피실 때가 있기도 하구나, 싶소.”

남유평이 멍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상아구를 바라보았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조각들, 그 조각의 틈이 만드는 그림자 속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상아구, 그 속의 또 다른 상아구. 그것들이 조금씩 움직이며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일렁거렸다.

무정한 천지신명 아래에 험한 세상이 있건만 이따금 굽어살피실 때가 있다…….

“이게 다 남 장인이 포기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겠소. 이 상아구가 없었다면, 그래서 장인께서 여기까지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

그 말에 남유평은 찬물을 한 번에 마셨을 때 그 찬 기가 폐부에 퍼져나가는 걸 느끼듯 정신을 차렸다.

이 상아구가 있었어도, 그가 여기까지 왔더라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험한 세상은 여전히 험한 채였을 것이고 무정한 천지신명께 정이 있는 줄은 몰랐을 터다.

“일단 이 상아구는 내가 사고 싶어. 그리고 우리 세가에서 일하는 건? 마음먹었어?”

남유평이 말을 더듬었다.

“제가, 단목세가에서…… 그래도…… 되겠…… 될까요……? 저 사람이 얘기한 것들은 모두…….”

수리를 맡겼던 비녀를 부러뜨렸다는 얘기, 보석을 가짜로 바꿔치기했다는 누명들.

그가 마르고 닳도록 해명하다가 정말로 말라붙고 말았던 것들.

저 소녀는 그런 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인가?

그의 내면에 답을 주듯 련이 반문했다.

“그게 다 정말이었어?”

“아니, 아닙니다! 저는 한 번도 남을 속인 적도, 그런 큰 실수를 한 적도 없는…….”

“그럼 우리 세가에서 같이 일해.”

“아, 알겠습니다!”

남유평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진실된 대답을 들었으니 되었다는 것처럼.

그 일이 있고서 한 번도 그대로 수용된 적 없었던 자신의 말을 그냥 곧이곧대로 들어 준 소녀가 방긋 미소 지었다.

“아주 할 게 많아. 우선 커다란 옥이 하나 있거든? 곤륜산에서 온 건데.”

“마, 맡겨만 주십시오!”

* * *

남유평이 얼결에 고용되어 얼떨떨한 표정으로 재경각주에게 이끌려 가면서 자연스럽게 자리가 파했다.

견위운은 련이 골라 구매한 장신구들, 끌려가다시피 하는 남유평의 뒷모습, 그리고 기묘한 눈길을 던지고 사라지는 늙은 장인들의 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견위운이 오늘 이 자리에 동석한 것은 련이 직접 장신구를 골라서 구매한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었다.

‘행여나 누가 얕보고 속일까 걱정이 되어서 온 거였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자신보다도 보석을 보는 안목이 더 좋은 것 같았다.

가짜는 귀신같이 내치고, 좋은 물건은 무엇 하나 빠트리는 것 없이 쏙쏙 집어 오는데 옆에서 보면서도 놀랐다.

몇몇 장신구는 그녀의 눈에도 진짜 보석이 맞는지 분명치 않아 감정이 필요해 보였는데, 그마저도 련은 고민이나 의심 없이 집어 들었다.

견위운은 그것들 역시 감정하면 훌륭한 진품이라는 평을 들을 거라고 직감했다.

“남 장인은…….”

견위운은 묘한 감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누명을 썼다는 걸 알곤 있었지만.”

그러나 ‘혹시 모른다’는 의혹이 남아 그의 발목을 옥죄었다. 한 번 부러진 비녀는 돌이킬 수 없었으므로.

“저렇게 격이 다른 장인이 그런 실수를 했으려고요.”

련이 대꾸했다.

그걸 알아도 남들이 다 꺼리는, 지부대인에게 밉보인 장인을 기꺼이 고용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어려서 거기까진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인가?’

그러나 견위운은 순간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련이 그런 실수를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쪽은…… 삼원이 있지.’

향시, 회시, 전시를 전부 싹 쓸어버린 사람은 과거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난 뒤로 한 손에 꼽을 수 있었다.

그 삼원이 바로 만송상단에 있고 만송상단과 단목세가가 사이가 좋다는 건 하늘과 땅이 아는데, 아무리 지부대인이라고 해도 제 기분 내키는 대로 굴 수는 없을 터였다.

“좋은 옥이 한 덩어리 있는데 그걸 맡기면 될 것 같아서요!”

그러나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을 보자 련이 그런 계산을 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이쪽에서 나쁜 일이 없게 해 주면 되니까.

“그것으로 무얼 만들려고 하니?”

“노리개를 몇 개 만들어서 가족들하고 나누려고요. 그리고 주신 분이 원랜 팔찌를 만들라고 하셨던 거라서 팔찌도 하나 만들고……. 작은 구슬도 몇 개 만들고요!”

“흠.”

노리개, 구슬, 팔찌라. 견위운은 앞으로도 련에게 종종 보낼 선물 목록에 보석과 장신구를 조금 더 추가했다.

“그러면 이것도 다 샀으니까 청련수랑 백약청 마무리해서 보내는 것까지 확인하고 가실래요?”

“……!”

견위운은 화색을 숨기지 않고 방긋이 웃었다. 아마 남동생이 봤다면 못 볼 꼴을 본 듯한 표정을 지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련과 함께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견위운은 말했다.

“북해까지 먼 길인데 조심해서 다녀와야 한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맘 상하는 일이 있거든 내게 서신을 보내면 어떻게든 해결해 주마. 물론 집안 어르신들께서 먼저 손써 주시겠지만…….”

청련수의 기묘한 효능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곳을 꼽으라면, 단목세가를 제외하곤 만송상단일 것이다.

이 특별한 정유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똑같은 배합비로 만들어진 가짜와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도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에 대한 해답을 준 것은 부친인 견언조였다. ‘만드는 사람’이 다르지 않으냐고.

저 어린 소녀가 정유 담긴 항아리를 한 번 휘젓는 게 그렇게 다를 수가 있느냐는 의문은 뒤로 넘겼다.

주어진 행운의 까닭과 이치를 파헤치다가 손에 쥔 것마저 놓치는 얼간이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세상에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의 일들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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