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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52)화 (152/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52화

침묵 끝에 화륜이 질문했다.

“……왜요?”

“뭐, 뭐가 왜야?”

“이름을 대체 왜 그렇게 지었냐고요…….”

“뜻을 물어보면 되지 그렇게 탄식할 것까지야 있어?”

“뜻이 뭔데요 그럼.”

“번개가 번쩍! 하고 빠르니까 번쩍이로 할까 했다가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싶어서…….”

“아닌 것 같다 싶은 생각을 하긴 했어요?”

“나도 사람이야. 뭔가 좀 이상한 건 알아.”

“그래서 나온 결론이 번개는 좀 아니고, 번개가 아니면 천둥? 천둥이라 우릉이?”

“어? 어떻게 알았어?”

화륜이 뜨악했다가, 이젠 그 뜨악하기도 지쳤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라리 벽력(霹靂)이라고 하지 그래요.”

“와, 그거 좋다! 벽력. 멋있다. 그럼 륜아 말은 청천(靑天)? 둘이 합쳐서 청천벽력(靑天霹靂). 어때.”

“…….”

그런데 화륜은 잠깐, 눈을 내리깐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별로야, 이것도……?”

“……그런 거 아녜요. 그렇게 할게요. 맘에 들어요.”

“싫음 말아라.”

“맘에 든다고 했잖아요.”

화륜은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 련을 붙잡고 한참이나 달래 줘야 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련은 일부러 죽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서 단목성과 나란히 죽 한 그릇을 비우고, 피곤하고 졸린 척을 해서 단목성을 데리고 빠르게 침소로 들어설 수 있었다.

단목성은 자신의 상태도 모르고 련의 걱정만 하다가 련이 타 주는 백약청을 먹고 침상에 누워서는 가물거리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련아야, 단목세가의…… 딸들은…… 멀미 같은 거 안 해.”

“으, 으응.”

“그래도 네가 멀미하면…… 내가 말에 태워 줄 수도 있으니까…….”

“어어. 꼭 부탁할게.”

“그래…….”

이윽고 오래 지나지 않아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성아 잔다.”

련은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침소를 빠져나왔다. 비가 쏟아지는 중이라 희미하긴 했지만 어른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누이가 그렇게 신경 써도 사람들이 그걸 다 알겠어요?”

련은 화륜의 콧등을 때려 주고는 배시시 웃었다. 저녁 내내 단목성만 신경 썼더니 화륜이 뿔이 난 모양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윽. 그런데도 왜 이렇게.”

“우리 륜아도 내가 륜아 아픈 동안 얼마나 뭘 했는지 하나~도 모르는 걸 보면 진짜 아무도 모르나 봐.”

“뭐, 뭐라고요?”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돌봐 줘야지.”

련은 그렇게 말하곤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 앞서 걸어갔다. 화륜이 황급히 련의 뒤를 따라왔다.

“제가 아픈 동안 누이가 뭘 했는데요? 아니, 제가 언제 아팠는데요?”

“비밀인데? 이젠 생각도 안 나지? 왜 흑석초 구해 오다가 앓아누웠었잖아.”

“흑석초 구해 오다가 아팠던 거 아니거든요. 그냥 그럴 때였던 거라고요. 성장기엔 보통 아프기도 한다면서요? 아니 그런데 진짜 얘기 안 해 줄 거예요?”

화륜이 보채는 말에 련이 장난기를 섞어 소곤거렸다.

“사실 백약청을 한 단지 다 먹였어.”

“……장난치지 말고요.”

그땐 아직 백약청이 제대로 만들어지기도 전이었지만 련은 짓궂게 웃기만 했다.

련이 제대로 대답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은 화륜이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휴. 그건 그렇다 치고. 누이는 잠도 안 자고 어딜 가려고 하는데요?”

“여기에 오래된 사당이 있다고 하더라고. 거기 가 보게.”

— 야오옹.

“나보곤 종교 활동 하지 말라더니…….”

“아니, 옛 사당 찾아가는 게 무슨 종교 활동이야? 선조들을 기리는 거지.”

련은 그렇게 말하며 매와 같은 눈으로 산채 안을 훑었다.

황추혼이 슬쩍 꺼내고 지나간 사당에 대해 표국주 양금보가 부채주에게 슬쩍 물었더니, 너무 오래되어 관리도 어려운데 사당이다 보니 철거하기도 저어되는 마음에 내버려 두었다고 부말하는 걸 들은 차였다.

신경 쓰이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세가 사람들이 산적들이 내려오는 걸 기척으로 눈치챘다지만 단목천기의 반응은 마치 다가올 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다 사당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황추혼과 단목천기의 기묘한 분위기. 심하게 두근거리는 자신의 심장과 지나치게 빠르게 차오르는 영기.

‘여기에, 아마도 이곳 사당에 무언가가 있어.’

“남의 산채에 잠든 남의 선조들을요?”

“그게…….”

련은 굳이 꼭 그 사당에 가 보자고 우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서 눈동자만 팽팽 굴렸다.

‘거기다 어쨌거나 오래된 사원에 당도하면 조언을 해 준다고 했단 말이야!’

지난번에는 자신이 그 조언을 제대로 써먹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려면 오래된 사찰이든 사원이든 사당이든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 데 간다고 정말 좋은 일 생기고 그러진 않아요. 이상한 사람한테 무슨 소리 들은 건 아니죠? 전에도 비가 오는 날이 길하다고 그러더니…….”

화륜이 처마 바깥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비가 쏟아지고 있지만 특별히 길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 않으냐는 눈빛이었다.

련은 전에 한번 꼬치꼬치 캐묻던 단목현요를 막아냈던 수를 떠올리곤 슬쩍 시도해 보았다.

“……사실 난 그냥 구경해 보고 싶어서…….”

“…….”

갑자기 화륜이 움찔했다.

“그런 데 가면 조용하기도 하고…….”

“조용한 데가 왜 필요한데요.”

“아니, 그냥…… 마음 편해지는 명상 같은 것도 해 볼 수 있고.”

화륜의 표정에 더욱 불편한 감정이 어렸으나 이윽고 흐려졌다. 련은 놀란 표정을 지을 뻔했다가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게 통하네? 그냥 하고 싶어서 한다는 이유가 제일인 거야?’

“너도 같이 갈래? 그럼 내가 옥구슬 줄게.”

련은 주머니에서 은밀한 동작으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알아? 남 장인이 세공해준 구슬이거든.”

“알죠. 제가 바로 옆에 있었던 것도 아시죠?”

“이거 너 줄게.”

“사양하겠습니다. 전 필요 없어요.”

“씁.”

련이 인상을 찡그리고 쳐다보자 화륜은 결국 주섬주섬 옥구슬을 챙겼다.

아이 엄지손톱보다 조금 작은 옥구슬은 새하얀 색깔 위에 초록빛이 스며들어 신비한 느낌이었다.

“진짜 좋은 거야. 꼭 가지고 있어야 해. 알았지? 잃어버리면 안 돼.”

“알았다니까요. 그런데 사당을 간다고 해도 이 산채의 사당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요?”

“그걸 잘 모르겠다. 누가 오면 물어…… 어?”

말을 잇던 련이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다. 작은 여자애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어볼 사람 왔네요. 황 채주 딸인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아?”

“올라올 때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좀 들었어요.”

벽 너머에서 고개를 기웃대고 있는 여자아이는 키가 련과 비슷했는데, 많이 마르고 안색이 창백했다.

눈 밑은 퀭하고 입술은 버석한 모습이 련에게는 익숙했다. 한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

그 와중에도 차림새만은 채주의 딸이 아니라 어디 왕부의 공주처럼 호화로웠다. 바닥까지 끌리는 비단옷에 장신구까지.

장신구만 따지면 지금의 련과 크게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다.

황규온

특성 :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 헌신적인 / 꼿꼿한 / 온실 속 병든 화초 /

고민 : 열이 다 내렸으니 놀러 가도 될까? 이 애들은 누구지?

도움말 : 혈루(血淚)와 싸우고 있습니다. 힘을 보태 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황규온……? 혈루와 싸우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이지?’

련이 소매로 입을 가리고 조그맣게 속삭이듯 화륜에게 말했다.

“저 애…… 어디 아픈가 봐.”

“척 봐도 그래 보이네요.”

화륜은 조금의 감흥도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련은 황규온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

“……나도 꼭 저랬거든.”

“…….”

련은 그간 자신의 가족들이 휘말렸을 상심의 단면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채주 황추혼이 십삼천 중 제삼천의 천주 자리를 포기한 건 아픈 딸을 두고 산채를 떠나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였다.

련의 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련이 황규온을 향해 살며시 손짓하자, 병약해 보이는 소녀가 주위를 살피더니 조르르 다가와 언제 눈치를 살폈냐는 듯이 당당하게 물었다.

“너희 우리 집 손님이야?”

그리고 그 말이 나오자마자 련이 눈을 치떴다.

“요 녀석이? 너 몇 살이야.”

황규온의 뒤에 함께 따라온 하인이 황규온 본인보다 더 화들짝 놀랐으나 련이 누구인지 알아본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기만 했다.

“어? 나…… 나는 여덟 살…….”

련이 엄한 얼굴로 말하자 황규온이 화들짝 놀라더니 얼른 나이를 말했다. 련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럼 언니라고 해야지!”

“언니……?”

“그래, 난 열 살이니까.”

옆에서 화륜이 ‘늦게 태어났다고 서러워 죽겠네.’라고 꿍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련은 못 들은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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