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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54)화 (154/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54화

황규온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련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툴툴거렸다.

“아까까진 그런 사당 왜 가냐고 하더니.”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잖아요. 여긴 산채 주제에 넓기는 또 엄청나게 넓은데 괜히 헤맬까 봐 그랬죠.”

그 얘기에 장난스레 대꾸를 해 주고 싶었던 련이었으나 눈길이 다시 황규온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예요. 누이도 뭐 아팠다가 이렇게 벌떡 일어났다면서요?”

“그러게…… 그러게, 어쩌다 그렇게 됐어.”

그렇게 중얼거리던 련은 애써 정신을 챙겼다.

그렇다. 자신은 어쩌다 운이 좋아서 이렇게 되었다. 죽어서 땅에 파묻혔다가 재가 되어 흩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걸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사당까지 가 볼까?”

화륜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산을 서로 들겠다고 티격태격하다가, 화륜은 백련을 품에 잘 안아 들고 좀 더 연장자인 련이 우산을 들기로 했다.

갑작스레 손님을 맞이한 산채가 북적거린다고 생각했지만 본채를 벗어나 조금만 가장자리로 빠지자 금방 조용해졌다.

사방이 빼곡한 나무로 둘러싸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낱알 쏟아붓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리고, 어둑한 밤중에 물안개가 서려 모든 게 서늘하고 흐릿했다.

등 뒤에 누가 바짝 붙어도 모를 만큼 으슥한 기운이 돌았다. 흙바닥이 척척하게 젖어 드는 가운데 그나마 돌길이 깔려 있어서 진흙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누이.”

련은 거의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얼굴로 화륜을 돌아보았다.

여태 무신경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사당을 향해 가던 화륜이 련의 표정을 보고 도리어 더 놀랐다.

“왜…… 왜 그래요?”

“아니, 여기 너무 어둡고…….”

“그래서 등롱 가져왔잖아요.”

“어, 그래서 앞이 보이긴 하는데 빗소리만 들리니까…….”

차라리 쏟아지는 비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기묘하게 빗속을 뚫고도 보이는 바람에, 심장은 계속 두근거리고…….

련이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화륜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지금 여기가 무서워서 그래요?”

“아, 아니.”

“그러네. 무서워하네. 그런 거네.”

“아니라고, 건방진 꼬마 찹쌀 경단아. 진짜 아니야. 완전 잘 보이고 하나도 안 어두운데, 그런데 찬바람이 자꾸 부는데 여긴 너무 깊은 숲속이고, 나 이런 산속 별로 안 좋아한단 말이야. 신령한 기운도 자꾸만 점점 더 충만해지는 것 같고, 난 산속에서는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는데…….”

련이 중언부언하자 화륜이 혀를 찼다.

“그럼 그냥 거기 있지.”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어…….”

“아니, 그리고 산속에서 무슨 안 좋은 기억이 또 있는데 그래요?”

“……무슨 안 좋은 기억이냐고?”

순간 울컥해서 중얼거리던 련이 빠르게 내뱉었다.

“내가 산속에서 죽을 뻔했는데 누가 지나가더라고. 힘도 엄청 센 사람이었어. 그래서 제발 좀 도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 바쁘다고 쌩하니 가고 난 덩그러니 버려졌지. 그러니 내가 산속을 좋아하겠어?”

“대체 언제 혼자 산속까지 가서 그런 일을…… 아니, 내가 버렸어요? 왜 날 그렇게 보는…… 아니, 그게…….”

화륜이 미간까지 싸매고서 련을 쳐다볼 때였다. 련의 눈길이 화륜을 지나쳐 그 뒤로 향했다.

“아! 찾았다! 사당!”

— 야오옹!

“아니, 누이. 아까 그 얘기요. 누이를 버려두고 간 거 맞대요? 뭐 몰래 일을 거들어 주지 않았을까요? 그렇다고 뭐 산속이 굳이 싫어질 것까지야…….”

련은 옆에서 화륜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물안개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등불 두 개를 쳐다보았다.

‘묘하게 저기만 공기가 탁한 느낌…… 정말 귀신 나오는 사당 같은 건가?’

영기가 있으니 무엇 하나 무서울 것 없다고 생각해서 여기까지 온 것인데 막상 가까이 가자 조금 섬찟했다.

‘귀신이 없다고도 말 못 하는데.’

자신도 이렇게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기까지 하지 않았나?

죽고 나서는 또 어땠나. 비록 다 잊고 돌아왔지만, 삼라만상 오만 곳을 헤매며 볼 꼴 못 볼 꼴 다 보지 않았나.

‘여기에도 누가 헤매고 있는 건 아니겠지?’

사당 안에 도착해서 우산을 접고 주위를 살펴보자, 한껏 어두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내부가 속속들이 보였다.

격렬한 전투가 있었던 것 같은 흠집들,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어디선가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목재들이 습한 어둠 속에서 홀로 팽창과 수축을 하며 삐거덕거리는 기괴한 소리.

‘저건 핏자국 같은 거 아닌가?’

련의 목뒤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너무 빨리 뛰어서 얼굴이 빨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자신의 뺨을 만져보자 비가 내리는 밤공기를 쐬어 차갑기만 했다.

“흠. 구천현녀를 모시던 사당 같은데요?”

“아, 그래?”

“하긴, 산적들이 무슨 근본이 있어서 조상을 모시겠어요? 태상노군 아니면 구천현녀 같은 거겠죠.”

“산채 한가운데서 할 발언은 아니지 않니…….”

과연 화륜의 말대로 사당 가운데에 커다란 구천현녀의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양손에 하나씩 뭔가를 쥐고 있는 듯한 모양새의 여자.

련은 묘한 얼굴로 그 조각상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조각상의 얼굴은 알아볼 수가 없었고, 뭔가를 쥔 모양새의 손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보물 같은 건 이미 털렸나?’

주위를 한번 쓱 돌아본 화륜이 련을 향해 뭐라 말하려다 말고 눈을 치켜떴다가, 련의 한쪽 손을 붙잡았다.

“맙소사, 그 비를 다 맞았어요?”

“어?”

련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무슨 얘기인지 눈치채곤 자신의 어깨를 흘끗 쳐다보았다.

화륜과 백련에게 우산을 좀 더 씌워 주려고 하다 보니 자신의 반대쪽 어깨가 푹 젖어 있었다.

갑자기 맥이 탁 풀렸다. 여기서 지금 어깨에 비 좀 맞은 게 중요한 일인가…….

“아니……. 다 맞은 것도 아니고. 난 어른이니까.”

“어른이면 자기 몸부터 잘 챙겨야죠. 이러려고 자기가 우산 들겠다고 한 거죠? 대체 이런 사당에는 왜 오려고 하는 거냐고요. 무서워 죽겠다고 하면서.”

“아기 찹쌀 경단이 젖으면 상한단 말이야.”

“제가 진짜 아기도 아니고 찹쌀 경단도 아니거든요.”

그 순간이었다.

련의 눈앞에 역한 탁기가 부옇게 스치며 눈앞에 먹으로 쓴 듯한 글씨가 빠르게 떠올랐다.

선경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글씨였으나 주위에 부연 빛이 돌아 읽기 어렵지 않았다. 백련이 낮게 울었다.

— 그르릉!

* 심안 7성 성취(1▲) *

장점을 발전시킬 방도를 볼 수 있게 됩니다.

단목련

특성 : 무한한 영기의 샘 / 조금 더 알게 된 / 악의 추모를 받은 / 온실 속 병든 화초

조화 : 7성 -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심안 : 7성 – 장점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정화 : 3성 - 사기를 정화할 수 있습니다.

내공 : 습득 불가

영기 : 59 / 120

— 샘의 근원이 남긴 흔적에 도착하였습니다. 오염을 정화하시겠습니까?

* * *

손님 대접이라곤 했으나 온 길이 피로하고 갈 길이 멀다 보니 연회도 너무 늦지 않게 파했다.

아무래도 딸의 몸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염려한 단목현요부터 자리를 떴다. 황추혼은 그 마음을 잘 아는 듯, 부채주를 일러 단목성을 살펴보고 약을 달여 올리라 명했다.

“마 부채주가 의술에 나름 조예가 있습니다.”

단목천기는 흑천련의 산적 나부랭이가 의술 운운하느냐고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조용한 눈길로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황추혼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딸이…… 몸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백방으로 약과 사람을 구하다 보니 얻은 인물이지요.”

단목천기의 눈이 깊어졌다. 아픈 혈육을 둔 절박한 심정에 대해서 그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무리라.

“그래도 아이 병이 낫거든 상단 일이라도 가르쳐 볼까 합니다. 제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가 명석해서요. 글자도 곧잘 외고, 주판 없이도 숫자를 척척 계산하지 뭡니까. 제 의제(義弟)가 상단 사람과 연이 있다 하여서.”

덧없는 희망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하는 사람의 애달픔이 흐리게 드러났다.

채주의 딸이 왜 상단의 일을 배우겠는가?

결국 무공을 익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딸의 병이 낫는 미래도, 그 딸이 자신의 절기를 물려받는 미래도 황추혼에게는 막연하기만 한 것이다.

단목천기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아이의 병명도 모르는가?”

황추혼은 고개를 저었다.

“8년쯤 전…… 혈라곡의 마지막 잡귀들 틈에서 구해 낸 아이인지라, 아마도 그 탓인가 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때도 그놈들이 남아 있었군…….”

“지금도 어딘가에 버러지처럼 남아 있겠지요. 남궁세가에도 나타났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단목천기의 눈에 묵직한 빛이 감돌았다. 이 북쪽의 산채에서 남궁세가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건.

“그 상단과 연이 있다는 자네 의제가 흑천련 제삼천의 부천주 은소강이라지?”

이번에는 황추혼의 눈동자에 광채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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