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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59)화 (159/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59화

“아버지가 슬퍼하셔?”

“……네…… 우리 아빠 엄청 많이 울고…….”

련은 황추혼이 대성통곡하는 장면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남의 눈에서 눈물을 뽑는 것이 더 전공인 것처럼 보이던 험악한 얼굴의 산채 두목이 펑펑 우는 것.

“우리 아빠 정말로 맨날 울어서…….”

“진짜? 어디에서?”

“제 방 앞에 웅크리고 숨어서요.”

그렇게 말하는 황규온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련은 그런 규온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며 정화를 일으켰다.

“어……?”

어디선가 청명한 바람이 불어오자 황규온이 눈을 크게 떴다. 오래 아팠으니만큼 몸의 미약한 변화도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다.

오염된 사당을 정화하며 정화의 성취가 올랐을 때, 련이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황규온의 몸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신체를 정화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러나 곧 련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안 되는구나.’

신체를 정화할 수 있다는 것이 병을 정화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염과 사기(邪氣)를 몰아낼 수는 있어도.

련은 가라앉으려는 표정을 애써 갈무리했다.

“그래도 이전처럼 심하게 아프지는…… 않을 거야.”

그간 고통에 억눌려 왔던, 마르고 연약해진 몸을 정화했으니 완전히 낫게 해 주진 못해도 아픔을 이겨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혈루가 대체 뭘까. 이게 뭔지 알기만 하면 될 텐데.’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정화로도 어쩔 수 없는 것. 황규온이 줄곧 싸우며 버텨 온 것…….

그러나 모르는 걸 그저 골몰한다고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련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기로 했다.

“온아야, 너 내가 준 방울 있지?”

“네…… 네!”

황규온은 황급히 이불 더미를 뒤져 그 아래에서 방울을 꺼냈다. 잘 때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련은 그 방울을 한번 매만지고는 다시 건네주었다.

“이거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해.”

“네!”

황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루를 없앨 수만 있으면, 온아도…….’

그때였다.

방울이 혼자서 파르르 떨리며 우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황규온의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새카만 피였다.

“어어…… 온아야!”

코 밑을 쓱 훔쳤던 황규온은 손에 묻은 게 피인 걸 보고 잠깐 놀랐지만 얼른 곁에 놓인 수건으로 얼굴을 감췄다.

“가, 가끔 이래. 이러옵니다. 별거 아니옵니다! 저 괜찮사옵니다!”

황규온은 괜찮다고 하는데 련은 새파랗게 질려선 황규온에게 바짝 붙어 아이의 안색을 살폈다.

황규온은 피가 묻은 얼굴을 보이기 창피해했지만 련이 강경하게 그 손을 잡아 내리려 했다.

“잠깐 온아 얼굴을 보자. 금방 그친 것 같기도…… 어?”

영기가 소모되었습니다! -35

갑자기 영기가 쓰였다는 얘기에 련이 눈을 깜박거리는데, 동시에 황규온도 놀라서 련을 쳐다보았다. 련의 코에서도 피가 흘러내린 것이다.

“련아야!”

“언니!”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련도 양손으로 떨어지는 핏방울을 받치며 눈동자만 굴렸다.

황규온이 조금 전 자신이 썼던 천으로 다급히 련의 손부터 닦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곤 련의 코에 들이밀었다.

“언니도…… 아프시옵니까?”

황규온은 편찮으시냐는 말은 아직 모르는 듯했다. 그렇게 묻는 규온의 얼굴에는 검은 피 얼룩이 남아 있긴 했지만 더 이상 피가 나진 않았다.

련은 천으로 코를 틀어막은 채 고개를 흔들었다.

‘온아는 금방 그쳤는데 왜 갑자기 내가…….’

단목성은 얼굴이 파랗게 질렸지만 굳건한 표정으로 련을 살폈다.

“의원 불러와야겠어.”

“아니야! 괜찮아. 진짜 금방 그쳐. 걱정하지 마.”

련은 반쯤 고개를 든 채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단목현우는 간신히 심마를 떨쳐냈고 단목천기도 이제야 다시 일어섰는데 이런 꼴을 보였다간 무슨 사달이 날지 알 수 없었다.

거기다 단목현요도 사실은 정이 깊은 성격인 걸 알고 있다. 그녀 역시 가만있지 않으리라. 어쩌면 여기서 항주로 다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련은 거의 울 것 같은 황규온을 보며 피가 겨우 멈춘 듯하자 천으로 남은 피를 닦아 내며 말했다.

“나도 너랑 비슷했어.”

“저와……?”

“응, 그래서 어머니도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숙부도…… 고모도 많이 걱정하셨어.”

“지금은 그런 것 같지 않으시옵니다. 아니, 조금 전에는 그런 것 같았지만.”

코피를 덜컥 흘리기 전까지는 건강해 보였다는 얘기였다.

황규온의 눈동자에서 묘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고통의 모양새는 다를지라도 똑같이 아팠다가 나아진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어쩌면 자신도…….

“온아 너도 나중에는.”

응원의 말을 하려던 련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규온과 자신이 쓴 천에 묻어 있어야 할 검은 핏자국이 없었다.

천은 쓴 적 없다는 듯 그저 새하얗기만 했다. 다만 어디서 난 것인지 모를 잿가루가 사르르 날리더니 조금 열려 있던 문틈 새로 멀어졌다.

두 소녀의 얼굴에 말라붙었을 핏자국도 없었다.

황규온 역시 알아챘는지 자신의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손을 내려다보며 놀라서 눈만 끔벅거렸다.

“어어? 피가…… 멈췄네…….”

“멈춘 게 아니라 없어…… 졌는데?”

잔존 혈루 소멸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행운 수치 : 94/120 (4▲)

눈앞에 선경의 글씨가 펼쳐졌지만 당황한 규온의 얼굴 위로 겹쳐져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련은 다급하게 규온의 흰 침구를 펼쳤다. 그 위로 선경이 다시 떠올랐다. 련이 보고자 했던 규온에 대한 것까지도.

특성 :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 헌신적인 / 꼿꼿한 / 온실 속/ 병든 화초 /

고민 : (백지)

고민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피를 닦아 냈더니 그게 사라졌는데!

련은 그것보다 다른 것에 집중했다.

‘원래 온아는 병든 화초였는데!’

그 특성이 없어졌다.

병든 화초가 아니라 그냥 화초다. 그냥 화초. 더 이상 아프지 않은.

련은 황규온의 얼굴을 다급히 훑어보았다. 마른 뺨은 여전했지만 병색으로 거뭇하던 아이의 안색에 빛이 돌기 시작했다.

핏줄을 타고 돌던 은은한 통증까지 완전히 사라진 황규온의 눈동자에 빛이 돌았다.

“나…… 지금…… 나…….”

자신의 얼굴, 목, 가슴팍을 더듬거리던 황규온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자신을 걱정하는 부친 생각에 차올랐던 것과는 다른, 환희의 눈물이었다.

“언니, 나, 나, 언니처럼 나도…….”

“나았어!”

“나았어?”

항상 냉철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단목성도 이 순간만은 기대로 차오른 얼굴이었다.

“나았사옵니다! 나았어! 나 이제 하나도 안 아파!”

황규온이 벌떡 일어나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작은 얼굴 위로 눈물이 펑펑 샘솟고 있었다.

울면서 웃던 황규온은 냅다 몸을 날려 련을 끌어안았다.

“언니! 언니가 낫게 해 준 거지! 것이, 것이옵니까!”

련은 당황했다. 다른 뭔가였다면 어련히 자신이 했겠거니 할 테지만.

‘혈루가 그냥 사라졌어?’

분명 정화를 해도 통하지 않았던 것 아니었나? 어떻게든 이 아이의 몸에서 사라지길 바라긴 했지만, 바랐다고 이렇게 된단 말인가?

그러나 련은 이윽고 생각을 한편으로 미룬 채 방긋 웃음을 그렸다. 당황하는 련을 보고 주춤했던 황규온이 얼른 다시 활짝 기쁨을 표현했다.

“저 이제 다 나은 것이옵니까? 정말?”

이해하지 못할 기적에 대한 고민은 조금 천천히 해도 괜찮을 것이다. 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규온이 싸워 온 건 혈루뿐이었다. 그것이 사라졌다.

“응, 이제 다 나았어. 전부.”

“저도 이제 무공 배울 수 있사옵니까?”

련은 조금 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저도 이제…….”

그렇게 한참이나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련은 문득 옆에서 지그시 와 닿는 시선을 느끼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단목성이 팔짱을 낀 채 둘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어, 온아야! 온아야, 잠깐만!”

“네?”

“내가 낫게 해 준 거 비밀로 할 수 있어? 아니, 오늘 일 전부 다.”

“네……? 왜요?”

‘륜아가 또 알았다간 날.’

그 조그만 게—화륜이 벌써 자신보다 더 크지만, 련은 모르는 척했다—또 잡아먹으려 들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진짜 영험한 힘 같은 게 있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큰일이고.’

영약 같은 걸 대놓고 노리고 다니는 혈라곡도 있지 않은가. 자신을 노리는 혈라곡 때문에 주위가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소문이 나면 다른 아픈 사람들이 달려올 수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을 모두 다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을 거야. 난 의원도 아니고 온아를 도와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마땅한 이유가 없어서 어물거리자 황규온이 얼른 받아 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비밀로…… 어, 우리 아빠한테도요?”

“어! 응! 절대 말하면 안 돼.”

“하지만 그러면 보은은 어찌하옵니까?”

“어?”

황규온이 억울한 표정으로 련을 올려다보았다.

“절 낫게만 해 주면 아빠가 이 산채랑 천금을 다 준다고 했는데요. 제가 이유도 없이 땅문서 달라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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