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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61)화 (161/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61화

“진짜 천년삼인가? 아닌데, 그럼 이 가격에 이 양이 말이 안 되는데…….”

“그걸로 장사를 할 만큼 많이 만들어 낸 건 놀랍긴 하다만, 온아에게 먹인 영단이라면 이미 많지 않은가.”

황추혼이 말했다.

그의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었던 그 영단들은 물론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렇죠? 그런데 이건 좀 다른 느낌입니다. 온아 녀석, 무공을 배워서 채주님의 뒤를 잇겠다고 벌써 난리법석인 건 들으셨지요?”

“듣긴…… 했네. 들었지, 나는. 들었네마는…….”

그건 너무 꿈같은 이야기였다.

피를 토하지 않으면 다행인 나날들이 이어지기만 할 뿐인, 죽음을 간신히 뒤로 미루기만 할 뿐인 딸이 건강해져서 자신의 무공을 익히고 이어받는다는 건.

황규온의 방문 앞에 다다를 즈음, 문득 황추혼이 엄중하게 말했다.

“나와 자네가 뭔가에 홀린 건 아니겠지?”

“예?”

“아니, 이상하지 않은가. 뭔가 좋은 일만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자신이 단목천기에게 계속, 그때의 일에 대해 말을 꺼냈던 까닭을 알고 있다. 단목천기에게서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서.

그 이기적인 마음을 단목천기가 몰랐을까? 아니, 알았으리라. 그런데도 그가 바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마음을 쓸어 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딸까지 아픈 것이 나아서, 그에게 무공을 배우겠다고 열띤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황추혼은 어딘가 무섭기까지 했다. 이게 다 뭔가에 홀린 거라면 어떡한단 말인가? 다신 못 볼 줄 알았던 단목천기와 만난 것이나, 딸이 건강해진 것까지 전부 꿈이면…….

“안 되겠어. 내 뺨을 때려 보게.”

“미치셨습니까?”

“뭔가 이상하잖나.”

“그래서 제가 채주님 뺨을 때리면요? 그거야말로 진짜 이상한 일 아닙니까?”

“아프면 꿈이 아닌 거 아니겠나. 그렇다고 내가 자네 뺨을 때리긴 좀…….”

철썩!

마 부채주는 더 망설이지 않고 얼른 손을 놀렸다.

황추혼이 놀라서 뺨을 붙잡고 그를 쳐다보았다.

“……꾸, 꿈이 아닌 것 같긴 한데…… 자네 그간 나한테 쌓인 거 있었나?”

“제가 채주님 손에 뺨이라도 맞으면 염라대왕과 마주할 거 아닙니까.”

“염라는 아니고 그냥 삼도천을 건너는 것이겠지.”

“하이고, 산적이 곱게도 죽겠수다. 삼도천에서 수로채 놈들 만날 수는 있겠네요. 그 새끼들 거기서도 털어먹고 있겠는데……?”

황추혼은 얼얼하게 손자국이 난 뺨을 감싸 쥐고서 멍하니 삼도천 풍경을 상상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방문 앞으로 들어가자 기척을 느낀 딸이 비몽사몽인 얼굴로 눈을 떴다.

쓴 약을 주면 ‘어차피 아무 소용 없잖아!’라면서 먹지 않으려던 딸이었는데 하얀 약그릇을 보고서는 도리어 반가운 표정이었다.

“아빠! 앗. 아버지! 오셨사옵니까!”

“아, 아니. 딸아. 갑자기 아버지라니. 그 말투는 또 어디서…….”

황추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표정을 보고 황규온이 뿌듯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저도, 아빠한테 무공을…… 아버지한테 무공을 배울 것이옵니다!”

황규온은 그렇게 말하고는 마화창에게 약을 내놓으라고 재촉했다.

황추혼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 단숨에 들이켜는 규온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딸은 약의 쓴맛에 거의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금방 떨치고서는 벌떡 일어났다.

아직 꼬챙이처럼 마른 채였으나 거무죽죽하던 안색에는 빛이 들었고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

“아버지, 저 꿈이 생겼사옵니다.”

황규온이 황추혼의 코앞까지 다가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 그래. 얘기했지. 네가…….”

“우리 산채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소강 숙부라고 하셨지요?”

“뭐? 누가 그래! 당연히 이 아비가.”

“소강 숙부가 제삼천의 부천주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제가 소강 숙부 뒤를 이어서 제삼천주가 될 것이옵니다! 그래서 련 언니랑 같이 손잡고 혈라곡 놈들 조지기로 했사옵니다!”

은소강은 부천주이니 제삼천주가 된다는 건 뒤를 잇는다기보다는 앞지른다는 말이 옳겠지만, 마 부채주도 황추혼도 그걸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딸의 꿈을 응원해 주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말만 어물거리다가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잠시 뒤, 황규온이 건물 뒤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버지. ……아빠.”

“크흡, 오, 온아야. 얼른 들어가서…….”

“저 이제 안 아픈데도 우시옵니까?”

“아, 안 운다! 누가 운다고!”

“그렇죠?”

딸이 마른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황추혼은 흠뻑 젖은 얼굴을 어깨로 벅벅 쓸고는 양팔을 벌렸다. 황규온이 달려와 그 품에 폭 안겼다.

매일매일 더 자라도 부족하련만 더 가벼워지기만 해서 그의 애간장을 다 녹였던 딸이 지금은 아주, 아주 조금이지만 더 무거워진 것만 같았다.

“제가 제삼천주가 돼서 이제 아버지 안 울리고 효도겠사옵니다. 나만 믿어요. 알았지? 이제 울지 말고요.”

“크흐허헝.”

“그리고 나 낫게 해 주는 사람한테 땅이랑 산채 다 준다고 하셨잖아요.”

“크흥, 어어?”

“지금은 비밀이지만 나중에 알려 줄 테니까 아빠가 꼭 챙겨 주셔야 하옵니다.”

“크흡, 흐읍, 어어…….”

“이제 뚝.”

“어어, 크흥.”

* * *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공기는 차갑게 내려앉았다.

그러다 저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의 꼭대기에 흰 눈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산의 대부분에 눈이 덮여 있었으며, 어느새 거대한 바다인지 호수인지 구분할 수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면이 너무 맑아 깊이를 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호수의 한가운데에 커다란 얼음궁전이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북해…… 빙궁.’

“드디어…….”

모두의 입에서 흰 입김이 나부꼈다. 분명 출발할 때는 여름에 가까웠는데 여기는 한기가 느껴졌다.

새하얀 나무로 만든 커다란 다리가 저 먼 곳의 궁과 육지를 연결하고 있었다. 그들이 다리 앞에 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빙궁 안에서 말을 몬 무사들이 여럿 다가왔다.

“워어, 워!”

무사들은 새파란 옷감으로 두껍게 만든 외투를 걸쳤는데 팔에 딱 맞춘 좁은 소맷자락을 붉은 실로 장식한 차림새였다.

무사들 중 가장 선두에 선 사람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들 딱딱한 표정인 가운데 유난히 더 딱딱한 표정의 남자였다.

“저는 도위라 합니다. 빙궁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습지요. 궁주님 명으로 북해빙궁까지 모시러 왔습니다.”

잠깐의 웅성거림이 번졌다. 표정이 슬그머니 굳은 것은 여기까지 그들을 수행해 온 표국주 양금보였다.

그래도 한 세가의 태상가주가 이 먼 길을 왔는데 마중 나온 것이 빙궁의 경비대장이라니?

그런 그의 곁에서 련은 놀란 얼굴로 도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빙도위

특성 : 부러지지 않는 갈대 / 쾌속 / 전천후 / 안빈낙도 / 겨울잠

자질과 오성 : 상-중

빙백신공(氷白神功) : 8성

빙백신검(氷白神劍) : 10성

한음지(寒陰指) : 7성

백운보(白雲步) : 11성

고민 : 단목세가 일행을 빙궁까지 무사히 데리고 갔다가, 무사히 배웅하기

도움말 : 등 떠밀어 줄 이를 만날 때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고민은 정말 딱 빙궁의 경비대에서 할 법한 내용뿐이었는데 자질이 범상치 않았다. 게다가 특성도 특이했다. 겨울잠과 전천후, 안빈낙도 같은 건 처음 봤다.

‘등 떠밀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등을…… 어디로 밀어?’

그러면 빛을 볼 수 있단 얘기로 미루어 보아 절벽으로 떠밀라는 말은 아닐 텐데…….

그사이 단목현요가 양해를 구하고 끼어들었다.

“도위! 오랜만이네. 그간 잘 지냈나? 어머님 상태는 어떠하신가? 괜찮으신가? 깨어나셔서는 손수 아이들을 챙겨 주셨다고 들었네만.”

둘은 이미 아는 사이였는지, 무사 도위의 눈동자가 잠깐 풀어졌으나 이윽고 나온 화제에는 표정을 굳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남쪽의 좋은 소식을 듣고 잠시 호전되셨으나…….”

남쪽의 좋은 소식이란 련이 일어난 일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단목현요는 탄식이 나오려는 마음을 꾹 억누르며 말고삐를 세게 움켜쥐었다. 잠시 호전되기는 했으나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더 악화되지는 않으셨습니다. 빙정(氷精)의 도우심이지요.”

도위는 그렇게 말하고는 저 높이 솟은 얼음성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단목천기를 바라보았다.

“하여 수십 년 만에…… 다시 빙궁의 문이 열렸습니다.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단목천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해빙궁의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 * *

“그렇게만 입고도 괜찮아요? 춥지는 않아요?”

“응!”

“진짜 그런 거 같기는 하네요.”

화륜은 털조끼만 걸치고 있는 련을 보며 조금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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