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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73)화 (173/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73화

빙설언의 눈동자가 잘게 반짝였다.

“문비의 성취가 제법이로다.”

“하하. 도위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서는 가장 성실하더니 과연.”

처음에는 빙설언 쪽을 흘끗거리는 눈치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몰입했는지 무아지경이 되어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련과 성이 있는 쪽을.

“어어…….”

보법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그쪽으로 다가오다가 마지막 검로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던 단목성이 련을 뒤로 돌리며 검집째로 검을 들어 올려 막아섰다.

채앵!

그와 동시에 문비 역시 집중에서 깨어난 듯 깜짝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바로 앞에 단목성과 련이 있으니 그 옆에는 빙설언과 단목천기, 그리고 빙설한이 나란히 서 있었다. 문비가 그들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 얼른 검을 내리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 아, 죄송, 죄송합니다!”

“무인이 수련에 심취하다 보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법이지. 문비 네가 열심히 한다는 얘기는 들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다급한 기습도 아니었고 적의 어린 공격도 아닌, 검법을 펼치던 아이가 중간부터 몹시 몰입한 게 눈에 보였던지라 실례를 질책하는 사람은 없었다.

“과…… 과찬이십니다!”

문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빙설언에게 그만큼이나 칭찬을 들은 게 정말 기쁜 눈치였다.

“그러나 미약한 정진에 취해 수련을 게을리해서는 아니 되는 법.”

“명심,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몸을 깊이 숙이고 물러서면서도 문비는 련과 성을 흘끗 쳐다보았다. 아주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련아야, 성아야. 빙백검을 한번 보니 어떠하느냐? 한번 해 볼 수 있겠느냐? 이 재종조부가 봐줄 테니 너무 긴장하지 말고.”

빙설한이 말하는 것과 동시에 단목성과 단목천기의 눈길이 동시에 련에게로 쏠렸다.

단목성은 조금 전의 빙문비 뺨치는 의기양양한 얼굴이었고 단목천기는 약간의 걱정이 섞인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련만이 고뇌와 심려에 차서 문비와 빙설한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애가 너무 기죽으면 어떡하지?’

련은 주먹을 말아쥔 채 이마를 문지르며 단목천기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눈길이었다.

그 때였다.

“처음 보고 따라 하는 것도 버거운 것이 빙백검인데 손님께 너무 무례를 범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됩니다.”

문비 옆에 있던 다른 소년이 냉큼 말했다.

위 연배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도위라더니 이 또래에서는 문비가 가장 우수한 듯, 소년이 대신해서 우쭐거리는 기색이었다.

그러니까 단목세가 아이들이 이 검법을 보고 못 따라 해서 창피나 당할까 걱정이 된다 이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단목성이 그 소년을 매섭게 쏘아보다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소손, 비록 검법이 아니라 도법에 매진 중입니다만 좋은 검법을 보았으니 먼저 흉내 내어도 되겠습니까?”

어른들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를 하면서 덧붙였다.

“련아까지 나설 일은 아닌 듯합니다. 손님으로 온 처지에 주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요.”

련이 검을 뽑으면 너희는 눈물 콧물 질질 짤 것이라는 말이었다.

빙궁의 소년소녀들뿐만 아니라 청년들도 눈에 불을 켤 법한 말이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단목현우가 나섰다.

그의 어린 시절을 익히 아는 사람들이라면 보자마자 도망갔을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서였다.

“아이고, 성아야. 그렇다고 이 배움의 자리에서 련아만 쏙 빼놓을 수 있겠니?”

“아! 숙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배움을 나누는 자리니까요, 마음 상할 일도 없겠지요?”

단목현요만 기가 막힌다는 듯, 딸과 죽이 척척 맞는 동생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여기서 무슨 일이 좀 벌어진다고 해도 약간 부끄럽고 말겠지.’

이 먼 북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항주까지 소식이 전해지긴 어려울 테고, 빙설언 말대로 아이들끼리 치고받으며 배우고 익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게 창피한 거였으면 경항운련에 참가했던 세가들도 다 창피해서 봉문했겠지?’

아이들끼리 밤에 자율 훈련 하던 모양새는 거의 ‘련 밑으로 집합!’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좀 놓였다.

“성아는 도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 그건 내가 따로 보여 주는 게 어떻겠느냐? 북해에도 아주 멋진 도법이 있지.”

그때 빙궁주가 불쑥 말했다. 북해의 도법이라는 말에 단목성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영광입니다!”

궁주가 직접 시연해 준다는 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빙궁 사람들도 놀라서 웅성거리는 사이에 련은 한숨을 삼켰다.

단목성이 도법을 따로 배우게 되었으니 여기서는 련이 먼저 나서야 한다.

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파바박 꽂혀 들었다.

단목성과 단목현우까지 나서서 도발해 놓고 쏙 빠지게 되었으니 그 눈빛이 더 거셌다.

련도 마음을 먹었다.

‘그래, 빙궁이랑 화해해야지.’

언제까지 할머니를 빼앗아 간 쪽과 뺏긴 쪽으로 살 수는 없었다.

말로는 안 된다니 몸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다. 원래 친구란 서로 쥐어박고 싸우면서 친해지는 법 아닌가.

‘검보라도 한번 봤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문비는 정말 북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또 그 검을 자신의 몸으로 선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 미숙하고 모자란 부분이야 있겠으나 검로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걸 분명히 보여 주었기에 련이 다시 펼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련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심안, 심안, 조화, 조화!’

주문처럼 웅얼거리자 영기가 확 일어났다. 북해에 오고 나서부터 놀랄 만큼 안정된 상태 덕분인지 아니면 머리며 팔이며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장신구 덕분인지 다시 금방금방 차올랐다.

그리고 련이 움직였다.

빙궁에서는 검법만 보여 주겠다고 말했지만, 제자리에 서서 팔만 휘두르는 게 아닌 한 보법이 따라오는 게 당연했다.

련의 발걸음이 유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인다.

빙궁의 보법 백운보였다. 구름을 밟는 것처럼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움직이는 걸음을 따라 검날이 휘몰아치는 눈보라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비의 발걸음이 련이 본 빙백검과 어우러져 정교한 백운보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차갑지만은 않은 검.’

얼음을 단숨에 녹일 정도의 열기도 있는 검법이라던 빙설언의 말을 짚어 보면서 문비가 펼쳤던 검을 그대로 펼쳤다.

내공을 쌓을 수도 없거니와 빙궁의 심법을 알지도 못하지만, 련이 펼치는 검법을 따라서 냉기와 열기가 번갈아 스며들기 시작했다.

검로에 담겨 있는 묘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되면서 검로가 의도했던 변화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아, 여기선 이걸 위해서 이렇게 움직이라고 했구나!’

완전히 숙련하지 못해서 완벽하게 어우러지지 못했던 문비의 검법과 보법이 련의 손과 발에서 하나가 되어 펼쳐졌다.

‘이거 재미있네.’

모든 무공에는 제각기 첫 종사가 담고자 했던 이치가 담겨 있으니 모두 다른 성질을 띠는 법이고, 많지는 않았으나 이런저런 무공을 견식해 보기도 했는데 뜨거움과 차가움이 함께 휘몰아치는 것은 또 새로웠다.

열기와 냉기가 움직이자 부연 김이 일어나며 련의 주위를 감쌌다. 내공 하나 없이 움직이다 보니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미세한 안개 같았지만 이 연무장에서 그걸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도 안 돼…….”

“맙소사, 이게 무슨…….”

그리고 련이 재미있어서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마침내 멈추어 섰을 때, 련은 웃던 얼굴을 멈춰야 했다.

모두가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선경이 알림을 보내왔다.

행운 수치 증가

빙설한의 깨달음 2

빙설언의 깨달음 2

빙도위의 배움 2

빙문비의 배움 3

현재 행운 수치 : 106/120 (9▲)

‘이거 거의 금광 아니야?’

행운 수치가 팍팍팍 차오르는 것이 거의 꿈만 같았다.

련이 검을 정리하듯 천천히 내리는 사이에 빙궁주는 간신히 표정을 수습하려 했으나 빙설언은 그러지 않았다.

“세상에! 련아야! 방금 한 번 보고 따라 한 게 맞느냐?”

“예, 예에. 문비 양이 잘 보여 주신 덕분이에요. 부족한 실력이겠지만 관대히…….”

련이 겸양의 말을 얼버무렸지만 빙설언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평생을 남 앞에 시연 보이기 위해 훈련하는 교두들도 이처럼 정확하게 펼치지는 못할 것이다. 허허…… 허어…… 궁주, 뭔가 얻은 바가 있으셨소이까?”

빙설언 본인이 한 줄기 빛을 보았기 때문에, 거칠 것 없이 빙설한에게도 물었다.

빙설한은 낯선 이에게 뒤통수라도 후려 맞은 듯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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