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81)화 (181/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81화

오늘 수확한 홍화자들 중에서도 정말로 질이 좋은 것들로만, 그중에서도 가장 잘 익어 말랑말랑한 것들만 고르고 골라 가져온 것이었다.

‘이걸로…… 되겠지?’

빙설언의 얼굴을 보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게…… 제가 온천에서 거둬 온 것들인데요…….”

할머니께서 완전히 나을 수도 있어요. 잃었던 힘을 되찾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어쩌면 실패할 수도 있어요.

어쩌면 아프기만 하고 끝이 날 수도 있어요.

그 말을 할 생각을 하면 돌을 삼킨 것처럼 목이 아렸다.

불확실한 희망이란 가시를 채워 넣은 달콤한 술잔 같았다.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면서도 어딘가 찔린 듯이 아파서 죽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이게…….”

련이 어렵사리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빙설언이 함을 열고는 그 안의 빨간 열매를 냅다 입에 집어넣었다.

“하, 할머니!”

“윽!”

그러곤 인상을 확 찌푸린다.

련과 단목천기가 놀라서 달려오는데, 빙설언은 입을 오므린 채 입 안의 공간을 팽창시키는 묘기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엄청나게 시구나…… 산사나무 열매가 원래 그랬지만…….”

“뜨, 뜨겁진 않으세요? 기분은 괜찮으세요? 이상한 느낌은 안 들고요? 아니, 그걸 그렇게 바로 드시면…….”

“나 먹으라고 가져온 것 아니냐? 아니, 그래, 우리 손녀가 날 위해 가져온 것인데 달다. 아주 달콤하구나.”

빙설언이 곧장 말을 바꾸고는,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해 열매를 하나 더 집어먹었다. 한때 중원 무림을 휩쓸었던 고수다운 품격 어린 표정으로.

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열매와 조모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작은 것 하나를 살짝 깨물었다.

평소였다면 영단 영약 비슷한 것은 혀끝에 대지도 않았을 텐데 그나마 북해에서는 몸이 많이 안정된 상태라 가능한 도전이었다.

“으어어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안 그러면 저절로 벌어진 입에서 반쯤 깨문 열매가 툭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아니, 뭔데 둘 다 그렇게…….”

“달아, 아주 꿀처럼 달콤해. 당신도 하나 드시겠소? 그래도 되겠니, 련아야?”

“어, 이게 몸에 좋은 거긴 한데요. 음, 드실 때 그, 운기조식도 같이 하시면 더 좋을 거 같아요.”

왜냐면 이게 영약이라서요…….

단목천기가 조심스럽게 조그만 열매를 입에 넣었다가 잠시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에 빙설언은 두세 개를 더 집어먹었다. 련이 경악한 얼굴로 빙설언을 쳐다보았다.

“지, 지, 진짜 괜찮으세요? 엄청 신데. 설탕에 절여 볼 걸 그랬어요. 그런데 제가 요리를 하기만 하면 쓴맛이 나서…….”

“아니, 단목세가의 장손이 무슨 부엌에서 요리를 한단 말이야? 당신! 이게 무슨 소리요.”

“그게, 그게 아니고…….”

단목천기는 입 안의 것을 어떻게 목으로 넘기느라 말을 잇지도 못했다. 조금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애가 부엌에 들어가다니! 너는 달리 큰일을 해낼 아이인데 그게 무슨 소리냐. 이게…….”

단목세가에서 손녀를 어화둥둥하지 않음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려던 빙설언이 순간 입을 틀어막았다.

“할머니! 운기조식! 운기조식!”

보통 운기조식이라고 하면 제대로 된 가부좌를 틀고 내공을 끌어올려 몸의 혈도를 따라 기가 흐르게 하는 것인데, 너무 신 홍화자 맛에 셋 다 기겁하느라 무척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평생을 무림인으로 살며 수라장을 헤치고 나온 이답게 빙설언은 어렵지 않게 눈을 내리감고 호흡을 차분히 정돈했다.

“할머니,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혹시 뭔가 토하고 싶으면 바로 뱉어내시면 돼요.”

련이 조모에게 다가갔다. 보통은 운기조식을 할 때 건드리지도 않는 법이지만, 련은 조심스럽게 조모의 등 뒤 허리 아래에 손을 올렸다.

‘아니, 설명을 드릴 새도 없이 드시다니…….’

아마 자신의 표정이 무척 나빴으리라, 련은 스스로를 책망했다. 무거운 련의 얼굴을 보고서 빙설언이 그 마음을 풀어 주려고 냅다 홍화자를 집어먹은 것이다.

‘정화, 정화, 정화…….’

련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눈동자 위로 별빛 같은 반짝임이 사르르 올라오며 련의 머리카락과 가느다란 옷깃이 바람에 부풀듯 떠올랐다.

그리고 손끝을 따라 청명한 영기가 스며들어, 빙설언의 미약한 내기와 홍화자의 기운을 정화해 다시 빙설언에게 돌려주기 시작했다.

‘아, 이래서 홍화시가 필요하다고 했구나…….’

사람의 몸을 휘감는 내기의 흐름이 련에게 알려 주었다.

빙설언의 무엇이 황규온과 달랐나?

두 사람은 나란히 혈루의 힘에 저항했지만, 규온은 무공을 조금도 익히지 않은 몸이었고 빙설언은 차가운 북해의 무공을 체화한 사람이었다.

규온의 경우엔 몸에 남아 있는 혈루를 토해 내게 한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빙설언에게는 몸을 차게 하는 북해의 무공 속에 스며들어 얼어붙은 혈루가 남아 있었다.

이걸 녹일 따뜻한 기운과 그 이후 빙설언의 내공을 회복할 차가운 기운이 동시에 필요했기에 뜨거운 물을 먹고 자랐으면서도 빙정의 냉기를 흡수한 홍화시를 구해야 했던 것이다.

‘꼭 감이 아니어도 돼서 진짜 다행이다.’

홍화시를 구하라고 했는데 간신히 만든 것이 홍화자여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던가.

그때였다.

내공의 정화에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내공의 정화에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행운 수치 : 101 / 120 (15▼)

갑자기 쑥 꺼진 행운에 련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타인의 내공에 직접 간여하는 일이니만큼 작은 실수도 큰 상처로 되돌아올 수 있다. 아마 그 실수를 막는 데 쓰인 모양이었다.

‘다 써도 되니까, 제발!’

내공의 정화에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내공의 정화에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행운 수치 : 91 / 120 (10▼)

정신을 집중하고 정화를 거듭했다. 련의 집중력이 올라갈수록 쓰이는 행운 수치도 더 줄어들었다.

내공의 정화에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내공의 정화에 행운이 소모되었습니다!

행운 수치 : 85 / 120 (6▼)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련이 홍화자의 기운과 많지 않은 빙설언의 내공을 한 바퀴 정화했을 때.

‘이제 사라져, 혈루.’

빙설언이 왈칵 피를 토했다. 옷의 앞섬을 새카맣게 물들이는 피였다.

“설언!”

“할머니, 이제 괜…… 우욱.”

그리고 그와 동시에 련도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 등에 피를 토할 수도 없고 삼킬 만한 양도 아니었던지라 가까스로 손을 들어 막았다.

“련아야!”

“련아, 련아야!”

단목천기와 빙설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서 의원을 부르려고 했지만 련은 고개를 흔들었다.

지나치게 새빨개서 눈에 박힐 것처럼 보였던 피가 옷과 손을 물들였지만, 련은 창백해진 얼굴로나마 눈을 접고 웃고 있었다.

잔존 혈루 소멸에 성공했습니다.

혈루를 완전히 소멸시키는 방법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행운 수치 : 100/120 (15▲)

눈앞에 선경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잿빛 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두 조손이 토해 낸 피가 가루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었다.

“아! 이거! 이건 어떻게 챙겨서 연구라도 해야 하는데!”

“뭐?”

손녀가 피를 토한 얼굴로 절박하게 말하는데 듣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단목천기는 홍화자가 있던 함을 냅다 엎고는 빙설언이 피를 토한 소맷자락을 잘라 내 그 안에 집어넣곤 다급하게 뚜껑을 닫았다.

그 소동이 끝났을 때는 련이 토했던 핏자국도 씻은 듯이 없어진 뒤였다. 다소 창백한 련의 얼굴만이 조금 전의 일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련은 자신의 얼굴을 돌아볼 새도 없었다. 선경이 말해 주지 않았나, 할머니가 다 나으셨다고!

“할머니, 몸은 어떠세요? 이제 괜…….”

“지금 내 몸이 문제야? 네가 갑자기 피를 토했는데! 지난번에도 그러지 않았더냐? 그때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줄 알고 넘겼느니라. 그런데 네가, 다시 이렇게…… 이렇게 이 할미가 낫는다고 기뻐할 줄 알아!”

“하지만 이건 잠깐이고, 제가 진짜 어디 아픈 것도 아니에요. 그냥 뭔가, 피가 밖으로 나온 것 정도? 이걸로 할머니는 완전히 나으실…….”

“허튼소리!”

빙설언이 외치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련은 이렇게 혼이 날 줄은 몰랐던지라 눈만 동그랗게 떴다.

“어느 할미가 손녀 피로 살아나고 싶어 한단 말이냐!”

“할머니가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네가 엉덩이라도 맞아야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구나!”

“네, 네에?”

“아, 아니. 설언. 아이가…….”

단목천기도 당황해서 끼어들려 했지만 빙설언이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련을 홱 잡아끌었다.

그러나 련을 앞에 세워 두고서는 말처럼 정말로 때리지는 못했다. 때리려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그저 팔을 움찔거리다가, 떨리는 손으로 련의 어깨에서부터 팔을 타고 손목을 간신히 붙잡았을 뿐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