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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82)화 (18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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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82화

“어찌…… 어찌 이런…… 이런 짓을 또…….”

“할머니, 죄송해요. 전 진짜 괜찮아요. 그건 제가 무리한 게 아니라, 저 정말…….”

“무리가 아니어도 하지 말았어야지. 난 이미 거의 다 나은 것 아니었더냐!”

“하지만…….”

한때 찬란했던 무공을 다시 쌓아야 하는데, 남아 있는 혈루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그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설언.”

단목천기가 설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련아야.”

“……네, 할아버지…….”

“네 마음은 안다.”

어찌 모를까.

저리 영민하고 셈이 빠른 아이가 조부모에게서 받은 것을 얼마나 헤아렸겠는가.

자신에게 그녀를 낫게 해 줄 힘이 있다는 걸 알고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그러고도 완전히 낫지 못한 빙설언을 보면서…….

잠깐 피 한번 토해 내고 빙설언을 낫게 해 줄 수 있다면, 그건 련에게는 고민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이러는 걸 보아야 했다면 나도 설언도 차라리 영원히 낫지 못한 채 죽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야. 이 마음도 알겠느냐?”

“…….”

련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단목천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너를 보고 걱정하는 우리 마음은 알겠느냐?”

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해요…….”

“네가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네 할미를 위해 매일같이 노력한 걸 아는데 어찌 탓할까.”

“…….”

“그러나 걱정 끼치기 싫다고 이런 일을 비밀로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순간 빙설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런 일? 이게 분류가 될 일이야? 이게 한 번이 아니라고? 아니, 그래! 아니겠지. 네가 이 성격에 나만 가지고 그랬겠느냐!”

“아, 아니…….”

“네가 진짜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아니 이 작은 것에 쥐어박을 데도 없건만.”

빙설언이 탄식했다. 련은 그녀의 눈가가 젖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쥐어박을 데도 하나 없는데 어쩌자고 이런단 말이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이제는 사라진 옛일이지만, 그 시절 련에게는 피를 토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한 번도 아프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그녀에게 남아 있는 날은 언제나 막연하고 짧아서 내일일 수도 있었고 내일모레일 수도 있었고 오늘 밤일 수도 있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바람 앞의 평범한 하루와 바꿔서 조모의 건강을 되찾는다면 고민할 게 없었다.

“그러면 기다려야지. 방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면요?”

인내하고 기다리고 찾아 헤맨 끝에 이게 유일한 답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빙설언이 그렇게 날려 보낸 시간은 누가 보상해 준단 말인가.

“그렇다고…….”

“부인, 그만하시오.”

빙설언이 울컥한 눈으로 단목천기를 올려다보았으나 고개를 홱 돌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련아야, 네 마음을 안다 하지 않았느냐.”

“……네.”

“그래서 내가 무어라 했지?”

“비밀로 하지 말라고요…….”

“혼내지 않을 테니 이런 일을 하기에 앞서 꼭 가족과 상의하거라. 일이 먼저 벌어지고 말았다면 꼭 알려 주고.”

“…….”

“상의할 시간이 있었는데 사고부터 치지 말고!”

빙설언이 빠르게 덧붙였다. 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명하다 영명하다 했더니 이리 큰 사고를 쳐서 할미 심장을 떨어뜨려? 네 어미가 알았으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겠느냐.”

“어머니한테는 비밀로 해 주세요…….”

“네가 걱정 끼칠 짓을 한 것을 알긴 하겠지?”

“알죠…… 하지만…….”

“저울질하지 마라.”

빙설언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내의 공기가 웅웅 울렸다. 단목천기는 그녀와 함께해 온 옛일들을 천천히 회상하며 빙설언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빙설언은 자신의 눈과 같은 눈을 가진 손녀딸만을 주시하며 말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너를 저울에 올려선 안 된다.”

“…….”

“타인을 위하는 것은 좋다. 힘을 가졌으니 응당 약자를 지키는 것이 옳다. 그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운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 운과 기회를 준 이 세상에 보은함이 마땅하지.”

“네.”

“그러나 그것이 너를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네.”

“너 한 사람이 스스로를 깎아 남을 위하면, 그에 감화될 자도 있겠으나 누군가는 오히려 자신의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뒤로 물러서게 된다.”

련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눈을 깜박이기만 했다.

“너 혼자서 백의 힘으로 세상과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백 명의 사람이 하나씩 하나씩 힘을 모아 구하는 것이지. 한 사람이 하나, 단 하나면 된다.”

“아…….”

“그 하나는 자신의 것을 희생하는 것도 아니요 잃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사람에겐 누구나 그 하나가 있어.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것. 자신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세상에게서, 남에게서 받은 것.”

빙설언은 자신과 똑 닮은 련의 눈가를 쓸었다.

“네가 백을 내놓는다는 것이, 하나도 간신히 내놓을 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거라. 네가 내놓을 백이 온전히 네 것인지도 생각하거라. 네 가족과 벗,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몫을 네 것처럼 생각하진 않았는지를 또 생각하거라.”

빙설언은 말했다.

“그리하여 하나만 내놓도록 하거라.”

“제게 힘이 있어도요?”

“너는 이토록 명석하니 네 하나가 다른 이들의 하나보다 클 수는 있겠지.”

“…….”

“그러나 하나여야 한다.”

“…….”

그리고 그제야 빙설언이 장난스레 덧붙였다.

“혼자서 백씩 힘을 내는 걸 둘이나 해 봤는데도 잘 안 되더라고. 사실 따지자면 그런 사람이 수백 명쯤 됐는데도 말이야. 아니 그렇소?”

“크흠.”

단목천기가 헛기침했다. 둘 다 그러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나서 손녀가 무리하게 된 셈이라 그걸 되짚는 것이 창피했다.

“……할머니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그러면 되었다. 할아버지 말도 잘 들어야지?”

“네에…….”

할머니를 낫게 하려고 애썼다가 와장창 혼이 나서 한껏 시무룩해지자, 이제는 단목천기와 빙설언도 어쩔 줄 모르기 시작했다.

“그…… 련아야, 어. 음. 이 할미가 널 걱정하고 놀라서 그랬지만 정말 고맙구나. 다 나았다. 나 이제 뭐든 할 수 있소! 진짜!”

빙설언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단목천기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그의 검을 뽑아 들었다.

“이거 보렴!”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맨발로 보법을 밟으며 검을 휘날리기 시작한다. 문비가 보여 주었던 바로 그 검범이 훨씬 정교하고 아름답게 펼쳐졌다.

“정말…… 이렇게…….”

단목천기가 그 모습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빙설언을 따라 잿빛으로 물든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환히 웃는 그녀의 얼굴이 일렁였다.

마침내 검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끝냈을 때는, 빙설언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녀를 달래 주려고 움직였던 것인데 정말로 끝까지 해냈다.

정말 다 나은 것이다. 그녀를 오래도록 끈질기게 괴롭히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련아야! 내가…… 진짜…… 나았는데…….”

이 모든 걸 돌려준 손녀를 두고 호통치기만 했으니.

“그…… 크흠…… 어, 할미가 빙당호로 맛있게 하는 놈을 알고 있으니 이 산사나무 열매들로 빙당호로 만들어 달라고 할까?”

“이거 영약인데.”

“아.”

영약호로를 만들기는 좀 그렇긴 했다.

어쩐지 몸에 좋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이걸 먹고 다 나았구나, 그런 얘기를 주절대던 빙설언이 간절한 눈으로 단목천기를 바라보았다. 련을 달랠 수 있는 방도를 찾아 헤매는 얼굴이었다.

“어, 련아야. 내가…….”

장신구나 금은보화야 이미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고, 무가의 아이에게 선물로 줄 만한 걸 생각했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건강 문제로 내공을 쌓지 못하는 련에게는 그 어떤 내단도 필요치 않고—심지어 그런 게 필요하면 스스로 만들 수도 있으니—, 무기는 아무래도 손에 딱 맞게 만들어 주는 것이 제일일 터라 당장은 구하기 여의치 않았다.

‘이렇게 무능한 조부모였다고?’

애를 훈계해 놓고 달랠 방도 하나도 떠올릴 수가 없다니!

“이 할미가…… 물구나무라도 서마.”

“네?”

“아, 아니 당신은 또 무슨 말을 하는 거요.”

“흥! 나는 우리 손녀를 웃게 하기 위해 체통도 위엄도 다 버릴 수 있소.”

“조금 전에 스스로를 희생해서 희생 못하는 사람을 비난케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했지 않소……”

“그래서 당신은 못 하겠다는 거요? 그 잘난 위엄과 체통을 지키려고?”

빙설언이 냅다 바닥에 손을 대려고 해서 단목천기가 황급히 막아섰다.

“아니…… 체통…… 체통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러면 련아가 불효자식이 되는 거잖소!”

“아……! 련아야, 그게 아니다. 그 뜻이 아니라…….”

빙설언이 손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련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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