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88화
항주로 돌아가는 길은 모두 웃음이 넘쳐흘렀다.
빙설언과 당장 함께 오진 못했지만 건강해진 그녀가 곧 돌아올 거라 약조했고, 련은 내공을 익힐 수 있게 되었으니!
‘하……. 쓰읍…….’
그러나 련은 울다 웃다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 먼저 숨을 들이마실 때는 별을 떨어뜨리듯 하고, 숨을 내쉴 때에는 별빛을 사그라뜨리듯 하며, 속에 품을 때는 별빛을 꺼뜨리지 않아야 하고, 밖에 내놓을 때에는 누구나 그 빛을 보고 바른길로 갈 수 있어야 하고…….
유성진결을 익히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보통 심법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은, 처음에 주위의 기를 인지하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 속에 내포된 기운을 알아채는 것.
련에게는 가장 쉬운 부분이었다. 넘치게 휘몰아치는 것이 언제나 문제 아니었던가.
심법의 구결을 외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내공을 쌓을 수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하…… 이거 1갑자 쌓는 데 천년쯤 걸리는 거 아냐?’
문제는 막상 심법을 익히고 보니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게 느리다는 것이었다.
보통 절정 고수가 되는 데는 1갑자 이상의 내공이 필요하다. 1갑자, 즉 60년 동안 쌓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속도에 욕심을 내다 보면 내공의 정순함이 떨어져 끝이 좋지 않은 게 보통이었다.
해서 이름 높은 명문 백도 문파의 심법일수록 기본적인 토납법보다 내공을 쌓는 속도가 약간 빠른 정도에 그쳤다.
흑천련의 경우는 두 배 이상 빠른 심법도 있다고 듣기는 했으나…….
‘울면서 숭산에 찾아오는 흑천련 고수들이 종종 있다던데.’
흑천련에서도 유서 깊은 곳들의 심법이야 그렇지 않다지만, 기본적으로 제자를 모집하는 게 아니라 형제자매를 받아들이는 곳이다 보니 제각기 저 좋다는 걸 익히는 경우도 많았다.
젊었을 때야 급한 성질 못 이기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과실 찾아 내공을 쌓다가, 여차저차 살아남다 보니 절정 고수의 문이 코앞에 열렸는데 내공의 탁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 되면 뭘 하겠는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고 후회한들 바뀌는 건 없으니 부처와 구천현녀, 태상노군과 천지신명을 찾을 수밖에…….
‘시간을…… 되돌릴 수 있긴 하지.’
자신이 되돌아왔지 않았던가. 심지어 죽어서 재가 되었다가 다시.
‘어떻게 된 거였을까?’
영기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거라면 죽는 순간 되돌아왔을 것이다.
왜 자신이 죽은 뒤 혼백이 되어 이승과 저승 삼라만상까지 떠돌다 겨우 돌아오게 된 거였을까?
‘그 이유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시간을 뛰어넘어 자신의 영기가 어떻게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지 이해하게 된 것처럼.
심법을 운용해 보자 그 이치가 손에 잡힐 듯 더욱 명쾌하게 이해되었다.
애당초 영기라는 것이, 자연의 힘이 쌓이고 응축되어 만들어지는 순수하고 강맹한 것이다.
그걸 인간 몸에 쑤셔 넣으니 버틸 수가 있나?
땅의 힘이 압력과 고온을 받아 만들어진 만년지극혈보를 그냥 먹으면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해 불타 죽고 극한지에서 자란 만년설삼을 그냥 먹으면 그 냉기에 얼어붙게 된다.
자연의 힘이란 이토록 거친 것이다.
‘이 힘을 내공 대신 쓰는 건 정말 불가능했겠구나.’
이 영기를 곧장 끌어다 내기를 대신해 쓰려면 영기가 몸 안팎으로 거세게 출입을 해야 하는데…….
자연의 힘을 그대로 응축한 영기를 몸으로 한 번 걸러 안정시켜서 내기를 대신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그걸 방출하는 것도, 쓴 만큼을 급히 흡수하는 것도 모두 몸에 강한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공이 이렇게까지 느리게 쌓일 줄은…….’
얼음성벽으로 지어진 단전 안에 아주 맑은 샘 하나.
련이 내공을 쌓으려면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먼저 련의 몸을 떠도는 다소 응축이 많이 된 자연의 힘을 냉기로 얼려 얼음성벽에 벽돌을 쌓아 무너지지 않게 힘을 보태는 것이 첫 번째, 그 일부를 열기로 녹여내 정결한 힘을 모으는 것이 두 번째.
그렇게 하루 종일 유성진결을 운용해야 겨우 한 방울이 나올까 말까 했다.
이마저도 빙백신공을 한 번 본 덕에 냉기를 좀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더욱 오래 걸렸을 테다.
“하아…….”
“왜 한숨이에요?”
심법을 처음 익힐 때 하루 종일 단목천기와 즐겁게 재잘거리던 단목련이었는데 그건 며칠 가지 않았다.
마차 안에서 창밖을 보고 있던 화륜이 고개를 돌리고 묻는 말에 련은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심법이…… 내공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그와 동시에 화륜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마치 어린애를 달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아니 그러면 뭐 하룻밤 새 일 갑자의 내공이라도 만들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원래 다들 오래 걸려요.”
“내가 빨리 쌓고 싶은 게 아니야!”
“네, 네. 그게 원래 오래 걸리는 거라니까요.”
“지금 나는 ‘원래 오래 걸리는 정도’가 아니라 남들보다 엄청 오래 걸린다고…….”
내공을 대강 적당히 빨리빨리 쌓아 놓고 차후에 정화를 사용하는 방법도 생각했는데 불가능했다.
일단 단전의 얼음벽을 통과할 수 없어서.
“에잇, 내공 쌓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넌 뭘 그렇게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어?”
“누이가 그렇게 뭔가 하고 싶어 하는 건 또 처음 봐서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래? 금은보화도 장신구도 맛있는 것도 다 가져야 되고.”
“흐음. 금은보화에 장신구에 맛있는 거?”
“거기에 멋진 악기랑 날이 잘 선 검하고 예쁜 부채.”
“악기랑 칼이랑 부채?”
“우리 세가가 원래 가지고 있던 과수원하고 전답이랑 목장하고…….”
“과수원과 전답에 목장?”
“그리고 무사고 무재해 무병장수!”
“……그건 좀.”
“아니 왜?”
“무사고 무재해는 이미 텄고, 뭐 무병장수는 힘내 보죠.”
련은 입술만 달싹거렸다. 무사고 무재해가 텄다는데 련도 양심이 있으니 반박할 말이 여의치 않았다.
화륜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무병장수도 텄나? 사람이 보통 그렇게 피 토하고 다니면 이미 무병이라고 하기는 좀…….”
“우화륜!”
“그러게 누가 그런 짓 하고 다니래요?”
조금 전까지 장단 맞춰 주던 얼굴은 어디 가고 뚱한 표정이 되어서는 련을 쳐다보는 화륜이었다.
련은 그런 화륜을 흘겨보다가 오래지 않아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화륜은 왜 웃느냐고 캐묻지 않고 뚱한 얼굴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문득 말했다.
“……그걸 다 이루려면 역시 힘이 있어야겠죠.”
“으응?”
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화륜의 말이 왜인지 이상하게 들렸다.
그러나 대꾸할 새 없이 마차가 멈추어 섰다. 야영지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마차의 창이 빼꼼 열리며 단목현우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련아야! 천랑대 부대주께서도 좋은 말씀 듣고 싶으시다는데…….”
“와! 물론이죠!”
련은 눈앞에 행운 수치가 걸어들어오는 환영을 보며 반짝 눈을 빛냈다.
* * *
빙궁은 새외(塞外 요새, 변방의 밖)라고 불릴 만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가장 가깝다고 하는 모용세가도 가려면 꼬박 열흘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거기다 쾌활한 단목현우가 여기저기 끼어들면서 논검을 하고 비무를 하자고 졸라 대니, 함께하는 모두와 친해지는 것도 금방이었다.
그 ‘모두’에는 항주에서부터 함께 온, 단목세가의 유성표국 표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태 제대로 된 존재감 한번 각인시키질 못했던 그들은 단목현우가 불붙인 비무에서라도 실력을 보이고 싶어 했다.
북해 제일의 무력 집단인 천랑대의 대원을 꺾으면, 그게 긴 여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비무였다 하더라도 명예가 되지 않겠는가.
물론 쉽지 않았다. 빙궁주가 정예라고 호언장담한 천랑대의 대원과 이제 겨우 성장세를 탄 표국의 표사가 붙었으니, 세 번을 붙어서 세 번 모두 패배했던 것이다.
이쪽은 젊은 표사이고 저쪽은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 업인 무사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그러나 네 번째는 달랐다.
“……고생하셨소이다.”
“조, 허억, 좋은 비무…… 감사했습니다. 많이, 흐읍, 많이 배웠습니다.”
표두 팽자광의 네 번째 비무는 다소 무료했던 천랑대 부대주가 맡았다.
유성표국은 어쨌거나 단목세가의 표국이고 이 세가의 장손에게는 빙궁이 큰 은혜를 입었으니, 표두가 일개 대원의 손에 패배하는 꼴만 자꾸 보여 주는 것도 실례였다.
차라리 대주나 부대주에게 졌다면야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겠다 싶어서 자신이 나선 것인데…….
‘어, 어떻게?’
이 표두의 무공 실력이 비무할 때마다 부쩍부쩍 느는 것이야 알고는 있었다. 뒤늦게 재능이 꽃피는 경우 아닌가 하며 수군거리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부대주인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만한 실력이 있었던가?
아무리 내공 사용을 금지하는 제약을 걸어 둔 비무라고는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