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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93)화 (193/204)

몰락 세가의 시한부 영약 193화

청사검의 끝 또한 적사검과 똑같았다.

그리고 흑사검은 청사검의 목이 베이는 그 틈을 노려 눈알을 붉게 물들이고 단목천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흐아아아앗!”

차차차창!

검과 검이 격렬하게 부딪히며 불티가 날렸다.

단목천기가 흑사검의 검기를 흘려 내자, 빗나간 검기가 옆에 있던 혈라곡 혈귀를 할퀴고 지나갔다.

“커헉!”

혈귀가 등에 칼을 맞고 절명했으나 흑사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단목천기만 바라보며 검을 놀렸다.

퍼버버벙!

콰아앙!

옷자락이 거칠게 나부끼며 흑사검의 검과 단목천기의 검이 거세게 부딪혔다.

“네 피를 마시고 다시 살아날 것이다!”

채채챙!

콰앙!

격렬하게 대치하면서도 흑사검은 전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어째서!’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그들 셋이 단목천기를 완전히 제압하진 못하더라도 붙잡고 있는 동안, 다른 놈들이 마차를 습격해 물건을 챙겨 오기로 한 것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단목천기도, 마차 습격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사검과 적사검은 이미 죽은 데다가 혈라곡의 무인들은 바다 같았다. 끊임없이 밀려들지만, 모래사장에 부딪혀 포말로 사라지고 마는.

빙궁과 단목세가 무사들이 이토록 강했던가?

그러나 대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홀로 남은 흑사검은 한눈을 팔면서까지 단목천기의 검을 감당할 수 없었다.

단목천기의 마지막 초식이 흑사검의 검을 부러뜨리고 흑사검의 턱밑까지 파고들었다.

“어떻…… 게…….”

“어리석은 것, 너를 상대할 방법이 없었다 여겼느냐.”

절체절명의 순간, 흑사검의 목에서 칼을 멈춘 단목천기가 엄중하게 외쳤다.

“저들을 멈춰 세워라! 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흑사검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공포심이 깃들었다가 다시 흩어졌다.

“하하! 저놈들은 너희를 다 죽이기 전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네게 멈춰 세울 능력이 없는 것인가?”

무능력을 조롱당한 흑사검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저들은 곡주님의 명만을 따른다.”

“곡주의 명이 무엇이었느냐?”

“너희를 모조리 죽이고 너희가 가진 영단을 빼앗는 것!”

단목천기는 이 어리석은 죄악을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살려 보낼 생각은 없었다.

“너 또한 곡주의 명을 따르느냐? 곡주가 너를 속였는데도?”

“아니! 곡주님은 아무것도 속이지 않으셨다! 적사검과 청사검은 어리석어 삿된 의심을 하였으니 죽…….”

“영단은 없다.”

단목천기가 말했다. 흑사검이 비웃음을 터뜨렸다.

“우릴 물러나게 하려고 용을 쓰는구나! 그러나 우리의 용맹한…….”

“네 잘난 곡주가 너희에게 명하며 무슨 영단인지는 알려 주더냐?”

“뭐?”

“대환단, 태을신단, 한련서리단, 태청단…… 이 강호에 이름 높은 영단이 한둘이 아닌데 그중에 우리가 가진 게 무엇인지를, 네게 알려는 주더냐?”

“……!”

“그랬을 리가 없지.”

있지도 않은 것을 어찌 알려 줄 수 있단 말인가.

이 수백의 혈귀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영단을 찾아오라는 말 하나만 듣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순간 마지막을 직감한 흑사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단목세가에 정말 영단 같은 것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을 위해 청사검과 적사검이, 그리고 자신이 죽게 된단 말인가?

이 거대한 헛짓거리 끝에?

그렇다면 곡주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거란 말인가! 이 산을 거대한 무덤으로 만들면서 대체 무엇을!

“그저 악으로 점철된 비참한 인생아, 너의 생에 유일한 선함이 있다면 내 칼 아래 목을 내밀러 온 것이로다.”

단목천기는 덤덤하게 말하며 칼을 고쳐 쥐었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신기하구나. 내가 새로이 성취를 얻었다는 소문이 제법 퍼진 줄 알았거늘.”

“하하! 당연히 항주 시장바닥에 떠도는 유언비어라 여겼지! 그렇지 않고서야 금가장주가 살아 있을 리가 없으니까!”

흑사검이 침을 뱉었다. 그로 인해 칼날이 더욱 깊게 파고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네가 힘을 얻었는데도 아들의 복수조차 하지 않는 비겁자일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느냐!”

단목천기는 동정심 하나 없는 얼굴로 흑사검을 내려다보았다.

“넌 인생 전부를 땅을 부수고 하늘을 깨부수는 데 소모하며 그저 부질없이 살다 가는구나.”

“무슨 헛소리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땅을 증오하고 소나기를 맞으면 하늘을 부수려하니 이다지도 어리석은 자가 있나.”

“네 아들이 네게는 돌부리요 소나기밖에 되지 못하느냐? 하늘에서 울고 있겠구나!”

단목천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네 일생을 알겠다. 넌 네가 모든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고 다니면서 세상이 너를 미워한다고 울부짖다가, 이런 힘을 얻어 한다는 것 또한 고작해야 네 어깨에 부딪힌 이들을 죽이려는 것이로구나.”

“네놈-!”

흑사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나 단목천기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마음이 간장 종지만 하니 하늘과 같은 힘을 얻은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리고 칼을 움직였다.

“네 목은 저승에서 현성이 자를 것인즉.”

촤악!

단목천기는 흑사검의 심장에 칼을 박았다가 뽑았다. 피가 뿜어져 그의 뺨에 튀었다.

삼백이 넘는 혈귀들은 그들을 이끌고 온 삼인방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서 눈이 벌게져 오로지 돌격하고 있었다.

옆 사람이 죽어도 개의치 않는다. 검에 찔려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둘러싸인 빙궁과 세가의 무사들은 버거워 보이긴 했지만, 침착하게 마차 주위로 밀집해 싸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혈귀들을 상대로 이만큼이나 버틴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로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무사들은 모두 자신의 수준 이상으로 해내고 있었다.

단목천기는 자신의 아들과 딸이 필사적으로 지키고 선 마차를 흘끗 쳐다보았다.

이번 여행길에서 련은 평소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행동하며 무사들과 어울렸다.

자신이 아는 걸 전하려고 했고 깨우치려는 열망을 가진 무사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이걸 대비한 거였더냐.’

빙궁에서부터 무사들을 증원해 데리고 오려고 했던 것도 련이었다.

그 무사들에게 달라붙어 어떻게든 실력을 끌어올린 것도 련이다.

지난 일주일의 시간이 무사들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언뜻 보면 세가와 빙궁의 무사들이 잘 버티는 듯 보였으나 상대는 전원이 이 갑자 이상의 내공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혈귀들이었다.

통증에 움츠러드는 이쪽과 달리 저쪽은 공포도 아픔도 모른다.

한 사람이 쓰러지면 다음 사람이 달려드니, 공방이 길어지면 불리해지는 건 이쪽이었다.

“으아아아!”

“멸라! 행협!”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하나둘씩 부상을 입고 쓰러지는 무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사들은 모두 피를 뒤집어쓴 형상이었다.

그때 마차의 작은 창이 덜컹 열렸다.

“할아버지! 불이에요! 불! 산불!”

련의 작은 손이 먼 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러나 희미한 연기인지 안개인지 알기 어려운 형상만 보일 뿐이었다.

단목현요가 피에 젖은 얼굴을 어깨로 닦아 내며 황급히 련의 손을 밀어 넣고 그 창문을 닫았다.

그 순간 단목천기의 눈에 무언가가 반짝 빛을 반사하는 것이 보였다. 빠르지만 정확하게 몇 차례에 걸쳐 빛이 반사되었다.

수십 년 전 혈라곡을 상대하던 무림인들이 쓰는 거울 신호 중에 하나였다.

전쟁터에서 죽도록 싸울 때면, 전음으로 말을 전달하려 해도 받을 사람이 어디 있는지 바로 찾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 반사하는 빛이 의미하는 바는.

‘화공(火功)!’

단목천기는 아주 멀리서 나무와 수풀에 붉게 번지는 언뜻 비치는 피 분수 사이로 검은 머리와 흰 머리 노인의 모습을 보았다.

‘백담과 흑담?’

지금 이때 이만큼 살아남은 중원의 무인들이란, 결과적으로는 모두 전우이기도 했다.

단목천기 역시 한때 저 두 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혈라곡을 상대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보아하니 빙궁까지 가는 길에 띄엄띄엄 느껴지던 기척이 그들이었던 것 같았다.

워낙 멀리서 드물게 나타나는 데다가 딱히 살심(殺心)이 느껴지지 않기에 내버려 두었는데.

그러나 고민은 짧았다. 마천교도들은 대체적으로 혈라곡을 몹시 경멸하고 혐오하는 쪽이었고, 보아하니 지금도 열심히 박멸 중인 듯했다.

“아버지! 련아 말대로라면…….”

불이라는 얘기를 들은 단목현요가 단목천기에게로 다가왔다.

연기는 미약해 보였으나 단목천기는 망설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련아가 허튼소리를 하는 법이 없고 불을 지르는 악랄한 수법은 혈라곡의 전통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불길이 멀어 보여도 빠르게 번질 테니 그에 대비해야겠다.”

가질 수 없게 되면 모조리 파괴하는 혈라곡의 특기 중 하나가 화공(火功)이었다.

안에 아군이 함께 있는데도 개의치 않고 산을 통째로 태워 버리려는 악귀들!

단목천기의 오랜 흉터가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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